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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 -비불설 논의의 전개과정
[ 특집 ] 대승불교의 경전 찬술 어떻게 볼것인가
[11호] 2002년 09월 10일 (화) 김철 gymn@hanmir.com
1. 서언

수많은 불교 경전들은 동일한 석존 한 분에 의해 모두 설해졌는가. 경전들은 수많으며, 내용과 형식이 다르고 서로 모순된 부분도 있다. 따라서 이런 의문은 역사상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근세 일본에서 대승 전체가 불설(佛說)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고, 오늘날 학계1)는 대부분 이에 따르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계 입장과는 크게 어긋난다.

따라서 과연 어느 입장이 옳은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여기서는 역사상 불설 논의의 전개과정을 간략히 살피는 한편, 오늘날의 대승비불설론에는 어떤 오류 가능성이 있는지도 함께 살피기로 한다.

2. 불설의 의미

‘불설(佛說)’ 문제는 경전이 ㉠ 역사상 석존이 설한 것인가(역사 진실성), ㉡ 또는 석존 외 법신불·보신불 등도 진정 설한 것인가(佛의 개념 확장), ㉢ 부처의 옳은 깨달음의 내용인가(내용 진리성)의 문제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 ㉢은 다양한 불교사상의 진리성 판단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의 역사적 입장의 불설 문제를 주로 보기로 한다. 한편 경전들이 불설인지 의심받아온 과정만 살피면 자칫 경전 전체에 불필요한 편견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 이는 마치 범죄신고가 된 사실들로 범인이란 편견을 갖기 쉬운 것과 같다. 자칫 이런 편견을 갖지 않도록 본 논의에서는 비불설론(非佛說論)의 실질적 주장 근거도 살펴 이들의 오류 가능성도 함께 보기로 한다.

3. 불설 논의의 전개

역사상 불설 논의 과정을 모두 살피는 것은 어려우므로,2) 여기서는 그 대강만을 보기로 한다.

① ‘어떤 내용을 석존이 그처럼 정말 설했는가’는 그 의문의 성격상 석존 재세시(在世時)부터도 제기될 수 있다. 아함경전에는 재세시 이런 의문을 제자 또는 이교도가 제기한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라한은 죽은 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석존이 설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부분이 그런 예이다.3)

② 석존 재세시는 이런 문제가 제기돼도 석존에 의해 분명한 판단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석존 열반 후는 해결이 어려울 수 있고 사견(邪見)으로 불설이 훼손될 우려가 있게 된다. 석존 재세시부터 이런 우려가 있었음은 《중집경》 및 《집이문족론》에서도 볼 수 있다. 《집이문족론》은 근본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논서로서, 첫 부분에 사리자가 석존 멸도 후 서로 다툼이 없도록 교리를 미리 결집 논술하는 취지가 나타나 있다.4)

③ 석존 열반 후 대가섭도 이런 우려 때문에 경전 결집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진다.5) 그러나 이 결집은 불설 논의와 관련해 다음 의문이 따른다. 우선 이 결집이 오늘날 경전의 어떤 범위 어떤 내용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한편 모든 제자가 이 결집에 동의한 것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실제로 십대제자인 부루나(富樓那)는 늦게 5백 비구와 돌아와 결집 내용에 동의하지 않은 채, 자신은 석존의 별도 뜻에 따르겠다고 한 것으로 남전에서는 전한다.6) 이런 사실은 십대제자도 당시 결집을 불설의 완전한 표준으로 함께 승인한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 이는 오늘날 불설 논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④ 석존 열반 후, 설법의 정리·전승 및 불설 논의 과정을 인도 역사를 통해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 인도사는 불투명하다. 한편 경전 내용 및 그 진위는 본래 역사기록에 친한 사실도 아니다. 또 당시 경전이 검증 가능한 유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또 경전 존재가 비록 확인돼도 이로써 다른 설법과 경전이 당시 없었다고 확인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으로 오늘날 역사학 방법으로 이를 살핌은 한계 밖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연구의 또 하나 걸림돌은 경전이 수백년간 암송에만 의존해 전승됐다는 추정이다. 암송 전승 추정을 받아들이면, 그 기간에는 불설 문제와 관련해 경전과 불설 논의를 객관적으로 살필 방법은 본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후 기록된 경전의 불설 문제도 같은 한계를 갖게 된다. 물론 이 가정의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만일 실제 암송 전승이 불교의 불문율이었다면, 이를 깨고 기록된 사실은 특기할 내용 또는 하나의 이단 행위로 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런 언급은 없다. 더욱이 석존은 굳이 암송 전승을 강요한 사실도 없다. 따라서 문자 수단7)이 있었음에도, 왜 오랜 기간의 암송 전승을 굳이 추정하는지는 의문이다. 사실상 승단 구성원의 암송은 수행 필요상 강조되고 각기 노력했겠지만(持法師, 持律師), 정확을 요하는 경전 전승을 오직 수백년간 암송에만 의존했다는 추정은 무리가 있다. 오늘날 방대한 경전량을 생각하면, 이를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많은 분량은 승단 구성원이 부분부분 체계적으로 나눠 암송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8) 그러나 이 경우 전승 과정에 오늘날 같은 불설 문제가 제기되면, 타인이 암송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이는 경전의 정확한 참조가 필요할 때마다, 암송자는 녹음기 역할을 반복했으리라는 가정이 된다. 따라서 비록 장기 보존은 안되더라도 문자 수단을 병행했으리라는 가정이 보다 적절하리라 본다.

