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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불교학의 연구방법 추이 / 심재관
[ 기획 ] 서구불교의 가능성과 과제
[11호] 2002년 09월 10일 (화) 심재관 phaidrus@empal.com

1.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구미의 연구 경향을 말하기에 앞서서 한두 가지만 먼저 의문시해보고 지나가자.

첫번째로, 이러한 외국의 연구 경향에 대한 스케치가 왜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외국의 스콜라쉽을 선망하는 일부 고립된 한국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일까? 그래서 타산지석의 거울로 삼자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한국 불교학은 자신만의 연구 전망을 갖지 못한 것일까? 나는 적어도, 학문의 방법이란 늘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쓸개 빠진 말을 더 이상 한국의 불교학자들이 반복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두번째로, 나는 어떤 논문에서, 불교에 대한 구미의 특정한 연구방법은 대체로 (특히 미국에서는) 인접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기생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1) 다시 말해 불교를 둘러싼 인문과학들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는 것이며, 반대로 불교가 인문과학에 새로운 연구방법상의 탄생을 유도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국내 불교학자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국내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불교학에 대단한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아카데미 밖은 물론이고 실제로 아카데미 안에서조차 불교의 입지는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서구 불교학의 방법들은 왜 기생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위의 두 사실을 고려하면, 늘 우리의 전망은 우울해 보이지만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불교 연구 방법이 제대로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연구 방법과 풍토를 일구어낼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 방법과 풍토가 완전히 전통적이고 복고적인 것이 되었건, 아니면 근대적인 것과의 절충을 이루건, 한국의 불교 연구가 구미의 아카데미처럼 인문학의 실험실로 전락한다면 신앙으로서의 불교와 점점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카데미에서 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밴댕이가 수미산을 삼키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최근 수십년간 구미의 불교학 연구(특히 북미지역)는 가히 폭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 그 연구들을 지역이나 연구자, 혹은 연구기관의 특성에 따라 기술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서지적 정보를 제공하는 의미 외에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아래에 기술한 연구동향은 불교 연구의 방법상 다소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 뿐이며 그 선택은 필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의 서술은, 주로 학자들의 연구 경향을 움직여 왔던 조건들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의문점에서 시작하였다.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불교학을 지켜본다면, 과연 서양의 학문 세계에서 불교학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대답을 스스로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2. 200년의 불교문헌학, 그 후로도 영원히

먼저 전통적인 불교학 연구 방법인 문헌학적 경향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 가보자. 1830년대를 불교학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은 전문적 연구자에 의해서 불교자료가 특정한 방법에 의해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830년대에 뷔르누프가 네팔의 싼스끄리뜨 필사본을 수집, 판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뷔르누프는 서양의 정통적인 문헌학적 훈련을 받은 학자이며, 그의 후학들에 의해서 불교문헌학은 약 100년 후에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된다.

불교문헌학(Philologie Bouddhique)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가장 기본적이고 정통적인 불교 연구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영역은 주로 고문헌에 대한 수집과 편집, 판본 연구, 문자 해독과 번역, 또는 주석과 해석 등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교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불교문헌학자를 일컫는다. 이러한 전통은 소수의 독특한 학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유럽 대학의 불교 관련 연구소에서 지켜지고 있다. 이 연구 방법의 특징은 특정한 단어와 문장들이 갖는 고유한 의미의 드러남에 대한 확신하에 그것을 해명하는 일이며, 그 외의 사변적 방법은 가급적 권장되지 않는다.2)

이 연구상의 특징은 이러한 방법이 잘 구현되는 구미의 대표적 불교 연구지나 동양학지 속에서 잘 드러난다. 가령, 미국동양학회지(JAOS: Journal of American Oriental Society)나 국내 어떤 대학도 구입하지 않는, 그러나 매우 중요한 비인 남아시아 연구지(WZKS: Wiener Zeitschrift fu촵 die Kunde Su촥asiens), 역시 국내 대학 내에서 쉽사리 찾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불교 연구지, 국제 불교학 협의회지(JIABS: Journal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인도-이란 연구지(JII: Journal of Indo-Iranian), 그리고 인도철학지(JIP: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등이 그 예에 속한다.

