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대승불교의 경전 찬술 어떻게 볼것인가

1. 대승의 경전적 정통성 문제

대승경전의 정통성(orthodoxy)과 정법성(authenticity)1)에 대한 시비는 대승인의 신앙에 도전해온 예민한 문제였다.

1세기 전후, 초기 대승경전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비불설론(非佛說論)은 ‘대승경전은 소수의 시인이 창작한 문학적 허구에 지지 않는다’는 허구설로부터 ‘불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마라가 설한 외도의 교설’이라는 극단적인 이단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과 대응 논리도 여러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이라는 논증은 신화적 논증에서부터 문헌적 고증, 역사적 논증, 사상적 해석, 해석학적 논증 등이 있다. 대승불설의 논증은 일면 성공적이었다. 그러므로 지난 2,000여 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대승 신봉자들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2) 그러나 18세기 이후, 서구학자들의 역사적 불교연구 성과는 대승경전의 위상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다시 검토케 하였다.

또한 일본의 도미나가 나카모도(富永仲基, 1715∼1745)가 제기한 대승비불설론은 한때 일본의 불교계를 뒤흔들었고, 이에 대한 첨예한 학문적·종교적 논쟁이 펼쳐진 바 있었다. 그 결과는 대승경전의 정법성과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종결되었으며, 그 후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고자 하는 학자는 없었다.

최근 한국 불교계에서는 기존의 대승신앙의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초기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테라바다 유형의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대승신앙의 정법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3) 이러한 논의는 1,600년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처음 제기된 문제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타당성이 있는 결론의 도출이 요구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대승의 경전적 정통성 문제와 위상에 대한 현대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법, 종교체험에 의한 심리학적 영감설, 정각을 성취한 대승행자의 성불기록설, 대승불설론의 역사적 논증 시도, 역사적 비불설론과 사상적 불설론의 절충설, 그리고 현대의 경전해석학의 동향 등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대승의 모체인 《반야경》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창조적 대승해석학의 비전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

근대 서구의 불교학은 인문학의 학문방법인 문헌학(philology)과 역사학적 연구방법론에 기초하여 태동되었다.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합리주의(rationalism) 사상과 실증적 방법론이 현대 불교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서구학자들은 신앙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문헌비평 방법으로 불교사상사의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다.4)

따라서 대승경전의 문제도 역사적·문헌비평 방법론으로 그 성립과 전개과정을 연구하였다. 불교 원전의 언어와 문헌연구는 2,500여 년 동안 불교의 여러 전통에서 축적시켜온 문헌과 자료를 재해석하게 되었으며, 역사적 대승비불설론도 이러한 연구 성과의 하나였다.

역사주의적 문헌비평(historical textual criticism)은 무엇보다도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주의 정신을 존중하며, 원전의 언어, 전기, 명성과 영향, 문화와 관습 등의 요소를 검토하여 그 결론을 추출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첫째, 연구대상으로 삼은 원전(text)을 제대로 가려내고 바로잡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전의 여러 텍스트를 대조하여 교정본을 만들고 재편집한다. 둘째, 원전을 기록한 언어를 해설하는 일이다. 경전이 쓰여진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언어와 사회 계층에 따라 어떤 언어가 쓰여졌는가를 연구한다. 셋째, 원전 작가의 전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그의 생애에 미친 여러 요소와 사상과의 상호관계를 탐색한다. 넷째, 작가의 사상과 저술이 그 당시 다른 종교 사상에 미친 영향을 탐색한다. 다섯째, 모든 텍스트는 결국은 역사적· 문화적 상황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원전과 당시의 환경, 역사적 요소와 제 문화 현상과의 관련성을 고찰한다. 여섯째, 한 원전이 어떠한 사상적 계열이나 전통에 속하며 이와 유사한 텍스트와의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관습(convention)을 파악한다.5)

