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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판본(板本)과 본문 비평 /김용직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김용직 seohee32@snu.ac.kr

1.

시집 《님의 침묵》의 초판본은 1926년 5월 회동서관(?東書館)에서 발행되었다. 4·6판으로 〈님의 침묵〉 이하 88편의 작품을 수록한 이 책의 부피는 본문이 168면이었고 그 머리에 서문에 해당되는 〈군말〉이 실렸다. 이어 작품 목차가 8면에 걸쳐 나온다.

《님의 침묵》 이전에 나온 한국현대시집은 김억(金億)의 번역 시집인 《오뇌(懊惱)의 무도(舞踏)》(광익서관(廣益書館), 1921)가 최초였다. 창작 시집으로는 역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조선도서, 1923)가 1번 타자였다. 그에 이은 우리 현대시집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조명희(趙明熙), 《봄 잔디밭 위에》(춘추각, 1924)
박종화(朴鍾和), 《흑방비곡(黑房秘曲)》(조선도서, 1924)
변영로(卞榮魯), 《조선의 마음》(평문관, 1924)
노자영(盧子泳), 《처녀(處女)의 화환(花環)》(청조사, 1924)
주요한(朱耀翰), 《아름다운 새벽》(조선문단사, 1924)
김동환(金東煥), 《국경(國境)의 밤》(한성도서, 1925)
김억(金億), 《봄의 노래》(매문사, 1925)
김동환(金東煥),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신문학사, 1925)
김소월(金素月), 《진달래꽃》(매문사, 1925)

이런 명단으로 짐작하는 바와 같이 초창기의 한국 근대 시인들은 대체로 《청조》, 《폐허》, 《백조》 등 문예 동인지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시집을 내기 전에 먼저 작품들을 동인지나 기타 신문, 잡지들에 발표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작품을 손질한 다음 단행본 체재로 엮어낸 것이 개인 시집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님의 침묵》은 그들과 전혀 성격이 달랐다. 《님의 침묵》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신문, 잡지를 통해 발표를 거친 예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한용운이 문단권 외에 속한 시인으로 사화집으로 그 존재를 문단 안팎에 물었음을 뜻한다.

2.

회동서관판에 이은 《님의 침묵》 재판은 1934년 7월 한성도서에서 발행되었다. 출판사가 바뀌었음에도 《님의 침묵》의 초판과 재판 사이에 판형상으로나 면수와 체제상의 변동 사항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꼭 하나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군말〉 부분이다.

초판에서는 〈군말〉이 붉은 잉크로 인쇄되었다. 그것이 재판에서는 다른 본문과 마찬가지로 검은 잉크 인쇄로 나타난다. 또한 〈군말〉은 재판 때 철자법상 손질을 가한 자취가 드러난다. 고(故) 송욱(宋稶) 교수의 검토에 따르면 ‘기룬 것’→‘기른 것’, ‘조은’→‘좋은’, ‘자유(自由)에’→‘자유(自由)의’, ‘않너냐’→‘않느냐’, ‘있너냐’→‘있느냐’, ‘그림자’→‘거림자’, ‘돌어가는’→‘돌아가는’ 등이 그들이다.

〈군말〉을 통해서 보면 《님의 침묵》의 초판과 재판의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정이 정작 본문에서는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다시 송욱 교수의 검토에 따르면 《님의 침묵》의 초판과 재판 본문에서 다른 표기로 나타나는 곳은 〈첫키쓰〉의 한 구절인 ‘나의 운명(運命)의 가슴에서’가 ‘나의 운명의 슴에서’로 되어 있으며 〈잠꼬대〉의 한 부분인 ‘도룽태’가 ‘도퉁태’로 된 것 등 두 곳뿐이다. ‘가슴’에서 ‘가’가 탈락된 것을 우리는 지형(紙型)의 마모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인쇄물은 전자 조판으로 이루어지는 지금과 크게 달랐다. 원고가 들어오면 인쇄 공장에서는 그에 의거하여 일일이 활자들을 골라서 판을 짰다. 그것을 다시 지형으로 뜬 다음 그 지형에 납을 녹여 붓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연판(鉛版)이 이루어져야 그 위에 잉크를 칠하여 본문의 인쇄가 가능했다. 이때 연판과 지형은 취급 과정에서 훼손될 수가 있었다. 《님의 침묵》 본문에 나타나는 두 군데 차이는 바로 구식 인쇄에서 빚어진 부작용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돌이켜 보면 한성도서 발행인 《님의 침묵》 재판이 초판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것은 한용운 시집의 정본화(正本化)에 상당한 차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님의 침묵》 초판이 간행될 무렵 아직 우리 주변에는 표준어 사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철자법 통일안도 마련되기 전이었다. 거기서 빚어진 부작용으로 《님의 침묵》은 여러 군데에 방언이 나오며 구식 철자법에 따른 표기가 나타난다.

