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윈의 진화론 150주년에 부쳐

1. 한국창조과학회의 헌법소원 계획

올해 1월 한국창조과학회와 관련하여 두 개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한국창조과학회 5대 회장의 취임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는 “진화론 확산을 방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국민일보 2009년 1월 2일자). 창조과학회의 활동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예상했던 발언이었다.

다른 하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정기총회에 관한 기사였는데 한국창조과학회가 사랑의 집짓기운동 연합회와 함께 한기총 단체회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제명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국민일보 1월 19일자). 창조과학회가 그간 보수적 개신교의 이론적 전위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놀라운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5일에 열렸던 한기총 실행위원회의 회의 기록을 보면 윤곽이 잡힌다. 위에 거론된 두 단체의 제명 사유는 10년 이상의 회비 미납이다. 그러나 “‘창조과학회가 회원권을 잃게 되면 진화론 도전이 왔을 때 대응할 방안이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며 신학위원회 차원의 대응이나 창조과학위원회 신설 등이 요청되었고 ‘정관 개정 작업을 하면서 [창조과학] 상임위원회 창설을 검토한다’는 전제하에 제명 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한국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 2008년 12월 6일자).” 두 단체 간의 갈등 사유가 더 깊은 곳에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창조주의에 관한 의견 차이는 없는 듯싶다.

한국창조과학회와 보수 개신교계는 교과서에 기독교 창조관을 싣기 위해서 오랫동안 노력한 바 있다. 올해부터는 ‘진화론만 가르치는 교과서는 위헌’이라며 교육부 지침을 폐기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국민일보 5월 19일자). ‘한국창조과학회의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를 비롯하여 ‘일방적인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는 좋은교사운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진화론대책위원회’ ‘성경과학선교회’ ‘지적설계연구회’ 등 많은 유관 단체들이 참여하여 ‘(가칭) 바른 교과서 시민단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신도들을 확보하기 위한 이들의 다급함은 “창조론을 경시하다 몰락한 유럽 교회의 전철을 우리가 밟을 수 없다.”고 말하는 창조과학회 회장의 표현이나 ‘성장세가 멎은 교회’를 살리기 위해 ‘진화론자들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진화론실상연구회 회장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교육과정 평가연구원의 지침 중에 중·고 과학 교과서에는 “생물의 진화와 관련, 창조론은 다루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창조론을 무시하는 것은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헌법에 국교분리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는 사실은 고의로 무시한다.

지난 8월 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새로이 확정했다고 밝혔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을 주문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강화되었다.”는 의견이 교과부 등의 공식적 입장이나 (동아일보 8월 5일자 참조), 뉴라이트의 의견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개정안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 전국역사교과서모임 회장은 새로운 집필 기준에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한 적이 없다.”며 “뉴라이트나 재계의 요구를 수정 없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 8월 4일자).

한편 EBS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83%로 진화론을 믿는 정도가 제일 높았고, 다음으로 불교 신자의 경우는 68%로 평균인 62.2%를 상회했다. 개신교는 39.6%에 불과했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69.7%였다. 중고교에서 현재 진화론만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25%)의 두 배가 넘는 62.7%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를 볼 때 보수 개신교 내의 교과서 개정 추진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다. 보수 개신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진화론 등 과학의 성과를 부정할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라고도 주장한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까지 ‘봉헌’될까 걱정이다.

2. 올해는 ‘다윈의 해’?

