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식 본지 편집위원

요즈음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예쁜 얼굴과 미모를 뜻하는 '얼짱'에서 아름답고 날씬한 몸매라는 '몸짱'까지 외모만으로 무조건 찬사를 보내는 풍조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러면 '짱'이란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에는 여러 설이 있다. 집단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한자 '장(長)'이 경음화 현상을 거쳐 '짱'이 되었다는 설, 80년대 대학가의 시위현장에서 화염병과 함께 사용되던 '짱돌'에서 유래했다는 설, 사람을 부를 때 친근함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쓰이는 일본어 '짱(ちゃん)'이 유입되어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유행어의 어원이 늘 그렇듯 가설만 있을 뿐 정설은 없는 것 같다.

'짱'의 문법적 쓰임도 다양하다. 학생들 사이에 싸움을 가장 잘 하는 이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였던 말이 이제 "영희는 노래 짱 잘한다."식의 부사어로 쓰이기도 하고, "철수는 인간성이 짱이다."처럼 최고란 뜻을 갖는 형용사로 쓰이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얼짱' '몸짱' '가슴짱' '다리짱' 등 각종 신체 부위의 이상형을 소유한 이들에게 일종의 작위처럼 '짱'이라는 말을 부여하면서 '짱'은 이제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일상적인 생활용어처럼 쓰이기에 이른 것 같다.{{* 인도사회문화연구소 대표.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저서로는 <인도의 사상과 문화>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대승불교>, <힌두교>, <인도철학의 자아사상>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가우다빠다의 不生說과 龍樹의 中道說'(박사학위논문), '불교의 폭력관','불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 등 다수가 있다http://zine.news.empas.com /show.tsp, 김용석, <왜 '짱'인가?>(2004, 4, 27) 참조.}}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루키즘(lookism)'을 인용한 것이라는 설도 적지 않다. 루키즘이란 말의 기원은 낸시 에트코프라는 심리학자의 저서 《미인의 생존(Survival of the Prettiest)》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외모에서 비롯한 편견 혹은 차별'이라고 정의되는 말로,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자신의 칼럼 〈말에 대해서(on language)〉에서 인류 역사에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몇 가지 요인들 중 하나가 개인의 외모라고 지적함으로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용어로서 '외모지상주의', 또는 '외모차별주의'를 뜻한다.

실제로 외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성이나 잘생긴 남성은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확률이 못생긴 양성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외국뿐만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보다 더 지나치다. 그 한 예로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고 금품을 빼앗은 특수 강도를 단지 수배 전단지에 찍힌 얼굴이 예쁘다고 하여 '강짱'으로 부르며 인터넷 사이트 팬클럽에 1만여 명의 회원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외모에 대한 비정상적인 숭배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증거이고, 겉만 예쁘고 잘생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옛 속담의 "이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등의 의미를 통해 과거에도 지금처럼 외모를 중요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조건이라면 이왕이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파급효과가 사회 각 영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이면서 과거 "좋은 외모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오히려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불이익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굶어서라도 몸매를 가꾸고, 안 되면 막대한 비용이나 수술의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작은 얼굴, 쌍꺼풀 진 큰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심지어 볼륨 있는 가슴이나 엉덩이 등이 필수적인 사회적 성공 요건이 되어 버렸다는 세태를 탓하는 것이다. 게다가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는 유행의 흐름까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건강을 해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는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짱' 신드롬은 작년에 신문지상에 자주 소개되던 '5대 얼짱'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이 카페의 회원들 대부분은 초·중·고교생들로 사이버 공간의 문화에 익숙한 세대들이다. '짱' 신드롬은 비단 어린 학생들에게만 환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에서 두 아이의 엄마(39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멋진 몸매를 가진 '몸짱' 아줌마를 인터넷에 소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주부들이 '몸짱'이 아닌 것이 마치 나태한 삶의 결과인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가족을 위해 묵묵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주부들의 삶에 회의하게 하는 때 아닌 '몸짱'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외모 신드롬은 이제 여성 전유물만이 아니다. 젊은 남성들은 '꽃미남'이 되기 위해, 중년의 남자들은 '젊은 남자'가 되어 퇴출당하지 않으려고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전전하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가 사회적으로 '외모도 능력'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탓이다. 이런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못한 청소년들이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헌혈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빈혈 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거식증, 폭식증 등 식이장애{{ 거식증(拒食症)이란 날씬해지기 위해 극단적으로 음식물을 거부하나 때때로 다른 사람 몰래 게걸스럽게 많이 먹기도 하여 暴食症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체중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인 구토, 심한 운동, 설사약 복용 등의 행동을 하는 경우로 심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하나인 식이장애이다.}}를 겪는 이들도 많다.

