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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안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이지중
이지중 동국대 강사
[17호] 2003년 12월 10일 (수) 이지중 동국대 강사
“성불하십시오. 저는 도원입니다. 저희 마곡사를 이렇게 찾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절은 봄에 특히 경치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도량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우선 오늘 우리가 함께 할 사찰 안내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에 대해서 잠시 안내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저와 함께 본 도량 전체를 둘러보면서, 우리 절의 역사와 가람의 배치 그리고 그것에 담긴 독특한 의미 등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절은 큰스님들이 많이 계셨던 절입니다.

만공 스님을 비롯하여 일현 스님께서 정진하셨던 곳이었지요. 그리고 김구 선생이 출가하여 공부하셨던 적도 있었답니다. 절을 둘러보면서 여러 큰스님들께서 거처하셨던 곳에 이르면 그곳에서 그분들의 수행에 관한 일화 등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웅보전에서는 삼배 후 10여 분 정도 짧지만 참선 시간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다시피 저희 도량은 경치가 빼어난 암자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영은암이라는 암자를 둘러보겠습니다. 그곳 자체도 좋지만 그곳에서 마곡사 전체를 바라보면서 우리 절이 갖는 자연환경과의 조화미 등도 감상하시겠습니다. 그런 다음 저의 처소에서 차 한잔하시면서 조금 쉬었다가,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발우 공양을 갖는 것으로 오늘 우리 마곡사의 주말 안내 프로그램은 끝이 나게 됩니다.”

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스님의 뒤를 따라 우리는 마곡사를 순례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설렘으로 길을 따라 나선다. 스님의 목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린다. “우리 절은 신라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늘처럼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고려 중기 지눌 스님에 의해서입니다. 신라 말의 선사이자 한국 풍수의 비조인 도선 스님은 우리 절 터를, 삼재가 감히 들지 못하는 곳이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유구와 마곡 두 냇물 사이의 터는 능히 천 명의 목숨을 구할 만하다라고 하셨답니다.” 영산전이 자리잡은 남원에 선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도량의 한 가운데를 지르는 개울을 지나 대웅보전에 들어선 우리는 삼배를 하고 생전 처음 참선이란 걸 시도해 본다. (중략) 발우공양 후 어린 아들의 눈엔 무언가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배여 있다. (후략)

이상은 평소 늘 이런 사찰 안내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하는 필자의 바람을 표현하여 본 것이다. 최근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산중 사찰을 많이 찾는다.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 삼아 가볍게 찾는 사람들부터 산이나 한국적인 전통문화가 좋아 찾는 이, 산중 사찰의 넉넉함에 심신을 쉬고 싶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자연을 벗삼아 잠시나마 마음과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산중 사찰만한 데가 또 있을까?

누구에게나 처음 찾은 절은 낯설게 마련이다. 미리 사찰의 역사나 건축미 등에 대해 공부를 하고 왔다 하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들어선 공간에 서먹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찰 안내 프로그램은 이 낯설음을 자연스럽게 가시게 하고 아울러 불교의 종교적 의미를 있는 그대로 내 보일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에게 이 낯설음이 자연스럽게 가시지 않을 땐 사찰은 아무리 어렵게 찾았다 하더라도 그만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박물관의 소장품을 구경하듯 사찰 경내를 슬슬 둘러보다 의미 없이 발걸음을 되돌리기 일수다. 천년고찰이 박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마곡사의 북원, 그곳에서 볼 수 있는 5층탑과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정확히 일직선상에 놓인 아름다음도 한낱 건축물의 배치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게 된다. 만공 스님과 일현 스님이 거처하면서 정진하였던 공간도 그저 평범한 하나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주관으로 사찰을 순례하면서 절의 역사, 전설, 가람의 배치와 풍수의 의미, 역대 큰스님 일화 등을 듣고, 탑돌이, 큰 법당에서의 삼배, 일이십 분 정도의 참선, 그리고 발우공양 후 녹차 한잔과 한담이 곁들여진다면 어찌 산중 사찰이 한낱 관광상품으로 전락하겠는가. 오히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수행의 체험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선과 차 한잔의 여유, 그리고 발우공양의 체험은 사찰이 품고 있는 생생한 생명의 소리를, 우리 자신의 삶의 소리를 듣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부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일 것이다. 산중사찰이 우리의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수행의 장으로 살아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하기 나름이겠으나 우선 주말이나 공휴일 오전, 오후 각각 1∼2회 정도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약 이삽십 명 정도로 팀을 구성하되, 참여 희망자는 인터넷이나 현장에서 미리 예약을 받아 실시하는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최소한의 필요 경비는 청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시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님의 번거로움은 차치하더라도 순례 참여자들의 발우공양이나 차공양에 필요한 공간이나 기자재의 확보 등 여러 난제가 예상되지만, 무엇보다도 인력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선 뒤에서 스님들을 도와줄 보조인력 등의 확보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청년회 등 신도회의 도움으로 차츰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신도회에 새로운 소임을 맡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청년회 등의 단체에는 반드시 법회와 더불어 정기적인 자원봉사 활동 등의 소임이 부여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사찰 순례 프로그램은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단체를 위한 봉사이니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 손이 모자라면 자연스럽게 손을 벌충하기 위한 기획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름만 걸어 놓고 있는 잠자는 신도들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수행공간이자 부처의 경지를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할 삶의 터전인 사찰이 상업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방 관공서의 세입에 대한 욕심과 어우러지면서 이에 대한 염려는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공연히 불사를 일으켜 천년 고찰의 건축미를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사찰 순례 프로그램은 이러한 시비에 도리어 기름을 붓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찰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부를 하다 보면,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가람의 배치미나 건축미 그리고 공간미 등에 대해 새삼 눈뜨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오히려 무분별한 불사를 막고, 기존 가람의 미를 가급적 살리면서도 천년 고찰의 보존을 위한 절제된 멋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사찰 안내 프로그램의 시행은 단순히 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차원을 넘어선다. 무엇보다도 절이 생명을 갖는 공간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신이나 세계의 의미는 자기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절이 생명의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선다는 뜻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산중 사찰을 찾은 손님에게 자기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몫을 해당 절의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너무 크게 떠맡기는 꼴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교의 근본 정신이 자리이타 아닌가! 또한 자리이타는 반드시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질 않는가! 이 프로그램의 시행이 자신의 절을 찾은 일반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차원만이 아니라 나와 남을 함께 위하는 계기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우리를 망설이게 할 수 있을까?

단순히 포교의 차원에서라기보다도 절은 살아 있는 그 생명력으로 일상에 지친 중생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처럼 깊은 산중마다 사찰이 그리 곱게 숨어 있는 듯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런 우리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한낱 관광상품일 수는 없지 않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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