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

같은 ‘불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각 국의 불교 신앙 형태는 그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영향,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과 사고 체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인도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역사와 인도인들이 살아온 사회적 조건, 특히 불교부흥 운동의 주체가 되고 있는 과거 하층계급 출신인 ‘달리뜨’들의 삶의 애환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비록 불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었으나, 마지막 불교 왕조인 굽타 왕조의 몰락과 힌두교의 재기, 뒤를 이은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으로 불교는 탄생의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불교 죽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0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19세기 말엽부터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스님들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마드라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인 불교부흥 운동도 있었으나,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서 이렇다 할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대중운동으로서의 불교 개종은 195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때 불교로의 개종에 크게 동참하며 개종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달리뜨’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 중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5의 신분으로 그림자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힌두교도이지만, 사원 출입과 힌두교 신상의 경배가 금지되고, 브라만 사제들도 이들을 위해서는 종교적 의례를 행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공공 우물을 사용할 수도 없고, 상위 카스트의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상위 카스트의 사람들은 이들로부터는 물도, 음식도 받지 않는다. 힌두교 경전에 나와있는 이들의 ‘더러움’ 때문에 힌두교도이면서도 모든 종교행사에서 철저히 소외당하고 기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인권과 평등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달리뜨들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힌두교에서 벗어나 이슬람교나 기독교, 불교 등 평등종교로 개종하는 일련의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불교로의 개종도 이러한 반(反) 카스트 인권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인도불교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해주는 실마리가 된다.

이상과 같은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교 부흥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보다 쉽게 인도불교의 특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인도불교에는 많은 문제점과 외국의 불교도들의 시각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의 불교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지금까지 겪어 온 역사라는 맥락에서 인도의 불교를 바라본다면, 조금쯤은 이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인도의 불교 개종 현황(1956∼2001)

최근 우리에게 들려온 인도의 잇단 대규모 개종식과 불교도들의 집회 소식은 마치 인도의 불교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양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도의 인구에서 불교도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1%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전성기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최근의 활발한 개종운동은 어느 정도는 인도에서의 불교부흥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약 10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수도인 뉴델리에서 불교로의 개종행사가 열렸고, 그 이후로도 주변의 우따르 쁘라데쉬 주와 비하르 주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개종식이 조용히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인도인들, 특히 기존 힌두교도들의 불교로의 개종은 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집단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러 명이 모여서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스트 또는 몇몇 카스트 집단의 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개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개종을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 카스트 내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구성원의 건의로 마을 단위의 카스트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개종을 결정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A마을의 X카스트가 개종을 한다면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X카스트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앞으로 X카스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불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에 동참하는 카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달리뜨에 속하는 카스트, 과거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집단성과 달리뜨라는 불교신자들의 카스트 성분은 인도불교의 현재적 특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즉, 이들이 불교로 개종을 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힌두교 신도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카스트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불교의 교리가 인간을 카스트나 그 밖의 타고난 특성에 의해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부처님께서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불교교단을 개방하셨다는 사실은 이들 인도의 불자들에게는 다른 어느 나라의 불자들에게보다도 중요한 사실이다.

