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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무산의 문학세계와 그 위상* / 이숭원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
[78호] 2019년 06월 01일 (토) 이숭원 nanan303@naver.com

설악무산의 불학사상과 그 의미 / 조병활 
설악무산의 문학세계와 그 위상 / 이숭원
기자가 본 설악무산의 인간적 면모 / 조현

2019년 5월 15일(수) 오후 6시 30분 / 동국대 만해마을 문인의 집 강당
주관 / 계간 불교평론 후원 / 설악산 신흥사 · 백담사

 

1. 서정 시조의 출발

조오현 시인은 신경림 시인과의 대담에서 그가 시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한때 친하게 지내던 벗이 문학청년이 되었다고 찾아와 기고만장한 자세로 너스레를 떨기에 나라고 시를 못 쓰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하룻밤 내내 공을 들여 쓴 〈할미꽃〉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것을 알고 다음에는 작심하고 시조 짓기에 전념했다. 당시 거의 유일한 시조 전문지였던 《시조문학》에 작품을 투고하여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추천작을 보내기 전 독자 투고 형식으로 《시조문학》 12호(1965.12)에 〈피안행(彼岸行)〉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이태극, 조종현, 정완영, 서정주 등 시인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 자문을 얻었다고 했는데, 이때 이태극에게 편지와 함께 작품을 보냈던 것 같다. 〈피안행〉은 습작기의 노력을 엿보게 하는 소박한 작품이다. 《시조문학》 주간 이태극은 좀 더 정제된 작품을 투고하여 추천을 받으라고 권유했을 것이다.

당시 《시조문학》은 3회 추천으로 등단을 완료하였기 때문에 그의 투고는 1966년 9월부터 1968년 4월까지 일 년 반 동안 지속되었다. 1966년 9월 《시조문학》 14호에 다음 작품이 첫 추천을 받아 실렸다.

 

진흙덩이 뚫고 나온 난생이 잎입니다

갈증에 목이 말라 시들어버리기 전에

목숨의 계류(溪流)를 끼고 살게 하여 주세요.

 

스스로 못 자라는 나약한 줄깁니다

가쁜 숨 몰아쉬면 향기로운 내음 일고

벌이 와 잉잉거려도 웃게 하여 주세요.

상념은 맴을 돌고 업은 짙어옵니다

우화(羽化)할 번데기처럼 허물 다 벗기도록

무심한 수양(垂楊) 그늘에 몸을 씻어주세요.

— 〈염원〉 전문

 

자신의 존재 위상을 진흙덩이를 간신히 뚫고 나온 연약한 냉이 잎으로 표상하여 갈증에 목이 말라 하면서도 목숨의 계류를 따라 생명을 피우며 살겠다는 염원을 표현했다. 언제 시들어버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꽃을 피워서 향기를 풍기고 벌도 찾아들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우화할 번데기처럼 수양버드나무 그늘에 몸을 정갈히 씻고 무거운 업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하고 있다. 냉이 잎의 나약한 줄기에 꽃과 향기의 이미지가 결합하면서 계류의 수양 그늘에서 생명의 승화를 이루는 시상의 구조가 완결되었다. 첫 발표작으로 흠잡을 데 없는 구성을 보였다. 이 작품에 대해 월하 이태극은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썼다.

 

모든 예술이 진실한 인생 생활의 구현이듯이 시 또한 생활의 상징이어야만 한다. 이제 오현 님의 작품을 보라! 그 순결과 성실과 사상과의 혼연일체가 되어 심령의 표백으로 글자에 옮겨졌다. 난생이는 자기요 시조일 것이다. 목숨의 계류가에서, 고생 속에서도 웃으며 깨끗이 살게 해 달라는 간곡한 염원이다.(1966.8.2. 감나무골에서 월하 씀)

 

두 번째 추천은 1967년 10월에 이루어졌다. 추천작은 다음과 같다.

 

가난은 피가 붉어 진진래로 물이 들고

북두성 앉은 자리 밤이 좋던 능선이여

눈물의 흰 옷자락을 씻어 바랜 임진강.

 

불여귀 설움 속에 두 가슴은 지쳤어도 

그을음 거미줄 속 소망만 한 달이 뜨네

밟고 선 그림자 따라 다시 보는 예 강산.

— 〈전야월(戰夜月)〉 전문

 

‘전야월(戰夜月)’이란 전쟁 중의 달밤이란 뜻이니 전쟁 난민의 심정에서 삶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가난으로 점철된 세월은 핏빛 진달래로 표현되고, 임진강은 사별을 상징하는 흰 옷자락을 씻어낸 정한의 강으로 제시된다. 한 번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의 소망을 상징하듯 훤한 달이 뜨고 달빛 사이로 예전 그대로의 강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면서도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는 서정이 앞의 시 〈염원〉과 유사하다. “밟고 선 그림자 따라 다시 보는 예 강산”이라는 구절에서 《시조문학》 주간 이태극 시조의 영향이 감지된다.

세 번째 추천은 1968년 4월에 이루어졌고 이것으로 추천이 완료되었다. 추천작은 다음 두 편이다.

 

밤마다 비가 오는 윤사월도 지쳤는데

깨물면 피가 나는 손마디에 쑥물이 들던

울 엄마 무덤가에는 진달래만 타는가.

 

저 산천 멍들도록 꽃은 피고 꽃이 져도

삼삼히 떠오르는 가슴속 상처처럼

성황당 고개 너머엔 울어 예는 뻐꾸기.

— 〈봄〉 전문

 

촛불 켠 꿈은 흘러 연꽃으로 물들어도

마지막 목욕하고 앉지 못할 연대(蓮臺)여

설움의 소리를 듣고 차마 못 갈 보살―

 

손에 쥔 백팔염주 헤아릴수록 무거움은

흩어진 상념들을 알알이 뀌음일레

달 뜨는 뜨락에 서서 지켜보는 이 정토(淨土)!

— 〈관음기(觀音記)〉 전문

 

〈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중심으로 회한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앞에서 본 두 편의 추천작에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지평이 제시되었는데 〈봄〉에는 비애의 정서가 농후하다. 윤사월 밤은 계속 비가 와서 지치고 손마디는 깨물면 피가 나고 어머니 묻힌 무덤에는 진달래만 붉을 뿐이다. 산천이 멍들도록 꽃이 피고 지지만, 가슴속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뻐꾸기 울음처럼 되살아난다고 했다.

이에 비해 〈관음기〉에는 앞의 추천작 〈염원〉처럼 소망의 자세가 표현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교적 상상력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관세음보살의 대승적 자비행이 윤곽을 드러낸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을 제도할 때까지 자신의 성불을 미룬 대승불교의 상징이다. 진흙 속에 연꽃을 피워 연대에 앉을 꿈은 갖고 있으나 중생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연대에 오르는 것을 미룬 보살이다. 지금 관세음보살 앞에서 기도하는 화자가 염불을 계속해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흩어진 상념들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화자는 떠오르는 상념을 염주 알마다 헤아리며 달이 환하게 뜨는 뜨락에서 번뇌와 상념이 사라진 정토를 지향한다고 했다. 대승적 자비의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길을 따르겠다는 자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앞의 세 작품과 달리 세속적 비애의 감정을 불교적 구도의 자세로 승화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승려 시인의 불교적 상상력이 육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세 차례의 추천을 완료한 조오현은 다음과 같은 천료 소감을 썼다.