⑤ 앞에 본 사정 등으로, 역사 사료나 유물로 인도에서의 불설 논의를 살피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현존 경전 내용 자체를 근거로 역사 사실을 추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승경전에는 ‘후5백세’ 또는 《대반열반경》의 ‘7백년 뒤’라는 표현, 또는 대승 비난에 대해 대승이 불설임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기초로 불멸 후 4∼5백년경 대승 경전이 성립되었고, 또한 당시 이런 내용을 경전에 실리게 한 불설 논의가 실재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9) 그러나 만일 경전의 진위와 사료 가치 자체가 문제되는 가운데, 이를 기초로 역사 사실 및 다른 경전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면, 선결 문제 불확정의 논리적 오류가 있게 된다. 사실상 위 추정은 다음 문제가 있다. 우선 만일 진경이라면 그 내용을 역사 사실의 사후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반대로 위경이라면 이는 거짓 기록이므로 이를 역사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세히는 다음과 같다. 진경이라면 그 내용은 표현 그대로 장래에 대한 경고 또는 예언이 된다. 그리고 역사상 그 예언이 실현됐는지, 또는 경고 내용이 경고로 실제는 발생치 않았는지, 또는 그럼에도 발생했는지는 별도 역사 자료로 확인할 사항이 된다. 한편 위경으로 보면 이를 역사 사실 사후 기록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이런 거짓 경전 전반의 진실성을 함께 의심해야 마땅하다. 만일 이 가운데 몇몇을 진실로 보려면 별도의 근거 자료가 요구된다. 한편 그 가설대로 이런 불설 시비를 역사 사실 기록으로 보려면, 그 경전 원(原) 형태는 별도로 미리 존재했다고 가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원 경전이 없는데 비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가정은 다시 원 경전의 존재 시점과 추후 변경 시점을 함께 밝혀야 한다. 또 이 경우 문장을 추가한 경전 전승이 그 이전 비판자로부터 아무 비난을 받지 않고 가능했을 것인가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올바른지는 경전 내용만으로는 판단이 곤란하다. 따라서 이는 별도 역사자료로 먼저 판단해야 한다. 이런 선행 작업 없이 한편으론 경전의 진위를 문제삼으면서 또 한편으론 필요에 의해 내용 일부를 역사 사실의 추정 자료로 변형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⑥ 앞에서 본 한계와 문제가 있지만, 이와 달리 경전과 논서에도 분명한 역사 기술 내용은 많다. 이들 및 스리랑카, 중국 등의 기록을 통해 불교사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남전, 북전의 기록상 나타나는 불교 분열 과정은 불설 논의가 부분적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인도에서의 최초 대중부, 상좌부 분열 과정은 계율 해석 차이 또는 아라한에 관련한 견해 차이 등이 원인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이 과정의 주원인을 불설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인도에서 이후 다수 종파 분열 과정 및 후기 대승종파 출현에는 불설 논쟁이 부분적 원인이 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비록 완전한 사료 가치의 인정은 곤란하지만, 《삼론현의검유초》 《종륜론술기》 등에 의하면 각 부파 특징으로 대중부에 화엄·반야 등의 경전이 존재했음과 또 상좌부에서 분파된 법장부에 경·율·론 외 주(呪)·보살(菩薩)의 5장(藏)이 있었음을 특징으로 제시하므로10)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후대 대승종파의 논서들에11) 대승이 불설임을 직접 강조한 부분은 비록 일방적 논의지만 당시 인도의 불설 논의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⑦ 한편 불교의 인도 내외 전파 과정에서도 불설 논의를 예상할 수 있다. 전파자는 어떤 경전을 대표적 불설로 전할 것인가가 문제되며, 수용 입장에서는 많은 수입 경전 중 무엇이 진정한 불설인가에 의문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각지의 불교 형태와 경전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남방에는 니카야(아함)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스리랑카에 대승이 수입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인도로부터의 불교 전파 과정과 함께 스리랑카 자체의 불설 판단을 통해 타파를 배척하고 니카야를 보전 전파한 결과로 볼 수 있다.12) 그러나 이런 결과를 통해 니카야 경전만을 불설의 전부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스리랑카가 당시 경전들의 불설 여부를 전체적으로 정확히 판단할 입장에 있었다고 볼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⑧ 중국에서는 스리랑카와 달리 후한대부터 원(元)대까지 1,000년간 수많은 경전이 골고루 수입됐다. 그리고 《대당내전록》 《개원석교록》 등과 같은 경전목록 정리서에서 위경 판단 모습을 볼 수 있다.13) 그러나 이는 소승, 대승을 막론하고 경전의 출현 배경, 내용 문제 등을 기초로 위경 판단을 한 것이며, 실제 판단 준거로는 어린 비구니가 송출해낸 내용인 점,14) 또는 편의상 요약한 사실15) 등이 들어지고 있다. 그 외는 위경 명칭만 주로 나열되어 있어 실제 내용이 어떠했는지 살피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엄밀히는 이 역시 역사적 석존의 설법을 확정해 위경 판단을 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중국식 불교관(格義佛敎)의 배경과 함께, 당시 중국도 앞의 스리랑카처럼 명확한 불설 판단을 할 입장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판단의 정확 여부를 떠나 이런 판단은 각국의 대장경 제작과정에서도 요구된다. 대장경 제작 주체는 대장경에 포함할 경전을 선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례로 고려대장경 제작시에는 이런 목적으로 판본대조와 교정을 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고16) 또 일부 경전17)은 비불설로 의심되는데도 수록하는 배경이 기재돼 있다.