따라서 현대의 인도 불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평등 지향적이고 사회개혁적인 성향이다. 부처님 시대 불교교단의 반(反) 카스트적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이 특징은 오늘날 인도불교가 되살아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 하에서 불교 교리는 사회의 기득권 계층인 상위 카스트 힌두교도들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인도불교의 특징은 현대 불교부흥의 도화선이 된 1956년 대개종의 배경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인도의 불교가 현대에 이르러 부흥을 시작한 것은 암베드까르(B. R. Ambedkar) 박사에 의해서였다. 암베드까르는 1920년대 후반부터 마하라슈트라를 중심으로 반 카스트 운동을 지도하며 불굴의 의지와 탁월한 지도력으로 인도의 독립 이전에 이미 전국적인 달리뜨 운동 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는 힌두교 내에서의 사회개혁을 추구했으나,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결국 힌두교를 포기하고 제3의 종교를 찾기로 마음을 굳히고 힌두교를 떠날 것임을 천명한다. 그로부터 20년간 정치활동과 인도 헌법제정 등을 하며 종교문제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불교로 개종할 것을 결정한다. 암베드까르가 불교로의 개종을 결심한 것은 1950년경으로 추측되는데, 이 시기부터 정식으로 불교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식 개종 행사를 가진 것은 죽기 불과 몇 달 전인 1956년으로, 자신의 추종자가 밀집해 있는 나그뿌르에서 약 50∼60만(어떤 기록에 의하면 100만)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불법에 귀의했다. 인도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암베드까르의 개종이 있기 이전인 1951년 인도의 불교 인구는 18만명에서 개종 5년 후인 1961년에는 32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마하라슈트라 주의 암베드까르 추종자들이었다.

이후에도 인도의 불교 인구는 꾸준한 증가를 거듭하나, 대부분은 새로운 신도의 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구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증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암베드까르에 의해 촉발되었던 개종운동이 수십년간 어느 정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최근 우디뜨 라즈(Udit Raj)가 중심이 되어 일으키고 있는 개종운동을 계기로 다시 그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에는 지역을 달리하여 북인도 지역에서 주로 개종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불교는 암베드까르의 출신지인 마하라슈트라 지역의 마하르(Mahar) 카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개종운동이 마하르 카스트가 살지 않는 북인도 지역으로 그 중심을 옮긴 것은 불교 인구의 지역적, 카스트적 다양화로 볼 수 있다. ‘마하르의 종교’라는 별로 자랑스러울 것 없는 이름표를 떼고 보다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에게로 그 기반을 넓혀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 사이에 북인도 지방에서 불교로 귀의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델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카스트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신앙심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개종’을 선호하여 카스트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집중하는 단체들도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개종하는 도시민들도 대부분 그 출신은 달리뜨 카스트인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에도 북인도 여러 곳에서는 간헐적인 개종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수천 명에서 1∼2만 명 안쪽의 비교적 작은 규모였고, 언론의 소수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하층계급에 대한 편견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역시 인도에서 불교는 지금까지 소수를 제외하면 마하라슈트라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제서야 북인도 지역으로 그 교세를 넓혀가려 하고 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개종’이란 과거나 권위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이를 결심하고 감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신분제와 신분제의 타파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는 하층민들의 기독교, 이슬람교로의 개종 또는 힌두교 개혁종파의 창시 등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인도 지방에서의 불교 개종 움직임도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의 개종운동은 1956년 이래 마하라슈트라를 휩쓸었던 암베드까르 이후의 개종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3. 불교 개종운동의 원인

인도에서 사회개혁운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은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등 기존 힌두교의 신분제와 낡은 권위에 대항하는 모든 개혁 성향의 종교이다. 그런데 암베드까르를 필두로 한 인도의 달리뜨 출신 불자들이 힌두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가 아닌 불교를 자신들의 새로운 종교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대답은 인도 불교도들의 정체성 확립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현재에도 많은 개종자들은 여전히 같은 이유로 불교에 귀의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원래 암베드까르가 개종을 염두에 두고 각 종교들을 고찰할 때, 그는 불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를 가능성 있는 종교로 꼽았다.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세계종교일 뿐 아니라 구성원간의 평등과 형제애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시크교 역시 힌두교의 종파이긴 하나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사회개혁적 사상을 담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나 이들 세 종교는 모두 인도에서 오랜 세월 신앙되어졌던 까닭에 가르침과는 달리 실제로는 카스트를 인정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의 기독교는 교회 안에 카스트별로 구분된 좌석이 있었고, 이슬람교와 시크교도 개종 전의 카스트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서 교단 내에서의 신분이 좌우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암베드까르의 이들 종교로의 개종을 망설이게 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하여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악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 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의 종교였고, 더구나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종교이기도 했다. 암베드까르는 독특한 인도사 해석을 통하여 빛나는 불교의 전통을 달리뜨들과 연결시켰다.1)

