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생명공학과 불교윤리

배아복제의 실험은 의학에서 난치병의 치료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생명윤리를 연구하는 학자에게 있어서 배아복제는 주목의 대상이다.

이런 뜻에서 생명윤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몇 년 전부터 배아복제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해온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논자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고 연구해왔다. 그런데 논자는 두 가지 벽을 실감하여야 했다.

논자의 의학과 생물학 등 과학지식이 부족했고, 불교계의 선행연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논자가 조사해본 한도에서는 연구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불교계에서도 무엇인가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 부족한 글이나마 발표하게 되었다.

1. 들어가는 말

20세기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은 물론 인간의 삶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생명공학의 두드러진 발전은 인간 삶을 비롯한 생태계의 모든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실험실에서는 온갖 형태의 생명조작 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복제 기술, 유전자 치료 등 생명의 근본 질서마저 위협하고 있다. 생명공학의 획기적인 발전은 급기야 인간복제를 상상의 세계로부터 가능성의 세계로 옮겨오는데 성공하였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편(2001), 『과학연구윤리』, p.42.}}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생명공학의 발전을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 내지는 사회적 유용성의 차원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제된 인간의 출현은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고 기존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 복제가 바로 우리가 문제 삼는 인간 배아 복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명 현상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생명공학에 종사하는 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도처에서 인간 배아 복제를 집요하게 획책하고 있다. 실제로 배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연구실에서 실험, 조작하는 인간배아는 아직 생명이 아닌 하나의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세포덩어리인 배아를 통한 연구나 실험들이 의학 기술의 진보를 이루어 수많은 만성질환의 치료법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명공학 산업에 있어서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배아 연구는 오늘날 실험실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그 대부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즉, "동물의 자궁에 인간 배아를 착상시키려는 시도, 동물의 생식세포와 인간의 생식세포를 수정시키는 일, 인간 배아를 냉동보관 하다가 폐기시키는 일, 유전자 개입을 통하여 형질이 변형된 배아를 생산하는 일, 배아를 재료로 하여 줄기세포를 만드는 일 등등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들"{{ 이동익(2002), 『인간생명의 시작』, 가톨릭 신문, p.4.}}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될 사회적 이익을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배아연구는 난치병치료 등 우리 인류문제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는 연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학자나 종교인들은 배아연구를 무조건 금할 것이 아니라 연구영역과 자세와 한계 등을 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논자는 배아연구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배아연구자가 철저한 연구윤리와 법적인 규제를 지키면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불교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2. 배아복제란 무엇인가

1) 배아복제란 무엇인가?


인간복제라는 말은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한 생명 복제기술을 인간에게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 서정선(1999), 「인간복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연수원 편, 『임상윤리학』, 서울: 서울대학교 출 판부, p.225.}}

인간복제는 그 결과에 따라 배아복제(embryo cloning)와 개체복제(individual cloning)로 구분된다. 배아복제는 전배아(pre-embryo), 즉 임신 시작에서부터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출현하는 수정 후 14일까지의 착상 이전의 수정란의 복제를 의미하며, 개체복제란 이러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하나의 완전한 개체를 형성함을 의미한다. "복제의 목적에 따라 생식용 복제(reproductive cloning)와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순전히 새로운 개체를 출산시키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인간 복제를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복제를 시행하여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것을 말한다."{{ 김상득(2000), 『생명의료윤리학』, 서울 : 철학과 현실사, p.111.}}

따라서, 치료용 복제는 배아복제를 필연적으로 요구하지만 개체복제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배아복제가 진행되려면 환자의 세포로부터 얻은 핵을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핵치환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배아복제 연구는 1902년 스페만(Spemann)이 도룡뇽에서 2세포기 배아의 할구를 분리하여 동일한 2개의 개체를 생산한 이후, 1952년 브릭스(Briggs)와 킹(King)이 개구리에서 할구세포의 핵을 난자의 세포질에 이식함으로써 핵치환 기술로 이어진다. 1966년 거든(Gurdon) 등은 개구리의 핵이 제거된 난자에 내장 상피세포의 핵을 넣어서 비록 성체 개구리는 아니지만 올챙이까지 발생함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구리 복제 실험은 다른 동물에서는 재현되지 않았다. 포유류에서의 배아복제 연구는 1997년 윌므트(Wilmut)등에 의해 분화된 체세포를 이용 복제양 돌리를 생산함으로써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김철근(2002),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과학적, 의학적 가능성과 한계」, 한국생명윤리학회 봄철 학술대회, pp.28-29.}}