이와 같이 역사적 문헌비평은 원전의 제본에 대한 선택, 원전의 매재인 언어에 대한 해석, 작가에 대한 정보, 그 시대에 원전이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 그 시대의 문화, 관습과 원전과의 관계 등을 정확하게 고찰하여 원전의 성립상황과 가치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원전의 사상과 가치관이 당시의 문화 이념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는 것이다. 불교 문헌학의 학문전통도 이러한 인문학 일반의 비평이론과 일부 서구 해석학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불교경전 성립의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에는, 경전에 나오는 제명이나, 지명, 인명을 통하거나, 중국에서의 역경 연대에서 그 하한 연대를 통한 추리방법 등이 있다. 또한 고고학이나 금석학의 증거, 텍스트의 팽창과 축소과정, 다른 종교나 철학적 문헌에 인용된 경전명, 또는 불교의 여러 논서에 인용된 경의 이름이나 교리, 그리고 다른 경전의 주석서나 작가의 사상을 상호 비교하여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기존의 대승불설론에 대한 해석 태도와는 매우 다른 방법이었다. 《대지도론》 등에는 전통적으로 대승경전의 설법과 결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신화에 가까운 설명이 있었다.(T.25, 517a) 즉 초전법륜 이후 붓다가 영취산 등에서 보살과 성문을 대상으로 《반야경》을 설했으며, 신들은 이 제2 법륜을 기뻐하였다. 불멸 후 문수와 미륵 등이 아난다와 함께 대승경전을 결집하였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다고 하여 하늘의 여러 신들에게 이 경전의 호지(護持)를 위임하였다. 그러나 불멸 후 500년이 지나 정법이 사라질 위기가 닥쳤을 때 용수 등의 보살이 출현하여 이를 깊은 바다 등에서 꺼내어 세간에 펼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근대의 문헌학적 경전성립사 연구성과는 테라바다권(圈) 불교에서 주장하는 대승비불설론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는 동시에, 붓다의 재세시의 일대 교설로 보던 기존 대승불교의 신앙과 인식을 일거에 부정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대승경전의 위상을 삼장 가운데에서 경장(經藏)이 아니라 오히려 경의 해석서인 논장(論藏)의 성격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경전의 위상에 대한 단순한 문헌학적 접근법은 대승불교도의 신앙과 내적 종교체험을 간과한 외형적 접근방법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종교로서의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를 위한 심층 해석학적 접근방법이 요구되게 되었다.

3. 종교체험에 의한 심리학적 영감설(靈感說)

그램 맥퀸(Greame MacQeen)은 ‘대승불교에서의 영감에 의한 설법’이라는 글에서 대승경전의 본질적 개념을 ‘붓다의 언설(buddha-vacana)’과 ‘영감에 의한 언설(pratibha?a)’로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6)

실제로 현전하는 대부분의 불교경전은 붓다의 언설을 직접 기록한 경전과 붓다의 직접 언설이 아닌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후자의 경우를 유형화해보면, 사리풋트라와 같은 지혜제일의 제자가 붓다의 법문을 해설하는 설법, 아난다·마하카샤파 등 붓다의 직제자에 의한 설법, 그리고 창조적 영감에 의한 설법(inspired utterance, pratibha?a)7) 등이 있다.

빠알리 경전은 제자들에 의한 간접 설법이 전체 법문의 25%을 차지할 정도이다. 또한 경설 가운데 ‘영감에 의해 기록된 언설’은 붓다에 의해 초대받은 제자가 설하는 경우 또는 제자가 깊은 삼매의 경지에 있을 때 붓다가 나타나서 대신 설하기를 청하는 경우, 또는 붓다의 위신력으로 설하는 경우 등을 말하는 것으로, 《소품반야경》에 나오는 다음의 대화에서 그 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그대는 잘 설하는 자이니, 모든 보살을 위해서 마땅히 성취해야 할 반야바라밀을 설해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했다. “수보리의 영감의 설법은 스스로의 힘에서일까, 아니면 부처님의 신묘한 힘을 바탕으로 설할까?” 수보리는 사리불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차리고서 그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이 감히 설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부처님의 힘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 가운데서 배우는 이들은 모든 법의 참된 실상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를 증득하고 설하는 바가 있으면 모두 법의 참모습과 서로 어긋나지 않으니 이는 모든 법의 참모습의 힘 때문입니다.”8)