불교의 문헌학적 연구 대상은 따라서 불교 문헌에 관한 것이라면 특별히 주제나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불교 연구자들의 소양인 셈이다. 이러한 불교 문헌학적 방법의 커다란 전환점은 2차 대전 후에 도래한다. 그 전환은 물론 인접 인문학의 변화에 힘입은 것이며 이러한 불교 연구 내의 변화는 다른 방법의 탐색과 실천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 변화의 결정적인 동인은 철학과 언어학, 역사학과 사회학, 문학비평 등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파급된, 언어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소위 언어학적 전환(Lingusic Turn)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불교 문헌학적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진척을 몇가지 상기해 보자. 무엇보다 세기 초에 이루어진 돈황 문헌 발굴로 급진전된 초기 선종사의 연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돈황 17번 굴에서 발굴된 문헌들로 말미암아 선의 역사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정 선사의 가르침과 행위의 규범, 수행의 문화적 변형 등과 같은 다양한 연구 주제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연구는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다소 시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는데,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전후해서 거의 절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서양학자들의 연구 일부는 돈황 문헌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그에 대한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의 작업이 서구 세계에 소개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가령, 맥래(McRae)의 대표작 《북종선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이나 포르(B. Faure)의 《중국불교의 정통에 대한 의지》3) 등은 이러한 여러 문헌학적 연구 채널들이 교차되어 빚어낸 산물들이다. 80년대에서 90년 초까지 폭발적으로 등장한 동아시아 불교 연구, 특히 선종사 연구의 방법적 특색은 별도로 취급할 필요가 있으므로 다음의 기회로 미룬다. 이 글에서는 단지 연구 방법상의 특색만을 스케치하기로 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네팔-독일 필사본 보존 계획(NGMPP: The Nepal-German Manuscript Preservation Project)만큼이나 중요한 문헌학적 기초 작업도 다시 없을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국가적 사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30년이 경과되었으며, 불경을 포함한 주요한 네팔의 필사본을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1차 목적은 종결되었다. 장기간의 활동으로 약 18만 종의 필사본을 촬영, 500만 매의 필름 폴리오를 작성해냈다.

현재는 이를 토대로 온라인으로 공급할 수 있는 2차 사업이 진행중이다. 네팔-독일 필사본 보존 프로젝트는 두 명의 독일 인도학자, 볼프강 보아그(Wolfgang Voigt)와 클라우스 야너트(Klaus L. Janert)가 발의하여, 1970년 2월 최종적으로 독일 동양학회와 네팔 정부 사이의 체결하에 성립되었다. 이후 작업은 현재 함부르크 대학의 인도학-티베트학 연구소에서 웨즐러(A. Wezler) 교수의 지휘 하에 진행되고 있다. 불교학자뿐만 아니라 인도학자들에게도 이 필름-필사본들은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 목록으로 남아 있다.

사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루어진 불교문헌학의 영역은 종교사나 교리 해석보다는 사본들의 교정과 번역에 치중해 있다. 이러한 연구 영역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학자는 단연 워싱턴 대학의 솔로몬(Richard Solomon)으로 보인다.