올해 2009년은 유엔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IAU)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갈릴레이가 400년 전에 망원경을 개발하여 목성을 관측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난 2005년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을 맞아 ‘세계 물리의 해’(속칭 ‘아인슈타인의 해’)로 지정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올해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 2. 12~1882. 4. 19)의 탄생 200주년, 그의 진화론을 내용으로 하는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국제생물학연맹(IUBS, International Union of Biological Sciences)이 올해를 《다윈의 해 2009 (Darwin Year 2009)》로 지정해서 유럽과 미국의 대학들을 주축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유엔 차원의 참여가 없어서인지 국제무대에서의 창조주의와 진화론의 논쟁은 기대보다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단체는 유엔의 결정에 반대해서 올해를 ‘과학의 해’로 지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유엔의 의도(?)와는 달리 신문이나 TV를 보면 ‘천문의 해’보다는 ‘다윈의 해’가 더 많이 거론되고 있다. 과학적 성과 중에서도 생물학의 진화론은 우주의 기원을 논하는 천체물리학의 빅뱅이론과 더불어 종교인들과 과학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대립 또는 공존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자연히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사회 내에서 권력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종교 집단과의 충돌을 예고할 때 그 관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EBS방송에서 〈다큐프라임―신과 다윈의 시대〉를 지난 3월 9, 10일 이틀에 걸쳐 방영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협력적이기도 하고 적대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에는 과학이 사회적 가치 영역을 선점하면서 종교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였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 그것이 성경의 내용과 위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환호했다. 지금까지도 ‘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경에만 매여 있던 유럽인들의 사고가 완전히 바뀐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바티칸이 뒤늦게 탄압을 시작했지만, 지금 지동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의 기원》이 1859년에 출간되자 초판 1,250부가 단 하루 만에 판매되고 13년 동안 6판이나 인쇄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진화론이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은 크다. 종교적인 가치관을 흔든 것은 물론이며 자연 속의 인간이 상대화되었다는 의미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19세기의 일대 전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어떤 자연과학의 성과도 긍정적 영향과 함께 부정적인 영향을 수반한다. 스펜서에 의해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원리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원리로 해석되어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을 합리화시켰으며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 그 예이다. 이런 이론은 현재까지도 보수적인 사회, 경제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는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3.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의 창조관

창조관은 보통 기독교의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유일신의 천지창조에 관한 믿음을 얘기한다. 그러나 아랍 문명권에서 여러 비슷한 유형을 볼 수 있으며, 이들 문화보다 앞섰던 수메르 문명권에서 발견되어 1891년에 해독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런 신화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편은 기독교 초기부터 신화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런 전통은 중세까지도 이어져 왔다. 4세기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를 포함하여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대부분 학자들은 ‘신의 천지창조’는 믿으나 상세 내용은 우화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1517년 종교개혁 이후 성경이 라틴어에서 각국어로 번역됨과 동시에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 경향이 나타나면서 달라진다.

성경에 입각해서 창조 일자를 처음으로 ‘정확히’ 계산한 사람은 북아일랜드 아마(Armagh)의 주교인 제임스 어셔(James Ussher)였다. 그는 그의 논문 〈세계의 기원에 의거한 구약성서 고찰〉의 ‘후기’를 1654년에 발표하는데, 고문서와 성경의 연구를 토대로 천지창조의 시간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해 질 녘이라고 밝혔다. 이 날짜는 1710년 영국 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달리 우주의 나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없었던 19세기 전까지는 유일했던 계산치였다.

한편 1687년 뉴턴의 과학혁명 영향을 받아 18세기 프랑스에 계몽주의가 확산되며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과학의 추구를 위해서 ‘신의 존재’라는 가정은 더 이상 필요없다는 사상이 자리 잡았다. 유전학, 지질학 등의 발전과 함께 ‘동물의 진화’라는 아이디어는 19세기 초반에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로버트 챔버스가 익명으로 소책자 《창조의 자연사 흔적》을 다윈보다 15년 먼저 발간하였고, 챔버스의 책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나 정작 과학자들로부터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859년에 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처음으로 풍부하게 수집된 자료와 과학적 분석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모든 생물은 하나의 공통된 조상을 가졌으며 자연선택의 원칙에 따라 긴 시간 진화하였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해 내고 있어 당시 생물학의 통합 이론서였다. 이 색다른 ‘생물 창조관’이 ‘기독교 창조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보수적 신학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으나 자유주의 신학이 확산되어 있던 19세기 유럽에서는 대체로 과학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 논쟁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고 교황 비오 12세는 〈인간 탄생〉 이라는 교서에서 진화론은 “몰염치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자연과학계에서도 증명이 되지 않은 데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겁게 이를 수용하는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황청 과학원의 설득에 따라 1950년에는 진화론과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는지 여부를 신중히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마침내 1996년 요한 바오로2세는 ‘계시와 진화’라는 메시지를 통해 “종교 교육과 진화론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고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중요한 학설”이며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4.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와 ‘창조과학’(1923~1987)