이 《소품반야경》의 경우는 붓다의 요청을 받아서 설한 것으로 붓다의 인가받은 언설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수보리는 자신의 설법의 권위의 근거가 제법실상과 상응하는 붓다의 법력에 의지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감히 설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법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부처님의 힘 때문이다. 제법의 실상의 힘은 부처님과 동일하기 때문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이 깨달은 법은 모두 법의 참모습과 서로 어긋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대승경전의 기원을 역사적 붓다가 아닌 오히려 보다 높은 단계의 불국토에서 현재 설법하고 있는 수많은 부처님들에 대한 관상(觀想) 체험과 여기에서 이루어진 제불과의 대화와 가르침에 감응한 것을 기록한 데 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대승경전 영감설’은 제자가 타방 세계의 부처님과의 만남을 기록한 경전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초기경전(Sam.yutta-nika?a II)에 목건련 등 삼명육통(三明六通)을 얻은 제자들이 붓다와 ‘마음에서 마음으로’ 상호 교감과 대화를 나눈 이야기에서도 그 전거를 찾을 수 있다.

라모뜨(E. Lamotte)는 대승경전의 형성을 심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관행자(觀行者)가 염불 삼매에 들어 여래를 만나고 거기에서 이루어진 대화의 기억을 되살려 경전으로 편찬한 것이 대승경전이라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대지도론》(T.25, p.276ab)에도 언급되고 있으며, 《반주삼매경》에도 정토에서 법을 설하는 아미타불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7일 주야로 명상 수행에 집중하면, 수행자는 붓다나 보살을 보게 되고, 보살은 삼매에 들어 이 세계에 있으면서도 아마타 여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설법을 실제로 듣게 된다고 설한다. 수행자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습득하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깊은 삼매에서 나온 후에도 자신이 듣고 간직한 법을 다른 이에게 널리 설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산티데바(寂天, Santideva)는 이러한 영감에 의한 법설이 정전으로 인정되려면 네 가지 요건을 구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진리와 상응, 정법과 상응, 번뇌를 단멸하는 기능, 열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반대로 윤회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번뇌를 많아지게 하거나, 법성(dharmata?과 모순되는 내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설이 실제 붓다의 언설과 똑같은 권위가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그 정법성 평가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9)

한마디로 ‘잘 설하여 진(subha?ita) 법은 붓다의 설법(buddhabha?ita)’이며(《Uttaravipatti-sutta》), ‘인간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은 모두 정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 경전관은 대승경전이 테라바다식의 ‘경전의 설자의 권위 중심’이 아니라10) ‘경전이 주는 깨달음의 기능에 중심’을 두는 해석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4. 정각을 성취한 대승행자의 성불 기록설

우에다 요시부미(上田義文)는 1982년에 출간된 《대승불교의 사상》이라는 책에서 ‘대승경전은 신앙의 산물이 아니라 정각을 증지한 경험의 산물’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발표하였다.11) 우에다는 종전의 불교에서 대승으로의 전개는 동질적·연속적 발전이 아니라 이질적·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보고, 그것은 깨달음의 탐구에 있어서 대승은 소승의 입장을 질적으로 넘어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대승경전은 경전 작가가 자신의 사상을 기술하면서도 자기 이름을 감추고 불설이라는 편집체제를 취하고 있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며,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밝히는 일이야 말로 대승의 특질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승교도의 생각으로는 불설이란 석가모니의 설을 의미하지만, 대승교도는 설자에 의해 불설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스스로 정각하여 그것을 설하고, 그 설이 불설로서 성립하고 있다면, 그것을 설하는 사람은 곧 부처이다(《대승장엄경론》 1:4)”라고 명확히 주장하고 있다.