 

철없는 투정을 그저 귀엽게만 여기시고 착한 중에 더욱 착한 사람이 되게끔 애써 추천까지 하여 주신 조종현, 이태극 두 분 어른님 존하에 먼저 큰절을 드리오며, 얼마간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고도 단 한 번 졸작에 대해 칭찬이라곤 해 주신 사실이 전연 없는 사교입선의 시인 정완영, 그리고 김어수, 김교한 선생님에게는 물론, 전국의 시조시인 선후배 여러 대궐에도 정중한 절을 올리고자 하오니 주저치 마시옵고 바로 앉으세요. (경남 밀양군 삼랑진읍 안촌동 약수암)

 

자신을 지도해 준 정완영 시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칭찬이라고는 전혀 한 일이 없다고 하거나, 정중한 절을 올릴 터이니 독자들에게 바로 앉으라고 하는 것 등 조오현의 기지와 특성이 잘 드러나는 개성 있는 글이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란 불교 용어로 이론적 연구를 마치고 선 수행에 들어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정완영이 시의 본령에 오른 시인임을 밝힌 것이다.

그의 등단작에 나타난 특징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연약한 생명을 지닌 고난의 자아가 허물을 벗고 웃을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나타내거나 전쟁이 휩쓸고 간 궁벽한 처지에도 소망의 달이 뜨기를 기다리는 마음, 관세음보살의 대승적 자비를 이어받아 상념의 세계를 넘어서서 정토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 셋을 포괄하면 자아에 대한 성찰, 자아 탐구의 경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2. 서정 시조의 높은 경지

1979년 1월 첫 시조집 《심우도(尋牛圖)》(한국문학사)가 간행되었다. 그 서문에서 시인은 시집 1부의 시편은 1960년대 말 백수(白水) 정완영의 영향을 받고 심경에 일어나는 희비의 감정을 그려본 것이고 2부는 1970년대 초 경허(鏡虛)와의 만남에서 얻어진 것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적 지향은 시집 2부의 시편에는 아주 미미하게 드러난다. 그의 의식에 잠재된 경허적 지향성은 나중에 〈절간 이야기〉 연작을 통해 실현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서문에서 시집 1부와 2부의 성격을 구분하려 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부는 그의 등단작과 유사한 서정 시조의 묶음이고, 2부는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이 작용한 다음 단계의 작품들이다. 이 구분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유용하게 적용된다. 그의 서정 시조는 불가에서 체득한 시인 특유의 어법과 결합하여 조오현만의 서정적 윤기를 농밀하게 드러낸다. 한편으로 그의 사상 시조는 불교적 구도의 정신과 수행자의 염원과 의지를 다양한 양상으로 표현한다. 이 두 경향은 그의 평생의 시조 창작의 궤적을 관통하고 있다.

1부에 실린 서정 시조 몇 편은 등단작의 수준을 넘어서서 서정 시조 미학의 완성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심우도》 첫머리에 실린 〈할미꽃〉과 〈비슬산 가는 길〉이다. 이 작품은 이미 조오현 시조 미학의 극치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할미꽃〉은 1972년 1월 《시문학》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이 그 전에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 캐던 울 어머니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이제는 한 줌의 귀토(歸土) 서러움도 잠드시고.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

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양자(樣子)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

긴 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

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

— 〈할미꽃〉 전문

 

이 시조에서 ‘할미꽃’은 허리 굽혀 나물 캐던 어머니의 모습과 가난 때문에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던 아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함께 나타낸다. 그것은 둘째 수 종장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에서 확인된다. 무덤가에 핀 할미꽃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 희어진 어머니의 머릿결과 이른 봄부터 밭일에 매달리시던 굽은 등과 서러운 생을 한 줌 흙으로 마친 어머니의 회한을 암시한다. “허리 굽은 꽃” 모양을 통해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동시에 그것은 모정을 잊고 지낸 화자 자신의 굴곡진 세월과 무정한 마음을 환기한다.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는 객체인 어머니의 모습과 주체인 화자의 심정을 동시에 나타내는 절묘한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상의 특색은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에서 다시 발견된다. 시골에서 갖가지 노동을 하며 줄기찬 노력을 하는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늘 아래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것처럼 간절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런 간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은 것은 ‘가난’이라는 씨앗이다. 가난의 숙명적 굴레를 표현하는 데 ‘씨앗’처럼 적절한 말은 없다. 가난의 씨앗에서 피어난 배고픔이라는 열매는 당연한 것이지 죄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어머니와의 이별도 가난과 배고픔 때문이었을 텐데, 그러한 애달픈 사연을 다 포괄하는 것이 바로 할미꽃의 이미지다. 할미꽃은 그 많은 사연을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다. 어머니는 귀토에 잠들어 있지만 해마다 봄은 오고, 텅 빈 적막의 공간에 고개 숙인 할미꽃이 피는 것이다. 그 할미꽃은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자 아들의 애절한 심정이기도 하다.

이 시조는 할미꽃이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택했음에도, 색다른 어법을 구사함으로써 진부함을 떨쳐버리고 서정적 윤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시어 선택과 리듬 구사의 묘미는 천부적인 감수성과 집중적인 수련에서 온 것이다. 그의 시적 감성은 전통적인 시조 형식과 우아한 조화를 이룬다. 시조의 전통적 형식미를 그대로 지키는데도 조금도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서정과 형식의 우아한 조화는 다음 시에서 더욱 격조 높은 상태로 완성된다.

 

비슬산 굽잇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첩첩(萬疊疊) 두루 적막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 〈비슬산 가는 길〉 전문

 

