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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탈현대 철학 지향점이 7세기 화쟁철학에 들어있었네 / 이학종
2009년 3월 30일자 미디어붓다 보도
[0호] 2009년 03월 30일 (월)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

한양대 이도흠 교수, 27일 <열린논단>서 화쟁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화 모색

이도흠 교수

“탈현대 철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알고 보면 원효의 화쟁 철학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들이다.”

중세 동양철학, 그중에서도 특히 원효의 화쟁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3월 27일 서울 강남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열린 열린논단에서 한양대 이도흠 교수가 ‘화쟁 철학과 탈현대 철학의 비교연구’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고 이어 참석자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불교적 대안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다. 원효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만남이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신선함 때문인지 이날 세미나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도흠 교수는 발제에서 “7세기 화쟁 철학을 20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교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타당성을 갖는가”라고 자문한 뒤 “양자를 비교하는 작업은 어느 한 쪽의 위대성을 주장하거나 ‘동일성’으로 회귀하는 것을 넘어서서 양자의 대화를 통해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전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동일성이 형성되는 순간 세계는 동일성의 영토로 들어온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뉘고, 동일성은 자기 바깥의 것은 모두 타자로 간주하고 이를 자신과 구분하고 대립시키면서 동일성을 강화하게 된다”고 지적한 이 교수는 “데리다는 동일성에 바탕을 둔 서양철학 전반을 해체했다”고 소개했다.

즉 사물의 의미는 그 실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다른 사물의 차이 사이에 있다고 보고, 자의성은 기호의 체계의 충만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들 사이의 차이에 의하여 구성될 때만 일어나므로 우리가 동일하다고 믿은 것은 차이 속의 타자이고, 타자 속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데리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들뢰즈는 이를 더 심오하게 발전시켰고, 또 이는 원효가 연기와 공의 철학을 바탕으로 차이의 철학을 논한 것과 그대로 상통한다며 원효의 주장을 소개했다.

“같다는 것은 다름에서 같음을 분별한 것이요, 다르다는 것은 같음에서 다름을 밝힌 것이다. 같음에서 다름을 밝힌다고 하지만 그것은 같음을 나누어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다름에서 같음을 분별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을 녹여 없애고 같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같음은 다름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같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다름은 같음을 나눈 것이 아니기에 이를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다르다고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들이 같다고 말할 수 있고 같다고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들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에는 둘도 없고 별(別)도 없는 것이다.”
차이를 통하여 그리스 철학에서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서양 형이상학 전반에 대해 해체를 시도한 데리다의 서양철학에 대한 핵심관 즉 ‘이항대립주의’와 ‘현전의 형이상학’의 해체를 개설한 이도흠 교수는 “차이가 의미를 낳지만 그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건에 의해 연기된다”며 “차이들은 이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만들어낸 효과이며, 세계란 차이가 드러난 것, 차이의 체계 속에 쓰여 드러난 것, 현전과 부재과 끊임없이 교차하여 일어나는 유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원효의 일심에 대한 설명을 슬쩍 끌어들였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일(一)이 될 수 있는가? 일도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心이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이니 무엇이라고 지목할 지에 대해선 모르겠으나 억지로 이름 붙여 일심(一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의 서양 철학자처럼 사람들은 이성을 통하여 세계를 둘로 나누고 이를 진리로 착각했다고 밝힌 이도흠 교수는 체상용의 원리를 들어 둘의 허상을 해체하여 하나로 돌아가는 원리를 소개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서라고 소개한 이 교수는 “유럽사회를 강타한 6·8혁명의 주체들이 고도의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중세보다도 더 심하게 인권을 억압하는 구조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 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유럽의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를 부르짖었고 이것이 6·8혁명의 불씨가 되었으며, 이때 히피나 불교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정신적 빈곤과 소외, 불안의 일상화, 형식적 민주주의의 고착과 함께 17세기보다도 자유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오히려 인권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 본격화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 자크 라캉은 특히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불교의 상관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밀접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당시 라캉의 강의를 들은 푸코나 데리다 등이 서양의 이분법을 붕괴시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게 된 배경에는 라캉, 그리고 불교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도흠 교수는 “그러나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근본적 성찰이 빠진 기능화된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입되었고, 결국 기형적 형태의 포스트모더니즘 수입으로 인해 예컨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면 ‘아직도 막스에 빠져 있느냐?’는 식의 어불성설적 빈축이 난무하는 현상이 횡행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도흠 교수는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대승기신론에서 말했듯이 진여문(一心)과 생멸문(二門)을 나누고, 다시 합쳐야 한다고 본다”며 “이는 일심을 전제로 한 이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현전할 제도적인 대용이 함께 갖춰져야 불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연기·공의 깨달음을 어떻게 제도화시킬 것인지, 그 과정에서 깨달음의 제도적 적용의 한 범례로 볼 수 있는 율장에 대한 연구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불교를 왕권 강화나 통치의 논리로 이용하던 이전의 왕들과는 달리 우리 역사상 불교적 이상을 제도적으로 시행하려 했던 왕인 신라 성덕왕을 예로 들며 ‘불교의 사회화에 대한 학적 연구’가 앞으로 한국불교학계에 남겨진 주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3월 27일 열린 열린논단에는 많은 지식인 불자들이 동참 열띤 분위기 속에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주장대로 이성중심주의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한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이성을 무시한다면 ‘지금 여기에서’ 생명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비판할 근거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라고 반문한 이 교수는 “최치원이 상림(上林·최치원이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한 함양에 있는 인공 숲)을 조성하기 전에 둑을 쌓은 것처럼, 탈현대, 혹은 화쟁의 패러다임을 모색하되,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안은 현대, 혹은 서양에서 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화쟁 철학이야말로 둘(서양, 현대, 합리성)과 하나(동양, 탈현대, 해체) 또한 아우르기 때문”이라고 주장의 근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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