카로슈티 문자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그는 1994년 브리티시 라이브러리(British Library)로부터 필사본 해독을 의뢰받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필사본을 발굴하게 된다. 사해 두루마리 발굴에 비견되는 이 발굴로 말미암아 그는 미국 내에서 대중적인 조명도 받게 된다. 간다라의 불교 문헌은 1962년 존 브로(John Brough)가 보고한 《간다리 담르마빠다(Ga?dha?沖 Dharmapada)》4) 이후 새로이 발굴된 적이 없었다. 브로의 해독 결과, 그가 번역해 낸 것은 A.D. 1세기 경 간다리어(語) 법장부(法藏部) 경론서(經論書) 필사본들로서, 간다라 불교에 끼친 법장부의 영향을 더욱 선명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간다라가 서양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문화 교역 루트였기 때문에 법장부가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또한 역경사(譯經史) 연구자들은 전부터 초기 중국 불전들의 일부가 범본(梵本)에서 옮겨진 것이 아니라, 간다리어 불전에서 옮겨졌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왔었는데, 이러한 주장은 이제 하나의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출판된 초기 불교 필사본 프로젝트5)의 결과물은, 1999년 솔로몬이 쓴 《간다라 출토 초기 불교 필사본》과 2000년 번역한 《간다리본(本) 코뿔소 경(經) :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필사편(筆寫片) 5B》 등이 나와 있다. 초기 불교 필사본 프로젝트는 주로 워싱턴 대학의 불교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인도불교 연구가로 잘 알려진 그레고리 쇼펜(G. Shopen)이나 콜레트 콕스(C. Cox)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출간 예정되는 문헌들은 《(3개의) 간다리본 증일아함 유형(類型)의 경전들: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筆寫片 12, 14》, 《간다리본 법구경과 전생담 :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필사편(筆寫片) 16, 25》, 《간다리본 아비달마 문헌 :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필사편(筆寫片) 28》, 《간다리본 아나와따쁘따》 등이 있다.

다시 문헌학적 방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이 단락을 맺도록 하자. 불교학자들은 이미 이 학문의 역사를 통해, 불교학의 전통적인 고유 영역과 방법적 특성이 문헌학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불교학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문헌학적 전통에 대한 반성과 회의는 계속되고 있다. 1995년 《국제 불교연구 협의회지》6)에 실린 기획 논문들은 이러한 학자들의 불교학 연구 방법상의 고민들을 잘 보여 준다. ‘방법에 관하여(On Method)’란 타이틀 하에 올라온 논문들의 고민은 특히 문헌학적 방법과 철학적 방법 사이의 간격 조율에 관한 것이었다.

비교철학적 방법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세이포르 루에그(Seyfort Ruegg)의 논문과, 문헌학적 방법에 훨씬 동조적인 루이스 고메즈(Luis Gomez)와 톰 틸레만(Tom J. F. Tillemans), 그리고 이들에 맞서 방법론적 혼종(heterogeneity)이야말로 가장 지속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호세 까베손(Jose Cabezon)과 헉슬리(C. W. Huntington, Jr.)는 마치 유럽 구세대 불교학자와 미국 신세대 학자들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듯 하다.

유럽의 동양학 전통이 문헌학의 구태(舊態)한 안락의자 속에서 쇠락해가는 동안, 그 학문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고 시대의 다양한 요청에 귀기울였던 미국의 불교학적 연구는 다양한 응용불교학을 개척해가고 있다.

