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본지 주간 / 고려대 철학과 교수)

조성택
(본지 주간 / 고려대 철학과 교수)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한국인들의 염원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표현되었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절대 빈곤이라는 경제 문제의 해결을 의미했다.

‘쌀밥에 고깃국’이 곧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할 때면 “역시 스테이크를 먹는 선수들과 된장국과 밥을 먹는 선수들의 체력 차이가 나는군요.”하며 한국 선수들의 후반 체력 저하를 안타까워하는 아나운서의 탄식은 늘 듣는 변명 같은 사실이었다. ‘쌀밥에 고깃국’은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제 우위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는 수령님 덕에 매일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다시 ‘잘 먹고 잘 산다’ 것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웰빙(well-being)이다. 웰빙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웰빙이 의미하는 바는 70년대식의 ‘쌀밥에 고깃국’이 아니다. 의식주 전반에 걸친 삶의 질적인 향상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웰빙은 최근 검색어 2위에 올라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백화점마다 웰빙 코너가 신설되고 언론 매체들도 거의 매일 웰빙에 관해 지면과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이제 웰빙은 새로운 문화와 소비 코드로서 현대 한국인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삶의 양적인 발전에만 매진해오던 한국인들이 이제 보다 질적인 삶의 향상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웰빙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일부 계층의 고급 취향의 소비문화로 정착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다음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웰빙족의 하루이다.

삶에서 부족한 2%를 채우는 웰빙 라이프에 빠졌다는, 한 스타일 좋은 웰빙 걸의 하루를 포착했다.

am 7:30 피로가 덜 가셨는지 유난히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자고 나도 개운하지가 않은 듯. 정신을 맑게 해주는 아로마 제품을 목 뒤, 귓불, 관자놀이에 발라 마사지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am 9:00 아침식사는 가벼운 샌드위치로 결정했다. 야채로 색을 낸 또띠야에 고기와 야채를 돌돌 만 랩 샌드위치와 알로에, 인삼, 시금치 등에 피로회복에 좋은 농축액을 넣은 힐링 음료 한 잔을 곁들였다.

pm 12:30 친구와의 점심약속, 입맛이 없다는 친구를 위해 면요리를 먹기로 결정했다.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 고명에 새콤한 레몬 고추장 소스로 맛을 낸 비빔호면이 오늘의 메뉴.

pm 2:00 식사 후면 어김없이 밀려드는 식곤증. 이럴 때를 대비해 아로마 오일을 손수건에 뿌려 두었다. 나른한 오후, 박하 향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pm 6:00 저녁은 해가 지기 전에 가볍게 먹는 것이 나의 철칙. 신선한 샐러드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오늘의 마지막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 입안에 감도는 상큼한 채소의 향기란!

pm 8:00 매일 저녁 요가 수업을 듣는다.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고, 고단한 마음을 정화하는 데에 요가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요가를 시작한 지 두 달째, 피부가 맑아졌고 몸의 선이 달라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pm 10:00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바스 타임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홈 스파 제품. 사해 소금을 물에 녹여 쓸까, 아프리카 솔트 스크럽으로 마사지를 할까.

pm 10:30 원활한 생체리듬을 위해 11시 이전에 잠드는 나. 기분 좋게 잠들기 위해 베개에 필로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은 나만의 기분 좋은 의식이 되었다.

향기 요법, 채식 위주의 식사에 요가와 스파 목욕 등 소위 요즘 웰빙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 되었다. 고급 취향의 비싼 수입 제품을 쓰기 때문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향기 요법, 채식이 나쁜 것도 아니고 목욕과 요가가 나쁜 것도 아니다. 이 스타일 좋다는 ‘웰빙 걸의 웰빙 라이프’에는 고급 취향의 ‘스타일’만 있지 웰빙의 진정한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웰빙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 방법은 ‘아로마 제품’이라든지 ‘사해 소금’ 등의 고급 소비재를 통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웰빙은 삶의 스타일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웰빙은 그 영어 표현이 말해주듯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90년대 전문직업인으로 도시에 살며 고소득을 올리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지칭하던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s) 문화가 주춤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삶의 방식이 바로 웰빙(well-being)이다.

이 웰빙은 여피들의 생활이 ‘젠(Zen) 스타일’ 가구 등의 취향에서 보이듯이 너무 외형적인 스타일에 치중하였던 것을 비판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스타일이 아닌 삶의 진정성과 내실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이국 취향의 가구가 상징하는 도회적인, 스타일리스트의 삶이 아니라 적게 쓰고 적게 먹고 보다 정신적인 것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웰빙의 뿌리가 히피 운동과 반전 평화 운동과 민권운동에 참여하던 사람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미국 서부의 버클리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된 히피 운동은 원래 건강한 삶의 회복을 추구하던 운동이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문명과 같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운동이 바로 히피이즘의 시작이었다.

불교가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바로 이때였다. 가부장적이며 신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억압성’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 문화로서 불교는 급속하게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확산되었다. 많은 젠 센터가 생기고 앨런 와트(Allen Watt)와 같은 재가불교 지도자들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 절대자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인격의 완성으로서의 부처님, 그리고 욕망의 충족을 통해 만족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욕망의 감소를 통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당시 젊은이들이 추구하던 바로 그 정신이었다.

그러나 이 히피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약과 프리섹스 등 건강하지 못한 쾌락과 자기 방종으로 빠져 본래의 건강성을 잃어버리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떠나고 말았다. 이 미완의 운동이 다시 시작된 것이 바로 지금의 웰빙이다.

웰빙은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다. 요컨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잃어버린 자연적 건강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고기보다는 야채, 제약회사의 약보다는 향기 요법이나 요가 등을 통한 자연 치유, 빡빡한 일상보다는 여유 있는 시간에서의 명상을 통한 자기 자신의 회복 등과 같은 것이 웰빙의 주된 내용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비싼 유기농 야채나 수입 제품의 고급 취향이 웰빙이 아니다. 소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줄임으로써 나 자신과 자연의 본래 건강성을 회복하고, 물질의 획득이 아니라 정신적인 향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웰빙의 근본 취지라 본다면 지금 한국에서의 웰빙은 본래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거꾸로 가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가르침은 바로 웰빙의 정신이다. 부처님의 법은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가르침이다. 욕망을 줄임으로써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마음의 평정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자비심과 이타적 행동이 더 큰 행복을 준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바로 나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가르침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전 우주의 행복을 위한 가르침이다. 채식을 하는 것이 단순히 불살생이라는 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행복을 해치지 않음으로써 나의 행복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정신의 실천이듯이, 이타적인 자비심 또한 궁극적으로는 나의 웰빙을 위한 것이다. ■

2004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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