그는 불가촉천민제의 기원을 4세기경 불교와 브라만교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던 당시, 끝까지 불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일부 부족민들에 두고 있다. 브라만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제의 권위로 더러운 직업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사회와 격리시켰다. 훗날 승려와 사찰이 점차 사라지고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들도 힌두교화했지만 이미 대대로 이어지던 더러운 직업 때문에 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베드까르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2)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잡아 그들이 조상들의 종교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믿어진다.

많은 개종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들이 ‘개종’을 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종교로 ‘복귀’한 것이며, 불교가 ‘중흥’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암베드까르의 역사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종교였던 불교를 다시 되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힌두교도와는 별개인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초창기 불교 개종의 이유였고, 여전히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암베드까르가 불교를 받아들였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불교교리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던 초기 불교교단의 개방성과 평등주의적 사상, 반(反) 브라만 사상 등은 평등과 카스트 철폐를 갈구하며 힌두교에서 뛰쳐나온 달리뜨들에게는 가장 큰 매력으로 비춰졌음에 틀림없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붓다의 가르침을 암베드까르는 ‘혁명’으로까지 본다.3)

초기불교에서 두드러지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적 기풍도 암베드까르를 불교로 이끈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범신론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신을 섬기는 힌두교에 비하여 불교는 ‘누구나 깨달음을 이루면 부처가 된다’는 무신론적 가르침을 설파하며, 4류(類) 10종(種)의 형이상학적 논의를 피함으로써 현실적이고 실천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이외에도 이 세상을 ‘고(苦)’로 보는 세계관도 달리뜨들의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교리 외적인 부분으로는 불교가 인도의 종교이면서도 이미 세계종교로 성장하여 인도에만 국한되어 있는 힌두교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종교라는 점도 암베드까르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인도에서 불교를 포교하는 데 있어서 주변 불교국들의 도움도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도 그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가 개종 전 종교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던 시절, 엄청난 물질적 지원을 약속하며 자기 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던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느 정도 인지상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암베드까르는 1954년 랑군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대회에 참석하여 인도불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암베드까르가 생각했던 불교 개종의 이유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생명력을 갖는다. 암베드까르가 남긴 글과 그의 사상이 그대로 인도의 달리뜨들과 불교도들을 이끄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년에 지은 불교 교리서 《붓다와 그의 법(The Buddha and His Dhamma)》은 인도 불교도들의 성전(聖典)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인도에서 개종운동을 이끄는 달리뜨 출신 엘리트나 승려들은 대부분 암베드까르의 가르침과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대중에게 그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아마 ‘달리뜨의 아버지’ 암베드까르에 대한 존경심이 오늘날의 개종 이유에 덧붙여질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개종을 한다고 해도 이들의 처지에 당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천민’이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심리적인 효과이고, 세계적인 평등종교인 불교인이라는 자부심이다. 현지의 많은 불교인들이 ‘정신적인 고양’을 개종 이유로 꼽고 있으며, 불교가 자신들의 자부심과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교도이며 힌두교도와는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매우 실질적인 이유가 최근의 불교 개종에는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은 1990년에 인도의회를 통과한 헌법 개정안으로, 불교나 시크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개종 전의 카스트가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카스트일 경우에는 헌법이 정한 보호조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법개정 전에는 힌두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헌법상의 하층민 보호조치를 누릴 권한을 상실했다.