3. 사회인류학적 불교 연구

이제 문헌학 이외에, 다른 방법적 경향들을 생각해보자. 2차 대전 후, 제3세계는 정신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자치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종종 남아시아 국가와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 문제가 되곤 했는데, 소수 민족들은 국가 운영을 맡게 된 민족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가령, 소수 힌두-따밀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운영권을 장악한 불교-싱할리족에게 정치적 연방 형태 요구나 아니면 분리주의 노선을 선언할 것이다. 이것은 스리랑카 같은 나라의 불교도들이 비폭력을 존중하는 교리 속에서 어떻게 승려 정치(Bhikkhu Politics)를 자칭하며 정치 폭력에 참여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특히, 스탠리 탐비아(Stanley Tambiah) 같은 사회인류학자는 이러한 불교와 정치적 폭력 간의 조우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를 오랫 동안 탐구해 왔다.7) 이러한 불교의 사회인류학적 접근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학 바깥에서 불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원인 또한 정치사회적 변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적 관심을 좀더 불교학 가까이에서 보여준 것은 스리랑카 출신의 오베예세케레(Gananath Obeyesekere)와 곰브리치(Richard Gombrich)의 연구다. 물론 이들의 관심은, 경전적 불교와 현실의 불교 사이의 괴리 탐색이라는 사회인류학적 공통 분모를 제외한다면, 탐비아의 그것과는 현저히 다르다. 탐비아가 정치와 종교의 두 항목을 잡고 작업했다면, 오베예세케레와 곰브리치는 종교 내의 두 항목, 세속적 민간신앙과 불교의 두 항목을 잡고 이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리랑카 불교와 종교 연구에서 이미 탁월한 연구를 보여준 바 있는 곰브리치는 이미 1971년 인류학자 오베예세케레의 영향을 받아 스리랑카 현장 연구를 자신의 박사 논문 《계율과 수행》8) 속에 담아낸 바 있다. 이 연구에서 벌써 그는 후기 저작에 더 구체화되고 있는, 불교도들의 민간 정령신앙(spirit religion)과 불교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의 이러한 연구 주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는데, 문헌 속에서 규명되는 불교의 정체와 실제의 삶의 현장 속에서 관찰되는 불교인의 신앙 형태는 너무나 현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불교의 정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제가 된다.

후기에 이르러도 곰브리치의 저서 속에는 이 주제가 계속 따라다닌다. 이 간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곰브리치는 불교의 사회사, 또는 불교에 대한 사회사적 관념을 드러낸다. 1988년에 연속적으로 출간한 《상좌불교(Therava?a Buddhism)》9)와 《변모한 불교(Buddhism Transformed)》10)는 서로 보완적인 짝을 이루는 책이다. 《상좌불교》를 통해 곰브리치는 인도에서 스리랑카까지 2천5백 년 간의 불교사를 몇 개의 중요한 전환국면으로 나누어 전체적으로 개괄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전환기를, 최근 마지막 150년 간 스리랑카 불교가 자신들의 정체를 재설정하던 시기로 잡는다. 《상좌불교》는 마치 《변모한 불교》의 장황한 서문과 같이, 현재 스리랑카의 ‘변모한 불교’를 이야기 하기 위해, 불교의 긴 역사 속에서 신앙과 수행의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조망을 던지고 있다. 이 역사적 조망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은, 공동체적 종교(communal religion)와 해탈론(soteriology)이며, 스리랑카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민간 정령신앙과 불교는 이 두 개의 키워드가 가리키는 역할을 제각기 분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스리랑카 불교인들의 종교적 삶 속에서, 공동체적 종교의 역할은 민간 정령신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탈속적인 구원의 희구는 경전이나 승가에 부과된 가르침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음을 밝힌다. 간단히 말하자면, (적어도 스리랑카)불교의 사회사, 스리랑카 불교인들의 신앙과 수행은, 어떤 특정한 계기를 만나, 이 두 프로그램이 서로 얼마만큼 떨어지느냐 또는 서로 얼마만큼 수용하느냐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변모한 불교》에서 이러한 조망은, 민간의식의 현장 연구와 사찰 내 만신전(萬神殿)의 변모를 관찰하면서, 매우 구체적인 증거들을 얻고 있다. 적어도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스리랑카 불교의 변동은 150여 년 전에 일어났다. 공동체적 종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불교는 영국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경전을 통해 구성된 윤리적 체계로서의 불교, 즉 프로테스탄트 불교(Protestant Buddhism)를 이루어내면서 국가나 사회집단을 위한 역할의 일단(즉 공동체적 종교의 역할)을 접는다.