이 시에 반복되는 어미 ‘~ㄹ까’는 지금 언급되는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미정의 모호성을 음악적으로 환기한다. “비슬산 굽잇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라는 시행은 누가 돌아가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의 여유를 나타낸다. 이것은 모든 것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방임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무들은 세월의 자취를 다 벗어버리고 하늘의 구름도 저 멀리 비켜 서 있는 그런 탈속의 산길을 누군가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적적한 탈속의 길을 걸으면 그 길이 거문고 줄로 만든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거문고 줄 퉁기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그 소리는 우리가 모르는 인연의 미묘한 실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끊일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진 인생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인연의 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삶의 운행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한 인연의 길목에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상황을 연상했다. 왜 싸락눈이 매운 향기를 지녔다는 것일까? 싸락눈의 향기가 맵다기보다는 우리가 지나온 인생의 사연이 그만큼 맵다는 뜻이리라. 삶의 굽잇길이 맵다는 뜻이다. 그렇게 알싸한 삶의 향을 맡으며 우리는 미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삶의 곡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버티고 있다.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라는 구절은 절의 모습만이 아니라 절에서 수도하는 승려를 함께 나타낸 것이다. 절도 고요하고 절집에 사는 사람들도 아무 미동이 없다. 첩첩 산중에 움직임이 없으니 나는 것은 까투리요 들리는 것은 멧새의 날갯소리뿐, 깊은 산중에 적막만이 가득하다. 이렇게 소리 없고 움직임 없는 깊은 산의 모습은 속세의 집착에서 벗어난 진여(眞如)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산중의 적막한 정취를 드러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불가에서 추구하는 청정한 마음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시조를 통해 감정의 곡절을 표현한 조오현은 단시조를 통해 서정의 정점을 표현하는 시도를 벌였다. 불교의 선적 직관을 토양으로 삼아 단시조의 압축성을 추구하는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탁월한 압축적 언어 구사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절간 이야기 18〉을 보면 소동파의 유명한 글귀 “계성변시광장설 산색개비청정신(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을 번역한 구절이 나온다. 그는 이 구절을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이라고 축약해 번역했다. 이 구절에 대한 많은 번역을 보았지만 이렇게 짧고도 딱 들어맞는 번역은 여기서 처음 대했다. 원문의 시냇물과 산빛은 순서를 바꾸어야 논리에 들어맞는다. 부처가 먼저 나오고 설법이 나중에 나와야 사리에 맞는다. 무산(霧山) 스님의 단출한 번역이 요체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압축적 언어 기법을 동원하여 단시조의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하였다.

 

하늘은 저만큼 높고

바다는 이만큼 깊고

 

하루해 잠기는 수평

꽃구름이 물드는데

 

닫힐 듯 열리는 천문(天門)

아, 동녘 달이 또 돋는다.

— 〈일월〉 전문

 

이 시조에 낯선 말이라고는 ‘천문’ 하나밖에 없다. 단순하고 쉬운 우리말을 구사하여 하늘과 바다의 무량한 공간성과 노을이 물드는 수평선의 아름답고도 아쉬운 경관을 표현하고, 다시 하늘 문이 열려 달이 돋아 오르는 정취를 표현했다. 그뿐 아니라 하나가 가면 다시 하나가 오는 자연의 섭리도 깨닫게 했다. 이 시는 우주 공간의 무량무변함에 대한 심오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단순한 시어, 간결한 형식으로 서정적 아름다움이 결합된 심오한 인식을 전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형 시조 미학의 탁월한 성취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중생 지향적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의 산문시 연작 〈절간 이야기〉와 연결되는 사항이다.

 

동해안 대포

한 늙은 어부는

 

바다에 가면 바다

절에 가면 절이 되고

 

그 삶이 어디로 가나

파도라 해요

— 〈무설설(無說說) 2〉12) 전문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데.

— 〈인천만 낙조〉 전문

 

이 두 편의 시조에는 평범한 어부의 모습이 나타난다. 동해안 대포항의 어부나 인천만의 어부나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했을 것이다. 밀물 때나 썰물 때 바다 위에서 파도와 겨루며 어부의 일을 했을 것이고 절에 오면 마음을 바쳐 불공을 올리고 합장했을 것이다. “바다에 가면 바다/ 절에 가면 절이 되고”만큼 어부의 삶을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표현한 구절을 우리 시에서 달리 찾을 수 없다. 여기서도 조오현이 독창적으로 이룩한 단시조 압축미의 탁월한 성과를 발견할 수 있다. 또 “그 삶이 어디로 가나/ 파도라 해요”만큼 우리네 삶의 실상을 짧으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한 구절도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렵다.

파도 위에 살던 그 늙은 어부가 다음 날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어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이것 또한 우리네 삶의 실상 그대로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사에 가면 회사가 되고 집에 오면 집이 되고 어디에 가건 그 삶이 파도이며, 밀물 같고 썰물 같은 삶의 파도 위에 떠 있다가 어느 날 간다는 말도 못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이 두 편의 시는 어부의 생활을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 일반인들의 삶의 실상을 간략하게 요약 표현한 것이다. 그의 단형 서정 시조는 평범한 시어를 통해 삶의 진리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의 정점에 도달했다.

 

3. 구도자의 고뇌와 선시조의 창조

시인이 경허(鏡虛)와의 만남에서 얻어진 것들이라고 했던 《심우도》 2부의 시조는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가? 이 시편들은 불교적 구도의 정신과 수행자의 염원을 다양한 양상으로 표현하였는데 구도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초기의 작품에는 여전히 백수 정완영 조의 영탄과 비애, 구도자의 자의식이 나타나 있다.

 

뒤섞인 잡동사니 허접한 맥망(麥芒) 속에

밀뜨린 미혹을 찧는 일상의 디딜방아

삶이란 까불어내도 나가지 않는 지푸라기를.

 

한 생각 만석(萬石)들이를 다 거둬 몽글어도

쭉정이, 밀 쭉정이 벗기잖는 목숨의 겨.

몇 생을 거듭 대껴야 꺼끄럽지 않으료.

— 〈진이(塵異)〉 전문

 

구도의 수행 과정에서 세속적 번뇌가 떨쳐지지 않음을 괴롭게 토로한 작품이다. 번민이 어지럽게 뒤섞인 내면의 강박 속에서도 구도의 자세를 열심히 가다듬어 보려 하지만 먼지 같고 지푸라기 같은 번뇌가 사라지지 않음을 탄식의 어조로 표현했다. 사람 목숨을 타고난 데서 오는 천형의 괴로움에 시달리며 극기의 길이 순탄하지 않으므로, 몇 생을 거듭해야 이 업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한다. 고통과 비탄의 가락은 전통 시조의 율조를 이어받고 있다. 다음 시조는 세속의 고통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한다.

 

차라리 원수였다면 맞서라도 봤을 것을

항복할 상대도 없는 나만의 용서이기에

마침내 싸워 이길 곳은 아수라의 이 광장.

 

얼마나 못났으면 비수를 또 잡으랴

사람이란 목숨 하나에 이토록 한스러운가

기가 찬 생사 앞에서 면벽하고 앉는다.

— 〈해제초 2〉 2, 3수

 

수도의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온갖 갈등이 난무하지만, 구도의 길에 선 승려는 그것에 일일지 간섭할 수 없다. 항복 받을 상대도 없고 용서할 대상도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아수라 세상에 맞서 진애와 싸우면서 마음의 번뇌를 털어가는 과정이 수도의 길이다. 생사윤회와 세상사의 업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면벽 정좌하여 자기를 돌아보는 길밖에 없다. 비수를 내걸고 목숨을 위협하면 일반인들은 위축되기 마련인데, 정작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한다면 자신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고 생사에 맞서는 극기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세속의 괴로움 대신에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 점이 앞의 시조와 구분되는 발상이다. 이러한 단계에서 한 단계 발전했을 때 시인만의 진경이 새로운 언어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이날 내 몸에 미친 하늘 뇌신이 와서

세상을 다 때려 부수고 서천 번개로 가자 한다

번개 그 불빛만 봐도 나는 잘 갑시는데.