⑨ 한편 이후 중국에서는 각 종파에 의해 경전들의 우열 판단(敎相判釋)이 행해진다. 이는 주로 경전 우열을 논한 것이어서, 반드시 다른 종파 다른 경전의 위경 판단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진리성 판단 차원의 불설 논의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⑩ 한편 근세 일본에서는 과거 불설 판단과 차원을 달리해, 대승경전 전반이 불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는 처음 도미나가(富永仲基, 1715∼1746)가 《출정후어(出定後語)》에서 ‘경전은 시간을 두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했다’는 이른바 가상설(加上說)을 주장하고, 대승경전을 불멸 후 500년경부터 만들어진 비불설로 주장한 것이 시발점을 이룬다.18) 그리고 이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후 불교계 전반에 반향을 일으킨 점이 오늘날까지 지대하다. 따라서 이런 대승비불설론의 문제점은 이하에서 좀더 자세히 보기로 한다.

4. 불설 판단 문제

앞에서 불설 논의 전개과정을 대략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주된 문제는 근세 일본에서 비롯된 ‘대승경전 전반은 불설이 아니다’는 주장이다. 이는 불교 신앙 기초가 상대적으로 얕고 명확한 실증 근거 없이는 경전 내용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쉬운 서양 학계도 비슷하다. 이런 영향을 받아 오늘날 대부분 불교 개설서도 주로 이들 학설에 따르고 있다. 또 그 결과 오늘날 불교 지식인도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에 대해 이런 역사 인식을 갖는다. 그러나 엄밀히 살피면 불설 비불설 논의는 ㉠ 본래 어느 쪽도 그 주장을 직접 실증(實證)할 수 없으며 ㉡ 또한 본 문제는 성격상 추리를 통해 타당한 결론을 얻는 것도 한계가 있다. ㉢ 그럼에도 일정 근거를 통해 불완전하나마 학문적 가설을 세우는 입장들은 모두 그 추론 근거와 방법에 많은 오류 가능성이 발견되는 난점이 있다. 이를 아래에서 보기로 한다.

1) 불설 확정(確定)
양 입장의 문제를 보기 위해 가장 이상적 불설 판단 방법은 무엇인가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 불설 비불설 확정에 이르려면 ① 우선 ‘역사상’ 석존의 명확한 정체 및 그가 설한 ‘모든’ 내용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② 그래서 불설 주장자는 어떤 내용이 이에 포함됨을 입증해야 하며, 만일 그 내용이 그 후 다른 설법으로 배척됨이 주장될 때는 그렇지 않음도 입증해야 한다. ③ 비불설 주장자는 어떤 내용이 이에 포함되지도 않고 일치되지도 않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건 일부도 오늘날 충족시킬 수는 없다. 물론 이미 본 것처럼 역사학에서 이런 요구는 지나치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함도 분명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어느 쪽 주장도 참, 거짓을 단정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것은 비록 누군가 당장 엉터리 내용을 석존설로 주장하더라도 마찬가지가 된다.

2) 개별 전승 확정
만일 개별 경전이나마 석존으로부터 ‘전승 관계’가 확인 가능하면, 이로써 불설 문제를 부분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앞과 동일한 한계가 있다. 각 전승 단계를 거슬러 확인할 수도 없고, 실제 최초 석존 단계의 내용 판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진실성
사실상 처음 특정 경전을 석존이 직접 설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가. 누군가 과거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한,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불설 문제는 통상 그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고 증언하며 전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단순히 귀결되는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경전에는 직접 관찰자가 일종의 진실성을 증언하는 형태로 ‘나는 이와 같이 언제 세존이 어디에서 ○○와 ○○을 설함을 들었다(如是我聞∼)’라고 기술하는 부분(六成就)이 있다.

물론 오늘날 불교학자는 이런 대승경전 첫부분의 진실성을 부정한다. 따라서 이런 논의가 제기되면, 이런 부분의 진실성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한다. 이런 증언 또는 보고의 진실성 판단은 마치 오늘날 신문기자의 기사가 사실인가를 따지는 문제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어떤 간접 증거를 통한 추론으로 이런 보고의 진실성을 일부 보증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고의 본질상 특히 일회적 사건이나 경험 초월적 사건의 보고인 경우 이런 방법을 통한 진실성 입증은 대부분 한계가 있게 된다.

그 결과 이런 경우 진실성 추정은 통상 보고자의 기존의 신뢰성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그 보고자 및 다른 증인들이 모두 존재하지 않게 된 때에는 다시 한계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1050년 1월에 캘커타에서 화재가 났다는 어떤 탐험가의 보고 내용의 진실성이 오늘날 문제된다면, 이 진리성을 밝힐 길은 모호해지는 것과 같다. 본질적으로 대승경전의 불설 문제 즉 경전 첫부분 ‘여시아문’ 이하의 진실성 판단은 이처럼 직접 경험자가 아닌 한, 다른 증거나 추론으로 그 진실 여부를 밝히는 데 본래 한계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4) 추리에 의한 불설 판단
불설 판단은 어떤 내용이 앞과 같이 ‘석존과 관련됨’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제 이를 직접 실증할 수단은 없으므로, 이는 오직 추리에만 의존하게 된다. 물론 이는 이미 앞에서 확정할 수 없음을 살핀 ‘경전과 석존의 관련성’을 ‘추정’해내는 데 주목적을 두게 된다.