오베예세케레와 곰브리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청교도적 불교는 다시 최근 스리랑카 도심의 불교인들 사이에서 그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것은 스리랑카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불교가 갖는 사회적 의미가 다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변화를 ‘변모한 불교’ 또는 ‘전통의 날조(creation of tradition)’(홉스봄의 용어)라고 표현한다. 이 변모한 불교란 소위, 도심의 중상층 불교도들이 이끌어왔던 프로테스탄트 불교 내에 다시 민간신앙이 흡착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다소 설명이 번다해졌지만, 우리는 두 학자의 논의를 섬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불교계 일각에서 기복신앙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이 문제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복신앙과 불교의 정체성의 문제는, 곰브리치나 오베예세케레가 취급한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굉장히 포괄적인 논의이다. 두 학자가 단지 한 집단의 신앙과 수행의 변동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도 꽤나 긴 수고가 필요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탐비아와 오베예세케레, 그리고 특히 곰브리치는 유럽의 다른 불교학자들과는 또 다른 방법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곰브리치에게는 그가 역사나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몇몇의 사상가로부터 받은 흔적이 뚜렷하다. 특히 그와 오랫 동안 교분을 쌓았던 철학자 칼 포퍼는 물론이고, 클리포드 거츠와 오베예세케레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 불교기호학의 가능성은 쇠진하는가

이제 약간 변방의 사람들을 기억해 보자. 70년대 냉전체제 하의 일부 소련 학자들이 학문의 자유를 찾아 미국과 유럽으로 이적한 적이 있다. 어떤 이는 사고사로 죽었으며, 어떤 이는 아직 대학 내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이 가운데는 매우 유능했던 동양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당시 동유럽과 소련에서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던 기호학적 방법을 특정한 문화 해석에 적용하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질버만(D. Zilberman)과 피아티고르스키(Piatigorsky), 그리고 보리스 오귀베닌(B. Ogibenin) 등은 교통사고로 보스톤에서 사망한 질버만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대학에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방에서 일구어낸 이들의 연구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에서 진행하던 작업과는 벌써 오래전에 결별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단지 이들의 논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불교학 잡지가 아닌 〈세마이오티카(Semiotica)〉의 해묵은 과년호(過年號)뿐이다. 문헌학적 전통이 강한 유럽 불교학계에서도 이들의 방법적 독특함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한다.11)

이들 가운데 주로 불교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피아티고르스키는 현재까지 런던대학의 SOAS(School for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 있지만, 필자의 독서가 게으른 탓인지, 그가 1984년에 내놓은 《불교의 의식철학(The Buddist Philosophy of Thought)》12)을 발표한 이후로는 몇 개의 논문 밖에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그의 독특한 접근 방법은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박노자(V. Tikhonov)는 언젠가 러시아 불학 연구 현황을 소개하면서 피아티고르스키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는 피아티고르스키가 불교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을 시도했다고 적고 있다.13) 그러나 담마상가니(Dhammasan?an.i)의 다르마 개념 분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피아티고르스키의 주저 《불교의 의식철학》을 살펴보면 그가 심리주의적 연구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상학과 기호학의 방법을 부분적으로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차적으로 그가 다르마를 일종의 의식 상태로 파악하면서, 적어도 그는 의식 주체와 의식 작용에 대한 심리주의의 설정으로는 불교의 다르마 이론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메타-심리학(meta-psychology)을 제안한다.

피아티고르스키와 질버만의 연구는, 특정한 문헌을 언어학적으로 고증하는 단계와는 멀리, 문화기호학을 토대로 불교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불교적 사유 형태의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그려보려는 시도가 앞서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들의 방법론 또한 매우 혼종적이어서 이들의 주장을 따라가기도 사실 벅찰 때가 많다. 특히 질버만의 유고집 《인도철학에서 의미의 탄생(The Birth of Meaning in Hindu Thought)》14)은 내가 읽어 본 가장 난해한 인도철학 이론서이자 영어 서적이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론적 영감과 통찰이 서구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이들의 독특함은 서유럽 중심의 문헌학적인 불교학에서 밀려난 것일 수 있다.

