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

1. 서언(序言)

인류역사는 계급과 신분의 차별,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라는 두 가지 불평등한 구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분 차별이 공식적으로 철폐된 것은 근대의 일이며, 여성의 참정권이 평등하게 실현된 역사도 일천하다. 인도사회에는 지금도 카스트가 엄존하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법과 제도, 그리고 관념과 문화로 형성되어 있다.
여성은 남성과 함께 가정과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숱한 편견과 차별의 문화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힘의 논리에 의하여 지금까지도 남성 중심의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교육의 균등과 문화의 개방, 민주사회의 정착으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고 남녀 평등은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정하였다. 우리나라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89년에 가족법 개정, 1993년 12월 성폭력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또 우리 정부는 1983년 유엔의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에 서명하였다. 정치·사회·경제·문화·교육·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고 있다.

양성평등 사회의 실현은 이제 종교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평등과 사랑을 핵심교리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측면이나 의식 저변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계가 먼저 자발적으로 이를 공론화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킬 것은 지키고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하는 것이 교단과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종교는 정신적인 성숙과 깨침을 추구하며 이를 토대로 이상적 가치를 사회에 구현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지닌다. 불교의 경우 이러한 이상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부처님 당시에 승가(僧伽)라는 수행자 단체가 탄생했고 오늘날까지 유지 전승되고 있다. 오늘날 불교 승가는 다양한 지역에서 역사적 변형을 거쳐 존속하고 있으며, 각 나라마다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나름대로의 승가상을 정립하고 있다. 승가는 남자 수행자인 비구와 여자 수행자인 비구니로 구성된다. 비구와 비구니로 구성된 승가가 우바새와 우바이를 교화하는 지도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비구와 비구니 승가의 조화롭고 바람직한 승가상 정립은 부처님 교법의 유지와 전승에 중요하다.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비구니 승가가 출현하였는데, 기원전 5세기에 여성 수도자 집단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오늘날까지 유지 전승하였다는 것은 세계종교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일부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여성 수도자인 비구니가 수행하고 교화하며 종교적 의식을 집전하는 데 초기부터 제약이 없었고 공식 승인되었다. 이 점에서 붓다는 인류의 가장 큰 불평등 구조인 신분제도와 양성(兩性) 불평등을 타파했던 지도자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조계종은 종단을 구성하는 인적 구성, 그리고 교육, 수행에서 비구니가 차지하는 현실적인 위상이 다른 종단이나 종교에 비해 두드러진다.1) 이와 같이 비구니가 차지하는 역할이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비구니들에 대한 불평등한 관념과 제도가 있다.1) 조계종에서 비구·비구니의 인적 구성 현황은 다음과 같다. 전국 재적 비구·비구니 총 인원 12,061명(2003년 3월 19일 기준) 정식 비구 4,533명, 비구니 4,514명, 총 9,047명 사미 1,626명, 사미니 1,267명, 총 2,893명
군승 비구 44명, 사미 77명, 총 121명(승려+예비승려 포함) 전국 선원 개수 및 비구·비구니 안거자 수 2003년 12월 30일 현재) 선원 총 97개 총 2,255명 총림 선원 4곳 157명, 비구 선원 58곳 1,151명, 비구니 선원 35곳 947명전국 비구·비구니 주지 현황 총 2,900개 사찰(군법당, 산내암자, 법인 포함) 중 2,350개가 비구

그것은 첫째, 교리적인 문제로,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이 대표적이다. 둘째, 계율에 대한 문제이다. 비구는 구족계로서 250계, 비구니는 구족계로서 348계를 받는다. 그런데 비구니는 승가 입문의 전제조건으로 팔경법(八敬法)을 지켜야 한다. 이 팔경법은 비구 승가에 대한 절대적인 종속과 복종을 규정하고 있다. 이 팔경법이 오늘날에도 승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이러한 교설과 계율에 의하여 선천적으로 비구는 우월하고 비구니는 열등하다는 관념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종 인사와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관념과 제도가 비구와 비구니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한 갈등과 피해의식이 극복될 수 없다. 또한 교단의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초기불교 문헌을 통하여 비구와 비구니 승가의 성립과 정신을 살펴보고, 그 진위여부와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그러나 비구니 승가에 대한 차별조항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비구니 승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승가의 양성(兩性) 문제를 논의하는 데는 몇 가지 합당한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붓다께서 제시한 법의 정신에 합당한 것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 법이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구체적으로 붓다의 주요 교설인 연기법·무아·중도의 구체적인 가르침에 계율과 역사적 사건이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비구, 비구니 승가에 대한 전거의 기록들이 수행의 증진과 깨달음에 장애가 되지 않고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셋째, 중생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넷째, 승가의 도덕성을 확립하고 질서와 유지, 중흥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다섯째, 오늘과 미래에도 법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2)2) 이와 같은 논의의 전제는 계율의 제정 목적인 ‘승가를 잘 운영하기 위하여, 승가를 포섭하기 위하여, 나쁜 비구를 조복하기 위하여, 계를 지키는 비구를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현세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내세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믿지 않는 자로 하여금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하여, 이미 믿는 자의 믿음을 증장시키기 위하여, 정법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율을 소중히 하도록 하기 위하여’ 라는 십리(十利)에도

그리고 초기불교의 승가상을 고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접근태도가 중요하다.

첫째, 역사를 보는 관점을 어느 시점에 고정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의 사회현상과 관념으로 과거의 역사를 규정하려 하거나,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관념을 오늘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오류가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 과거의 승가와 그 구성원이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문헌에 대해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점검해야 한다.

만약 모든 문헌을 조금도 삭제와 첨가와 변형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본다면, 각 문헌에 나타난 상이점과 붓다의 정신에 맞지 않는 규정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처님도 그 시대의 사회 환경을 참조하여 법을 설하고 계율을 제정했으며, 당대의 제자와 후대의 제자들도 나름대로 견해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그러한 주장들이 후대의 경과 율장에 삽입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문헌에 대한 맹목적 신뢰의 접근을 버려야 한다.