(1) 추리근거와 방법
그런데 이런 추리가 타당하려면 그 이전에 추리에 이용할 기초 역사 사실들간의 ‘관계성’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 추리의 가치는 그 기초 자료의 확실성과 추론 관계의 타당성에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전이 대논사 용수 저서에 보이지 않으면’ → ‘그 경전은 당시 인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추론이 가능하려면, 그 이전에 그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사실들간의 관계성 자체가 역사 현실에서 확립돼 있어야 한다. ① 그런데 만일 이 관계성을 임의적으로 확립하면, 그것은 단순히 ‘상상’적 역사 인식만을 만들어내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은 서로 다른 사상을 저술할 수 없다’는 관계성이 이와 같다.

실제 이런 근거로 세친과 용수 저서들에 비판이 제기된다(세친 2인설 등).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관계성은 확립할 수 없다. 과학자가 소설을 쓸 수도 있고 학자도 졸업논문과 그 후 저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역사 사실로 확립되지 않는 관계성을 기초로 한 추론은 단지 상상적 추리를 하는 것이 된다. ② 한편 일반 경험법칙을 기초로 관계성을 세워 역사 추리에 이용함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실제 추리하고자 하는 역사 사실은 예를 들어 폼페이의 화산 폭발처럼 역사무대에서 1회만 일어나는 사건인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경험칙을 기초로 한 추리는 실제 역사 현실 파악에서는 때로는 뒤바뀐 역사 인식을 성립시키곤 한다. 예를 들어 섬의 폭발은 일반적으로는 없기 때문에, 폼페이에 고대 도시는 없었다는 추리가 더 설득력 있게 되기 때문이다.

③ 이런 난점을 피해 불설 문제 추리에 필요한 엄밀한 역사사실 관계를 확립하려면 이 과정에서 앞에서 본 1) 2) 3)의 내용 확정이 필연적으로 먼저 요구된다. 그런데 이는 역사학 한계 밖임을 이미 보았다. 따라서 이런 문제로 실제로는 앞의 ①②와 같은 관계성에만 기초해 추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실제 근세 학계의 추리는 현실 경험상 쉽게 받아들일 상상적 역사 인식을 만드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근본적인 역사 진실에 가닿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다. 또 이런 추리의 결과로 오늘날 불교사 인식은 과거 종교계와 전혀 달리 제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계의 가설 제시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주장은 근거 및 추론 타당성이 모두 불충분함에도 객관적 실증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학계의 주된 학설이 되어 불교 내외로 편견을 확산하여 기존 신앙의 기초를 붕괴시키는 영향력이 큰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이런 이유로 여기서는 비불설론의 비판에 중점을 둔다. 다만 이는 곧 반대입장인 불설론이 옳다는 단정은 아니다. 이 문제는 이미 본 것처럼 의문이 제기되는 이상, 어느 쪽으로도 확실히 단정할 수 없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추리를 통한 불설 판단의 일반적 문제점과 함께 오늘날 대승비불설론의 특수한 문제점을 함께 보기로 한다.

(2) 경전 전승과정 추리
① 만일 전승과정에 대해 추리하려면 미리 이 과정의 진행모습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석존은 일정한 깨달음을 얻고, ㉡ 그것을 상대에 맞춰 적절히 표현하고, ㉢ 여러 주체(제자 및 종교상으로는 보살, 천인 등)는 이를 직접 관찰해 듣고, ㉣ 내용을 이해 판단하고, ㉤ 암송 또는 기록할 내용을 선택 정리하고, ㉥ 언어로 암송 기록하며, ㉦ 때로는 그 내용 그대로 재생하고, ㉧ 때로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형 재생하고, ㉨ 때로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 또 타인이 전하는 내용을 듣거나 읽으며, ㉪ 이들 내용을 비교 분석 종합 추리하여 나름대로 판단과 설명을 덧붙이며(論), ㉫ 이런 암송·기록은 기억 보존 전승되거나, 변형 멸실된다.

②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남게 된 경전에는 ㉠ 최소한 변화만 거쳐 석존의 원래 뜻이 그대로 유지된 경우(眞經), ㉡ 또는 단순한 형태변화, 요약, 종합 등이 있은 경우(진경의 변형태), ㉢ 또는 단순한 변경이 결과적으로 석존의 본뜻을 훼손한 경우(선의적 위경), ㉣ 또는 사견 유포, 석존 교설 방해 목적 등으로 변경된 경우(악의적 위경), ㉤ 그 외의 경우(석존 이외의 불설 등)를 생각할 수 있다.

③ 이론상 앞 ①의 각 전승 단계에서 석존의 본의(本意)와 달라지는 변화가 일어나면, 최종 경전도 그에 대응한 오류가 생긴다. 이를 보기로 한다. 처음 석존은 어떻게 본뜻을 설해야 상대가 올바로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상대는 문맹(文盲)부터 학자까지 다양하고 전할 내용도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하나의 뜻을 전할 방법은 몸짓, 기호 또는 수백 마디의 설명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 전달할 내용인 깨달음 자체, 감각, 개념과 ㉡ 전달 수단인 언어 등은 서로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어느 방법도 본의 전달에 일부분은 유효하면서도 그러나 또 한편 본뜻 그대로 전하기엔 모두 불완전하다.