기독교 근본주의란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며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발전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건국 초기부터 보수적 캘비니즘(Calvinism)의 영향을 받고 있던 미국에서는 고대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성서의 한 자 한 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에 근거한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 Biblical inerrancy)과 예수의 신성을 주장하는 원리주의가 재등장하는데, ‘근본주의’라는 이름은 1910년과 1915년 사이에 이들이 배포한 10여 권의 작은 교리책 《근본(The Fundamentals)》에서 기인한다.

1918년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며 미국은 세계 최대강국의 길을 걷게 되며 미국 근본주의자들은 전 세계를 미국을 거점으로 하고 미국민을 선민으로 하는 세계적인 복음화운동을 시작한다. 다른 한편 1차 세계대전 전에 유럽에서 발전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의 현대물리에 의해 기존의 가치관과 기독교의 위상이 흔들리자 성경의 내용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됨을 보이려 했다. 미국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의 기원은 1923년 아마추어 지질학자였던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의 《새로운 지질학(The New Geology)》발간이라고 볼 수 있다. 1900년경부터 미국의 학교에 도입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항할 무기가 생긴 것이다.

1923~25년 사이에 근본주의자들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다. 1923년에 오클라호마 주에서 진화론을 배제한 비검정 교과서가 승인되고, 플로리다 주에서 반진화론법이 통과되었으며 1925년에는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 교육금지 법안이 통과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 1925년에 소위 ‘원숭이재판’이 열린다(이 논문의 ‘6. 미국 창조주의의 법정투쟁 패배사’ 참고). 이 재판 이후 자유주의 진영은 도덕적인 승리를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별 성과는 없이 대체로 창조주의자들의 논리가 사회적으로 잠식되고 있었다.

1960년대 ‘창조과학운동’의 대두

1960년대 들어 상황이 반전되는데 그 계기는 엉뚱하게도 소련으로부터 주어진다. 1957년 소련에서 무인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고 1961년에는 유리 가가린을 태운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발사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에 즉각 반응하였다. 1958년에 국가방위교육법을 제정하여 과학교육에 적극 관여하고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하였다. 우주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이런 과학진흥정책 아래 진화론 금지법은 차례로 폐기되었다.

위기를 느낀 근본주의자들은 다시 진영을 가다듬기 시작하였고 ‘창조과학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그레이스 신학교의 교수였던 존 위트콤과 수력공학자였던 헨리 모리스가 프라이스의 책 《새로운 지질학》에 신학적, 과학적 설명을 추가해서 1961년 《창세기의 대홍수(The Genesis Flood)》란 책을 발표한다. 창조주의 진영의 대(對)과학운동은 지질학만이 아니라 생물학과 천체물리학의 영역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의 주요 골자는 다양하게 발굴되는 지층들과 화석들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시절의 격변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학적 연대 측정 방법의 비과학성을 주장하며 지구의 나이는 6천 년에서 만 년 사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젊은 지구 창조관’이다. 우주의 생성도 물론 이 기간을 넘을 수 없어 상대성이론의 중력 시간지연(gravitational time dilation) 개념을 황당하게 적용시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137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6000년으로 축소시키는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이 책이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헨리 모리스는 이를 바탕으로 창조연구회와 창조연구사업회를 설립한다. 1970년대 들어서는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파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창조과학연구소가 세워지고 교육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등 저변확대 사업이 강화된다. 이 운동은 1987년에 미국 대법원이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이의 교육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전략 수정의 필요를 느끼게 되면서 ‘지적설계’운동에 주도권을 넘겨준다.