〈군말〉의 ‘긔룬것’, ‘너희는 이름 조은 자유(自由)에 알퀎한 구속(拘束)을 밧지 안너냐’ 등이(밑줄 필자) 그 단적인 보기다. 《님의 침묵》 재판이 나오기 전인 1930년대 초에 조선어학회는 철자법 통일안 작성에 착수하여 1933년도에 그것을 완성 공표했다. 그에 부수되어 표준어 사정 역시 그 테두리가 잡혔다. 우리 문단의 여러 작품들 또한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1930년대 중반기에는 대체로 맞춤법에 의거한 말과 글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에 이르기까지 《님의 침묵》은 구태의연한 표기로 남게 된 것이다.

3.

제3판 《님의 침묵》은 1950년 4월 둘째 판을 낸 한성도서에서 발행되었다. 이 판은 첫째나 둘째 판과 같은 4·6판이었으며 본문 조판 역시 앞서 판의 형태를 지키는 선에서 이루어졌다. 다만 본문의 어려운 한자가 괄호 안에 들어갔다. 그 보기가 되는 것들이 ‘맹서(盟誓)’ ‘미풍(微風)’ ‘파문(波紋)’ ‘자비(慈悲)’ ‘백호광명(白毫光明)’ ‘악마(惡魔)’ 등이다. 이와 아울러 구식 표기가 맞춤법통일안에 준하는 형태로 시정되었다.

또한 된시옷이 현행과 같이 고쳐졌으며 띄어쓰기도 제대로 이루어져 나왔다. 이것은 셋째 판 《님의 침묵》이 혁신, 결정판을 지향한 가운데 발간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모처럼의 개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셋째 판에는 여러 곳에 결함이 나타난다. 초판의 표기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개악된 예가 발견된다.

어떤 작품에서는 구절과 행을 누락시키는 착오를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그것들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앞의 것이 초판, →표 다음이 3판의 것).

(1) 글자를 잘못 읽은 경우
서정시인(敍情詩人)→숙정시인(叔情詩人)(〈예술가〉 제3연). 이것은 서정시(抒情詩)가 서정시(敍情詩)로 표기된 것을 모르고 숙정시(叔情詩)로 읽은 데서 빚어진 착오다.

(2) 단어의 뜻을 잘못 잡은 경우
나의 마음을 가저가랴거든 마음을 가진 나한지 가저가서요→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랴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서요. (〈하나가 되어주서요〉 제1행).
여기 나타나는 바와 같이 제3판에서 ‘나한지’가 ‘나에게서’로 바뀌어 있다. 꼭 같은 손질이 넷째 줄의 ‘님한지’→ ‘님에게’도 되풀이되어 나온다. 이때의 ‘~한지’는 충청도 방언이며 표준어로 고치면 ‘~함께’가 된다. 이 역시 3판 《님의 침묵》이 범한, 지나쳐 볼 수가 없는 오류다.

(3) 한 작품에서 구절, 또는 한 연을 송두리째 누락시킨 경우
〈이별〉은 초판, 재판에서 아울러 8연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3판에서는 7연으로 축소되어 버린 채 8연이 누락되었다. 참고로 이때 누락된 8연 3행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아 진정한 애인(愛人)을 사랑함에는 주검은 칼을 주는 것이요, 이별은 꼿을 주는것이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진(眞)이요 선(善)이요 미(美)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석가(釋迦)요 모세요 짠다크다.

이렇게 3행으로 된 한 연이 누락되어 버렸기 때문에 제3판 《님의 침묵》은 초판이나 재판과 달리 한 면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168면이던 이 시집이 이 판에서 167면이 되었다. 이미 앞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이 판은 명백하게 초판을 참조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이렇게 면수가 줄어든 까닭을 고려해 보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수수께끼로 남는다.

(4) 한 구절 또는 몇 개의 단어들이 누락된 경우
앞에서 이미 결함이 나온 3판의 〈이별〉의 20면 첫 줄과 둘째 줄은 다음과 같다.