의사 전달 과정의 본질적 한계로 ㉠ 본의 ㉡ 표현 수단 ㉢ 상대가 얻는 뜻 사이에서 각기 약간의 불일치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도, 석존의 본의를 상대가 잘못 받았을 가능성(위경 가능성) 또는 일부만 받았을 가능성(다른 경전도 진경일 가능성)은 모두 있다. 그리고 이런 면이 오늘날 불설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역사학상 한계가 아닌 의사 전달 과정의 불가피한 본질적 한계다. 한편 이런 이유 때문에도 석존이 어느 한 형태의 설법만 계속 고집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내용 및 방식을 달리해 설했다는 추정은 합리적일 수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제약성은 상대보다 석존에게 적었으리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석존 이후 각 단계에서도 왜곡과 변형이 일어날 가능성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 내용도 듣고 보는 각 주체에 따라 얻는 의미는 달라진다. 그 후 과정 모두에서 주체, 시기, 상황에 따라 왜곡·변형은 일어날 수 있다. 또 이들은 모두 불설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각 단계를 거슬러 이들을 일일이 추리 판단하는 것이 곤란함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3) 전승 정통성과 불설 논쟁 근거의 추리
① 앞의 사정을 고려해도 각 교단은 교단이 경전을 특별히 존중 전승해온 배경을 강조하여 자신의 경전은 불설임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자는 위경이 제작 유입된 후 전승됐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어느 추리가 더 합리적인가. 다양한 가능성 때문에 교단 내 전승사실만으로 어느 입장을 지지하기는 곤란하다 할 것이다.

② 한편 한 경전의 진실성을 확신할 때 이를 기초로 다른 경전이 비불설임을 판단할 수 있으려면 다음 추가 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우선 석존 열반 후 승단(僧團)의 경전 전승 상태를 다음과 같이 나눠 가정할 수 있다. 각 승단은 ㉠ 불설 ‘전체’를 확실히 전승해왔다 ㉡ 각기 ‘일부’만을 확실히 전승했다. ㉢ 처음부터 전승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확신만을 기초로 다른 경전을 곧바로 비불설로 판단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의 상태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과거의 불설 논의 자료에서 이런 입장의 비판만 오늘날 판단 과정에서도 실질적 가치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 ㉢ 상태에서의 비판은 사실상 확실한 근거를 갖지 못함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근본·부파·대승경론에서 이런 형태로 상대를 비불설로 비판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물론 이로써 서로를 완전히 불설로 승인해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승단이 각기 어떤 상태로 경전을 전승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서로를 대하지 못한 채 후대에 별개로 합류됐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그러나 한편 《잡아함경》에서 대승의 중심사상인 공(空)의 표현 등이 수없이 반복하며, 부파의 대표 논서인 《대비바사론》 권17에는 대승수행법인 육바라밀이 성불의 원인으로 큰 논란 없이 소개된다.19) 또 대승경전은 근본(소승)교리 체계를 요약해 반복한다. 그리고 티베트 자료에 의하면 근본(소승) 학파는 대승종파 출현 후 13세기까지 대승보다 더 번성했음에도20) 소승경론에서는 대승을 거론하는 일이 없을 뿐 특별히 대승사상과 경전을 비불설로 비판한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 대승경론도 근본 계열을 소승이라며 저열함을 비판해도 비불설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들은 오히려 앞과 반대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④ 한편 각 승단이 앞 ②의 ㉡, ㉢의 경우였다면 불설 문제는 확신적 비판 형태를 취하기 곤란하다. 단지 다른 입장이 비불설로 보이는 근거나 의문을 제시하고, 상대는 이에 대해 자신 입장이 불설임을 밝히려 시도하게 된다. 석존 열반 후 수백년 후의 대승논서에는 일부 이런 형태로 대승경전이 불설임을 논변하는 모습이 보인다.21) 비불설론자는 이로써 해당 대승논서 성립시 대승경전에 특별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특별히 대승을 비불설로 비판한 근본불교 측의 특정 논서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대승경전이 일반적으로 어려운 교리, 많은 경험 초월적 내용을 담고 있는 점 그리고 석존 열반 후 수백년이 지나 일반인 및 처음 발심한 스님들도 개인 차원에서 대승을 비불설로 의심하기 쉽다는 일반 사정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이는 또 오늘날 상황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런 사정으로 불설임을 강조하게 된 이런 자료를 오늘날 역으로 비불설 추리 근거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4) 근세의 비불설론
한편 근세 대승비불설론은 이와 달리 ㉠ 비교적 분명한 역사 사실을 내세워 추리를 시작하거나, ㉡ 또는 경전 모두를 한 석존과 관련시키면 형식상 내용상 모순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주장을 전개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논거와 추론에는 오류 가능성이 많이 발견된다. 이들을 아래에서 살피기로 한다.

① 근세 불교학계는 실증적(實證的) 방법에 많이 의존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미 본 것처럼 인도의 일반 사료와 유물로 불설 문제를 실증하는 것은 한계 밖이다. 따라서 불설론, 비불설론 모두 그 결론을 실증할 길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불설 문제에서 오늘날 대승비불설론이 ‘실증적’이라 할 부분은 단지 실증되지 않는 경전의 초경험적 내용과 기존 주장을 배척해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증적 자세를 관철하자면 이를 배척함에도 엄격한 실증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근세의 대승비불설론은 명백한 실증 근거 없이 기존 주장은 배척하고, 대신 모호한 근거에 의한 가설을 내세우는 점이 문제다.