박노자의 보고에 따르면, 피아티고르스키의 불교론은 렌나르트 먈(Linnart Myall : 타르투 국립대 교수)이 계승하고 있다. 그의 방법론이 서유럽 학자나 미국 학자에 의해서 평가되거나 적용되는 사례를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15)

5. 탈식민주의적 성찰의 아이러니

이제, 보다 넓은 비평이론 속으로 옮겨 가보자. 그 가운데에서 불교학 속의 탈식민주의 이론을 고려해 보자. 탈식민주의 담론은 몇 가지 아이러니를 갖는다. 탈식민주의 이론들은, 그 내용의 대상이 성(性)이든지, 제3국가나 동양이든지, 또는 소득계급이든지 간에, 주변화되거나 억압된 타자와 그러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주체의 권력 체계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그 이론들은 주로 권력 주체에 대한 관념의 형성 과정이나 규율 체제, 제도 등의 해체나 비판적 검토를 이끌어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성찰과 실천 자체가 또 다시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이론이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성찰마저 아시아 경영에 참여했던 유럽과 극히 자본화된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 내에서 주로 생산·소비되며 다시 그러한 이론이 동양에 수입 소비되어 그 이론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다시 중심과 주변부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또한 스피박이나 사이드가 제3세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이 제1세계의 대학 내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역설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구미의 (특히 미국내) 불교학계에서 진행된 탈식민주의적 논의들을 주목해 보자. 학자들 대부분은 그러한 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붓다의 큐레이터들(Curators of the Buddha: the Study of Buddhism under Colonialism)》16)을 꼽을 것이다. 1995년에 발간된 이책은, 불교학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동양주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저명한 불교학자들이 스스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환기력이 뛰어나며, 실제로 그러한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학자들은 뚜찌(G. Tucci)와 스즈키(D. T. Suzuki) 같이 저명한 학자들의 스칼라쉽 속에서 파시즘과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찾아낸다. 뚜찌는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행한 다수의 강연과 잡지 기고를 통해 군국주의 이념 형성과 전파에 복무하였음이 드러났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 강화라는 다분히 이념적 태도를 보여준 니시다와 스즈키의 선(禪)해석에 동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승(禪僧)과 사무라이 사이의 유사성, 선(禪) 수행이 보여주는 즉각적인 자발성을 군사적으로 변용시킨 것에 대한 것에 기꺼운 동감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위계적이고 통합적 전체를 추구하는 뚜찌의 신비주의가 일본 군국주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을 뿐 아니라 무솔리니 실각 이후에도 군사적 미덕을 찬미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유사한 시기에 불교학자들은 니시다를 비롯한 교토학파의 사상이 함축하고 있는 군국주의적 경향을 둘러싸고 논의를 벌인 적이 있으며,17) 이와 유사한 토론이 먼저 인도학 분야에서도 이루어졌다.18) 개별적으로는 그보다 일찍 《영국의 불교 발견(The British Discovery of Buddhism)》19)를 통해 필립 앨먼드(Philip C. Almond)는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영국불교학의 본질을 보여 주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인간관과 도덕적 편견으로 말미암아 붓다의 모습과 계율의 정신이 어떻게 변질되어 그려지는가를 추적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연구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확산된 이후에, 불교학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된 비판적 불교학사의 연구물로 기억될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학계에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에 이루어진 오리엔탈리즘의 재평가는 넓은 의미에서 ‘사이드(E. Said)현상’의 우산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판단 하에 볼 때, 서구 불교학계에서 이루어진 탈오리엔탈리즘(또는 反동양주의적)의 성찰은 약간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1978년에 출간되었고 그 동안 영미문학 비평계에서 오고 갔던 논의의 핵심이 다른 학문의 경계를 넘어가는 데에는 적어도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러한 탈오리엔탈리즘의 성찰이 불교학계에서 이루어진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앞서 말한 탈식민주의 성찰의 아이러니를 기억해 보자. 지금에 이르러 이러한 성찰과 논의는 더 이상 서구의 불교학계에 내에서 진전되지 않는다. 마치 《붓다의 큐레이터들》을 통해 학자들은 탈식민주의적 논의에 대한 모든 의무를 다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말한 바처럼,20) 이것은 제1세계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중심부’를 어떻게 상황에 따라 옮기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읽을 수 있다. ‘식민주의하의 불교 연구’라는 부제를 달아서, 식민주의 불교 연구는 이미 백 년 전의 과거에, 세기 초에 끝난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 책의 저자들은, 동양이라는 ‘주변부’에 대해 자신의 선생이나 선배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단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탈식민 담론 생산에 참여해, 다시 ‘주변부’에 대한 자신들의 자각이야말로 진정한 중심임을 표현한다.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의 경계선 밖에 위치시키고 결백한 듯이 서 있다. 이렇듯 식민주의에 대해 제1세계의 지식인들이 갖는 한계는 오직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내는 일에서 멈추고 말거나, 탈식민 담론을 재생산하는 중심으로 다시 부상한다. 이것은 단지 자신들이 학문적 유행에 적절히 동참한다는 표시이며, 근대가 이루어 놓은 불교학의 제도적 실천을 근원에서 반성하여, 자신의 학문적 활동을 근본적으로 변질시킨다는 말이 아니다.