헌법에 정해져 있는 보호조치는 교육기관, 공무원 채용, 지방과 중앙의회에서의 의석에 일정 수를 하층 카스트 출신자들에게 배당하는 것으로, 달리뜨들의 지위 향상에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헌법 개정안이 효력을 발생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이후에 새삼스럽게 그 영향력을 논한다는 것이 뒤늦은 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1990년대에 있었던 단편적인 불교 개종들도 이 헌법 개정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1990년 헌법 개정 이후 북인도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큰 개종의 물결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개종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로드 붓다 클럽(Lord Buddha Club)은 힌디어로 격주 발행되는 대중적인 정기간행물을 통해서 1990년의 헌법 개정으로 불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다.4) 헌법에 보장된 특혜 때문에 힌두교를 버리지 못하던 달리뜨들은 분명 이 소식에 힘을 얻었을 것이고, 포교활동을 할 때에도 이러한 실질적인 부분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4. 인도불교의 한계와 과제

마하라슈트라 지방에서 이미 뿌리를 내린 인도불교는 이제 우따르 쁘라데쉬, 비하르 등 북인도의 여러 주(州)들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인도불교의 중흥이 다가오는 듯 보이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도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봄으로써 인도불교의 현주소를 제대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도불교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크게 불교계 내부의 문제와 외부, 특히 힌두교 진영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불교가 다시 인도인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하던 시기의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도의 불교는 사회운동 특히 카스트 철폐운동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다시 정치와의 연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달리뜨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진정한 평등을 성취하기 위하여 활발하게 정치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하라슈트라의 공화당(The Republican Party)은 암베드까르의 유지(遺志)에 의해 창립된 정당으로 원래 종교 정당으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암베드까르의 추종자들이 모두 불교도가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불교 정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근에 개종한 우디뜨 라즈 씨도 공화당의 한 계파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은 특히 주 의회와 기초 자치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불사(佛事)를 위한 정부 보조금을 책정하기도 하고 지역 내에서의 불교도들의 권익 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정치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비난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종교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사실,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종교가 정당과 연관되어 있으며, 종교색을 띠지 않은 정당들도 특정 종교집단의 표를 얻기 위하여 사원 건립 등과 같은 종교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유권자들의 종교적인 정서에 호소하여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곤 한다.

또, 종교단체의 이름을 걸고 주최되는 각종 종교집회가 구호가 난무하는 정치가들의 선전마당이 되어 버리거나 반대로 정치집회가 종교적 선동으로 광신도들의 회합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교도들을 이용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또, 사회운동과 정치적 측면이 강조된 인도불교의 모습은 순수한 신앙심에 의존해야 할 종교로서의 면모가 부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대다수의 인도 불자들은 순수하게 불법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귀의했다기보다는, 개종이 주는 부수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와 그들의 지도자인 암베드까르 개인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로 귀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앙심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인도 불자들은 불교 자체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깊지 못하며, 그나마도 암베드까르의 불교 해석에만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다.

거의 반세기 전에 개종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되는 기존의 불자들이 이러할진대, 그나마 기반이 취약한 북인도에서 새로 개종한 불자들의 상황이 이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다. 좀더 비관적으로 얘기하면, 북인도의 새 개종자들이 실질적인 교리교육 등을 통해 진정한 불자로 거듭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들에게 교육을 실시할 재원도 전혀 없고, 신념 있는 지도자나 스님들도 그 수가 태부족이다.