이때 사용된 체세포는 분열이 활발한 세포가 아닌 분열이 정지된 세포였으며, 이로 인해 핵을 공여하는 세포의 상태에 따라 복제동물 생산여부가 좌우됨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와 유사한 방법을 이용하여 생쥐, 소, 원숭이 등의 다양한 포유류 동물의 복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복제와 기술적으로는 동일하나 그 목적이 개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분화되기 전의 배아기간세포(embryonic stem cell)를 얻거나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환자의 귀나 피부에서 소량의 조직을 채취하고 효소를 처리해 체세포를 분리한 후 준비한 공여핵을 핵이 제거된 난자의 세포질에 이식한다. 체세포 핵으로 치환된 난자는 전기·화학적 자극 등의 인위적인 활성화 과정을 거친 후 생체 발생 프로그램이 재구성된 복제수정란이 된다. 이러한 복제수정란은 체외배양과정을 통해 착상 전 단계의 배아까지 발생시켜 착상 전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배아줄기세포를 만든다."{{ 위의 책, p.29}}

따라서, 배아복제는 핵치환 기술을 통해 환자 자신의 배아줄기세포를 대량으로 만들고 이를 의학적으로 이용하려는 점에서 주목받는 방법이다.

2) 줄기세포의 정의

줄기세포{{ 간세포라고도 불리는 줄기세포는 혈액·근육·신경·연골 등 신체의 모든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만능세 포이면서 죽지 않고 세포분화를 거듭하는 불멸의 세포로 간·폐·심장 등으로 발달하기 이전의 배아 단계 의 세포를 말한다.}}란 아직 분화하지 않은 미성숙 상태의 세포로 체외 배양에서도 미분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한정으로 스스로 분열·복제할 수 있으며, 개체의 발달 시기와 위치하는 장소 등에 따라 생물체를 이루는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세포로 분화되어 나갈 수 있는 세포들을 총칭한다. 이러한 줄기세포는 그 분화능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위의 책, pp.23-24.}}


첫째, 만능세포(totipotent cell)는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발생해 나갈 수 있는 만능의 성질을 가지는 세포로, 난자와 정자의 수정 이후 8세포기까지의 세포가 이러한 성질을 갖는다. 이 시기의 세포를 각각 분리, 자궁에 이식하면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발생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에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

둘째, 전분화능세포(puluripotent cell)는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층 유래의 다양한 세포와 조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세포로서, 수정 4∼5일 후 나타나는 배반포(blastocyst)의 안쪽에 위치한 내세포괴(inner cell mass)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세포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배아줄기세포이며, 다양한 다른 조직세포로 분화되나 새로운 생명체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전분화능을 지니는 줄기세포는 내세포괴 외에도 태아의 생식융기(gonadal ridge) 부위에서 발생하는 원시생식세포(primordial germ cell)로부터도 유래할 수 있다. 이러한 세포를 배아생식세포(embryonic germ cell)라 하며 배아줄기 세포와 비교할 때 조금 약한 분화능과 분열능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다능성세포(multipotent cell)는 이 세포가 포함되어 있는 조직 및 기관에 특이적인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서, 태아기·신생아기 및 성체기의 각 조직 및 장기의 성장과 발달은 물론 성체조직의 항상성 유지와 조직 손상시 재생을 유도하는 기능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 특이적 다능성 세포들을 총칭하여 성체줄기세포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혈액줄기세포(조혈모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들 수 있고, 피부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피부세포를 만들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1981년 에반스(Evans), 카프만(Kaufman), 마틴(Martin)에 의해 생쥐에서 처음 시험관내에서 정상적인 이배체 핵형을 지닌 미분화상태로 배양되었으며, 면역결핍 생쥐에 주입하여 다능성도 확인되었다. 한편, 다른 생쥐에서 채취한 배반포의 내부에 배양중인 생쥐 배아 줄기세포를 주입한 후 대리모 생쥐의 자궁에 착상시킬 경우 배아줄기세포는 생체의 전 조직세포를 구성할 수 있었다.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하면서 실험실에서 무한대로 증식이 가능한 배아줄기세포는 그동안 유전자재조합이나 유전자적중기술을 이용한 형질전화동물 생산에 적용됨으로써 생체 내 유전자의 기능 연구 및 사람의 특정질환 모델동물 생산 등에 기여했다.

한편, 1998년 11월 미국의 톰슨(Thomson)과 기어하트(Gearhart) 연구팀은 각각 사람의 배아줄기세포와 배아생식 세포가 미분화상태로 배양 가능하며 다능성을 나타낸다고 최초로 보고함으로써 사람의 줄기세포가 미래 의학의 핵심 연구로 주목받게 되었다.

3. 불교의 인간관과 태아관에서 본 배아복제 문제

1) 인간 생명의 시작점은 언제부터인가?