그러나 아직도 AiG(Answers in Genesis) 같은 단체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며 1981년 창설된 한국창조과학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5. 신창조주의―‘지적설계’(1989~ )

1987년 대법원의 판결로 창조주의자들의 진화론 확산 방지 운동은 실패로 끝나는 듯 보였지만 지칠 줄 모르는 새로운 전략 모색은 계속되었다. 1989년에 ‘사상과 윤리 재단(FTE, Foundation for Thought and Ethics)’의 이름으로 고등학교 생물학 교재용으로 《판다와 인간에 관하여: 생물학적 기원에 관한 중심 질문(Of Pandas and People: The Central Question of Biological Origins)》이라는 책이 간행된다.

이 책에는 창조나 창조주의라는 단어가 모두 지적설계(ID, Intelligent Design)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신’ 또는 ‘설계자’란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교과서 채택을 위한 창조주의자들의 풀뿌리운동이 펼쳐지면서 많은 사립학교들에서 이를 교과서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지적설계운동은 기존의 창조과학운동을 대체해 간다.

이들이 정의하는 ‘지적설계론’에서는 “우주의 일정한 형상과 생물은 ‘자연선택’과 같은 방향성 없는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적 원인(intelligent cause)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있어 온 신의 존재에 관한 목적론적 논증의 현대판 표현이다. 이들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설명을 과학적 방법론에 포함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창조주의를 과학적 이론이라고 주장한다는 데 있다.
이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비환원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 생물학적 시스템은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진화했기엔 너무 복잡하다.
2. 특정화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 : 지적 설계자에 의해서만 가능한 특정한 복잡성이 존재한다.
3. 미세조정된 우주(Fine-tuned Universe) : 현재 우주 내 주어진 물리상수들이 조금만 달라지더라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우주는 불가능하다.
4. 지적설계자(Intelligent designer) : 이들이 지칭하지 않는 ‘설계자’는 물론 기독교의 야훼신이다.
5. 유신론적 실재론(Theistic realism) : 실재로 존재하고, 인간적이고, 기계론적 창조주의를 통해 세계에서 활동하는 신에 의거한다.
6. 신창조주의(Neo-creationism) : 1987년 창조과학이 재판에 진 뒤에 창조주의에 새로운 바람을 넣기 위해 붙여진 이름.

현재 지적설계운동의 이론적 중추 역할은 디스커버리연구소(DI, Discovery Institute)와 그에 속한 과학문화센터(Center for Science and Culture)에서 하고 있다. 이 운동이 확산되는 데는 1991년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법학 교수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이 쓴 《심판대의 다윈(Darwin on Trial, 1991)》이라는 책이 기여했다.
1990년대에는 미국 리하이대학교의 생화학 교수 마이클 비히(Michael Behe)가 쓴 《다윈의 블랙박스(1996)》와 수학박사 출신의 윌리엄 뎀스키(William A. Dembski)가 쓴 《설계추론(1998)》 《지적설계(1999)》 등이 출간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뎀스키의 《공짜 점심은 없다(2002)》, 《설계혁명 (2004)》, 스테판 마이어의 《세포 속의 기호(2009)》 등이 있다.

이들의 성과는 창조과학의 잇따른 실패에 의해 침체되어 있던 창조주의 진영에 적어도 겉으로는 과학이란 옷을 입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적설계의 교과서 채택과 이를 통한 공교육 침투를 위해 법정투쟁을 꾸준히 시도했다. 이들은 또 다윈의 해를 맞아 대학 홈페이지에 진화론 설명이 있는 것을 위헌이라고 소송을 내는 등 활발히 대처하고 있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일은 이제 미국 ‘문화 전쟁’의 한 축이 됐다.”고 한 종교 전문가는 말한다. 걱정되는 것은 창조주의자들이 법정 투쟁에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으나 설문조사에서는 60~70%를 상회하는 지지를 얻고 있다는 상황이다.