2. 초기불교 이부중(二部衆)의 성립과 그 의미

이부중(二部衆)이란 비구와 비구니 승가를 말한다. 먼저 비구 승가가 성립되었다. 부처님이 성도 후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5명의 수행자가 부처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처음 승단이 형성되었다. 비구니 승가는 부처님 성도 후 2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즉 부처님의 이모이며 양모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출가를 간청드린 것이 부처님 성도 후 15년경이며, 허락을 받은 것은 아난 존자가 부처님의 시봉을 들기 시작한 첫 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미 비구 승가와 재가신도가 탄탄하게 형성된 후에 비구니 승가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면 비구니 승가의 성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인도사회의 신분제도와 여성에 대한 문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기원전 천 삼백 년 전, 아리아인이 인도에 침입하여 원주민인 드라비다 족과 문다 족을 누르고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라문 문화를 형성하고 4성 계급제도를 만들었다.

사성제도는 ‘수드라가 베다의 독송을 도청했을 때 그의 귀에 불에 녹인 쇳물을 붓거나 나무의 진을 넣고, 그가 베다를 독송하면 그 혀는 잘라버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차별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제도를 부처님은 정면으로 부정하고 평등을 주장했다. 그런데 신분제도에 대한 부처님의 평등관은 어떤 제도나 법률에 관한 평등이 아니라, 교법에 의한 것이었다. 즉 세상의 진리에 비추어 보니 신분제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의 산물이며 허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름으로 성(性)으로 붙여져 있는 것은 통칭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난 그 때에 붙여지고 임시로 시설되어 전해지는 것이다.(《숫타니파타》 648)

태어나는 것에 의해 바라문인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것에 의해 바라문이 아닌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숫타니파타》 650)

출생을 묻지 말라, 행위를 물어라(《숫타니파타》 462)

수드라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삼법의(三法衣)를 입고 출가 구도하며 칠각의(七覺意)를 닦는다. 그는 견고한 믿음으로 도를 닦기 위해 집을 나와 위없는 청정행을 닦는다. 현법(現法) 가운데 증명하여, ‘나는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다시 몸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종(四種) 중 지혜와 행이 뛰어나서 아라한을 이루는 것을 제일이라 한다.(《장아함경》 권 제22 《세기경》 〈세본연품〉)

이렇듯 부처님은 사성의 평등을 법의 이치에 맞추어 부정하셨다. 그리고 실제 ‘모든 물이 바다에 이르면 짠맛으로 통일된다’고 하시면서, 사회의 신분에 관계없이 출가를 허락했으며, 위계도 출가 순서대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도사회 전반에 신분제도의 타파와 평등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승가라는 이상적인 이념과 제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부처님도 사회의 견고한 현실을 어찌할 수 없었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카스트라는 견고한 신분사회의 틀에서 여성의 출가는 비구 승가와 일반사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부처님이 안거제도를 확립하고 참회의식인 포살과 자자 등을 제정하고 여러 가지 계율을 만든 것 또한 사회의 여론과 관습을 참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출가 또한 많은 사회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인도사회의 여성관에 대해 대략적으로 고찰해보자. 브라흐마나 시대(기원전 10세기∼기원전 8세기)에 여성들은 멸시된다. 여성과 주사위와 수면(睡眠)은 파멸과 관계가 있다고 할 정도다. 마누법전에는 ‘여성은 항상 독립하지 않는다’(5·147∼149, 9·2∼3) ‘여자는 본래 악성(惡性)이다’(2·213∼215) ‘베다를 독송할 수 없다’(9·18) ‘제사를 행할 수 없다’고 하여 여성의 인간성 자체를 열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남성에 대한 본질적인 열등성을 강조하여 여성을 남성과 동물 사이의 중간 정도로 생각했다.

가정 내에서 아내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았고, 과부 분사(焚死)의 풍습도 있었다. 여성은 친정 아버지, 남편, 아들의 소유로 인식되었으며 남편이 죽으면 여성의 삶은 끝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여성의 유일한 의무는 죽은 조상과의 맥을 닿게 하는 종교의식을 행할 수 있는 가장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남아를 낳은 일이 여성의 삶의 존재의미였다.

이렇듯 당시의 인도 여성은 남성에 대한 열등관념과 신분차별(카스트)의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또 하나 여성의 출가에 장애가 된 것은 당시 다른 종교를 포함한 수행자들의 주처(住處)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환경이었다. 당시의 수행자들은 네 가지 주기(學習期·林捿期·家住期·遊行期)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교의 수행자들은 네 가지 생활수칙을 따라야 했다.

그것은 탁발하고, 떨어진 천 조각으로 가사를 만들고, 동식물의 배설물로 약을 만들고, 나무 밑에서 좌선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불교의 수행자들도 비록 기원정사 등 많은 정사가 있었지만 유행하거나 숲 속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이러한 환경은 여성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실제 율장을 살펴보면 비구니들이 이교도들에게 폭행과 겁탈을 당하고, 비구들과 은밀한 곳에서 머물거나 다니다가 세간의 비난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그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때마다 계율이 제정된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여성의 출가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부처님 성도 후 20년에 이루어진 여성의 출가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분율》에 나타난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의 출가는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세 번에 걸친 간청 끝에 아난 존자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둘째, 허락을 망설인 이유로 불법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정법이 5백년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셋째, 여성도 출가하여 수행하면 수행자의 최고 단계인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고 했다. 넷째, 여성의 출가 조건으로 비구 승가에 의지하고 복종해야 할 여덟 가지 계율인 팔경법(八敬法)을 제정했다.

고타미 수계 이후에는 여성이 출가할 때 고타미가 화상이 되어 비구 승가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비구니 승가가 확립된 후에는 비구니의 구족계는 우선 비구니 승가에서 10인의 비구니로서 백사갈마(白四즼磨)의 작법을 행하고, 이어서 화상 비구니가 같이 비구 승가에 가서, 거기서 다시 백사갈마의 작법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비구니의 구족계는 두 번 행한다.