아아 진정한 애인(愛人)을 사랑함에는 주검은 칼을 주는 것이오 이별은 꽃 생명(生命)보다 사랑하는 애인(愛人)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밑줄 필자)

이 인용에서 밑줄을 친 전반부와 후반부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다. 이것을 초판과 대조해 보기로 한다. 그때 우리는 밑줄을 그은 부분이 그 실에 있어서 21면 마지막 줄을 송두리째 삽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이 부분에서 착오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이하 이 작품의 한 연이 잘려나가게 된 것이다.
이와 꼭 같은 착오가 〈사랑의 끝판〉에도 되풀이되어 있다. 《님의 침묵》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인 〈사랑의 끝판〉 제2연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름나무 그늘을 지어버리는 것은
달빗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3판 《님의 침묵》에서는 이 부분 첫째 줄이 ‘그늘을 지어버리는 달’로 끝나고 ‘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가 탈락되고 없다. 그리하여 3판에서는 ‘그늘을 지어 버리는 달’로 165면이 끝난다. ‘빗이 아니라’ 이하는 그다음인 166면으로 이어져야 할 구절이다. 그것을 탈락시킨 것은 재래식 인쇄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로 생각된다. 어떻든 이것으로 이 작품도 의미맥락이 통하지 않는 부분을 안게 된 것이다.

4.

한성도서의 셋째 판 이후 오랫동안 《님의 침묵》의 새로운 판은 나오지 않았다. 그 지양, 극복이 이루어진 것이 1970년대에 접어들고 나서다. 다시 고(故) 송욱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이 무렵에 나온 《님의 침묵》의 다른 판들은 다음과 같다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진명문화사, 1972)
한용운, 《님의 침묵》(삼성문화재단, 1972)
한용운, 《한용운 시집》(정음사, 1972)

이 가운데 진명문화사판은 한 해 동안에 10여 판이 발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삼성문화재단 것은 문고판이어서 처음 3,000부를 인쇄했다. 그것이 두 달 만에 매진되어 재판이 발행되었을 정도다. 정음사 본 역시 다른 시집에 비해 월등 많은 부수가 나간 것으로 전한다. 이렇게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집에는 감추어 버릴 수가 없는 난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들 시집이 가진 내용상 문제였다. 출판사를 달리하고 체재와 판형을 새롭게 한 것이었음에도 이 세 시집은 다 같이 그 내용을 1950년도판 한성도서 것을 기준으로 했다. 따라서 그 내용이 원작과는 거리를 가지는 일종의 개악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집 《님의 침묵》을 에워싼 위와 같은 착오들이 《한용운 전집》 발간과 함께 지양, 극복의 문이 열렸다. 정확히 1970년 7월에 신구문화사에 의해서 《만해한용운전집》 다섯 권이 간행되었다. 시집 《님의 침묵》은 그 첫째 권 머리 부분을 차지하고 나왔다. 이 신구문화사판이 바탕으로 한 것은 8·15 후에 나온 《님의 침묵》이 아니라 1934년도에 나온 재판이었다.

재판을 참조한 가운데 발간되었으므로 이 때의 《님의 침묵》에는 1950년도판의 착오가 모두 시정되었다. 구체적으로 거기에는 글자를 잘못 읽은 경우라든가 단어의 뜻을 잘못 짚은 것, 구절과 행을 누락시키거나 엉뚱한 곳으로 바꾸어 넣은 것 등의 실수가 극복되었다. 단 전집을 편찬, 교정한 사람들은 《님의 침묵》 초판을 참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판에서 빚어진 오자, 탈자를 잡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전집의 《님의 침묵》에는 또 다른 문제점들도 내포되어 있다. 첫째, 전집은 철저하게 한글 전용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한자 표기가 필요한 부분에는 한글을 먼저 쓴 다음 해당 한자를 괄호 안에 집어넣는 방식이 택해졌다. 이것은 한자에 익숙하지 못한 한글세대 독자에 대한 배려로 생각된다. 그러나 시에서 말의 표기는 소리와 뜻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초판의 “그것은 慈悲의 白毫光明이 아니라 번득거리는 惡魔의 눈(眼)빗입니다”를 “그것은 자비의 백호광명(白毫光明)이 아니라 번득거리는 악마의 눈빛입니다”로 고친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인가는 재고의 여지가 생긴다.

이와 아울러 《전집》에는 원칙적으로 사투리를 배제하고 본문 표기를 한글맞춤법에 맞도록 수정하고 있다. 그런 나머지 ‘님’이 ‘임’으로, 그리고 ‘고흔’이 ‘고운’으로 고쳐졌으며 ‘하읍니다’가 ‘하였습니다’로 ‘있나버요’가 ‘있나봐요’로 수정되었다.