6. 미국 창조주의의 법정투쟁 패배사(1925~2005)

1925: 스코프스 재판 (일명 ‘원숭이 재판’)

1925년에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 수업금지 법안이 통과되자 미국의 진보 세력은 시민권에 대한 침해이자 국교를 금지한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위반이라고 여겼다.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법률단은 테네시 주 데이튼 시의 한 학교에서 축구코치를 하며 가끔 교원 결원 시 수업을 맡던, 당시 25세의 존 스코프스(John T. Scopes)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스코프스로 하여금 진화론의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여 법을 어기게 하였고, 소위 말하는 스코프스 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재판은 〈신의 법정〉이라는 영화로도 소개되었다.

스코프스가 5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끝났으나 전시 효과는 충분하였다. 이 재판에서 다루어졌던 변론 중에 “성경 《창세기》 중에서 아담은 자신의 갈비뼈에서 부인인 이브를 얻었지만 그들의 아들 카인은 어디서 부인을 얻었는가”와 “고대 이집트에는 몇 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느냐”는 유명해졌다. 자유주의 진영은 테네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되었다.

1968: 대법원 판결, ‘진화론 금지법은 위헌’

1968년에야 미국합중국 대법원은 모든 진화론 금지법이 헌법의 국교분리 조항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테네시 주의 경우 진화론 금지법을 폐기한 뒤였다.

1987: 대법원 판결, ‘창조과학의 학교교육은 위헌’

창조주의자들은 1968년 이후 ‘진화론 교육금지’에서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교육 병행’으로 전략을 바꾼다. 이들은 다시 성과를 보아 1981년 아칸소 주(Act 590)에 이어 1982년 루이지애나 주에서도 진화론과 창조과학을 나란히 가르쳐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자유진영의 교사, 학부모, 과학자들의 연이은 소송이 제기되었고, 1982년 1월 연방법원에서는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니고 종교라는 이유를 들어 아칸소 주의 Act 590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다시 내린다. 1987년에는 미국 대법원도 같은 이유로 창조과학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는 최종 판결을 내린다.

2005~2007: 캔자스 주의 ‘진화론청문회’와 원상복구

캔자스 주의 교육위원회 내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디스커버리 연구소에서 지적설계주의자들이 제작한 〈진화론의 비판적 분석〉을 진화론과 함께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려 하면서 2005년 5월부터 소위 ‘진화론 청문회’가 열린다. 2005년 11월에 이들의 주장은 관철되어 캔자스 주는 오하이오 주에 이어 두 번째로 ‘진화론의 비판적 분석’을 받아들인 주가 되었다.

그러자 한 대학생이 교육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나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Church of Flying Spaghetti Monster)’신자다. 우리의 이론도 교실에서 가르치게 해달라.”고 한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 청문회에는 과학자들이 지적설계를 과학으로 대접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이콧한 반면, 지적설계 진영에서는 대대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2006년 8월에 ‘지적설계’를 지원했던 공화당 의원들이 예비선거에서 모두 탈락하고 새로 구성된 과학청문위원회와 교육위원회에 의해 2007년 2월에 ‘진화론의 비판적 분석’은 거두어진다.

2005: 도버 재판, ‘지적설계의 학교 교육은 위헌’

또 하나 다른 예는 2005년 9월에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지구에서는 일어난 재판이었다. 도버의 교육위원회가 중학교 3학년의 진화론 수업시간에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라는 내용의 문건을 교실에서 낭독하게 하고 지적설계 문건을 교과서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의 학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것이 알려지자 과학계, 사회단체들이 같이 참여하여 대대적인 재판이 열리게 된다. 전례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 재판은 12월까지 지속되었다. 지적설계 진영에서도 여러 단체가 참여하였다.

담당 판사인 존 존스 3세(John E. Jones III)는 무려 139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지적설계는 창조주의의 한 형태이며 과학이 아니다.”라며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라는 도버 지구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미국 수정헌법의 제1조인 국교금지 조항을 위배했다.”라고 판결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양측 모두 적절히 교육되어야 한다고 해 파문이 일던 때였고, 존스 판사가 부시에 의해 임명된 보수정당의 기독교인 판사였기 때문에 이 재판은 더욱 유명해졌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은 올해 ‘다윈의 해’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고 존스 판사는 강사로 참여했다.

