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한 달을 앞두고 정치판에 폭풍이 몰아쳤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이제는 선거에서 이겼다고 내심 신이 났을 것 같다.

잇달아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밀어낸 것이 얼마나 기분 좋았겠는가. 잘 되면 노무현 대통령을 중도 하차시키고 보궐선거를 통해 정권을 ‘탈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못 돼도 17대 국회를 지배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자신들의 뜻대로 끌어나갈 것을 생각하면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소수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원내 제2당을 굳히는 승부수를 던져 성공한 데 만족했을 것이다.

선거구도를 ‘친노’ 대 ‘반노’의 대결 구도로 가져간 뒤 ‘반노’ 세력의 결집을 꾀해 승리의 찬가를 부르겠다던 한나라당의 부푼 꿈은 바로 깨져버렸다. 노무현을 ‘배신자’로 몰아 호남 지역의 전통적 ‘김대중 지지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2당을 유지하려던 민주당의 야무진 전략도 무참히 깨져버렸다. 국민은 국회의 탄핵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70% 가량의 국민이 탄핵을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탄핵 반대는 자연스럽게 열린우리당 지지로 이어졌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는 거의 50% 수준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당연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는 뚝 떨어졌다. 한나라당 지지도는 열린우리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도는 거의 한 자리수에 머물렀다. 심지어는 원외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도 있었다. 정국 구도가 ‘친노’ 대 ‘반노’가 아니라 ‘탄핵 찬성’ 대 ‘탄핵 반대’ 구도로 짜여진 것이다. 거센 탄핵 반대 여론에 놀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스스로 되돌아보기보다는 그 책임을 방송 탓으로 떠넘겼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는 방송사를 직접 찾아가 방송의 편파보도 때문이라며 윽박질렀다. 그러나 떠나간 민심은 더욱 싸늘해질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반대자들까지도 탄핵을 반대하는 까닭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고급공무원의 탄핵 소추 의결은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아무 때나 탄핵을 소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명분은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 말이 과연 선관위의 판단대로 선거법 제9조에서 규정한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례도 있다. 선관위는 선거법에 관한 최고의 해석기관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석으로 유·무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무죄의 판단은 사법부에서 하는 것이다. 선관위의 판단이 옳다 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탄핵소추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법행위였느냐 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많은 학자들이 탄핵의 사유로 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행위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런데도 야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끝내 통과시켰다. 이 과정은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아니었다. 선거용으로 노무현 대통령 공격의 꼬투리를 잡고 싶은 야당의 정치의도와 사과하라는 야당의 제의를 거부한 데 대해 발끈한 감정적 대응이었다. 처음에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야당에게 사과하면(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탄핵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는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야당은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이 요구하는대로 국회에 출석해 국회의장이 배석한 상태에서 야당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으로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야당에게(국민이 아니라) 사과하면 의결하지 않으려 했던 탄핵소추안을 사과하지 않아서 의결했다면 결국 야당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이 탄핵소추안 의결의 사유가 된 셈이다.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물론 찬성이 3분의 2를 넘었으므로 형식상 요건은 충족된 셈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조심스럽게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국회의 입법권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국회가 정족수만 채우면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회가 만들 수 없는 법률도 있고, 또 만들어서는 안 되는 법률도 있다. 예컨대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법’은 만들 수 없고, 또 만들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탄핵도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었다고 해서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절차는 명백히 법 절차를 어긴 위법 행위이다. 국회에 제출되는 모든 안건은 토론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제안 설명도 필요하고, 토론을 반드시 거쳐야 표결에 부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소추안 처리 과정에 제안설명도 토론도 없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만이 있었다. 국회 사무처 담당자는 탄핵소추안이 일반 안건이 아니므로 관례상 토론을 생략해도 된다고 설명한다. 이게 무슨 억지인가. 관례라니. 탄핵소추안 의결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도대체 무슨 관례가 있다는 말인가. 헌법에 탄핵소추안의 의결정족수나 절차를 다른 안건과 달리 까다롭고 엄격하게 규정한 까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나 하는 말인가.

대통령 탄핵은 매우 심각한 비상한 상황이다. 따라서 국회는 탄핵소추안 의결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탄핵소추안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처리를 저지하려는 의원들을 그 의원들의 대표인 국회의장이 ‘난동’이라 표현하면서 물리력으로 끌어낸 경호권 발동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느냐 하는 것, 그런 상황에서 처리된 탄핵소추안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상적 안건 처리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경호권을 발동했다면 그것 또한 문제이다. 경호권을 발동한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안건 처리를 할 수 있는가. 알려진 것처럼 자신의 중재노력이 무시당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게다가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의장석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박관용 의장이 탄핵소추안에 투표를 한 것으로 처리된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 중립적 위치에 서야할 국회의장이 그 안건에 투표를 해도 되는가. 비리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동료들의 도움으로 공개적으로 ‘탈옥’한 의원이 투표하는 것이 정당한가. 또 무기명 비밀투표로 투표방식이 규정되어 있는데 거의 공개투표에 가깝게 진행되었다면 그 투표의 효력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어쨌든 국민이 선출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으로써 직무가 정지되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에 대한 기각을 결정할 때까지 노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에 의해 정지된다. 노 대통령이 직무를 행한다면 그것은 무효가 된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무총리가 대행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아주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헌재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겠지만 사안의 본질은 매우 간단하다.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의회의 권능이 강했던 것이 바로 16대 국회이다.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 의회는 정치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 쓴소리를 싫어하는 권위주의적 독재자들이 국회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는 입법부(立法府)가 아닌 통법부(通法部)였고, 행정부의 시녀, 또는 거수기로 전락했었다. 그러던 국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독재자에 의해 박탈당했던 권한을 되찾은 것은 바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국민의 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힘을 16대 국회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엉뚱한 데에 써먹었다.

일일이 다 들춰낼 필요도 없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의원들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탄국회를 열었고, 체포동의안을 모조리 부결시켰던 것이 바로 16대 국회이다. 심지어는 구속되어 있는 의원의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교도소 습격사건’까지 서슴지 않았던 국회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16대 국회는 정말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해서는 안 될 일은 다 해보았다는 점이다. 16대 국회가 한 일의 극치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렇게 국회가 그 힘을 무리하게 사용한다면 국민은 결코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4월 15일의 총선에서 국민은 16대 국회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내릴 것임을 국회는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손혁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정치학 박사. 전불련 중앙위원, 재가연대 자문위원, 달라이라마 방한 준비위원회 대변인, 안양불교청년회 지도법사 역임.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저서로 《새천년 한국시민사회의 비전》 《김대중 정부개혁 대해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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