 

이 모진 죽살이의 질긴 피죽 벗겨보면

한 치 흙도 파지 않고 인도에도 묻은 지뢰

한 자국 높디딘 생각은 저 가교를 밟고 갔네.

 

슬픔은 날이 날마다 낙엽처럼 쌓이는데

끝까지 달아봐도 끝내 모를 자유의 근량(斤量)

먼 훗날 홀로 남아서 오늘을 점두할 바위도 없다.

— 〈내 몸에 뇌신(雷神)이 와서〉 전문

 

여기 나온 뇌신은 불교 용어다. 그러나 그 말이 불교 용어임을 몰라도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 오히려 불교 용어임을 모른 채 하늘에서 우레를 내리치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친 하늘의 뇌신이 번개를 내리치고 세상을 때려 부술 때 고통의 세상을 피해 어디론가 도피하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마치 지뢰가 묻힌 것처럼 고통이 여기저기 잠재해 있다. 슬픔은 낙엽이 떨어지듯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다.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의 해탈을 얻을 길은 요원하다. 오늘 탈속의 염원에 매달리는 고통스러운 구도의 과정을 나중에 증언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막막한 상황에서도 현실의 업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구하고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매우 개성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이 단계에 와서 조오현의 시조는 백수나 월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 것이다.

시집 《심우도》의 발문을 쓴 이근배는 조오현의 시조가 “하나의 경이”라고 하면서 그의 시법이 적어도 신시 70년사에는 들어 있지 않고 고려 선승들의 게송을 터득한 것이기에, “영혼의 세척에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해야 그의 시적 위상을 올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오현의 시가 선시의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의 생활에서 새로운 선시를 창조하고 있음을 최초로 분명히 갈파한 것이다. 그의 시가 “손끝만으로는 각자(刻字)되지 않는 확호한 전신연소(全身燃燒)를” 해내고 있다고 감동적으로 설파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설악무산 입적 후 오늘의 이 추모 행사를 예상하듯이 “조오현의 천재가 더욱 빛나서 그가 죽은 후에 이 나라 시사에 영롱한 사리가 무수히 살아남기를 축복한다.”라고 끝맺었다.

이근배가 한국 시사 70년에 없는 하나의 경이로 내세운 것은 〈달마 십면목〉 〈심우도〉 등의 작품이다. 그중 〈심우도 1〉과 〈심우도 10〉을 살펴 조오현 선시조의 개성적 특징을 드러내 보겠다.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

— 〈무산심우도 1-심우(尋牛)〉 전문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肩帶)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여, 진문둥이여.

— 〈무산심우도 10-입전수수(入廛垂手)〉 전문

 

〈심우도〉의 시작과 끝 장면만 보아도 기존의 심우도와 내용이 판이함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독창적이다. ‘심우도’ 1장인 ‘심우(尋牛)’는 흔히 자신의 본체인 소를 찾는 출발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무산의 심우도 1장은 자신에게 죄수의 손도장을 찍어놓고 그 행방을 찾는 추적의 형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심우도는 조오현만의 것이기에 제목을 〈무산심우도〉라고 명명할 만하다.

죄수를 찾기 위해 천만금 현상금을 걸었는데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강렬한데 아무리 현상금을 많이 걸어도 찾기 어렵다는 고난의 행로가 예고된다. 죄인이 화살처럼 빠르게 도망갔기 때문에 천 개의 눈을 떠도 볼 수 없고, 부처님의 32상에 해당하는 무릎까지 닿는 팔로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도 찾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빠른 화살을 타고 도망간 죄수는 도살장에서 쓰는 잔인한 쇠도끼를 먹고 갔기 때문에 붙잡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을 극대화하여 강조했다. 〈무산심우도〉 1장의 화법은 매우 강렬하다. 조오현은 자기의 본 모습을 찾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강조했다. 구도의 지난한 역정이 극한적으로 표현되었다.

심우도의 마지막 장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자신을 완전히 찾은 사람, 다시 말해 깨달은 사람이 중생제도를 위해 손을 아래로 하고 저잣거리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조오현은 이것도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여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여기에는 시집 서문에서 얘기했던 경허(鏡虛) 선사와의 만남에서 얻어진 중생적 삶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주막”으로 표명된 서민들의 땀 냄새 나는 거리에서 진정한 삶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로 설정되어 있다. 요컨대 자기 자신을 찾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비린내 나는 서민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어김없이 중생의 일원이 되어 장가도 들고 소실도 얻고 돈을 벌며 살다가 나중에는 나막신 하나까지 남에게 주고서도 오히려 부자처럼 마음이 넉넉한 상태를 가져야 함을 암시했다. 나중에는 마누라도 팔고 두 눈까지 팔아 모두 남에게 주고 온몸이 짓물러진 상태로 보리밭 머리로 가는 문둥이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냈다.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격외적이고 파격적이며 일초직입의 돈오적 게송”이라는 평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실제로 다양한 해석이 도출되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속세로 내려와 “분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의 눈까지 떨치고” “생멸(生滅)불이(不二)의 이타행”을 행한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처절한 실존적 초극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러서는 이에 머물지 않고 이타행에 몸을 내던지는 강렬한 구도자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는 존재론적 해석도 있다. 어느 해석이든 처절한 구도의 과정과 이타적 보살행을 나타낸다는 점은 일치한다. 처절한 구도의 과정과 수행자의 진통을 나타내되 결국에는 대승적 보살정신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등단작 〈관음행〉의 주제와 상통하며 초기 구도시의 주제와도 연결된다.

 

4. 형식의 실험과 개성적 미학의 창조

그의 구도시가 격외적이고 파격적이라고 한 것처럼 시조의 형식에서도 그는 몇 가지 실험적 파격성을 보였다. 평범한 평서문 서술체를 시조에 도입하기도 하고 유사한 말을 반복하여 구성하기도 하고 웃음소리의 의성어만으로 한 수의 시조를 구성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심우도》의 작품 중 그러한 예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파아란 빛깔이다. 노오란 빛깔이다.

빠알간 빛깔이다. 시커먼 빛깔이다.

보석도 천 개의 보석도 놓지 못할 빛깔이다.

— 〈빛의 파문〉 둘째 수

 

진작 다친 몸이라면 붕대라도 감았을걸

눈을 부릅떠도 보이지 않는 저 환부를

오늘도 도려내지 못하고 쿨룩쿨룩 쿨룩쿨룩.