② 실제 근세 불교학계가 경전 성립시기 판단에 이용하는 근거는 모두 불설 판단에 직접 가치가 없는 간접 자료에 불과하다. 그것은 주로 ㉠ 경전을 수입한 중국 등의 기록, ㉡ 경전에 나오는 역사 사실, ㉢ 경전에 인용된 다른 경전, ㉣ 경전 교리내용 특징, ㉤ 불교 및 외도 논서의 인용 내용 등이 주된 근거가 된다.22) 그러나 이들 자료로는 단지 경전 존재가 최소한 확인된 시점과 경전간 상대적 성립 순서 정도만 추정 가능하다. 따라서 이로써 해당 경전 및 다른 경전이 그 이전 시점 즉 석존 재세시 설법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추리할 길은 없다. 이는 마치 일본의 토기(土器) 사용 시점을 기초로 그 이전에 한국에 토기가 없었다고 추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③ 불설 판단에 사용할 직접 사료와 유물이 없기 때문에 근세 불교학계는 경전과 논서만을 자료로 닫혀진 추론을 하기도 한다. 경전간의 형식적 단순성, 체계성, 사상의 상호 차이를 비교하여 성립 순서나 연대를 추리하는 방법들이 이들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앞에 본 것23) 같은 논리적 오류를 가질 수 있다. 즉 일단 진경 표준으로 간주하는 경전이 왜 진경인가 하는 선결 문제를 확정하지 못한 채 막연히 이를 표준으로 다른 경전의 위경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진위가 의문시되면서 어느 한 형태를 진경으로 정한 후 추론하면, 결국 반대입장의 주장과 문제를 끝없이 순환시키게 된다.

④ 앞에서 일부 보았지만 학계는 경전 내 조건문 예언 등을 역사 사실로 끌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동일 자료에서 자신의 가설에 맞지 않는 의미는 부정하고 맞는 내용만을 선택하거나 심지어 가설에 맞춰 그 의미를 변형해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는 어떤 자료를 대해도 항상 자신의 예단적 가설에 맞는 내용만을 끌어내게 된다. 이는 곧 이런 해석 방식이 합리성 없는 방식임을 의미한다.

⑤ 한편 이들 추론은 단순한 가정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위작을 추리하면서도, 그 위작자는 오늘날 누구라도 쉽게 다른 경전과 차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위작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위작은 진경과 구별이 어렵게 될 때만 목적이 달성된다. 따라서 실제 위작되었다면 위작 부분과 진경은 내용 형식이 매우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추리할 필요가 있다. 또 그렇다면 이를 가리기 위해서 경전 전체가 위작인지 부분 부분이 위작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경전 형태나 내용 비교만으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이런 고려가 부족하다. 그 외 문제점을 모두 나열해 세세히 살필 수 없으므로 이하에서는 비불설 주장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간략히 제시하고 반대 입장에서는 어떤 해명들이 가능한가를 본다.

    ㉠ 모든 경전을 석존이 설했다고 보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그러나 대승경전도 석존 설법 부분은 실제 분량이 많지 않다. 한편 오늘날 한 연설가의 1년간 생각 및 주장을 전부 기록하면 그 분량도 상당하게 된다. 반대로 40여 년 설법이 아함경전만의 반복이라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 대승경전은 아난이 송출한 결집 내용이 아니다.―이것 자체부터 불확실하다.24) 만일 이 사실만이라도 확실하면 최소한 불설 논의 상당 부분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굳이 아난만이 경전을 송출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25) 이는 아난을 부처로 볼 때만 가능한 논리다. 오류가 없는 이상 석존설을 들은 누구나 여시아문(如是我聞) 형태로 바르게 경전을 전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또 한편 제1결집은 당시 십대제자들로부터도 완전한 승인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 앞에서 본 것처럼 부루나가 다른 입장을 취했다고 남전에는 나타나며, 실제로 그러한 부루나는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서 장차 부처가 될 것을 인정(受記)받는 주체로 나오기도 한다.

    ㉢ 경전 형식이 다르다. 경전은 단순한 형태와 사상에서 점점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고 보아야 한다(가상설).―그러나 가능성은 복잡 ↔ 단순의 쌍방향이 다 가능할 뿐 아니라, 또한 이들이 처음 석존 당대부터 혼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오늘날도 다수인이 한 강의를 들을 때 각인의 필기 내용과 방식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이중 어느 하나만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한편 다양한 형식, 사상 내용 사이에 수백년의 시간 간격과 순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역사 현실을 떠나 선험적으로 정립 가능한 법칙은 아니다. 아래에서 보면 인류진화처럼 오래 걸린다고 보아야 하지만, 위에서 보면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교리 내용이 서로 모순되거나 차이가 있다. 또 아함경엔 대승에 관한 언급이 없으나 대승경전에는 소승 비판이 나오는 것은 대승이 후에 위작된 증거다.―경전간의 관계를 별개로 보면 이런 의문이 있다. 그러나 전체 구조에서 이해하면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각 경전은 전체 설법에서는 마치 긴 문장 안의 각 단어들과 같다. 극단적 예를 들어 ‘1+1=3은 잘못이다’라는 문장을 보자. 이 가운데 앞부분은 명백한 거짓이다. 그러나 종합한 전체는 완전한 문장이 된다. 또 ⓐ A만 옳다. ⓑ B만 옳다. ⓒ C만 옳다. ⓓ 그러나 이 각각은 그 시점에서 필요하고 옳은 말이었다. 또 이를 통해서만, 모두 이 최종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라는 내용들도 ⓐ ⓑ ⓒ를 표면상 보면 서로 모순이다. 그러나 전체를 함께 보면 참이 된다. 이런 관계성은 오늘날 초중고대학의 교과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표면상 동떨어진 각 교과는 서로 공통점이 적다. 초중고 교재에는 대학 교재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고급 교재에는 초급 이론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들은 전체 교육 목적에 함께 기여하며 각 단계 내용이 그 단계에서 모두 중요함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반 지식체계보다 석존의 가르침은 월등히 높다. 반면 당시 제자들은 오늘날보다 더 다양한 층이었다. 따라서 석존의 설법이 전체적으로 이런 관계성을 갖고 행해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실제 경전들에서 이런 유기적 관계성을 찾을 수 있다. 근본경전에서는 대승사상이 핵심단어(空, 無我 등)의 형태로만 반복해 보인다. 반대로 대승경전에는 근본경전의 내용이 요약된 체계로 나타나고 대승사상의 자세한 내용이 부가된다. 이런 점들이 이런 해석과 부합하는 면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한 대학교수가 초중고대학 교재를 상호 유기적으로 함께 집필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추리는 마치 초등 교재는 중학생이 그리고 중고 교재는 이후 세대를 달리한 익명의 다른 대학생이 점차 만들어왔다는 가정과 같다고 할 것이다.