배아 연구의 유용성을 들어 배아 연구의 허용을 주장하는 입장과 배아 역시 존엄한 하나의 생명체임을 강조하며 배아 연구를 반대한다는 입장 모두에게 배아가 생명체인가의 물음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배아 연구에 있어서도 임신중절의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생명의 시작점을 언제로 볼 것이냐에 따라 배아 연구의 허용 여부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생명의 시작점은 언제인가? 이에 대해 우선 인간 생명의 시작점을 크게 자유주의, 절충주의, 보수주의적 입장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임종식(1999), 『생명의 시작과 끝』, 서울 : 로뎀나무, pp.192-194.}}

첫째, 자유주의적 입장은, 태아는 임신 전 기간에 걸쳐 어떠한 도덕적 지위도 지니지 않으며 출생과 함께 비로소 생명권을 지닌다고 본다. 태아는 일단 태어나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입장의 사람들은 태아가 실제로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는 모체의 생명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살인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인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출생을 인간 생명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조산아(早産兒)는 인간이며, 그보다 더 발달된 산모의 자궁 속의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또한 출생하기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 전의 태아는 인간이 아니며, 출생 후 태아는 인간이 된다는 모순된 논리가 성립한다. 따라서 출생을 인간 생명의 출발점으로 보기는 힘들다.

둘째, 절충주의적 입장은한 존재가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발육기간이 경과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절충주의적 입장 내에서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일정한 발육시점에 대해서는 일치된 합의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인간이 되는 시점을 규정할 수 없다.
한편,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은, 인간 유전자를 가진 모든 존재를 인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유전인자가 형성되는 순간, 즉 수태 시점을 인간이 되는 시기로 본다. 즉 수태의 순간에 태아에게 주어지는 유전자는 어떠한 존재도 가지지 않는 새로운 유전자로 각 개체가 수태의 순간부터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수태되면 그 존재는 곧 인간이 될 가능성을 지닌 까닭에 성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명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와 같이 잠재적 존재를 현실적 존재와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김상득(2000), 앞의책, p.131.}}

첫째, 도덕적 행동이란 다른 존재의 능력을 존중하는 문제이다. 즉 실제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여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존중한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능력은 미래의 현실태(現實態)이고, 또 도덕적 행동이란 그 결과를 고려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현실태뿐만 아니라 미래의 현실태, 즉 잠재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재적 존재와 현실적 존재는 그 발달의 단계는 다르지만 동일한 단일의 실재라는 점에서 동일성이 유지된다. 어제의 내가 없으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수태의 순간에 인간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없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사람으로서의 기능에 대한 실재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수년 전 나는 갓 태어난 아이였고 그 전에는 어머니 자궁 속의 더 작은 아이였으나 나의 능력들은 변화했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사람으로서의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선천적 능력 또한 증가해 왔다. 나는 언제나 똑같은 본질적 존재로 이러한 성장의 능력을 가진 똑같은 사람이다. 내가 지금 본질적으로 사람이라면 내가 아이였을 때도 아니 태아였을 때도 그 이전의 단계에서도 나는 본질적인 사람인 것이다. 나의 사람으로서의 기능에 대한 능력이 변화하고 성장했다는 사실은 본질적 존재로서의 완전한 연속성 즉 사람으로서의 존재 사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임신중절의 문제에서나 배아 연구와 관련된 문제에서나,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시점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명의 시작점에 관한 논의는 사실 확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설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가지느냐에 따라 다소 변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시작점이 어디인가라는 물음보다는 무엇까지 생명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물음을 하는 것이 합당하고 사료된다.

배아는 생명을 가진 존재인가? 배아 연구와 관련하여 배아의 지위를 얘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절충주의적 입장 중 원시선이 생기는 수정 후 14일을 기점으로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2) 14일 미만 배아의 인간여부에 대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논쟁

국내 과학자들은 14일 이후에야 비로소 인체의 근본이 되는 척추가 형성되며 각종 신체기관이 형성된다는 생물학적 사실을 배아연구에 대한 찬성논거로써 제시하고 있다.

①14일 미만까지는 척추나 내장 등 신체기관이 발생하지 않는다.
②그러므로 14일 미만의 배아를 인간 개체로 볼 수 없다.{{ 임종식·구인회(2003), 『삶과 죽음의 철학』, 서울 : 아카넷, p.96.}}

위의 주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과연 전제 ①로부터 ②가 도출되는가 하는 것이다. 단지 인간으로 성장할 잠재력만을 지닌 존재에 척추, 내장 등 신체기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그 존재가 인간 개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가? 혹은 신체기관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14일 미만의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①로부터 ②를 도출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전제가 추가되어야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전제로서 14일 미만의 배아 세포들 사이에는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 세포들은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만약 세포들이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자율적으로 생존하고 있다면, 14일 미만의 배아는 단일 유기체가 아닌 세포더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위의 주장에 다음의 ②, ③, ④ 전제들이 추가된다면 배아연구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찬성 논거가 될 수 있다.