— 〈천만(喘滿)-일색과후(一色過後) 5〉 셋째 수

 

히히히 호호호호 으히히히 으허허허

하하하 으하하하 으이으이 이흐흐흐

껄껄껄 으아으아이 우후후후 후이이

— 〈무산심우도 8-인우구망(人牛俱忘)〉 첫째 수

 

이 세 편은 모두 《심우도》에 실린 작품이다. 〈빛의 파문〉의 인용 부분은 세속의 화려함을 표현한 부분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수용되는 세속의 화려함에 집착하여 생사를 반복하고 있는 중생들의 허망함을 표현하기 위해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다양한 빛깔을 열거했다. 〈천만〉은 약을 쓰고 고치려 해도 낫지 않는 자신의 집착 병을 ‘천만’으로 상징화하여, 번뇌와 죄업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환부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구도적 번민을 기침 소리의 의성어로 나타냈다. 〈무산심우도 8〉은 ‘심우도’ 8장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내용으로 소를 찾아 비로소 소도 잊고 자기 자신도 잊는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조오현은 그 경지를 여러 가지 호탕한 웃음의 양상으로 표현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언어도단의 경지를 웃음소리의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변이는 불교적 깨달음의 내용을 일상의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려는 형식적 모색의 결과이며, 한편으로는 기존 시조의 틀에서 벗어나 보려는 실험 정신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험 정신은 다음과 같은 난해한 작품을 낳기도 했다.

 

어그러뜨리다 어그러뜨리다 어그러뜨리다

어스름 달밤 조개류 젓갈류 어스름 달밤 조개류 젓갈류

그렇다 찐 음식이다 오늘 저녁 고두밥이다

— 〈쇠뿔에 걸린 어스름 달빛〉 전문

 

쇠뿔에 걸린 어스름 달빛과 이 작품의 언술이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알려면 한참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만큼 이 시조는 시적 대상과 비유적 형상이 지극히 자의적인 상태로 벌어져 있다. 초장의 “어그러뜨리다”란 말의 반복에 그러한 말소리와 뜻의 어긋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이 시조의 초장과 중장은 시조의 정형성도 벗어나 있다. 제목의 뜻으로 볼 때 쇠뿔 너머로 보이는 어스름한 달빛에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음식의 형상을 나열한 것으로 짐작된다. “조개류”와 “젓갈류”, “찐 음식”과 “고두밥”은 의미가 연결되지만, “조개류”와 “고두밥”은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그 음식이 “어스름 달밤”과 이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쇠뿔에 걸린 어스름 달빛이 조개류 젓갈류 같은 것으로 보이다가 찐 음식이나 고두밥으로 보이는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은 시조의 전통적 율격 내에서 시조의 압축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형식의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한 작품들이다.

 

죽음이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늦가을 오후

개울물 반석에 앉아 이마를 짚어본다

어머니 가신 후로는 듣지 못한 다듬이소리

— 〈춤 그리고 법뢰(法雷)〉 전문

 

잉어도 피라미도 다 살았던 봇도랑

맑은 물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기세를 잡은 미꾸라지놈들

용트림할 만한 오늘

— 〈오늘〉 전문

 

울지 못하는 나무 울지 못하는 새

앉아 있는 그림 한 장

 

아니면 

얼어붙던 밤섬

 

그것도 아니라 하면 울음큰새 그 재채기

— 〈2007 서울의 밤〉 전문

 

첫 번째 시조는 전통적 율격을 비교적 충실히 지킨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 있어 기존의 시조와 다르다. ‘법뢰’란 우레가 치듯 정신을 번쩍 깨어나게 하는 선사의 깨우침을 말한다. 법뢰와는 거리가 있는 ‘춤’을 제목에 내세운 것도 의외이다. 내용은 정밀하고 침중해서 우레나 춤과 더욱 연결되지 않는다. 잘 마른 낙엽이 발에 밟히듯 죽음이 바스락바스락 밟힌다고 했다. 그만큼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민감하고 친근하게 죽음을 느끼는 상태다. 이만큼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면 죽음과 어깨동무하고 잘 놀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죽음을 가볍게 접촉하게 된 시점이 ‘늦가을 오후’다. 계절이 끝나가고 하루가 끝나가는 마무리의 시간이다. 그때 시인은 이마를 짚고 새로운 명상에 잠긴다. 명상 속에 떠오른 것은 대오각성의 진면목이 아니라 어머니가 내시던 다듬이소리다. 이 다듬이소리는 시인만이 아는 것이라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만이 알고 있는 추억의 소리를 죽음의 가랑잎 옆에서 듣게 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발상이다. 그 정밀한 음색이 춤이나 법뢰 같은 역동적 심상과 통한다는 뜻일까? 그러한 의문을 계속 자아내게 하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둘째 시조는 잉어도 피라미도 사라진 봇도랑이 소재다. 봇도랑은 보의 문을 통해 물이 흘러들고 나가는 법인데, 이 도랑에는 맑은 물이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생명을 보존하는 봇도랑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데 그 더러운 물에도 서식하는 생물이 있다. 미꾸라지는 흙탕물에서 오히려 기세를 펴며 크게 자신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더러운 물에는 더러운 물대로 상승하는 생명의 기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역시 매우 역동적인 어법으로 나타냈다.

세 번째 시조는 전통적 율격에서 많이 벗어났다. 초장과 중장에 파격이 있고 종장은 시조 형식을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침묵의 그림이 제시되었다. 그림 자체가 소리가 없는데 울지 못하는 나무에 앉아 있는 울지 못하는 새를 설정했다. 침묵의 극치다. 정적의 장면 다음에 얼어붙던 밤섬이 등장한다. “얼어붙는 밤섬”이 아니라 “얼어붙던 밤섬”이라 했다. 과거에 있었던 동결의 심상을 통해 정적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그 정적을 깨뜨리는 “울음큰새 그 재채기”가 등장한다. 울지 못하는 새가 아니라 울음소리 큰 새가 나왔고 그 새의 재채기가 나왔다. 이것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불가능한 것이기에 가장 우세한 적막의 표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비논리의 이미지를 통해 정적을 극대화하는 미학적 실험을 추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정신의 경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선시조의 개성적 미학을 창조한 것이다.

시조를 쓰되 시조의 미학을 유지하면서 불교적 사유를 포함시킨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시와 선은 어디에서 그 접점을 찾아 창조의 동력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조오현은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듯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내 평생 찾아다닌

것은

선(禪)의 바닥줄

시(詩)의 바닥줄이었다.

 

오늘 얻은 결론은

시는 나무의 점박이결이요

선은 나무의 곧은결이었다.

