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림스님 / 시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죽원(竹院)

黃花泣露日 楓葉政秋天
鳥宿群山靜 月明人未眠

국화에 눈물 같은 이슬 맺히고
단풍들어 바야흐로 가을 하늘인데

새들은 잠들어 온 산이 고요하고
달은 너무 밝아 잠을 이루지 못하네

서산 선사(西山 禪師, 1520~1604) 출전 《 》

한자로 쓴 선시(禪詩)에서 견문이 짧은 내 눈에는 서산(西山)만 한 서정성을 가진 분을 보지 못했다. 선사(禪師)가 아니라 그냥 시인(詩人)으로서도 두보에 견주어 손색이 없고, 왕유를 넘어서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이 시에 허물이 있다면 내 번역의 솜씨 부족 탓이다.

한문(漢文)은 역시 한문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시(詩)는 번역(飜譯)을 하면 그 맛이 형편없이 망가진다. 이 시에서도 마지막 4연의 구절을 보라 月明人未眠 이것을 이리저리 아둔한 머리를 굴려 [달은 너무 밝아 잠을 이루지 못하네]라고 했지만 원문의 그 느낌은 없다.

오직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깊고 깊은 산사에 가을이 왔다. 천하의 도인 서산도 단풍들고 국화꽃 피는 달 밝은 고요한 밤이면 그 풍정(風情)에 취하여 잠들지 못했다.

효림(曉林) 스님/시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