그런데 〈비구니건도〉에 의하면 백사갈마에 의하여 구족계를 받았던 비구니들이 고타미에게 “그대는 화상도 없고 백사갈마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족계를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의심을 일으켜 석존에게 물었다. 거기서 석존은 비구들을 모아 놓고 “고타미가 팔경법을 받은 것이 곧 구족계이다.”라고 하셨다.(율장 《소품》, 〈비구니건도〉)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비구니 팔경법은 다음과 같다.3)3) 팔경법은 《사분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대애도비구니경》, 중아함경 제28 《구담미경》, 증지부 경전, 율장 《소품》 등에서 거론된다.

  • ① 비록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처음으로 수계한 연소 비구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서 맞이하고 예배하고 깨끗한 자리를 권하여 앉게 해야 한다.
    ② 비구니는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지 말아야 하며 또는 파계·파견·파위의 등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③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시키거나 자백시키지 못하며 멱죄(覓罪)·설계(說戒)·자자(自恣) 등을 막지 못한다.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
    ④ 식차마나가 계를 배워 마치면 비구로부터 비구니계를 수계해줄 것을 청해야 한다.
    ⑤ 비구니는 승잔죄(僧殘罪, 자격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것)를 범하였으면 마땅히 이부승(二部僧) 중에 보름 동안 마나타(대중으로부터 격리된 곳에 머물면서 죄를 참회하는 일)를 행해야 한다.
    ⑥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승중에 교수해줄 것을 청해야 한다.
    ⑦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夏安居)를 해서는 안 된다.
    ⑧ 비구니가 안거를 마치면 마땅히 비구승중에 가서 삼사(三事)를 구해야 할 것이니, 즉 보고 듣고 의심한 것을 자자(自恣)하여야 한다.

이밖에도 《사분율》 《오분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마하승기율》과 남전에서는 “비구니는 비구가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에게 경·율·논을 물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팔경법의 굴레 속에서 비구니 승가는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런 제약 때문에 불교가 여성에 대해 차별했다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관점으로 과거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거론한 대로 여성에 대한 인도사회의 악조건과 여성의 신체와 물리적 환경 때문에 팔경법이 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팔경법이 과연 부처님이 직접 제정한 것인가, 아니면 후대에 삽입된 것인가는 뒤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여성에 대한 부처님의 견해와 5백년 정법 감소설은 법의 정신과 문헌적 검토를 거쳐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5세기에 세계 인류역사에서 여성 수도자 집단이 공식적으로 성립하고 수행하였으며, 남성과 똑같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시고, 비구니들에게도 차별없이 법을 설파한 것은 종교를 넘어서 혁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3. 발심·출가·수행·깨달음의 비구니 승가

초기불교 비구니 승가상을 알기 위해서는 율장에서 비구니 계율이 제정된 동기를 살피는 것과 《장로니게》를 살피는 일이 효율적일 것이다. 이 장에서는 먼저 《장로니게》를 중심으로 초기불교 비구니 승가의 발심과 출가, 수행과 깨달음을 살펴보기로 한다.

《장로게》와 《장로니게》는 부처님의 성문(聲聞) 제자인 비구와 비구니들의 게송을 모아놓은 초기 불교문학작품이다. 《장로게》와 《장로니게》는 《숫타니파타》 《담마파다》와 함께 초기 출가자의 심경과 생활, 수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립은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문자로 옮겨진 것은 기원전 8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로게》는 모두 1,279개의 시구로 구성되었으며 이름이 불분명한 사람까지 포함하여 264인의 장로가 등장한다. 그리고 《장로니게》는 522개의 시구로 이루어졌으며 이름 불명까지 포함하여 92인의 장로니가 등장한다. 《장로게》는 사회적인 경험과 자연에 대한 묘사,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에 출가 수도한 심경이 그려지고 있다. 반면 《장로니게》는 비구니들이 출가 전에 겪었던 사회적, 가정적인 사연과 고통이 그려지고 있다. 이는 여성이 억압 받던 사회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 그들의 사회적 출신 성분과 관계가 있다. 왕가 또는 귀족가문 23명, 큰 부호의 가문 13명, 유명한 브라만 가문 7명, 별로 유명하지 않은 브라만 가문 9명, 가난한 브라만 가문 2명, 다른 종성 4명, 종성이 분명치 않은 11명, 기녀 4명 등이다.

이들이 출가 수행하고자 발심했던 동기와 사회적 환경은 실로 다양하다. 비구들의 수행과 깨달음을 노래한 《장로게》는 세속의 무상하고 부정한 육신에 대한 한탄과 회의, 음주 가무 재물 등 욕망에 대한 덧없음, 존재에 대한 의문과 고뇌를 고백하고 있다. 출가 전 하층민에 속했던 비구들마저 차별적 신분제도로 인해 고통 받은 고백은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비구니들의 경우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고통을 눈물겹게 고백하고 있다.

뭇타 비구니: 육신을 굽게 하는 세 가지―절구통, 절굿공이, 그리고 포악한 남편으로부터 놓여난 저는 아주 홀가분하기만 합니다. 저는 삶과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얽히고 설킨 삶 가운데로 저를 끌어들일 만한 것은 이제 그 뿌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장로니게》 11)

소나 비구니: 저는 이 몸으로 열명의 아이를 낳은 뒤로 힘이 없어지고 나이도 들어 수도 중인 어떤 비구니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스님은 다섯 요소의 모임,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그 인식 대상을 합한 열두 영역, 이에 다시 여섯 가지 인식 작용을 더한 열여덟 요소에 대한 가르침을 설해주었습니다. 이를 듣고 저는 출가했습니다.(《장로니게》 102·103)

찬다 비구니: 저는 이전에는 궁핍했습니다. 남편은 죽고 자식도 부모도 친척도 없고, 음식도 옷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장로니게》 122)

바싯티 비구니: 아들의 죽음으로 마음이 흩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맨 몸으로 머리를 산발한 채 저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장로니게》 133)
키사 고타미: 가난한 데다 두 아이마저 죽고, 남편은 길 위에서 죽고 부모와 형제들도 화장터에서 함께 장사지냈습니다.(《장로니게》 219)

이외도 웃다팔라반나 비구니는 모녀가 한 남자를 남편으로 섬겼으며, 이시다시 비구니는 결혼을 세 번 했으나 모두 버림 받았다. 앗타카시 비구니는 기녀 시절에는 몸값이 카시국 전체 예산과 비길 만큼 유명했는데 출가하여 육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삼명지(三明知)를 얻었다.