— 〈나의 삶〉 전문

 

《적멸을 위하여》에만 수록되어 있는 작품으로 조오현의 구술(口述)을 시 형식으로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검색해 보니 조오현의 선시조 108편을 하인즈 인수 펜클(Heinz Insu Fenkl) 교수가 영어로 번역하여 컬럼비아대학 출판부에서 간행한 For Nirvana: 108 Zen Sijo Poems(2016)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조오현은 사람들과의 대담에서 이러한 생각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시와 선을 구분하는 요소가 나무의 결이라고 했다. 선은 나무의 고운 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곧은결’이고, 시는 옹이 자국이 남아 부챗살 모양의 선이 나타나는 ‘점박이결’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설명으로 “선은 내가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시는 인생에 대한 물음에의 답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설명은 모호하다. 선은 인간의 본심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고 시는 생의 고비에 나타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시와 선이 인간의 마음을 다룬다는 점은 동질적이다. 다만 접근방법과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다. 다음 시를 통해 선과 시가 통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화엄경 펼쳐놓고 산창을 열면

이름 모를 온갖 새들 다 읽었다고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포롱포롱 날고

 

풀잎은 풀잎으로 풀벌레는 풀벌레로

크고 작은 푸나무들 크고 작은 산들 짐승들

하늘 땅 이 모든 것들 이 모든 생명들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하나로 어우러져

몸을 다 드러내고 나타내 다 보이며

저마다 머금은 빛을 서로 비춰 주나니……

— 〈산창을 열면〉 전문

 

이 시는 《화엄경》에서 얘기한 화엄 세상이 산중에 이미 다 펼쳐져 있다는 깨달음을 표현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가 화엄의 표현이요, 풀잎과 풀벌레와 짐승들의 움직임이 모두 화엄의 화현이다. 그야말로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인 것이다. 자연의 모든 소리와 빛깔과 움직임은 화엄세계의 실상을, 그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이미 다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화엄경》을 따로 읽을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화엄세계를 대하면 된다. 화엄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어찌 산중 자연뿐이겠는가? 처처재불(處處在佛)이라 하였으니 갑남을녀들이 몸 굴리고 사는 인간 세상 어디든 진여(眞如)의 경지 아닌 것이 없다.

선의 견지로 보면 참구와 수행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은 마음의 곧은결의 인식이다. 이 마음의 바탕에 새와 나무와 짐승과 여러 생명을 끌어들여 희로애락의 감정을 섞어 표현했다. 이것이 마음의 점박이결의 표현이다. 마음의 곧은결은 선 수행을 하는 사람은 다 동일하게 인식하는데, 마음의 점박이결의 표현은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그래서 시의 언어는 마음의 곧은결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 선에서 멈추면 되지 시는 왜 쓰는가? 이것은 〈무산심우도 10〉에 나온 대승적 보살행에 해당한다. 저잣거리의 징그러운 문둥이가 되더라도 대중들에게 깨달음의 한 경지를 전하고 싶은 보살의 중생 교화의 한 방편이 그것이다.

 

서울 인사동 사거리

한 그루 키 큰 무영수(無影樹)

 

뿌리는 밤하늘로

가지들은 땅으로 뻗었다

 

오로지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다.

— 〈된바람의 말〉 전문

 

사람들이 오가는 인사동 사거리에 커다란 무영수가 있다. 무영수란 그림자 없는 나무란 뜻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앞에서 말한 진공묘유와 같은 말이다. 인사동 사거리에 무영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영수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세상은 그대로가 법신이요 개별 현상 그대로가 설법이니 무영수는 도처에 있다. 무영수의 모습은 현실의 나무와 거꾸로 되어 있다. 뿌리는 하늘로, 가지는 땅으로 벋어 있다. 그리고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다. 그림자 없는 나무이니 이 나무가 못할 일이 없다. 작은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 안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차 마시고 술 마시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인사동 거리에도 깨달음의 자리가 엄연히 존재하며 그 깨달음은 우주의 이치에 관통해 있다는 것. 진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사동 사거리 망념의 세계에 들어 있다는 것이 이 시의 전언이다.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탐내고 성내는 그릇된 태도를 보이는데, 이 세 가지 그릇된 마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바른 마음을 제대로 보기만 하면 우주를 덮은 떡잎의 무영수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단시조의 간결한 형식 속에 불교의 깊은 진리를 담아냈다. 이근배가 《심우도》 발문에서 언급했듯이 가람과 노산 이후 창작된 숱한 현대시조 중에 이런 유형의 시조는 없다. 이런 시조는 조오현이 창조한 것이다. 그것은 시조의 서정성 추구에서 천부의 재능을 보이고 시조의 압축 미학을 집중적으로 추구한 데서 더 나아가 불교적 선 수행에 정진했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셋이 결합되어 조오현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불교 시조의 미학을 창안하고 수립했다.

 

5.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 수행

조오현 선시조의 미학은 초기 시조의 특성과 연결되면서 자아 탐색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이것은 그의 선시조 미학의 또 다른 지평이다. ‘나’를 부정함으로써 다시 ‘나’를 긍정하는 조오현만의 독특한 미학이 수립되는데, 그 미학의 두 측면을 다음 시조에서 엿볼 수 있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 〈부처〉 전문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 〈산일(山日) 3〉 전문

 

〈부처〉라는 작품도 일상의 어법을 뒤집어엎는 데서 시작한다. 강물도 없는 강물이 어떻게 흐른단 말인가? 그러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있듯 강물 없는 강물도 있다. 대단치 않은 내가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강물 없는 강물이 왜 없단 말인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강물 없는 강물이다. 아무것도 흐르는 것이 없는데 강물이 흐른다고 착각하고, 본래 그 흐름이 없는 것인데도 강물이 범람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본래 없는 강물이기에 강물을 건너는 뗏목다리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설치해 놓은 뗏목다리는 알고 보면 헛것이다. 그런데 강물이 범람한다고 하고 뗏목다리도 떠내려간다고 한다. 이것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것이다(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금강반야바라밀경》). 이것을 깨달은 분이 ‘부처’요 이것을 우리에게 일러준 분이 ‘부처’다.

〈산일 3〉은 앞에서 언급한 〈산창을 열면〉과 관련된 작품이다. 《화엄경》을 읽다 천지자연을 보니 화엄 세계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고 노래한 것이 〈산창을 열면〉이다. 백담사에 있으면 한나절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낙산사에 있으면 반나절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든 쓸 수 있는 구절이다. 종장에 내 울음소리가 나오자 이 시는 자연 정취를 다룬 시에서 불교적 구도를 나타낸 시로 상승한다. 자연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법음이고 설법이다. 그것은 화엄세계에서 들리는 진리의 속삭임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인사동 나무가 무영수인 줄 모르고 우리가 부처 될 존재인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새 울음소리를 듣고 해조음 소리를 듣듯 우리 몸 안에서 저절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영수가 되어 작은 떡잎 하나로도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때는 강물도 없는 강물에 뗏목다리도 필요 없고, 우리 몸이 재 한 줌으로 날아간다 해도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다.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고 남을 것도 없으니 그림자 없는 나무일밖에.