특히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과 골다공증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고려대학교 신철 교수팀에 의뢰한 조사결과(만 11∼17살 여학생 2,891명과 남학생 891명을 대상)에 따르면, 이들 여학생 3명 가운데 2명이 정상체중인데도 식이요법 등 체중조절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돼 우리 사회 10대들의 외모중시 경향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중조절 방법의 하나인 식이요법은 41.1%의 여학생이 경험한 바 있고, 그 이유로 대부분 '외모'를 들고 있어 여학생들의 외모에 대한 압박감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또 여학생의 10.9%, 남학생의 7.5%가 거식증을 보여 체중조절의 부작용도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http://news.empas.com/show.tsp/20030308n03956=389 참조, }}

물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처럼 무조건 외모지상주의가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갖고자 하는 것은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빠른 속도로 오도돼 가고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짱' 신드롬을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한 책임의 많은 부분이 TV매체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짱'을 내세우고, 프로그램마다 연예인들로 도배하는 것은 외모만으로 '신데렐라'가 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한국의 여성 건강 통계집》(2002년 1월 전국 1만 2천 가구[여성 1만 4천 1백 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영양 실태 등을 종합한 것)에 따르면, 20세 이상 여성의 34.4%가 자신을 비만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조사대상 성인여성 중 13.1%가 표준체중 범주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비만이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이들이 몸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놀랍게도 운동이 아닌, '끼니 거르기나 단식' '다이어트 상품이나 약' '설사 및 이뇨제 복용'과 같은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인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약물을 주로 꼽았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 13∼43 여서 68%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에 영향을 끼치고', 78%는 '외모 가꾸기가 생활의 필수요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25∼34세 여성들은 '외모가 경쟁력'이라며 헬스, 성형수술, 다이어트에 적극적이었고, 35∼43세 여성들은 외모를 부외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트렌드(trend)와 맞물려 '미용(beauty) 산업'은 급속히 팽창하는 추세다. '얼짱'이나 '몸짱'이 되기 위해 미용 산업에 몰리는 돈이 1년이면 7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다른 업종들의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몸매관리업소에는 손님들이 붐빈다. 병원·한의원에서는 앞 다투어 비만치료와 몸매 성형을 내걸고 있다.

서울 청담동 모 성형외과의 경우 최근 '엉덩이 확대수술'을 받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모래시계형' 몸매를 열망하는 여성들이 가슴에 이어 엉덩이를 키운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28명이 이 수술을 받았으며 올 들어서는 벌써 작년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또 최근 20대 여성이 수술을 받은 후 사망하기도 했던 베아트릭스 시술(위를 절제해 식욕을 억제하는 수술)도 1천만 원 정도 들지만 환자들이 꾸준히 몰린다고 한다.

이런 경향으로 서점가에도 다이어트 열풍이 그대로 나타나서 이와 관련된 서적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뱃살빼기 15분》 《바디 디자인》 《아름다운 몸의 혁명》 《6주 안에 뱃살 빼는 법》 등이 건강부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열풍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어린이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권준수 교수는 "특히 여자 아이들은 대여섯 살만 되면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 강박증세로 약물치료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며 "말랐는데도 연예인과 비교해 뚱뚱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ttp://www.xism.com/zne200108/2001080503.htm 참조.}}

또한 무조건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상으로 소아 식이장애 전문 병원을 찾는 아동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소아다이어트 열풍은 사회·문화적인 탓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TV를 통해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의 '짱' 스타들만 보고 자란데다 뚱뚱한 것이 죄악시되는 사회분위기가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일반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시 미의 기준이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얼짱'이나 '몸짱'이라고 할 때의 미의 기준에는 '누가 보아도 잘 생긴 얼굴이나 몸매'라는 것이 이미 상당히 객관적으로 획일화되어 있으며, '개성의 발현'이라는 미의 본질과는 무관해졌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짱' 신드롬의 이면에는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앞서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래서 타고난 외모를 뜯어고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여 보려고 목숨을 걸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것은 단지 '내실보다는 포장'을 더 중시하는 외모지상주의를 개탄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까지 거기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는가에 있다.