6. 포스트 모던 이론과 불교 문헌 읽기의 즐거움

탈식민주의 이론을 통해서 불교학자들도 과거의 불교 연구물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를 배웠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들을 통해서 불교학자들은 불교 고전을 통해 ‘텍스트의 즐거움’을 배우게 된다.
대개의 불교학자들은 문헌학적 연구의 토대 위에서 인접한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적 이론들을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차용해 불교 문헌의 해석이나 불교(사상)사의 해석에 임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학자들마다 이론적 취향의 경중이 다르고 그 활용의 깊이 또한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문헌학의 토대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당대의 인문사회과학적 이론의 유용성을 소비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는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 모두 자신의 고유한 연구 토대로 삼는 경우로, 베르나르 포르(Bernard Faure)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 속으로 선불교의 문헌과 문화사를 완전히 소화해 버린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들과 불교(또는 인도철학)의 국부적인 개념적 유사성을 확대 포장해 놓아 일회적인 흥미만을 유발시키는 비교철학적 방법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셈이다.21) 다시 말하면, 포르는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기본적인 교의, 즉 이념화된 본질주의에 대한 탈신화화를 근본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는 동양과 서양을 통해 널리 편재해 있는 ‘전통적인 선(禪)의 이념들’을 끊임없이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그 방법도 선문화사의 재해석을 통해 시작한다. 그의 《즉각성의 수사학(The Rhetoric of Immediacy)》22)을 보면, 전통적으로 선불교 전통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즉각성(immediacy)’의 관념에 초점을 맞춘다.

그 즉각성의 관념으로 인해 선불교에서 경시해온 것처럼 보여진 매개들(mediacy), 즉 세속적인 의례들, 사리 관념, 꿈과 장례식, 미이라 등의 문화소들로부터 그 즉각성의 관념의 대립짝을 찾아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즉각성/매개, 또는 돈(頓)/점(漸), 중심/주변 등의 패러다임 속에서 선불교가 어떻게 교리와 실천을 구조화해 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후속편으로 등장한 《선의 예지와 둔지(Chan Insights and Oversights)》23)에서도 포스트 모던 이론가들의 이론을 근간으로, 역시 선을 규정해온 몇 가지 인식론적인 토대를 다시 해체해 간다. 동양과 서양 두 세계에서 선이 어떻게 인식되고 규정되어 왔는가 하는 점을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의 역사 서술 방식을 통해 규명한 다음,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동원해 선의 시공간 개념과 언어관을 다시 해석한다.

그의 일련의 비판서들이 선을 규정해온 관념들의 해체를 실천했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포르의 작업은 이미 그가 프랑스에서 박사 논문을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며24) 최근에 불교 내의 성(性)을 취급한 《홍사(紅絲) : 성에 대한 불교도의 접근》25)에 이르기까지 포르는 불교 문헌 속에서 포스트모던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 “변증법적 진동(dialectical oscillation)”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이론을 도입해 불교를 해석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서구의 종교학계 내에서 포르만큼 성공적으로 그리고 그 파급력이 넓은 연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비록 그 차원과 시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50년대와 60년대에 스즈키가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선불교의 매력을 보여주었던 것에 비견할 수 있다. 마치 스즈키가 테이슨의 시에서 바쇼(芭蕉)를 찾아낸 것처럼, 포르는 푸코 속에서 잇큐(一休)를 본 것이 아닐까.