이러한 구도의 자세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재인식이 시작된다. 어리석은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나’에 대한 망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一體唯心造]이요, 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諸法無我].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게 이 ‘나’에 집착하여 탐내고 성내며 살고 있다. 여기서 ‘나’를 버리는 독특한 화법이 탄생한다. 조오현 초기 시조의 특징이 자아의 탐구에 있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것이 그의 시조의 출발이었는데 그는 자아를 찾아서 다시 자아를 버리는 독특한 불교적 사유를 전개한다. 이것이 선적 깨달음에서 발현된 그의 또 다른 독창성이다. 시인이 본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남산 위에 올라가 지는 해 바라보았더니

서울은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

이 내 몸 그 늪의 개구리밥 한 잎에 붙은 좀거머리더라

— 〈이 내 몸〉 전문21)

 

이 시의 나에 대한 조망은 〈산창을 열면〉의 조망과 사뭇 다르고, 검붉은 늪에 대한 인식도 〈오늘〉의 용트림할 것 같던 미꾸리지 떼의 인식과는 다르다. 지는 해가 떠오르는 달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는 해는 그냥 지는 해일 뿐이고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거리는 늪은 그냥 부패한 오수의 공간일 뿐이다. 그 부패한 늪에 개구리밥 한 잎이 떠 있고 거머리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좀거머리가 거기 붙어 있다. 그 좀거머리가 바로 자신의 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벌레의 형상으로 재창조된다.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 〈내가 나를 바라보니〉 전문

 

이제는 인식의 배경이 번잡한 서울의 남산이 아니라 청정도량 백담사의 무금선원이다. 무금선원에서 수행 정진하는 자신의 모습도 벌레라는 것이다. 자신이 활동하는 모습도 기는 벌레가 몸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화한 자신의 벌레 형상은 자신을 객관화시켜 놓고 비하하고 부정해서 다시 새롭게 인식하려는 변증의 과정이다. 벌레인 주제에 온갖 것을 다 갉아먹고 먹은 다음에는 배설도 한다. 거기다 그 벌레는 알을 슬기도 한다. 그 알은 무엇일까? 그가 이룩한 만해마을, 혹은 무금선원, 혹은 만해기념사업, 혹은 문학, 불교 관련 계획 등 많은 일이 포함될 수 있을 터인데 그 모두가 벌레인 자신이 슬어 놓은 알이라는 것이다. 알을 슬면 거기서 또 벌레가 생겨날 것이다. 벌레의 형상은 다음 시에서 먹이의 발상으로 옮겨간다.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 〈적멸을 위하여〉 전문

 

시인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떠난 승려의 처지까지 부정해 버렸다. 자신은 삶의 즐거움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즐거움은 더욱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한 마리 벌레일 뿐이다. 삶과 죽음의 즐거움을 모르는 처지니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도 성립될 수 없다. 그러니 이대로 기어 다니고 있으면 건너편 숲에 사는 새가 날아와 나를 먹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새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자비의 행위이고 중생제도의 보살행이다. 이것은 단순히 알을 슬어 어떤 자취를 남기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다. 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 다음 숲에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절대로 쉽게 나올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수행 정진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시인은 자신의 수행과 참구를 기반으로 철저한 자기 부정을 감행하는 것이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 〈아지랑이〉 전문

 

이 시를 수행과 참구로 보낸 설악무산 스님의 발성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 신문 인터뷰 같은 데서는 자신의 일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느껴졌다고 얘기했지만, 그것은 중생제도의 차원에서 그렇게 방편을 보였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저 건너 숲에 사는 새의 먹이가 되는 방법이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 것도 중생에게 갈앙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스스로의 삶이 아지랑이라고 말할 때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삶의 허망함을 재인식하기를 바라는 방편적 의도가 깃들어 있다. 알고 보면 우리도 나아갈 길도 물러설 길도 없는 낭떠러지 벼랑에 서 있는 것이며, 설사 지금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다 보면 그런 궁지에 이를 때가 반드시 있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고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낭떠러지 벼랑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세상의 단맛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존재는 바로 그 절벽에 아른대는 아지랑이에 불과하다. 우리가 어떻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겠는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못 보는 막막한 처지에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라는 말을 제대로 인식할 때 삶의 전회(轉回)가 오고 대오각성이 열린다. 싯다르타의 출가와 고행과 용맹정진이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시는 허무와 절망의 어법을 빌려 일반인들에게 삶의 각성을 촉구하는 방편의 어법이다. 그리고 시인 스스로도 이러한 시의 창작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깨달음의 한 측면이 다음 시에 담겨 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아득한 성자〉 전문

 

모든 생명은 평등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불가에서는 사람이나 하루살이나 차이가 없다. 사람의 수명은 각기 다르고 언제 자기 생명이 다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가 안 되었는데 느닷없이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정확히 하루 동안에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치고 깨끗이 생을 마감한다. 뜨는 해도 보고 지는 해도 보았으니 자신의 생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팔십 년을 살건 구십 년을 살건 자신의 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오래 산다고 해도 정말 잘 산다는 느낌을 갖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사 천 년을 산다고 해도 불안하고 불만족하고 앞길이 아득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성자는 하루살이가 아닌가? 그러면 여기 왜 ‘아득한’이라는 말이 들어갔는가? 사람이 도저히 따르지 못할 아득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두 편의 시조는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편의 작품이 주제와 절묘하게 호응하는 활달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지랑이〉의 ‘우습다’라는 탄식조의 시어의 반복이라든가, 독백하듯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호흡의 어조는 시를 짓는다는 작위성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가까운 이웃의 솔직한 고백을 듣는 듯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아득한 성자〉의 경우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라는 첫 구절부터가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돌이켜보게 하는 효능을 갖는다. 우리는 매일 오늘이라는 하루를 보내는데 그 하루라는 의미와 오늘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않고 건성으로 보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첫째 수 종장에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라는 거침없는 표현도 미련 없이 생을 마치는 하루살이의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다. 다른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알 까고 죽으면 그뿐이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우리에게 전달한다.

주제와 형식과 어법이 아름답게 혼융을 이룬 이 눈부신 성취에 무슨 말을 덧붙일 것인가? 조오현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정중한 절을 올리고자 하오니 주저치 마시옵고 바로 앉으세요.” 이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6. 산문시에 나타난 중생의 삶

그는 첫 시집의 서문에서 경허 선사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면서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허 선사는 근대의 경계선에서 “승속의 경계를 넘어선 무애행을 감행하여” 한국의 선풍을 드높인 승려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뜻깊은 일화와 기행을 남기고 오도송과 심우송을 비롯한 수백 편의 한시를 남긴 승려다. 그는 특히 나중에 불문을 떠나 시정의 거리로 들어가 대중교화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앞에서 본 시조 중 〈무설설 2〉와 〈인천만 낙조〉에 일하며 사는 어부의 모습이 등장했다. 열심히 일하던 그 어부는 어느 하루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 어부는 하루살이에 훨씬 가까이 다가간 사람일지 모른다. 절간에서 거짓 수도를 하는 사람보다 속세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일꾼들이 어느 의미에서는 더 진실한 수도자일지 모른다. 그러한 평범한 서민들에 대한 공감이 그의 산문 연작시 〈절간 이야기〉에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산문 연작시의 꼭짓점에 〈어미〉라는 작품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어미 소와 그 소가 낳은 목매기(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고 목에 고삐를 맨 송아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어미 소가 새끼를 낳고 젖도 제대로 떼지 못한 상황에서 팔리게 되고, 목매기는 어미를 잃고 울다가 어미 소가 하던 일을 대물림 받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어미 소가 된 다음에는 다시 자신의 목매기와 헤어져 도살장으로 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시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도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이 시에서 중요하게 파악되는 것은 나약한 생명에 대한 다함 없는 연민의 감정이다. 그것은 동대문시장이나 구로공단에서 보았던 가난한 일꾼들의 삶에 대한 반응과 통하는 내용이다. 이와 연관된 ‘일꾼 보살’들의 삶이 그의 산문시에 많이 담겨 있다.