7. 과학자들의 대응―‘지적 사고’(2006)

과학자들에게 과학적 이론이란 (1)모순없는 일관성 (2)경제성[최소화된 설명] (3)유용성 (4)경험적 검증성 (5)[새로운 발견에 대한] 유동성 (6) [이전의 이론과 모순이 없는] 진보성 (7)임시성(개선될 가능성)들을 갖춘 것이다. 가설이나 억측이라도 위의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추었냐에 따라 어느 정도 과학적인가가 가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의 경우 ‘신’ 또는 ‘설계자’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고 따라서 개선될 수도 없다. 또 설명이 최소화되지 못하고 복잡하고, 반복되는 실험에 의해 검증된 것이 아니므로 일관성이 결여된다. 다시 말해서 위의 조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학술원은 “창조주의, 지적설계, 또는 생명의 기원이나 종의 발전에 관해 초자연적인 매체를 필요로 하는 주장은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될 수가 없기 때문에 과학일 수가 없다.”라고 한다. 미국과학교사협회와 과학진흥협회는 이들을 ‘사이비과학’이라고 부르고 다른 과학단체에서는 정크푸드(junk food)에 견주어 ‘허섭스레기 과학(junk scienc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 진영의 소위 ‘사이비과학화’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의 문제로 환원시켰고, 따라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기까지 했다. 더욱 나쁘게는 기독교냐 비기독교냐의 문제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들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인식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2006년에 발간된 과학에세이 모음집 《지적 사고―과학 대 지적설계운동(Intelligent Thought: Science Versus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이라는 책이다. 시카고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Jerry A. Coyne), 터프츠대학교의 인지철학자 데니얼 데닛(Deniel C. Dennett),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등이 참여했다.

8. 한국창조과학회의 활동

1980년 세계복음회 대성회 때 열린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를 계기로 하여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의 교수들과 근본주의적 목회자들 25명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회장은 당시 카이스트 교수였고 지금은 한동대 총장인 김영길 교수가 맡았다. 전래 초기부터 줄곧 미국 개신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교파들이 주류를 이루어 온 한국 개신교의 믿음의 결정판 조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에서 창조과학이 쇠퇴하고 지적설계가 기세를 부리기 시작할 때 한국창조과학회의 활동은 활발해진다. 1987년 미국대법원의 “창조과학교육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자 한국에서도 1988년 4월 3일 KBS 제3TV(지금의 EBS)에서 ‘창조냐 진화냐’라는 제목의 TV 심포지엄이 열리며 이들의 활동은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미국 유학생 출신의 공학박사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창조과학회는 1992년 11월에 카이스트 교수들이 해사기술연구소와 제휴하여 노아 방주의 안전성 실험을 하여 “현재의 선박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 전시장 옆에 창조과학전시관이 설립되고 이것이 2003년에 카이스트 내로 이전하면서 국가 최고의 국립과학기술원에 창조과학전시관이 들어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2001년부터는 서울, 대전, 대구 등에서 차례로 중등 교원들을 위한 특수분야 직무연수를 위한 직무연수기관으로 선정되며, 이후 홈페이지 개설, 창조과학교육원의 설립 등이 이어진다. 2005년에는 창조자연사 박물관이 경기도 시흥시에 개관되고 2007~8년에 약 두 달간 과천 서울랜드에 창조과학전시관이 개장되었다. 2008년 7월 1일에는 수서 일원동에 약 50평 규모의 상설 창조과학전시관이 개관되었다.

당시 창조과학회 4대 회장은 “이번 전시실의 개관은 21세기 창조과학 사역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창조과학이 복음전파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창조과학회는 전시실이 들어서 있는 강남빌딩 전체를 창조과학관으로 확대 개관키 위해 대대적인 모금 운동에 나섰다. 모금 운동에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인 김준곤 목사, 창조과학회 초대 회장인 한동대 김영길 총장, 2대 회장 송만석(KIBI 대표), 3대 회장 이웅상(명지대) 교수 등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국민일보, 2008. 6. 19).