이렇듯 생로병사라는 보편적인 고통과 더불어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과 악습과 제도로 겪은 고통을 안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법을 듣고 수행하여 마음의 안온을 얻고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여성 자신과 세간의 회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극복한 흔적도 보인다. 이는 부파불교시대의 여인은 음욕이 치성하고 죄가 많아 부처를 이룰 수 없다는 여인오장설과 크게 배치되고 있다.

소마 비구니: (악마가 말하기를) “헤아리기 어려워 선인(仙人)들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경지를,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지혜밖에 없는 여인이 깨달을 수는 없다.” (소마 비구니가 말하기를) “마음이 잘 안정되고 지혜가 솟아날 때, 바르게 진리를 관찰하는 데 있어 여인이라는 점이 무슨 장애가 될까. 쾌락에 의한 희열은 마침내 파괴되고, 무명의 암흑덩어리는 산산히 부수어졌다. 악마여, 명심하라. 그대는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을, 멸망한 자여.”(《장로니게》 60∼62)

또한 출가하여 수행했지만 쉽사리 지혜를 증득하고 깨달음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고뇌한 흔적도 곳곳에서 보인다. 또 욕망에 대한 무상함을 절감하고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실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고백을 곳곳에서 노래하고 있다.

하 비구니: 바르게 생각하지 못했기에 저는 욕정으로 괴로워하고 지금까지 계속 들떠 있어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번뇌에 사로잡혀 쾌락적인 생각만 쫓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여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짝 야위고 파리하니 흉한 몰골로 저는 7년을 헤맸습니다. 엄청난 고통으로 밤이고 낮이고 안락을 얻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끼줄을 구해들고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참하게 살아가기보다는 이만 목을 매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단단하게 매듭을 지어 나뭇가지에 매고 저는 그것을 목에 걸었습니다. 순간 저의 마음은 해탈했습니다.(《장로니게》 77∼81)

수마나 비구니: 삶을 엮어가는 열여덟 가지 구성 요소가 모두 고통인 줄 알아, 다시는 미혹한 생명으로 거듭나지 말라.(《장로니게》 14)

난다 비구니: 난다여, 병들어 구차한 네 몰골을 보라. 오직 마음을 하나로 다잡아 육신은 원래 이러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힘쓰라.(《장로니게》 19)

아바야 비구니: 아바야여, 어리석은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이 육신은 반드시 허물어져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를 깊이 깨닫고 육신을 버리고자 한다.(《장로니게》 98)

찰라 비구니: 석가족에서 붓다가 탄생하셨습니다. 맞설 자가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일체의 그릇된 견해를 초극하는 진리의 가르침을 설해 주셨습니다. 첫째, 괴로움과, 둘째 괴로움의 발생, 셋째 괴로움의 극복과, 넷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여덟 가지 실천론(팔정도)이 그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저는 그 가르침을 음미하며 나날을 지냈습니다. 세 가지 명지(明知)에 도달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실현되었습니다. 쾌락의 즐거움은 모두 무너지고 무명의 암흑덩어리는 산산히 부수어졌습니다. 악마여, 명심하라 그대는 완전히 패배했다. 멸망한 자여.(《장로니게》 18·188)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나는 모든 괴로움을 남김없이 알고 끊어 그 괴로움의 망집을 다 고갈시키고 여덟 가지 실천법(팔정도)으로 된 거룩한 길을 닦고 망집의 지멸을 체득했습니다. (그런데)나는 저 존귀한 스승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몸입니다. 나는 태어남을 되풀이하는 윤회를 다 멸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다시 미혹의 생존을 계속하는 일은 없습니다.(《장로니게》 158·160)

소나 비구니: 나는 오로지 마음을 안정시켜 무상(無相)을 수행했습니다. 나는 그 직후 해탈했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안온함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미혹의 생존을 되풀이하는 일은 없습니다.(《장로니게》105·106)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처님은 비구니들에게 사성제·오온·십이처·십팔계·팔정도 등의 교설과 실천 수행법 등을 비구들과 차별하지 않고 설하셨다. 비구니들은 ‘세 가지 명지(明知)에 도달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실현되었다’ ‘태어남을 되풀이하는 윤회를 다 멸했다’ ‘다시는 미혹의 생존을 계속하는 일은 없다’ ‘나의 최후의 몸이다’ ‘마음은 해탈했다’는 표현으로 그들이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증득하고 고통을 완전히 소멸시켰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법의 정신에 입각한 법의 평등이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실현될 수 있음을 개개인의 증험과 비구니 승가의 역사로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법에 대한 이해와 증득, 깨침과 대중교화는 초기불교부터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이 조금도 없었다. 이는 수행의 증진과 교단의 유지 발전이 사람의 자질과 노력의 문제이지, 결코 법과 법의 적용에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불교사의 일관된 논리의 토대이고 증거가 되는 것이다.

4. 비구니 승가에 대한 차별과 문제점

초기불교 비구니 승가가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서는 비구 승가와 평등했지만 몇 가지 문헌에서 나타난 차별적 내용은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무시할 수 없는 관념과 법과 제도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여성을 승단에 받아들임으로써 정법이 5백년 감소되었다는 설,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 그리고 비구니 팔경법(八敬法)이다.