〈절간 이야기 7〉에는 저 유명한 관계(灌溪) 선사의 보행 입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관계 선사는 임제 선사의 제자로 역대 조사들의 입적 사례를 이야기하다가 앉아서 죽는 것, 서서 죽는 것, 거꾸로 서서 죽는 것, 다 신통치 않다고 하며, 걸어가다가 입적했다는 스님이다. 이 일화를 늙은 부목처사에게 말했더니 그가 “뻐드렁니를 다 내어놓고” 하는 말이 “살아보니 이 세상에서 제일로 즐겁고 좋은 날은 아무래도 죽는 날이 될 것 같니더.” 하고 빙긋이 웃더라는 것이다. 비록 절에서 땔나무나 거두어들이고 잡일을 거드는 사람이지만, 사는 날이 아니라 죽는 날이 가장 신나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으니, 그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소박한 마음으로 일만 하며 사는 중생 중에 깨달은 도인이 있다는 뜻이다.

〈절간 이야기 8〉에도 평생 불상을 조성한 석수를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 돌을 깎고 다듬어 뛰어난 불상을 많이 조성해온 그이건만,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노력을 전부 헛것으로 돌리며 자연의 돌들이 원래 모두 부처고 보살의 형상인 것을 모르고 헛되게 먹물과 징을 올려붙였다고 한탄하더라는 것이다. 이 사람 역시 평생 불상 조성에 전념하다가 한 소식 깨친 선지식에 해당하는 인물이다.〈절간 이야기 12〉에는 아내의 제삿날까지 포기하고 쇳일에만 전념한 늙은 대장장이가 나오고, 〈절간 이야기 15〉에는 6 · 25 때 공비들의 절간 방화를 막고 빈 절을 보수하여 도량을 지킨 촌 노인이 나온다. 〈절간 이야기 17〉에는 어로에 종사한 지 30년이 지나자 노와 상앗대를 다 내던진 늙은 어부가 나온다. 그는 당연히 노스님도 자기처럼 산을 버리고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절간 이야기 19〉에는 부산 자갈치 어시장에 민정시찰을 나간 설봉(雪峰) 스님이 자갈치 아줌마와 나눈 정겹고도 진솔한 대화가 나온다.

〈절간 이야기 22〉에는 이 산문 연작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40년 동안 일을 해 온 염장이 처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모든 시신을 차별 없이 정성을 다해 염을 해 왔는데, 죄를 많이 진 것 같은 시신은 편안하게 살았을 시신보다 오히려 더 정이 가고 연민이 생겨 더 정성껏 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것도 결국은 자신의 마음 편하게 하려는 행동일지 모른다고 겸손해한다. 이 염장이 노인의 말과 생각은 보살의 경지 바로 그대로다. 보살과 부처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그것도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는 속세의 일꾼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곧 법신이고 그들의 말이 곧 법문이다. 조선조 말의 위대한 선승 경허 선사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었다.

주제의 특성과 함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산문시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입담을 날것 그대로의 감각으로 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의 밑바탕에서 우러나오는 구수한 입담은 시에 담긴 이야기의 진실을 거의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니가 공부꾼 같으마 들오리 떼 울음이 강물에 남아있다 커겠으나 니는 공부꾼이 아니니 저 아래 돌다리 밑으로 떠내려가는 부처를 보고 오너라. 니가 보고 듣는 세계도 무진장하지만 니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세계도 무진장하다카는 것을 알고 싶으마…… 쯧. 쯧. 쯧.

— 〈절간 이야기 16〉 부분

 

둘째 미누리 아이가 여태 태기가 없다캐도…… 잠이 안 온다캐도요. 둘째놈 제대 만기제대하고 취직하마 시님 은공 갚을끼라캐도요. 그마 시님이 곡차 한 잔 자시고요. 칠성님께 달덩이 머스마 하나 점지하라카소. 약소하다캐도 행편 안 그렁교? (중략)

아즈매 보살! 요새 송아지 새끼 한 마리 값이 얼마인 줄 알고 캅니꺼? 모르고 캅니꺼? 도야지 새끼도 물 좋은 놈은 몇 만 원 한다 카는데에 이것 가지고 머스마 값이 되겠니꺼?

— 〈절간 이야기 19〉 부분

여기서 보는 것처럼 경상도 사투리는 화자의 진정성과 진솔성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불교적 진실을 유머를 통해 재미있게 전달하는 활력소의 역할도 한다. 그뿐 아니라 미학적 측면에서는 김소월과 김영랑, 백석, 박목월로 이어져 온 방언의 시적 수용이라는 중요한 문학사적 사실에 새로운 뗏목다리를 놓는 일도 수행한 것이다. 투박해 보이는 경상도 서민층의 사투리를 시에 끌어들임으로써 주변적 언어가 서정시의 중심으로 상승하는 문학적 변환을 이룩했다. 이것은 그가 보여주려고 한 ‘만인 부처론’의 주제, 부처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7. 조오현 문학의 문학사적 위상

여기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여 조오현 문학의 성취와 문학사적 위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오현의 시조는 서정 시조에서 출발했는데 초기의 작품부터 자아에 대한 성찰을 특징으로 삼았다.

(2) 그는 시조의 서정성을 집중적으로 추구하여 단순한 시어, 간결한 형식으로 단형 시조의 미학적 완결성을 이룩했고, 평범한 시어를 통해 삶의 진리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하는 독자적인 지점에 도달했다.

(3) 그의 구도의 시는 수행자의 고난과 염원을 다양한 양상으로 표현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실의 업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구하고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매우 개성적인 언어로 표현하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선시조의 경지를 개척했다.

(4) 그는 시조의 전통적 율격 내에서 시조의 압축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형식의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했고, 단시조의 간결한 형식 속에 불교의 깊은 진리를 담아냈다. 시조의 서정성과 압축성과 선 수행의 정진을 결합하여 독특한 불교 시조의 미학을 창안하고 수립했다.

(5)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 선적 수행을 문학으로 실천하여 자신의 수행과 참구를 기반으로 철저한 자기 부정을 감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독특한 방편의 어법을 구사했다.

(6) 그의 산문시 연작은 보살과 부처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서민들의 삶 속에 깃들어 있다는 주제를 일관되게 펼쳐내면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입담을 날것 그대로의 감각으로 시에 수용함으로써 이야기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여 산문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였다. ■

 

이숭원 / 문학평론가 · 서울여대 명예교수.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역임. 주요 저서로 《몰입의 잔상》 《시간의 속살》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미당과의 만남》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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