인도불교의 내부적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부분이 교리상의 문제이다. 대다수의 인도 불자들이 금과옥조로 따르고 있는 암베드까르의 교리 해석은 지나치게 주관적, 자의적인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에 대한 문제는 교학적인 측면에서 자세히 고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나, 본 지면을 통하여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5)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인도불교의 가장 큰 특징인 사회개혁적인 메시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이다. 암베드까르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사회악과 맞서 투쟁할 것을 강조하며, 이는 결국 불교의 근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자비’의 정신에 대치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물론, 암베드까르의 저서에 자비에 대한 강조가 없는 것은 아니나, 피상적인 설명에 그치고 만다. 불교의 교리와 암베드까르의 해석에서 이 세상을 ‘고(苦)’로 본 인식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기존 불교에서는 고의 원인을 자기 안에 있는 집착에서 찾고, 수행을 통해 그 근본을 제거하라고 가르치는 데 반해 암베드까르식의 불교 해석에서는 고의 원인이 자기 외부의 사회, 특히 힌두교 사회제도 안에 존재하며 투쟁을 통해 그 근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지나치게 이성주의에 입각한 불교 해석으로 불교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자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베드까르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며(이것은 기존 불교 해석에서도 같다), 물질의 순환을 제외한 모든 윤회를 부정한다. 비물질적 존재의 윤회를 완전히 부정함에 따라서 연기설도 달리 설명된다. 그가 말하는 연기설에서 업은 오로지 현세에 있어서만 인과율에 의해 적용된다. 윤회를 부정하는 사고체계에서는 전세도 내세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힌두교에 대한 반감으로 힌두교의 중심 교의들을 부정하다 보니 지나친 이성주의로 빠져, 사용하는 용어는 같지만 불교에서는 달리 설명하고 있는 철학적인 개념들마저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현재 인도불교가 외부와 관련하여 안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힌두교와 관련된 것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와 철학적,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는 두 종교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먼저 불교는 현대 힌두교와 맥을 같이하는 브라만교에 대한 개혁 형태로 태어난 종교로서 역사의 한 시기에 두 종교는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기도 하였으며, 유구한 역사를 함께 존재하면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후 불교는 힌두교의 세력 신장에 눌려 점점 쇠퇴해 갔고, 결국 인도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 달리뜨 출신으로 힌두교도들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불교도들에게 힌두교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가중시켜 주고 있다. 또한 두 종교는 오랜 기간의 상호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도 유사하고, 피상적으로 볼 때 두 종교의 교리는 비슷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특히 불교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불교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적이 있는 힌두교(당시의 브라만교)는 경쟁 종교인 불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 교리를 개발하였다.

그것은 붓다가 힌두교의 주신(主神) 중의 하나인 비슈누(Vishnu) 신의 아홉번째 화신이라는 근거로 불교가 힌두교의 일파라고 하는 주장이다. 4세기 이전에 성립한 뿌라나(Purana) 문헌에는 원래 “잘못된 교리를 베풀어 악마들을 속이고 이들로 하여금 베다 예식을 하지 못하게 하여 그 결과로 힌두교의 신들에게 패배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비슈누가 샤카족 중에 환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비슈누의 화신 사상과 연결되어 붓다는 비슈누의 화신으로서 힌두 판테온에 포함되어 힌두교의 신격 중 하나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힌두교의 교리상 불교는 힌두교의 한 분파로 격하되고 말게 된다.

불교 신도들이 보기엔 어불성설인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힌두교도들 사이에서는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교리이며, 힌두 원리주의자들이 불교를 폄하하고 불교도들의 독립적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미 불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마하라슈트라와 같은 지역에서는 이러한 힌두교의 억지 주장이 파고들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암베드까르도 인도의 불자들을 위한 ‘22가지의 서약’에 ‘붓다와 불교에 대해 힌두교도들이 지어낸 거짓 주장을 믿지 않는다’라는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논리가 아직 불교교리에 어두운 인도의 초발심자들에게 주입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세계 힌두교도 연맹(VHP)의 한 간부는 인도 일간지에 “불교는 힌두교의 일파이고 힌두교도들은 오래 전부터 붓다를 비슈누의 화신으로서 숭배해 왔기 때문에 달리뜨들의 소위 개종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견해를 말하기도 했었다.6)

