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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불교의 친연성 / 정재분
[43호] 2010년 06월 25일 (금) 정재분 시인

여느 종교와 비교해 볼 때, 시(詩)의 본령과 불교적 사유는 각별함으로 구별된다.

여타의 종교적인 관점으로 시에 접근하면 자칫 도그마의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나 불교적 사유는 시와의 합치가 자연스럽다. 특히 선시(禪詩)는 언어를 부정하는 불립문자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언어에 뒤따르는 사고 작용마저 선은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선에서는 오직 자기 자신 속에서의 직관적인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관념의 바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그 깨달음의 섬세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시가 제격이다. 시란 언어의 설명적인 기능을 최대한 억제시킨 비언어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만물에는 각각의 불성이 있다고 한다. 이는 시와 상통하는 점이라 하겠다. 시는 뭇 생명이나 무생물의 숨결과 앉음앉음을 인간의 감수성으로 수렴한다. 아니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번역해 내야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여된 소임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직관은 대상의 소리 없는 소리와 눈으로 본 감촉과 입체적 시선으로 포착된 순간을 함축된 언어로 결박한다. 그 결과물이 시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시인이 그것에 불성이라는 말을 따로 별첨에 붙이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러하다. 폐사지에 흩어져 있는 기와의 파편이나 돌탑에게서 고대 유적지의 폐허로 남은 돌기둥과 석양빛에 기댄 그림자에서 그것의 표정과 침묵과 비명을 읽어낸다. 구름의 움직임에서 바람의 속도를 짐작하고 다양한 과일의 맛에서 세계가 우리에게 권유하고 우리를 부양하고 우리에게 약속하는 소리를 그 둥긂 속에서 감지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한결같음과 질서 안에서 변화무쌍한 계절의 표정은 인간의 심리 구조를 반영하는 듯하다. 생명 있음과 생명 없는 사물을 수평적 관계선상에 놓고 그것들과 소리 없이 소통한다. 침묵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고 문자 없는 것을 문자화하는 것은 불성에 대한 인식의 전제하에서의 시인의 무의식적인 발현이라 하겠다.

먼저 불성이 무엇인지 짚어 보자. 불종성(佛種性)이라고도 하는데 이미 제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이러한 불성 사상은 중생의 마음은 번뇌의 때에 가려져 있지만 본래 맑고 깨끗하다는 원시불교의 교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열반경》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명시한 최초의 대승경전이다.

이 경전에서는 불성을 ‘이마의 구슬[額珠]’에 비유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어떤 장사가 씨름을 하다가 미간에 달려 있던 구슬이 피부 속으로 박혀 들어간 것을 모르고 잃어버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의사가 이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소중한 보배 구슬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인간 본연의 정신 활동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인간은 신뢰할 만한 존재가 되고 어쩌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모종(某種)의 열쇠를 인간 스스로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까지 이르도록 자신감을 부추기며 사유의 영역을 확대시킨다. 인간의 조건을 갱신하도록 하는 힘이 이 지점에서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는 처지와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생명의 환희에 동참하도록 하며 살아 볼 만한 무엇이 되게 하는 힘을 받는 지점이다. 인간 본연의 정신 활동은 누구와 무엇과 같아질 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각각의 태성이 제도와 특정사상과 관습의 눈치를 보지 않을 때 활발해진다. 직관이 전광석화처럼 번쩍거리고 우후죽순처럼 자랄 때 본디 있는 불성에서 희망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는 직관의 산물이다. 사물의 매개자로서 시인은 객관적 묘사를 실현하려 들지 않는다. 시인이 자기 심상과 시선을 투영하여 주관적으로 적어 나간다. 통찰력으로 빛나는 독보적 주관성은 객관적 세계를 선도한다. 이는 과학의 세계와 논리적 사고와 이성이나 공식으로 산출되는 세계와는 별개의 토양이다.

그것은 직관과 통찰력과 비논리와 무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닌 것으로 불성이라 명명되는 지대와 맞물려 표면화된다. 그것은 별처럼 영롱하지만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순간만을 산다. 그것은 선의 잠정적 고요에 긴장하며 알쏭달쏭한 수수께끼이고 은유와 상징의 대지에 발을 딛고 있다. 불성은 개성을 존중하도록 만든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어록을 백 인이 백색으로 이해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해답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도록 한다.

이런 결론 앞에 당면하게 되면 존재는 세계 앞에 혼자라는 새삼스러움에 당황한다. 불성은 깨닫는 자가 될 때 부처가 될 가능성을 일컫지만 그것은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열, 혹은 백이 될 수 있는 비수학적, 비논리의 지대에 놓인다.

비논리적 현상이 인간의 의식구조에 편만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서양의 석학들이 동양적 사유의 패러다임을 주목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이성으로 무장된 서양의 과학적 사고가 가져다준 물질의 풍요와 합리성이 가져온 얼마의 편리함과 육체적 안락에도 불구하고 빈곤해져 버린 사유체계를 보수하기 위해 불교와 노장사상에서 대안으로 삼는 것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치열함 속에 놓인 모든 존재는 그것이 유정이든 무정이든 간에 그만한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고, 법(Dharma), 즉 진리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상승으로 향하는 인간의 자기 견인 능력은 개별성이 존중받을 때 찬란해질 수 있다. 바로 주관성을 부양하는 시의 역할이 숨구멍을 터준다 하겠다. 이렇게 한 시인의 오감과 사유와 정신을 관통한 어떤 대상은 비로소 대문자 세계가 된다.

김춘수의 특별해진 〈꽃〉이 되는 것이다. 문자화되지 않은 순간은 곧 유야무야된다. 아니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순간의 복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자아의 발견과 세계의 확장의 울림이 증폭된다 하겠다. 그것은 시의 속성과 유사성을 보이며 세계에 던져진 인간이 조건과 대결하는 불굴성에 의해 확보된 휴식을 제공하는 그늘이다. 백인백색으로 표방되는 불성은 다양성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긍정적인 시간을 누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에 내던져졌다는 느낌 또한 여전하다. 정반합(正反合)의 터널을 빠져나온 존재는 작은 것 약한 것 부드러운 것으로 표상되는 아니마에 주위를 돌린다.

그곳에서 시는 물처럼 낮은 곳을 향한다. 젖을 물리던 어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처럼 어느덧 체질이 된 살아 있는 언어를 선호하며 분화되기 이전의 태초의 원형질로 만나는 세계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원형으로의 나, 언어 이전의 나를 만나는 것을 희원하도록 시는 추동한다. 부모나 사회에 의해 간과되었던 나, 잃어버린 나만이 고유함을 만나서 귀 기울여 들어주고 무아가 자아로 분화되지 않은 원형질로의 자아가 열망하는 쪽으로 슬쩍 등을 밀어주고 싶다.

관습과 세월의 더께를 벗겨 내었을 때의 처음상태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존재가 자유의지 이전의 조건과 대면하고 자아 이전의 무아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조각들은 세계의 무의식을 복원하는 퍼즐이다. 모든 존재에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인식은 나 아닌 너에 대해 존중의 개념이고 평등사상을 고취시킨다.

이는 본래의 생존 양식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정과 함께 무정까지도 최상의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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