    ㉤ 남·북방 경전의 공통 부분이 불설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스리랑카의 경전 부존재가 인도에서의 경전 존재 사실을 배척하는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이는 예를 들어 한국에 석유가 없다고 해서, 중국에도 석유가 없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오류와 같다.

    ㉥ 하늘에서의 설법 및 많은 내용이 현실성을 결여한다. 또 보살은 현실존재성이 없다.―그러나 관찰 능력과 경험에 따라 진리의 폭은 달라진다. 좁은 경험에 진리를 한정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천문 지식을 시골 장님의 지식으로 판단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또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존재나 6신통, 윤회 등과 같은 경험 초월적인 석존의 가르침은 어느 불교 경전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이들의 진리성을 받아들인다면, 대승경전이 이들 교리와 특별히 모순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이의 비판은 오히려 불교 교리를 모두 부정할 때만 논리의 일관성을 갖게 된다. 한편 보살은 특수 생명체가 아니며, 삼계육도 내 성불과 중생 제도를 함께 서원한 이를 특별히 지칭하는 명칭일 뿐이다.

    ㉦ 경전 일부 내용에서 석존 재세 후 역사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예: 사리탑, 경전 전파 경로, 후500세 내용 등).―이는 그 표현대로 예견 및 예언이 실현된 경우로 볼 수 있다.

    ㉧ 대승 종파 논서 등의 출현 시기로 볼 때 대승경전은 후대에 성립했다.―종파나 논서 출현 시점부터 명확치 않지만, 종파나 논서 출현과 경전 성립은 선후, 동시, 후선 어느 관계로도 가능하다. 심지어 오늘날도 기존 경전의 재해석을 통해 신종파나 논서 출현은 가능하다. 한편 이미 본 것처럼 부파 시대 이전에 대승경전이 없다고 단정짓기는 곤란하다.26)

(5) 석존설 ‘간주(看做)’ 기준
경전을 설할 당시 직접 경험자가 아닌 이상, 불설 여부를 실증하거나 또는 추리만으로 쌍방이 납득할 결론을 얻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또 다른 근거로 불설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용이 미신적이며 허위임이 분명하여 비불설로 간주하는 등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역사적 입장의 불설 판단은 아니다. 단지 ‘불설은 어떻다’라고 임의로 정해 판단함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러한 간주(看做)가 무엇을 기초로 하며, 또 올바른가이다. 이런 기준이 정확한 불설 판단의 기준인가를 보기 위해 다음 중 무엇이 석존이 설했을 내용인가를 판단해 보기로 하자.

㉠ 귀신이 사는 나무를 베지 말라. ㉡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죽은 뒤 다시는 있는 바가 없게 된다. ㉢ 나(석존)는 세 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다룬다. 그래도 길들여지지 않으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도록 나는 그를 죽인다. ㉣ 어떤 보살은 후궁들과 오욕을 만끽하고 누린다. 이렇게 노닌 뒤 반야바라밀다를 설한다. ㉤ 하품할 때 입을 가리고 천천히 하라. ㉥ 하나(一)가 변하여 많은 것(多)이 되고 또 그 하나가 그 많은 것 속에 들어가 본질이 된다. ㉦ 일체는 공하고, 차별이 없으며,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갖는다. 따라서 개나 소도 부처와 같다. 더 나아가 현세, 내세, 선악에 대한 과보도 없다. ㉧ 마음, 부처, 중생은 모두 같다. 따라서 살인자나 강도도 부처로 믿고 따라야 한다. ㉨ 보리심을 일으키면 바로 부처다.