먼저 여성에 대한 부처님의 시각은 어떠했는가를 살펴보자. 그것은 부정과 긍정이 혼재되어 있다. 《숫타니파타》에서 마아간디야라는 바라문이 자기 딸을 데려와서 부처님께 아내로 삼아 달라고 하자 “나는 이전에 갈애와 혐오와 애욕이라는 마녀를 보고도 그들과 성교를 하고 싶다는 기분을 가지지 않았다. 물과 배설물로 가득한 이 여자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여자의 발조차 건드리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팔리 증지부 경전에는 아난의 “스승이시여, 여자는 왜 공석에 나가지 못합니까? 왜 직업에 종사하지 못합니까? 왜 행위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합니까?”라는 물음에, 부처님은 “아난다여, 여자는 자제력이 없다. 여자는 질투가 많다. 여자는 탐욕스럽다. 여자는 지혜가 적다. 이러한 이유로 여자는 공석에 나가지 못하고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행위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라고 답하셨다.

《옥야경》에서는 여인의 십악사(十惡事)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어날 때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다, 양육하는 데 재미가 없다, 시집가는 데 예를 잃을까 항상 걱정한다, 곳곳에서 사람을 두려워한다, 부모와 생이별한다, 다른 문호에 의탁한다, 회임이 어렵다, 아기 낳을 때 힘이 든다, 항상 남편을 두려워한다, 항상 자재를 얻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이 그의 부인 말리카가 딸을 낳은 것을 기뻐하지 않자 충고하기를, “왕이여, 딸이 아들보다 더 나은 자식이 될 수도 있다. 그녀가 자라서 현명하고 덕이 있으며 시어머니를 잘 공경하고 진실한 아내가 된다. 그녀가 낳은 아들이 위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거대한 왕국을 통치할 수도 있다. 고상한 아내의 그와 같은 아들이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옥야경》에서는 “착한 아내는 이 세상에서 영예를 얻고 복을 받아 천상에 태어나고, 천상에서 수명이 다하면 다시 세간의 왕후 자손에게 태어나고 나는 곳마다 일체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상반되는 것은 교화되는 상대방과 상황에 따른 부처님의 대기설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고 있는 여성의 특성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결코 여성의 인격과 능력에 차별을 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옥야경》의 ‘십악사(十惡事)’는 여인에 대한 본질적인 악사가 아니다. 이것은 사성계급과 남성 중심의 문화가 정착된 사회에서의 편견이 여인에게 주는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불교의 연민심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 여인오장설과 정법 5백년 감소설

그러면 먼저 여인오장설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를 해보기로 하자.4) 여인오장설은 《오분율》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4) 여인오장설은 《五分律》, 《中阿含經》 卷28 《佛說瞿曇彌記果經》, 《佛說中本記經》 하권 〈瞿曇彌來作比丘尼品〉, 《妙法蓮華經》, 《佛說超日明三昧經》, 《佛說龍施女經》, 《增一阿含經》 38 〈龍血天子問八政品〉, 南傳大藏經 《中部》 115경, 南傳大藏經 《增支部》 1集15 〈無處品〉 등에 나온다.

부처님이 제정한 팔경법을 아난 존자에게서 들은 고타미는 이렇게 아난에게 말하고 있다.
“원컨대 나를 위하여 세존께 사뢰어 주십시오. 내가 이미 팔법(八法)을 받들어 지니오나 팔법(八法) 중에 한 가지 원만 청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비구니가 대소를 따라 비구에게 예를 드리도록 해주십시오. 어떻게 백 세 비구니가 새로 수계한 비구에게 예를 올리겠습니까?”

이에 대한 붓다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만약 여인들이 그의 도에서 사문이 되지 않았더라면 외도와 범지며 여러 거사들이 모두 옷을 땅에 깔아놓고 여러 사문들에게 다니게 할 것이며, 천하의 인민들 모두가 머리카락을 풀어서 땅에 깔아놓고 여러 사문들에게 그 위를 다니게 할 것이며, 의복 음식 침상 의약을 사문들에게 보시할 것이며, 사문을 받들어 섬기기를 해와 달을 섬기듯 할 것이다. 그러나 여인들이 출가하였기 때문에 천년을 갈 수 있는 정법이 5백년밖에 못 가게 되었으며, 그 까닭은 여인으로서는 다섯 가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 다섯 가지 불가능이란 여인은 제7천의 범천이 될 수 없고, 제6천의 왕이 될 수 없으며, 도리천의 제석이 될 수 없으며, 전륜성왕이 될 수 없으며,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저히 부처님의 친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불설초일명삼매경》에 나타난 여인오장설의 구체적인 근거를 살펴보자.

① 제석천이 되기 위해서는 용맹하고 욕심이 적어야 하는데, 그것은 남자로서 가능한 것이고, 잡악다태(雜惡多態)한 여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② 청정행을 행하여 때와 더러움이 없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고 사선(四禪)을 닦으면 범천(梵天)을 이룬다. 그러나 여자는 음자무절(淫恣無節)이기 때문에 범천이 될 수 없다.

③ 십선(十善)을 구비하고 삼보(三寶)를 공경하고 양친에게 효도하고 장로(長老)에게 겸순(謙順)한 자가 마천(摩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경만불순(輕慢不順)하고 정교(正敎)를 훼실(毁失)하는 까닭에 마천이 될 수 없다.

④ 보살도를 행하여 사람들을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삼존(三尊)과 선성(先聖)과 사부(師父)를 봉양하여야 비로소 전륜왕이 되어 사천하(四天下)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인민을 교화해서 십선(十善)을 행하고 도덕을 존숭하여 법왕의 가르침을 이룬다. 그런데 여자는 익태(匿態)가 84가지여서 청정행이 없는 까닭에 성제(聖帝)가 될 수 없다.