이러한 힌두교측의 주장을 근대 이후 인도의 여러 개혁 종파들의 운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중세 이래 인도에서는 많은 종교운동들이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일어났다. 말을 바꾸어 사회 개혁운동들의 많은 경우 종교색을 띠고 종교운동의 형태로 일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많은 개혁 종파들이 성립 초기에는 거의 독립된 형태를 띠고 힌두교와는 전혀 별개의 종교로 발전해 가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힌두교에 융화되어 본래의 개혁적인 성격을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하고 힌두교의 한 일파로 흡수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6세기부터 나타난 시크교의 경우로서, 때로는 독립된 종교로 인정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힌두교의 일파로 치부되기도 하면서 천천히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측의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힌두이즘”이라는 주장에 의해 희생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불교인들 입장에서는 수긍할 수 없지만, 힌두교측에서 주장하는 교리로 본다면 결국 인도불교의 운명도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들의 논리에서 불교란 힌두교의 한 개혁종파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설사 불교가 인도 내에서 그 정체성을 지켜 나간다 하더라도 새로 개종한 북인도 불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교리 교육이 거의 불가능한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그들이 과연 진정한 불자로 여겨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1950년대 중반에 암베드까르를 따라 개종했던 북인도 우따르 쁘라데쉬주 아그라시의 자따브(Jatav) 카스트의 경우는 이에 대한 시사적인 예를 제공한다. 암베드까르의 사상을 전파할 만한 지도자도 어느 정도 있었고, 외국의 불교 단체나 포교사들도 제한적이나마 활동을 벌였던 마하라슈트라의 경우와는 달리, 아그라의 자따브들은 불교에 대한 이해보다는 단순히 ‘구원자’ 암베드까르 박사에 대한 존경심에 의지하여 개종을 단행했던 데다가 지도자의 부재로 개종 이후에도 체계적인 교리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외국의 불교에 접할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 힌두교 전통과 제대로 절연하지도 못했고,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결국 엄밀히 말한다면 이들은 힌두교도와 불교도의 중간쯤 되는 애매한 위치에 남게 되었다. 불교의 명절뿐 아니라 힌두교 축제도 함께 즐기고, 불교로 개종했으면서도 힌두교의 종교적 관습도 지키는 이름뿐인 불교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1960년대에 현지조사를 했던 한 인류학자는 이들의 종교는 불교라기보다는 ‘암베드까르 종파’에 불과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7)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제대로 된 불교교리의 재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로 탄생한 수만의 인도 불자들이 어떠한 처지에 처하게 될지 경종을 울려주는 극명한 실례라 할 수 있다.

5. 한국불교의 역할 :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근대 이후 인도불교의 지난날과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여 가능한 대로 ‘환상’을 제거한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보려 노력하였다. 최근의 인도불교의 활발한 부흥의 조짐은 매우 반갑고 주목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몇만 명의 불교 개종’이라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함께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거나 막연한 기대나 환상을 가지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사건의 본질을 알고 난 다음에야 문제의식도 생길 수 있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의 불자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낯선 땅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불교계가 인도불교를 도울 길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불자들을 교육시키고 지속적인 포교활동을 벌여 나가는 데 필요한 인적, 재정적 자원의 마련과 같은 너무나 기본적인 문제들은 물론이거니와, 인도불교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추어 포교활동을 하기 위한 교리체계와 철학적 기반의 마련 같은 교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서도 설명한 것처럼 힌두 원리주의 진영은 불교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교리체계를 개발하여 인도불교의 정체성을 흐리고 있으며, 힌두교와 불교교리상의 일견 유사해 보이는 철학적 해석들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인도의 불자들에게 불교와 힌두교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인도불교에는 힌두교의 교리와 명백히 구분하여 불교를 설명해줄 수 있는 교리체계가 필요하며, 이는 미묘한 철학적 논의를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인도의 사상적 전통에 익숙한 인도 학자들의 몫이어야 하겠지만, 인도 불교학자들의 상황으로 보아 당장은 양적,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연구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 불교계의 힘으로라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서 이들에게 확고한 교리적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대의 인도불교, 보다 정확히는 암베드까르에 의해 마련된 불교교리와 불경 해석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들의 교리가 우리 나라를 비롯한 ‘인도의 특수한 현실’을 이해하기 힘든 다른 나라의 불자들에게는 지나치게 과격하고 극단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현실을 폭넓은 이해와 아량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닌 듯싶다.■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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