따라서 그 후 별도 수행은 필요 없다. ㉩ 불살생, 진실어, 부도(不盜), 불음(不狀), 무소유를 계율로 한다. ㉪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선 선정 또는 고행만 극도로 행해도 무방하다. ㉫ 승려가 밥을 구걸함은 민가에 폐를 끼치고 수치스런 일이다. 따라서 승단은 전체적으로 보시금을 받아 저축 관리해 공평히 배분한다. 승려도 일하지 않고 먹어서는 안 되므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다만 각종 제(祭)나 설법을 행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무방하다. ㉬ 방귀를 뀔 때 크게 소리내서 옆 사람을 괴롭히지 마라.27)

내용상 불설 여부를 판단할 때 각자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역사적 석존 입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기존에 경전 및 여러 경로를 통해 갖게 된 각자의 석존의 관념 또는 불교관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불설 기준으로 고집함은 각자의 추상적 석존 관념을 곧 역사적 석존 자체로 ‘간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 경우 각자의 기준이 다르므로 혼돈이 일어나고 결국 각기 석존설로 믿는 것이 석존설이라는 식의 순환만 있게 된다. 다만 이 판단이 진리, 선(善), 바른 수행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라면, 역사적 불설 판단은 아니더라도 ‘진리성’ 판단 차원의 불설 판단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6) 현존 경전 불설 간주 기준
오늘날 경전의 불설 여부를 의심하면, 각 경전을 일일이 다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이를 문제삼지 않고 현존 경전 전체가 지금까지 어떤 기준으로 불설로 평가 전승돼 왔는지를 판단할 필요도 있다. 물론 이는 역사적 불설 판단과는 다른 문제다. 이는 과거에서 지금까지 경전을 잡서로부터 구별해서 불설로 ‘간주’, 보전·전승해온 기준이 무언가를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불설로 ‘간주’ 판단한 기준으로는 전승 과정의 신뢰성, 형식적 특징도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로는 내용상 특징도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내용상 무상·고·무아·무자성·공·열반적정 등의 핵심 교설(法印), 그리고 연기법·사제법·38도품·육바라밀 같은 진리와 선(善), 그리고 수행에 관한 특징적 근본 교설과의 일치 모순 여부가 불설 판단의 중요 기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석존의 가르침은 넓다. 예를 들어 세속의 일반적 선(善), 윤리, 사회, 정치, 일반인의 경험 능력을 초월한 지옥·아귀·하늘(天)을 포함한 삼계육도·윤회·전생과 미래 내용들이 그 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불설 판단은 ㉠ 그것이 석존의 설법임이 표명되고, ㉡ 그 전승이 신뢰할 만하며, ㉢ 그 내용 자체의 참이 분명한 경우, ㉣ 또는 그 참을 실증하거나 추리로 판단할 수 없더라도 근본 가르침에 직접 모순되지 않으며 교리 이해와 수행 방편상 이익됨이 인정되는 경우, 불설 여부를 크게 의심하지 않고 승인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은 대승 계율에서도 일부 발견할 수 있다. 본래 계율은 승단 내 수행 및 교법 위협 사례가 발생한 후에 비로소 제정된다(隨犯隨制). 또 석존 재세시부터 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일부 변경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처음부터 보편성을 갖는 근본 교리 내용과 달리, 계율은 시기 상황별로 어느 정도 임시 유동적 성격을 가진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입장에서 시대 및 상황에 맞지 않게 됐지만 석존설로 전해지는 내용과 함께, 후대 상황에 수행 및 교법 보존을 위해 보다 적절히 바뀐 내용도 널리 함께 수용하였다고 본다.

5. 결어

불설 판단은 실증(實證)과 추리 어느 방식으로도 모두 확실한 결론을 얻는 것이 곤란함을 보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대승경전 비불설이 기존 학계의 주된 입장이어서 균형을 위해 이를 비판함에 중심을 두었다. 다만 이는 본 문제가 어느 쪽으로도 결론짓기 곤란함을 보기 위함이며 현존 경전이 모두 불설임을 강변하기 위함은 아니다. 사실상 위작 ‘가능성’은 오히려 가장 신뢰받는 근본 경전 각 부분마다에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어느 입장의 단정과 추리도 모두 한계 밖임을 강조하였다.

이런 한계성들은 명확한 결론을 방해하여 학문적으로 모호한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면은 있지만, 그러나 적어도 자칫 진경 부분을 위작으로 또는 위작 부분을 진경으로 잘못 단정할 때 초래될 잘못을 예방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다고 본다. 사실상 불설 문제는 역사 자체의 관심보다는 주로 옳은 깨달음의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기된다. 그런데 자칫 잘못된 불설 판단은 오히려 이런 판단에 더 큰 장애를 줄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이런 진리성 판단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은 ㉠ 경전을 누가 설했는가의 불설 문제와, ㉡ 그 내용 자체가 진리인가, ㉢ 또 그것이 진리든 거짓이든 실제 깨달음을 얻는 수행에 어느 내용이 더 도움이 되는가(方便) 등은 모두 서로 별개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 관련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은 불교의 전체적 실천 수행에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는 별도의 장으로 미루고28) 여기서는 다음만을 밝히고 마치기로 한다.

불교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경전은 그런 목적을 도와주고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경전의 진위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그 명확한 확정은 앞에서 본 것처럼 곤란하다. 그럼에도 이런 불설 문제에 마냥 집착하는 것은 독화살을 뽑아야 할 때 독화살 출처에만 마냥 집착하는 잘못이 될 수 있다.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는 석존이나 경전 자체에 대해 올바른 믿음을 강조하지 맹신(盲信)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만일 맹목적 자세로만 임한다면 오히려 참된 불설마저도 해독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맹신적인 자세를 벗어나 스스로의 지혜(般若)를 닦아나간다면, 경전의 불설 여부는 끝내 확정되지 않아도 사실 무방하다.

사실상 진리는 석존이 설하든 설하지 않든, 또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언제나 떳떳한 그 자체로서 진리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만일 무엇이 진정한 깨달음이고, 또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스스로의 지혜로써 판별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대하는 경전이 비록 위경임이 분명하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인 불교의 목적과 실천에 모두 큰 장애를 일으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다. ■

김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논문으로 <경전 불설비불설논의의 가치성에 대한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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