그 첫째 이유로 사람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 또는 부재를 들 수 있다.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라면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사람값)를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외모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학력이나 학벌, 직업, 재산 상태, 직위 고하 등에 따라 '사람값'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매기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못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번듯하게 내세울 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거기에 못 생겼다는 이유가 하나쯤 더 추가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외모인가? 어떻게 외모가 다른 평가 기준들보다 앞서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적인 시스템이 아닌 사적인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라는 배경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보기에 좋은 외모는, 마치 같은 고향이나 학교처럼 같은 출신의 사람에게 더 진한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보다는 더 직접적이고 일차적이다. 외모를 파악하는 데는 상대방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 없다.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만일 우리 사회가 공적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면 이 모든 개인적인 호감은 말 그대로 개인적인 호감에 그치고 말 것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적인 인간관계에 의해 삶이 좌우되는 사회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자산이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값을 제대로 매기는 비인간적(?) 평가 기준들 가운데 오로지 '신체'만이 온전히 그 자신에게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도, 눈에 띄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요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緣起] 속에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에 반해 신체적 조건은 타고났든 또는 돈을 들여 뜯어 고쳤든 온전히 그 자신에게 속한다고 생각한다. 학벌이나 직업, 재산 따위는 그저 그 사람이 지닌 겉포장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신체는 인격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나은 외모를 위해 자신의 신체에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한다고 한다.{{ http://www.cyberculture.re.kr/bbs/bbs.htm. 변정수, <루키즘 시대의 도래-'원조 얼짱 응삼이' 신드롬의 이면>, (2003, 11, 29) 참조.}}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짱' 신드롬이나 다이어트 열풍은 본래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인한 비만에 대한 일반인들의 살과의 전쟁이었으나 요즈음의 현상은 외모지상주의 산물로서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예뻐지고 날씬해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불교는 이러한 사회병리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불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떤 처방을 줄 수 있을까?

여기서 문제는 욕망이다. 불교에서 욕망은 탐·진·치 삼독의 하나로 본다. 욕망이란 본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더 많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집착이 자리 잡고 있는데 집착은 모든 것을 병들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착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

불교에서 다이어트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욕망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몸의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살'을 빼는 것이다. 《마음의 살까지 빼주는 사찰음식 다이어트》의 저자 대안 스님은 '마음의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의 첫 걸음은 '인스턴트 음식과의 결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극적인 맛으로 식욕을 부추기는 것이 인스턴트 음식의 특징이다. 인스턴트 음식은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그 자극적인 맛으로 인해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폭식으로 이어져 자제심을 잃게 만든다.

또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대상은 폭식이라고 한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자제할 수 없어 폭식을 하는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음식으로 말초 감각을 만족시켜 자신이 처한 문제를 잊어버리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폭식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은 음식일 뿐, 내가 처한 현실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해결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인식의 전환이다. 이와 관련하여 부처님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보기로 하자.

'부처님 당시 파사익이라는 코살라국의 왕이 있었다. 그는 아주 대식가였다. 매 끼마다 약 반 말 정도의 밥을 반찬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날 왕은 밥을 잔뜩 먹고 곧바로 부처님을 만나 뵙기 위해 기원정사로 갔다. 그러나 밥을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식곤증을 못 이겨 졸았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을 헤매다가 문득 부처님에게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저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오는 졸음 때문에 늘 애를 먹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대식가는 언제나 식후의 졸음에 시달려 고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곡식을 잘 먹인 큰 돼지가 흙먼지 속에 뒹굴며 누워있듯, 실컷 먹고 졸음에 시달리며 뒹굴뒹굴 누워있는 어리석은 자는 결코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왕은 자신을 '잘 먹인 큰 돼지'라고 무시하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식사량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자신의 시종에게 부처님의 이 게송을 되풀이해서 외우도록 했다. 그 결과 그의 체중은 점차 줄어들었다. 체중이 줄어드니 졸음도 적어졌다. 졸음이 적어지니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 자기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왕은 더 먹고 싶어하는 욕망의 마음을 다스린 것이다. 그 결과 왕은 행복과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정재 스님, <행복하게 사는 법 아름답게 죽는 법>, 여래, 2004 참조.}}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왕은 먹고 싶은 욕망을 다스려서 몸과 마음을 함께 다이어트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살을 빼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의 살을 빼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데 여념이 없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면서도 배고픔을 속이기 위해 소화가 잘되지 않는 음식물을 섭취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다.

왜냐하면 욕망을 다스려 줄인 것이 아니고, 거짓으로 속였기 때문에 비만의 원인인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는 단지 미용을 위한 몸의 다이어트보다는 욕망을 줄이는 마음의 다이어트가 진정한 다이어트로 본다. 그래서 '욕망을 채우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욕망을 다이어트'를 하라고 한다. 욕망을 다이어트하면 마음의 살이 빠지고, 마음의 살이 빠지면 몸의 살은 저절로 빠지기 때문이다.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되지 않기 때문에 욕망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언제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욕망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다이어트이다. 그러면 '마음짱'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변하므로 '얼짱'이나 '몸짱'은 유한한 '짱'이지만 '마음짱'이 되면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얻게 해주는 영원한 '짱'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몸짱' 아닌 '마음짱'이 되자.■

문을식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며, 인도문화사상연구소 대표이다. 논저서로 〈가우다빠다의 불살생과 용수의 중도설〉 〈마야설의 불이일원론적 이해〉 《인도의 사상과 문화》, 역서로 《힌두교 입문》 《인도철학의 자아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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