우에다는 기무라(木村泰賢)가 “새로이 대승운동을 일으킨 사람들 자신이 불타의 진의(眞意)라고 확신한 사상을 불타에게 가탁하여 결집하고 더욱 종래의 성전 이상으로 불타의 진의를 대표하는 것이 대승경전이다(《대승불교사상론》)”라고 한 주장을 반박하면서, 스스로 각자(覺者)라는 자각을 갖지 않은 자가 깨달은 자인 붓다의 입장에서 쓰여진 대승경전을 자작하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승경전은 스스로 아직 불타에 이르지 못한 자가 불타의 진의라고 확신한 사상을 불타에게 가탁한 작품이 아니라 스스로 불타가 되었다고 하는 자각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깨달은 것, 즉 자기 경험을 사상으로 표현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성립의 역사는 ‘인간이 부처를 믿었다’는 역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부처가 되었다’는 역사라고 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 대승인들이 깊이 경청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대승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해야 할 종교이며, 대승경전도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부처라는 자각을 한 이들의 상호 인가와 감응으로 그 권위와 가치가 스스로 인정되어 왔듯이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에다 요시부미는 “일반 다신교에서는 신들이 신앙의 대상이지만 대승불교도에 있어서의 붓다는 참된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이며, 절대로 객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에 눈뜨지 못한 사람만이 그것을 객체화한다. 친란(親鸞)이나 연여(蓮如)의 불교에서도 아미타불의 본질은 예배의 대상이 아닌 참된 자기의 주체라는 대승의 기본 특징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석가모니불 이후에도 경전은 늘 새로 설해져야 한다는 점을 당연시하였다. 대승경전이 장기간에 걸쳐 편찬된 것은 곧 다수의 부처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부처님들의 설법은 정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불설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대승불설론 확립을 위한 역사적 논증 시도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이 역사적으로 대승비불설론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에 반하여, 몇몇 학자들은 대승불설론을 역사적·교리적으로 논증하려는 시도를 계속하였다. 마에다 에운(前田慧雲, 1857∼1930)은 1903년에 《대승불교사론》을 저작하여 대장경에서 대승의 가르침이 역사적 붓다의 직접적 가르침임을 다음과 같이 논증하고자 하였다.

첫째, 근세의 대승비불설론자들의 주장은 거의 보적(普寂)의 《현양복고집(顯揚復古集)》에 기록된 바와 대동소이하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대중부에서 화엄·반야·유마·승만·열반·금광명경 등의 대승경전을 전한 이들이 있으며, 다문부에서도 대승의 깊은 뜻을 주장하며 이에 참여하였으며, 또한 상좌부에서 분파된 법장부나 경량부 등의 부파불교에서도 대승경전이 함께 전해 왔으나 여래의 비밀장의 깊은 뜻을 드러내려고 수라의 굴이나 철탑 등에 감추어 두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마에다는 이와 같이 전해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당시의 사정을 추측하여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려고 했으나 대승비불설을 반증하기에는 미흡하였다.

둘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설한 것은 모두 모두 불설”이라고 본 계정(戒定)의 주장도 결국은 대승비불설과 다름이 없다. 계정은 《오교장막비록(五敎章큱秘錄)》에서 “부처란 깨달음이다. 불설이란 진리를 깨달은 언어이기 때문에 불설이라고 하는 것이지, 싯다르타의 혀를 굴려 나왔기 때문에 불설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의 말이란 곧 부처의 뜻이다”라고 단언하며, “대소승의 경전도 석가모니불의 자설이 아니고 교화를 받은 제자들이 각각 스스로의 깨달음을 결집한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셋째, 한역경전 가운데 보이는 불멸 연대와 마명, 용수 등 대승 논사들의 출생 연대, 무착의 저술인 《대장엄론》과 《현양성교론》의 대승불설론, 철탑에 비밀경전을 보관하던 습관 등을 들어 대승비불설론자들이 대승경전이 마명이나 용수의 위찬이라는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불멸 400년대 이전의 사정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함을 마에다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며, 한역경전에 나타나는 사실만으로는 대승경전이 불설임을 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넷째, 부처님 당시의 수론파는 물론 승론파, 자재천파, 아뢰야 외도 등의 주장이 대승과 매우 유사하였으며,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여러 사상과 종교를 다 공부한 바 있으므로 그의 가슴속에는 소승의 교리뿐만 아니라 대승의 사상도 축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부처님이 소승에 치우쳐 대승의 교리를 전혀 설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인도의 사상계를 지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도 그 영향을 받아 대승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섯째, 한역 《증일아함경》에도 대승의 교리가 설해지고 있으며, 제1차 결집 때에도 주장(呪藏)이나 보살장(菩薩藏) 등 대승경전을 결집했다.
여섯째, 부처님의 설법은 듣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설한 방편설이므로 부처님이 대승을 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마에다는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을 논증하여 역사적 사실로서 대승경전이 부처님의 친설임을 증명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역사적으로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마에다 이후에도 대승불설론을 논증하려는 시도는 특히 정토종 계열의 학자군에서 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시도보다는 오히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유사성이나 그 발달 과정에 대한 탐색이나 대승경전의 성립사에 대한 역사적, 문화사적 연구에 관심의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6. 역사적 비불설론과 사상적 불설론의 절충