⑤ 보살심으로 일체를 연민하게 여기고 대자대비로 대승의 갑옷을 입고 오온(五蘊)이 공한 것을 깨닫고, 육바라밀을 행하고 공무상무원(空無相無願)을 행하고……성불한다. 그러나 여자는 색욕에 집착하고 정에 빠지고, 익태(匿態)가 있어서 신구의(身口意)가 다르기 때문에 성불하지 못한다.

이 경전에서 보이는 모순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라한은 윤회하지 않는 최후신(最後身)으로서 삼계의 윤회에서 해탈한 경지이다. 그런데 인간계보다 높은 천상계이지만 인도의 신화를 차용한 마왕·제석·범천·전륜성왕보다 비구니 아라한을 하열한 위상으로 설정한 것은 모순이다.

둘째, 부처님의 기본 교설에 부합되지 않는다.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고 사무량심·사선·십선·공무상무원(空無相無願)은 재가신도까지도 누구나 수행하고 이룰 수 있는 경지임에도 비구니는 여러 이유로 이룰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또 여성은 신구의 삼업이 다르다는 편견적 발상은 무아·연기·중도의 법칙에 어긋난다.

셋째, 이러한 발상은 전형적인 남성 우월주의 사고라 할 수 있다. 여인을 악하고 게으르게 표현하고, 음욕이 치성하여 절제가 없다고 하며, 경솔하고 교만하다고 하며, 숨겨진 죄가 84가지나 된다는 것은 억지이고 편견이다. 이런 속성이 비구니에게만 있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류역사에서 남성의 폭력·살인·전쟁·강간·강탈 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러한 발상은 여성의 성품이 본래 무지하고 탐욕이 강하여 그 업의 과보로 여자 몸을 받았다는 생각과도 같다.

넷째,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여 정법이 5백년 감소되었다는 주장은 불교가 배격하는 결정론적 사고방식이다. 어떻게 부처님 재세시에 숙명론과 신화론 등 결정론적 사상을 배격하고 무아와 연기를 말씀하신 뜻과 부합될 수 있는가. 미래의 일을 그렇게 결정적으로 예언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의 출가로 인해 정법이 5백년 감소되었다면 구체적인 근거가 율장에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적으로 월등하게 열세인 비구니 승가가 사상적으로, 혹은 수행의 문란으로 인해 교단의 세력이 미약해졌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구족계의 많은 조항이 그때마다 출가 수행자의 언행이 말썽이 되어 제정되었지만, 사건의 당사자는 비구니뿐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여인오장설과 정법 5백년 감소설은 경전 편찬과정에서 주도자들의 의도가 삽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처님 시대의 일들이 입으로 외워져 전해지는 과정에서 후세의 사건들과 견해들이 마치 부처님 재세시의 역사적인 일인 것처럼 기록되는 경우가 있다. 경전은 비구 승가에 의하여 편찬되었다. 그들의 의도에 따라 삭제·가필·전환·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문헌에 나타난 사건이 근본 교설에 맞지 않는 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러한 비구니 승가에 대한 편견과 기록은 부파불교 시대에 교단의 쇠퇴를 비구니에게 전가한 부류들의 변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부처님 당대에도 제자들의 견해가 갈리고 대중적인 부류와 엄격성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갈등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비구와 비구니 승가의 갈등이 있었고, 가섭을 따르는 수행자들이 부처님 입멸 후 경전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경전 편찬에 어렵게 아난을 참여시켰지만, 가섭 존자는 아난에게 죄를 물어 참회를 받는다. 그 죄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여인을 출가케 하다.
② 세존께 일겁 동안 세상에 머물러 주실 것을 간청하지 않다.
③ 불전에서 별설하다.
④ 세존의 법의를 밟다.
⑤ 물을 구하여 드리지 않다.
⑥ 소소계(小小戒)에 대하여 묻지 않다.
⑦ 세존의 음장상을 보이다.
⑧ 여인에게 부처님의 발을 더럽히게 하다.
⑨ 세존에게 3번 청하심을 받은 뒤에야 공양인이 되다.

그런데 여인의 출가를 문책한 것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결단을 무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속 여인이 붓다의 입멸을 슬퍼한 나머지 눈물을 붓다의 몸에 흘리고 붓다의 발을 닦은 것이 그렇게 문책할 사항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일 겁 동안 주석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은 신화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보수적인 견해와 편견을 가진 이들과 그 후계자들이 비구니에 대한 경과 율을 삭제·전환·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2) 비구니 팔경계

다음은 비구니 팔경계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자. 부처님은 입멸시에 최후의 유훈으로 법과 율에 의지하여 수행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법과 율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중요하다. 계율은 법의 정신에 입각한 언행의 규범이며 승가의 각종 제도이다. 이 계율은 부처님이 일시에 제정한 것이 아니고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 합당하게 제정되고 수정되었다. 또한 계율은 시대의 요구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에서 수행자가 복권·증권에 참여할 수 있는지, 또 대중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는지, 고급 승용차를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수행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여론에 오른다면, 부처님은 거기에 합당한 계율을 제정하셨을 것이다. 수범수제(隨犯隨制)가 바로 그런 것이다. 율장에는 계율이 제정된 인연담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입멸을 앞두고 소소한 계율은 버려도 좋다고 하셨다. 소소한 계율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아난이 묻지 않아서 입멸 후에 문책을 받게 되지만, 분명 부처님은 소소한 것들을 버려도 좋다고 하셨다.

아마 그것은 시대와 사회의 특정한 문화현상에 의해 임시적이고 특수하게 만들어진 계율일 것이며, 구족계의 바일제법(2∼3명의 대중 앞에 참회하면 면죄되는 법)과 회과법(한 명의 대중 앞에 참회하면 면죄되는 법)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제정된 계율은 그럴 만한 이유가 소멸되면 범할 일도 없으므로 사문화되고 폐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바라이법: 이 계를 범하면 승가로부터 추방된다. 비구니 8계, 비구 4계
    승잔법: 이 계를 범하면 일시적으로 승려의 자격이 정지된다. 비구니 17계, 비구 13계
    부정법: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확정되는 불확정한 법이다. 비구 2계
    사타법: 부당하게 받은 물건에 대해 사실을 고백하고 물건을 포기하도록 한다. 비구니 30계, 비구 30계
    바일제법: 2∼3명의 대중 앞에 참회하면 면죄되는 법. 비구니 166계, 비구 92계
    회과법: 한 명의 대중 앞에 참회하면 면죄되는 법. 비구니 8계, 비구 4계
    중학법: 승가에서의 갈마, 작법(의식)을 설명하는 조문. 비구니 75계, 비구 75계
    멸쟁법: 멸쟁을 해결하기 위한 갈마법. 비구니 7계, 비구 7계가 있다.