시인에 따라서는 그의 작품에서 음운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짐짓 ‘고운’을 ‘고흔’이라고 쓴다든가 ‘임’을 ‘님’으로 쓰는 예가 지금도 우리 주변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전집》이 택한 표준맞춤법 제일주의 역시 재검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집》에 이어 나온 것이 송욱 교수의 《전편해설, 님의 침묵》(과학사, 1974)이다. 송욱 교수는 이 해설서의 앞자리에 각 작품을 원전 그대로 제시했다. 그에 따라 모든 한자 부분이 원형대로 표기되었으며 방언으로 생각되는 말들도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 아니면 그대로 두는 입장을 취했다. 이 밖에 그는 원문을 ‘현행 맞춤법으로 고치는 경우에 발음이 달라지면 고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발음이 달라져도 고칠 수밖에 없는 것에는 괄호 안에 초판의 발음을 넣어 밝히도록 했다.

이것으로 송욱 교수는 《님의 침묵》의 정본화(正本化)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의욕적인 작업에도 시각을 달리해 보면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가령 〈가지마서요〉 제2연 둘째 줄 ‘자먁질’에서 사투리의 표시를 붙인 것이 그 예다. 만해의 많은 시가 그런 것처럼 이 작품의 화자는 여성이다. 여성이 쓰는 말씨로는 ‘자먁질’을 ‘자맥질’로 고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이 부분의 주석에는 마땅히 그런 주석이 붙어야 했다. 또한 〈가지마서요〉의 제3연 제1행 “그것을 사랑의 제단(祭壇)에 제물(祭物)로 드리는 어엽븐 처녀(處女)”에서 ‘어엽븐’을 송욱 교수는 표준철자법에 의거 ‘어여쁜’으로 고쳤다. 이에 대해서 별도로 주석을 달지 않은 것을 보면 송욱 교수는 이 말을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어여쁘다, 곱다, 아름답다로 잡은 듯 보인다. 우리 고어에는 어여쁘다, 곱다, 아름답다의 뜻으로 쓴 어여쁘다와 달리 ‘가엾다’의 뜻으로 ‘어엽브다’→‘어엿브다’가 쓰인 바도 있다(어엿븐 그림재 날 조찰 탼이로다 ― 정송강, 〈속미인곡〉).

이와 아울러 《전편해설, 님의 침묵》에는 매우 심각한 또 하나의 난점이 내포되어 있다. 송욱 교수는 《님의 침묵》의 부제로 ‘사랑의 증도가(證道歌)’라는 말을 썼다. 이것은 《님의 침묵》의 전 작품을 불교사상에 입각한 형이상시로 볼 수 있다는 송욱 교수 나름의 시각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이 시집에는 명백하게 불교적인 세계관과는 무관한 단순 애정시가 있다.

시집 머리에서 네 번째의 작품인 〈나는 잊고자〉가 바로 그에 해당된다. 이와 아울러 이 시집에는 〈논개(論介)의 애인이 되야서 그의 묘에〉, 〈계월향(桂月香)에게〉 등과 같이 불교식 해탈의 경지를 노래하기에 앞서 반제(反帝), 민족의식을 바닥을 깐 것이 있다. 작품의 실제가 이런 것임에도 《님의 침묵》에 담긴 모든 시를 견성(見性)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경지를 담은 것으로 읽을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결론도 명백해진다. 《님의 침묵》이 지닌 상징의 체계를 기능적으로 이해,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이 시집의 정본화(正本化)를 시도해야 한다. 텍스트의 확정 없이 한 시인의 시를 올바로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님의 침묵》을 지금 다시 읽고 검토해 나가는 이유의 가장 큰 이유다.■


김용직 / 1932년 경북 출생. 서울대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졸업. 서울대 인문대 교수,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장 등을 역임. 저서로 《한국근대시사 1·2권》 《해방기한국시문학사》 《북한문학사》 등이 있음. 한동안 신문, 잡지의 월평을 담당하여 몇 권의 평론집을, 그리고 그것들과 별도로 본격 시인, 작가론을 시도하여 《임화문학연구》 《김기림론》 등을 썼다. 지난해에는 우리와 동시대의 정치, 사회상황 탐색의 부산물인 《김태준 평전》을 출간. 제13회 만해대상(학술부문) 수상.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학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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