명치(明治)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서구에 유학하고 돌아온 학자들의 영향으로 불전의 성립과 발달과정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려는 풍조가 생겼다. 무라카미 센조(村上專精, 1851∼1921)는 1901년에 출간된 《불교통일론》 〈제1편 대강론〉에서 불타는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뿐이며, 정토교에서 믿는 아미타불은 추상적인 이상상일 뿐 실체적 존재는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대승비불설이 옳다고 단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정토교 신자들에게 치명적인 이론이었다. 그 결과 《불교통일론》은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여, 무라가미는 스스로 승적에서 탈퇴하였다. 그 후 《불교통일론》에 대한 비판서가 여러 권 출간되었다.

무라카미의 대승비불설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대승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은 역사적 석가모니불이 아닌 이른바 법성신(法性身) 이론에 기초한 초월적 부처이다. 둘째, 대승경전에 나오는 문수, 보현, 미륵 등의 여러 보살들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대승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관념화한 것이다. 셋째, 대승경을 바다 속의 용궁이나 남인도의 철탑에서 꺼내왔다는 신화적 경전 기원설을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대승은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하였다.

무라카미는 이와 같이 역사학적으로 대승비불설을 주장하였으나 교리적으로는 대승의 가르침이 붓다의 종교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역사적으로는 대승비불설을 주장하면서도 교리적으로는 대승불설론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역사적 대승비불설은 대승 신봉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충적 결론은 대부분의 학자와 대승불교도의 심정적 동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는 것 자체를 학계의 상식에 어굿나는 것으로 보는 풍조가 지배하게 되었다.

7. 현대 학자들의 경전해석학

현대 불교학은 경전학의 제 문제를 역사와 문헌학적 접근보다는 해석학적 관점에서 탐색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는 경전해석학의 근본 문제가 현존하는 여러 경전과 전통간의 정통성과 그 권위에 대한 갈등과 대립의 문제에 있으며, 또한 이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해석학12)은 기본적으로 경전과 그 언어의 본성과 기능에 대한 해석 원리와 이해 방법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불교해석학의 기능은 이해를 통한 깨달음에 있으며, 원전에 내재하고 있는 숨은 의미를 현재의 지평에서 재해석하는 창조적 작업이다. 여기에서 검토해야 할 주제들은 경전의 결집의 성격, 성전과 일반 종교 문헌과의 차이, 경전해석의 방법과 원리의 발전과정, 정법의 기준, 해석원리가 특정 종파나 전통에 미친 영향, 삼장(三藏) 안에 숨겨진 해석이론의 체계화 등이 있다.

1949년 라모뜨(E쳓ienne Lamotte)는 ‘불교해석학’이라는 용어를 ‘불교의 문헌비평과 해석’13)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하였다. 그 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개념과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1978년 로버트 써먼(Robert F. Thurman)은 해석학을 “종교 공동체로부터 성스러운 권위를 부여받고 있는 전통적 정전(正典)에 대한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의 작업 또는 성스러운 교리에 대한 해석 과학”14)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루이스 고메즈(Luis O. Gomez)는 대승불교의 전개 이후 찬술된 방대하고 다양한 사상과 주제의 경전과 이에 대한 복잡한 역사적 해석 양상에 대해 ‘해석학적 다원주의(hermeneutic pluralism)’라고 명명한 바도 있었다.15)