위에서 보듯이 비구니의 계율이 비구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차별이라기보다 신체적·생리적·자연환경 및 사회 문화적으로 특수한 조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다. 문제가 되는 여성 출가의 조건인 팔경법은 비구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담고 있어 불평등구조로 인식되고 있다.

필자는 각종 불교문헌에 기록되어 현재까지 많은 부분이 실행되고 있는 팔경법을 다음과 같은 전제에서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팔경법 성립의 진위 여부와 주체의 문제이고, 둘째는 팔경법이 당대와 현재, 미래까지 법의 정신과 실현에 합당한가 하는 점이다.

먼저, 팔경법 성립의 진위 여부에 대한 문제이다. 현재 거의 모든 논문들은 팔경법이 후대의 삽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세등 스님만은 거의 유일하게 〈팔경법의 해체를 위한 페미니즘적 시도〉라는 논문에서 팔경법의 근거가 되는 성차별 규칙이 부처님에 의해 제정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연하자면 세등 스님은 ‘비구니를 만들 최초기에 약간의 규칙이 만들어졌으리라’는 것과, ‘팔경법의 현재형이 성립한 것은 부파 분열 이전의 원시교단일 것’이라는 일본의 히라카와(平川)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이를 〈비구니교단의 성립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후세 삽입설을 주장한 동국대 해주 스님의 견해와 간단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해주 스님: 첫째, 팔경계는 수범수제(隨犯隨制)가 아니며, 이 8경계로 구족계(具足戒)를 대신했다.
세등 스님: 오히려 팔경법, 또는 팔경법의 근거가 되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파자파티 고타미에게는 그것으로 구족계를 대신했다’는 설정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해주 스님: 이부승중(二部僧衆)·식차마나(式叉摩那)·육법(六法) 등 아직 비구니 교단이 성립 전임을 감안할 때 수긍될 수 없는 너무나 구체적인 얘기가 언급되고 있다.

세등 스님: 팔경법이 성문화된 것은 그것이 만들어진 것보다 수 세기가 지난 후의 일로, 그러한 용어들은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들이었을 것이며, 과거를 기록함에 있어 그 용어들이 그대로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해주 스님: 팔경계와 동일한 내용이 비구니 구족계 중 바일제(波逸提)에 해당되는 죄목에 나오고 있는데 그 죄의 경중에 너무 차이가 있다.

세등 스님: 팔경법의 항목이 비구니계 안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팔경법이 파자파티 고타미의 출가 당시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후세 삽입설’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후세에 팔경법을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가벼운 죄목인 바일제 중에서 8개의 항목을 선택했겠는가.

해주 스님: 팔경계에 대한 파자파티 고타미의 이의제기와 그에 대한 답으로서 정법 5백년 감소와 여인오장(女人五障)이 부기되어 있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불멸 후 5백년 경에 부파불교가 여러 가지 위협을 받고 있을 때, 비구니의 출가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파불교의 보수적인 세력들에 의해 기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등 스님: 불멸 1백년경에 이루어진 제2결집 때 불교교단은 이미 보수적인 상좌부와 개방적인 대중부로 나뉘었고, 이후 불멸 4백년경까지 2부파는 다시 20부파로 분열되었다. 각 부파들은 주의도 달랐을 뿐 아니라,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어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해 갔다. 그런데 불멸 5백년경에 이르러 율장을 각각 전승하고 있던 5부파가 어떻게 똑같이 율장에 8경법을 삽입할 수 있었겠는가.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부처님의 친설인지 아니면 후대의 삽입인지를 가릴 길이 없다. 그러나 팔경법의 모든 조항이 부처님의 친설일 경우, 모든 조항이 부처님 입멸후 제자들의 삽입일 경우, 아니면 부처님에 의해 일부가 만들어지고 일부는 역사적 과정에서 후대에 첨가되었을 경우의 세 가지 가정을 세울 수는 있다. 필자는 세 번째에 무게를 두고 싶다.

어떤 가정이라도 팔경법이 당대와 현재, 미래까지 법의 정신과 실현에 합당한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팔경법이 당시에 여러 여건 때문에 비구 승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규정한 것이라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팔경법이 없으면 정법은 감소되고 교단은 쇠퇴하며 불교와 사회의 발전에 저해될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필자는 우선 팔경법에서 첫 번째 조항인 비구, 비구니의 상하 위계 문제는 당대에도 명백한 불평등이라고 본다. 승가의 위계는 출가한 연령으로 확립되며, 깨달음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사십이장경》에는 악인보다 선인에게, 선인보다 오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오계를 지키는 사람보다 수다원에게, 수다원보다 사다함, 사다함보다 아나함, 아나함보다 아라한, 아라한보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나은 공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라한이 된 비구니가 갓 출가한 비구에게 절을 하고 예를 올리는 것은 법의 정신과 법랍 우선의 기준에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친설이라면 당시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부터 비구니를 보호하고 비구니 승가를 유지 전승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특수한 방편이라 하겠다.

둘째와 셋째의 조항 또한 불합리하다. 그러나 비구니가 비구의 허물을 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당시의 교단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질서가 무너짐을 염려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사분율》 〈비구니건도〉에 나타난 비구니와 비구의 탁마 여부는 의미심장하다.