7. 글을 맺으며 : 북미, 또는 거대한 불교의 실험실

거의 지면이 다 되었다. 어찌 보면,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북미 지역의 연구 경향을 다루지 못해 다음 지면에서 약속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 글은 우선 연구 방법 상의 동향만을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연구 방법상의 동향은 서술한 바와 같이, 몇가지 누락된 것은 있을지라도 커다란 단락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연구 방법이 아니라 연구 주제나 대상을 놓고 볼 때, 미국만큼 재미있고 복잡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일단 연구소나 대학의 재정적인 지원과 학자의 수로 볼 때 유럽보다 더 활기차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손쉽게 취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가령, 비판 불교(Critical Buddhism)를 놓고 벌어진 AAR(American Academy of Religions)의 패널 토론과 그 결과물 《보리수 가지치기(Prunning the Bodhi Tree)》에서 얻어진 다양한 견해들을 기억해 보자. 칼 빌레펠트(Carl Bielefeldt)는, 비판 불교 옹호자들의 불경 해석의 오류를 떠나, 맨 처음 조동종의 사소한 해프닝으로 생각했던 것을 양보하고 그 문제 자체가 함축하는 다양한 맥락에 놀라워 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이나 불교의 섹스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재빨리 대답한다(가령, 1999년에는 앞서 소개한 포르의 책을 놓고 AAR측에서 ‘성과 역설: 불교도의 규범과 수행(Sexuality and Paradox: Buddhist Norms and Practices’)이라는 제목으로 리뷰 패널 토론을 열기도 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성행위 중, 구강 섹스와 항문 섹스는 과연 합당한 섹스이며, 불법에 여법(如法)한 것인가를 묻기도 한다(실제로 달라이 라마는 이런 문제를 놓고 동성애자들과 토론했다). 이러한 성체위 자체는 동성연애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동성애 자체에 대해서도 불교계는 책임 있는 대답을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매춘과 인권 문제, 에이즈 환자와 행복추구권, 환경 문제, 육식과 동물권, 이상적 공동체 구현과 분배의 문제 등등은 아주 직접적이고 시급한 사회 문제이기도 한다. 미국은 불교 인구의 팽창과 더불어 이 모든 현실들에 대해 불교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사회다. 경전에서 그 해답을 찾기 어려운, 까다로운 불교윤리학적 상황들이 발생하기 아주 쉬운 장소이다. 반면, 미국과 달리 유럽의 불교학자들은 비교적 자신들의 연구 영역과 문헌학적 방법의 규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탈식민주의 논의나 포스트모던 이론의 도입과 같은 것이 전통적인 불교 문헌학자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것은 거의 예상할 수 없는 일이며,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보다 사회 변동의 역동적 모티브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모티브들은 인종이나 민족, 종교에서 빚어질 수도 있고, 소득계층 간이나 성에 대한 인식의 틈에서 빚어질 수도 있다. 대개의 연구분야에서 북미의 학자들은 이러한 모티브들을 더 민감하게 고려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응용불교학 또는 불교윤리학의 문제는 결국, 인종과 민족, 소득계층, 성적 취향과 같이 한 사회가 처해 있는 특수성에서 한 개인이 처한 특수성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로부터의 화두를 받아들인 셈이다. 불교도들에게 지금 필요한 사람은 영민한 불교학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수행자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 시간이 된 것은 아닐까. ■

심재관
동국대 인도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강릉대 강사. 논 저서로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오리엔탈리즘과 유럽의 브라만교 형성><비판불교란 무엇인가><19세기 근대 불교학의 탄생에서 문헌학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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