도날드 로페즈(Donald S. Lopez, Jr)는 1884년에 개최된 학술회의 논문을 모아 《불교해석학(Buddhist Hermeneutics)》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16) 여기에는 전술한 라모뜨의 글의 번역으로부터 시작하여, 테라바다·대승·금강승·중국불교·선·일본의 진언종과 정토종 해석학 12편의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현대 불교해석학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주제는 방편설, 이해와 수행의 관계, 해탈과 종교적 구원론 등이며, 이외에도 불교의 역사의식, 서구 해석학과 불교주석학(exegesis)과의 관계 등이었다. 최근 서구학자들의 연구 주제를 보면17) 주로 불설(Buddha-vacanam.)의 개념과 정통성 문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 석가모니 설법으로서의 ‘삼장(Tipit.aka, Tripit.aka)의 성격, 테라바다의 경전관과 해석학,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성립되기 시작한 불전문학, 진경과 위경의 문제, 대승의 경전언어관, 성전의 권위와 정통성의 결정 기준에 관한 대한 논쟁 등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반야경》의 출현과 함께 성립된 대승불교에서 경전해석학의 문제 중 대승비불설 논쟁을 비롯한 경전의 정통성 문제와 종파불교적 교판사상(敎判思想)의 대두로 전개되기 시작한 요의경(了義經 ; N沖ta?tha-su?ra)과 미요의경(未了義經 ; neya?tha-su?ra) 논쟁 등이 있다.18) 특히 테라바다 경전 중 붓다의 반권위주의적 태도와 자유롭고 이성적인 진리 탐구 입장을 가르치고 있는 《칼라마경(Ka?a?a-sutta, 伽藍經)》을 중요시하게 되었다.19) 이러한 스승과 경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대한 경고와 함께 스스로 진리를 판단해야 하는 자기 책임성의 가르침은 테라바다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에서도 중요한 경전해석의 기준이 되었다.

8. 창조적 대승경전 해석학의 방향

대승인들은 붓다의 역사적 친설로서의 불설(Buddha-vacanam.)의 개념보다는 내적 깨달음의 실체인 법(Dharma)의 본성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현대 학계에서 대승경전은 역사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사상적으로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설법을 더욱 심화시켜 표현한 경전이라는 점에서 그 진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대승경전을 신봉하는 불교도들은 역사적 붓다가 스스로 설한 법 뿐만 아니라 제자의 설법, 붓다의 법력과 영감에 의한 설법(pratibha?.a, inspred speech), 천인과 성인들의 설법도 동등하게 불설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승에서의 불설의 개념은 테라바다의 해석과 판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승의 다불사상과도 관련 있으며, 깨달은 이의 언어는 다 불설로 인정하는 열린 불설관에 입각하고 있다.20) 이러한 접근방법은 깨달음의 영원한 현재성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의 정신과도 일치되는 것이다

대승적 경전관을 정리함에 있어서 대승의 모체인 《반야경》의 성격과 본성을 명료하게 통찰할 수 있다면, 그 후 찬술된 대승경전의 정통성이나 정법성에 대한 시비는 자연히 정리될 것으로 생각된다. 《반야경》의 해석학적 본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반야경》은 경전의 의미를 경계가 없는 지평까지 열어 놓았다. 즉 대승경전은 한계가 없고 머무르지 않는(apratisthita) 텍스트이다. 닫혀지고 얼어붙은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경전은 깨달은 이에 의해 끊임없이 편찬될 수 있다.

둘째, 대승경전은 끝없이 열려 있으므로 경전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다. 그 경전들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도 유효하고 보편적이다. 이러한 경전의 개념은 불성이나 우주 자체를 경전으로 보는 경전관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셋째, 대승경전에서 작자(作者)와 실제 설자(說者)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대승경전은 역사적 붓다가 설하지 않았으며, 대승경전의 작자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21) 그러나 경전 작가들은 붓다의 깨달음에 자신의 언어를 회향하고 있는 것이다. 《반야경》은 붓다의 참된 본성인 법신에 의해 설해졌으며, 부처님과 그의 수많은 깨달은 제자들도 법을 설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은 역사적 붓다의 언어와 동일한 경전적 권위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대승경전의 궁극적 권위와 가치는 경전을 설한 자가 누구인가 보다도 그 경전이 주는 효용성에 있다. 즉 붓다의 설법이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 아니라 모든 진리의 말씀은 곧 붓다의 설법이라고 본다. 대승경전은 누가 그것을 설했는가에 그 권위의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이 종교적 해탈과 깨달음에 주는 효용성에 그 궁극적 권위가 있다. 붓다의 설법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로 가는 길과 방법을 가르친 것이며, 모든 경전적 진리는 상황적 진리(contextual truth)임을 유의해야 한다.