1981년에 25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여 2005년에는 “1,400여 명의 성도, 80여 개의 교회가 회원으로 동참하고 있다(25주년 기념보고).”고 발표했던 것에 반해, 2009년 1월에는 “1116명의 정회원과 37개의 회원 단체”를 보고하고 있다(국민일보, 2009. 1. 2). 김기환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 회장이 〈크리스천투데이〉에 기고한 사설에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 신도 교사들의 72%가 진화론을 배우면서 신앙과의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9. 불자의 과학관 정립의 필요성

최근 불교학자들과 불자 과학자들에 의해서 ‘불교와 과학의 관계’란 주제로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불교경전과 사상이 워낙 방대한 데다 다양한 과학 주제가 있다 보니 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직 시도되지 않았던 접근이라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들 연구의 기저에는 많은 경우 공통적으로 ‘불교는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 내지는 ‘불교는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증명이 되거나 적어도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제될 것이 아니다.

설명을 하는 경우에도 많은 경우 제시되는 것이 아인슈타인과 토인비의 인용이다. 아인슈타인이 “현대 과학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불교가 될 것”이라고 했고 토인비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이다.”라고 했다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그것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이 없이 ‘감’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타 문명에 대한 호감을 가진 예로는 조선시대의 정약용 선생도 있다. 그가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그가 동양적인 것을 부정하고 천주교가 전부라고 말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발언도 상대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15세기에 이탈리아의 조르다노 브루노가 (아마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수립한 단자론이 수백 년 후의 물리학 장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하여 갑자기 불교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해 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유대―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장했고 또 유대―기독교 문화권을 풍부히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교가 과학적이다.”라는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불교와 과학을 비교할 때 많이 등장하는 것이 예를 들면 인드라망의 개념이다. 인드라망은 자연법칙의 인과관계와 비교되고, 인터넷상의 사이버스페이스와 비교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초끈이론’의 멤브레인 개념과도 비교가 된다. 하나도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맞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인드라망과 비교되는 실체들은 범주가 달라 비교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6,000년 지구 역사를 주장하는 ‘창조주의’는 과학에 의해서 ‘틀렸다’고 증명이 됐다. 그러나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해 우주가 창조되었는가 여부는 아직 과학이 답을 못 준다. 어떤 과학자도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유이다. ‘무신론자 캠페인 버스’에도 ‘There is probably no God(아마도 신은 없다)’라고 쓰여 있다 ‘probably(아마도)’란 약 70~80%의 확실성을 가진 명제임을 말한다. 100%는 아닌 것이다.

불교도 믿음의 대상인 종교인 이상 초월적인 그 무엇이 전제되어 있다.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그중 하나이다. 필자를 포함한 범인(凡人)들은 그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경험한 사람에게는 특수경험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편화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윤회사상은 말할 것도 없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관은 또 어떠한가?

불교와 과학의 ‘구조적’ 유사성을 밝히는 일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써 차이도 극명하게 들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종교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진리에 가까이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단 “불교가 과학적이다”라는 말은 불필요한 주장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불경에 나오는 ‘십사무기(十四無記)’를 기억해 보자. 열네 가지의 구분은 만동자가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 못하고 형이상학적 문제에 매달려 있는 만동자를 꾸짖으신다. 그러나 그가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하나씩 문제를 풀어갔다면, 그러면서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다면, 그래도 부처님께서 꾸짖기만 하셨을까? 새로운 시대의 과학을 열기 위해서는 만동자식의 질문으로 결국은 ‘무기(無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교에는 ‘6,000년 지구 역사’ 같은 ‘경솔’한 주장은 없다. 부처님의 판정승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틀린’ 창조론을 ‘맞게’ 설명해 보려는 신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에서 20세기 과학이 나올 수 있었음을, 사실 종교와는 상관이 없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인드라망임을 상기하자. ■



정윤선 / 이학박사.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석사·박사학위 취득(소립자론과 천체물리학 전공).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서 사회학과 철학 수학. 하이델베르크대학과 베를린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물리학과 과학사(물리학개념사)에 관해 연구 및 강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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