어떤 비구가 수도를 그만두려는 것을 알게 된 코타미가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도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꾸짖지 못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비구니가 비구를 절대 꾸짖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 비구니는 비구에게 욕을 하지 말아야 하며, 꾸짖지 말아야 하며, 소견을 깨뜨렸다, 계를 범했다, 위의를 깨뜨렸다 하여 비방하지 말아야 하오. 이렇게 꾸짖지는 못하오. 고타미여, 보다 높은 계를 지니게 하거나 높은 선정을 닦게 하거나 보다 높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 배워 묻고 경을 외우고 하는 따위의 일은 꾸짖어도 좋소.”라고 대답한다. 계율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나머지 조항인 비구의 보호를 받아 계를 받고, 안거하며, 참회하고, 가르침을 받는 것 등은 사회적·자연환경적·신체적·생리적인 특성을 고려한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배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바람직한 오늘의 승가상 모색

오늘의 세계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과 정보의 교류는 문화의 개방과 다양성을 초래하였으며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당면하여 지켜야 할 것과 개선해야 할 것, 폐지하고 창출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변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은 부처님의 법과 법의 정신과 그 실현이다. 그리고 개선하고 변용하고 폐지하고 제정해야 할 것은 소소한 계율로 대변되는 규범과 질서일 것이다. 만약 계율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절대적 불변이라면 후대에 만들어진 보살계나 선원의 청규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팔경법이 제정될 당시에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여성 출가의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치안은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고, 주거환경도 좋으며, 비구니의 교육과 수행의 수준도 월등하고, 많은 비구니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팔경법은 이미 그럴 만한 원인과 조건이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설사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현실의 여건을 감안하여 종헌종법과 각종 청규에서 다루면 될 것이다.

지금 승가의 법이 쇠퇴하고 혼란스러운 것을 과연 비구니들이 팔경법을 준수하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을까. 형식적이 되고 사문화되어가고 있는 팔경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비구니 승가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일까. 오히려 기본 교육기관의 구태의연한 교과과정과 해석, 그리고 교수법의 문제, 철저한 수행체계와 지침이 없고 지도해줄 스승이 없는 참선 수행의 부실, 발심의 부재와 대비원력의 사명감 부족, 오계의 기본정신을 지키지 못하는 도덕성의 해이 등이 정법의 유지와 발전을 감소시키는 원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람직한 비구, 비구니의 관계정립과 승가상을 정립하기 위해서 여인오장설, 정법 감소설, 여인 불성불설(不成佛說), 팔경법 등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되는 법과 제도를 없애야 한다.

첫째, 태생적으로 비구는 우월하고 비구니는 열등하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발심하였고, 출가하여 수행하고 있으며, 수행의 성숙과 깨달음에는 차이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은연중에 맹목적으로 여성은 업장의 뿌리가 남성보다 깊으며 그러한 업보의 소산이라는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둘째, 팔경법은 원점에서 무효화하고, 각각의 구체적 항목에 대해 동등한 수행자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먼저 비구, 비구니의 위계는 법랍으로 해야 한다. 서로가 수행자로서 법랍을 인정하고 그 정신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비구, 비구니의 허물을 지적하는 일과 참회법은 각각의 수행처소에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선원·강원·사중에서의 청규, 그리고 종단의 종헌종법의 적용을 받으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부중(二部衆) 중에서 마나타를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계율 준수와 참회의 취지를 구현하는 일은 팔경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굳이 팔경법을 들어 우월감을 조장하고 불평등한 문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중앙 종무기관에서 비구니부를 신설하여 비구니 고유에 관한 일들을 관장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다

수계의 조항은 비구니 구족계는 비구니 계단 고유로 독립시키든지, 아니면 비구 계사와 함께 하든지, 한 번의 수계의식으로 치러짐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각 교육기관에서의 강의와 수계산림에서는 비구니가 해야 할 강의는 비구니가, 비구가 해야 할 강의는 비구가, 합동으로 받아야 할 강의는 합동으로 하면 될 것이다. 또한 안거의 장소 조항은 이미 현실적으로 그 원인이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승가는 현재 같은 산중에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팔경법과는 관계없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포살을 하는 일들은 수행처소의 여건에 따라 독립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더불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행에 도움이 되고 법에 입각하여 승가의 화합에 도움이 되는 쪽이면 될 것이다.

셋째, 바람직한 비구, 비구니 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과 수행, 대중교화에서 기회의 균등과 여건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매우 시급한 것은 비구니들에 대한 인사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행하고 교화할 사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구의 경우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정신과 달리 현재 조계종 사찰의 인사구조는 자본주의적 산물인 경쟁의 체제이다. 이런 모순 때문에 비구니들의 수행과 교화의 환경은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다. 비구니가 본사 주지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 종단과 교구에 재적되어 있는 비구니의 사찰 주지 소임문제는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 종단의 주요 직책과 참정권에서 비구니가 소외된 부분은 신중하게, 그러나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종단의 풍토가 세속 권력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폐단을 정신과 법과 제도부터 고치고, 좋은 환경을 성숙시키는 일이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비구니가 종단의 주요 의결과 소임에 평등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과 시기는 여건 조성과 함께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한국처럼 비구니의 능력이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드물 것이다. 현재 중앙승가대학이나 동국대학교, 그리고 각종 논강에서 비구니의 강의와 법문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총무원에서도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문화부장, 문화국장, 포교원과 교육원에서 비구니의 소임은 자연스럽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종교에 비해서, 다른 나라의 불교계에 비해서 한국 비구니의 위상과 역할은 매우 선진적이다. 그러나 의식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과 차별의 문화는 버려야 한다. 비구 비구니의 수행이 증진되고 역할이 확대되면 정법이 흥성하는 것은 인과의 이치이고 세간의 상식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라면 불필요한 조건과 제약은 소멸되어야 하며, 필요한 제도와 법은 만들어야 한다. ■

법인
스님. 중앙승가대학 및 실상사 화엄학림 졸업. 〈불교신문〉 주필 역임. 현재 해남 대흥사 수련원장이며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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