다섯째, 경전은 듣는 자를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대승경전의 작자는 읽는 독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 즉 독자가 바로 경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정법성에 대한 최종적 판단도 역시 각 개인의 깨달음에서 찾아야 되는 것이다.

여섯째, 경전적 언어는 그 본성상 실체(svabha?a)가 없는 공한 것이다. “여래는 어떤 법(Dharma)도 어느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다”22)는 《중론송》의 선언이나 ‘설하지 않는 법이 곧 바로 여래의 설법’이라는 《반야경》의 논리는 대승의 모체인 《반야경》을 절대 진리를 간직한 법장으로 집착해서는 아니됨을 교시하고 있다. 여래가 깨닫고 설한 법은 불가득(不可得)이며 또한 불가설(不可說)이므로, 취할 수 없고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 대승경전의 본성에 대한 해석학적 탐색을 기초로 하여 현대 불교를 위한 창조적 대승해석학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경론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불교에 있어서 해석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는 ‘바샤(Bha?hya, 논·소 등의 주석)’라는 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Bha?hya’라는 용어는 ‘해설작업(an explanatory work)’ ‘해설(exposition)’ ‘특정 경전에 대한 주석(commentary on tech-nical su?ra)’ 등의 의미가 있다. 즉 어떤 사물이나 텍스트에 대한 언어적 설명이나 해석을 의미한다. ‘바샤’라는 말에는 해석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언제나 과거에 생각되어온 것에 대한 ‘재사유(rethinking)’이며 ‘재충당(再充當)’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론의 해석도 언제나 현대 서양해석학에서 말하는 선이해(先理解)와 일련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 조건되어질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모든 해석은 세간 언어와 전통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진리는 세간의 전통이나 언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간 언어라는 형태로 나타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교도 역사적 종교의 하나로서 사상의 역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해석학에서 사상의 역사성 문제에 대한 고려는 모든 해석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방법과 세간적 진리로의 회귀(Sam.vr.t.i-ma?ra)의 중요성과 방편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불교에서 진리와 방법의 문제를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는다. 경전 언어에 있어서의 진리는 방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붓다의 가르침은 단지 방법(ma?ga)일 뿐이기 때문에 진리는 방법 그 자체에서 찾아질 수 있다. 불교해석학은 현재의 지평에서 과거의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창조적 해석학의 길을 의미한다. 본래 경전은 어떤 특수한 상황이나 맥락 속에서 설해진 것이므로 경전적 진리는 상황과 맥락적 진리(contextual truth)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셋째, 무한히 열린 자유로운 해석 정신이 필요하다. 대승불교의 반야공의 해석학은 끝없이 열린 마음의 해석학이며 무한 해체를 통한 채움의 해석학이다. 길장(549∼623)은 모든 불교 경론의 대의가 “마음에 집착이 없고 머무룸이 없음(心無所着 無住心)”에서 나오는 ‘무득정관(無得正觀)’의 통찰에 있음을 밝혔다. 길장은 열린 자유의 해석 정신을 네 가지 해석 방법(四種釋義)에서 제시한 바 있다.(《二諦義》 T.45, 95a) 그것은 명칭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단계(依名釋義), 숨은 의미에 대한 탐색의 단계(理敎釋義), 비교와 대비를 통한 명확한 의미의 파악 단계(互相釋義), 원융의 의미를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활용하는 단계(無方釋義)이다.

참된 대승의 정신은 경전이 결집되기 전의 붓다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이기적 종파주의나 편협한 진리 주장에서 벗어나 종교와 불교라는 개념에서도 벗어난 원융무애한 불심으로의 회귀에서 참된 대승경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조대사 혜능(慧能)은 “보리자성이 곧 경전”임을 일깨워 주었으며, 일본 조동종의 개조 도원(道元)은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곧 경전이다. 경전은 모든 시방 세계이니, 경 아닌 곳이 없고 경 아닌 때가 없다” 하였다. 창조적 경전해석학은 이와 같이 무한히 열려 있는 경전을 열고 듣고 깨닫는 데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미국 템플대 대학원 종교학 박사.현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시인. 세계불교도 우의회 부회장. 저역서로 <불교와 종교철학>,<해조음>,<경전으로 본 세계종교><한국종교와 인격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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