①14일 미만까지는 척추나 내장 등 신체기관이 발생하지 않는다.
②14일 미만까지는 세포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①로부터)
③14일까지는 세포들이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②로부터)
④14일미만의 배아가 인간개체라면, 세포들이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⑤그러므로 14일미만의 배아는 인간개체가 아닌 세포더미에 불과하다.(③과 ④로부터){{ 위의 책, P.99.}}

생물학적 사실인 ①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④가 참임 또한 명백하다. 또한 ②가 참이라면 ③또한 참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위 논변의 성패는 결국 ②가 참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즉 ②가 참이라면, 14일 미만의 배아는 세포더미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며, 따라서 그들을 폐기하고 파기하는 데 도덕적인 문제가 따르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14일 미만까지는 세포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대해 (즉 ②를 참으로 볼 수 있다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세포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각 세포들이 (비록 성숙한 유기체로 성장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세포들로부터 분리시켰을 경우에만 성숙한 유기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14일 미만의 모든 세포가 각기 하나의 개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가령 8세포기의 배아는 8명의 인간 개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세포들을 나머지 세포들로부터 분리시켰을 경우에만 독립된 개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투명대 안에서 세포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임종식(2000), 「인간배아 실험과 수정 후 14일론에 대한 윤리적 검토」, 인간배아복제 '14일론' 집중토론 회, p.6.}}

뿐만 아니라 접합체 시점부터 시작된 세포분열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며, 종(種)마다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한 채 분열을 한다는 사실 또한 투명대 안의 세포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세포 수정란도 세포막, 핵, 염색체 등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분열을 시작하는 것도 그들이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듯 14일 미만의 배아 세포들이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로부터 전배아가 인간이 아닌 세포더미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4일 이후에야 비로소 인체의 근간이 되는 척추가 형성되며 각종 신체기관이 형성된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14일 미만의 배아가 인간 개체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며, 위의 주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전제들을 추가시켜도 그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이상으로 배아복제 실험의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 논자는 찬성논자의 입장에 선다.

3) 불교의 입장

(1) 불전 속에 나타난 태아관(胎兒觀)과 태아발달 과정


불교에서는 본유(本有)로 불리우는 인간의 일생을 우선 태내(胎內)와 태외(胎外)로 크게 나누고 또 각각 몇 단계로 그 변화과정을 세분하여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간 일생의 변화과정 가운데 태내 즉 모체에서의 발달단계에 대한 문면을 검토해 불전의 태아관을 고찰하고자 한다.

불전의 문면을 검토해 보면 원시불교 시대에는 태아의 발달을 단계별로 나누지 않고 총괄하여 다루고 있으며, 후대에는 4기·5기·8기 등의 발달단계설로 설명하는가 하면 임신기간 38주를 각각 1주 단위로 나누어 설명한 경전들도 등장한다. 이 가운데 8기설을 근거해서 태아의 상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 Kalala기
수태로부터 일주일동안의 태아를 말한다. 불전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화합하여 엉김으로 인해 태내의 생활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수태 직후인 이 태아에 대해 『수행도지경』에서는 "더하거나 감하지도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 『수행도지경』, 대정장 15, p.187 상.}}고 표현함으로써 발육을 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불설포태경』에는 "머물러 증감이 없고 차츰 뜨거워지며 더욱 견고해지면 곧 지종(地種, 뼈·손톱 등의 고체성분)이 되고, 그 부드럽고 습한 것은 수종(水種, 혈액·호르몬 등의 액체성분)이 되며, 그 중에 따뜻한 것은 화종(火種, 열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는 구성요소)이 되고, 그 가운데를 관통하면 풍종(風種, 운동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는 구성요소)이 된다."{{ 『불설포태경』, 대정장 11, p.887.}}고 표현함으로써 발육보다 내면의 질적인 변화를 그리고 있다.

현대 발생학에서도 이 시기는 크기의 증가 없이 세포 분열만이 이루어져 질적 변화만이 일어난다고 하니 불전의 내용과 부합된다고 하겠다.

② Arbuda기
제2주의 태아를 말한다. 이 시기의 태아의 형상은 마치 엉긴 타락죽과 같이 표현한 것이 많으며, 『불설포태경』에서는 "그 몸에 모여 포가 되는데 그것은 마치 타락 위의 기름과 같으며 그 정이 더욱 굳어진다."{{ 위의 책 p.887 상.}}라고 서술하고 있다.

현대 아동학에서는 수태 후 1주와 2주의 태아를 배란(ovun)이라고 부르는데, 자궁벽에 착상하기 이전의 단계로서 세포분열을 계속하면서 착상 준비를 위해 떠다니는 시기이다.{{ 백경임,「불전의 태아관」,『한국불교학』제10집, pp.121-123}}

③ pe i기
제3주의 태아를 말한다. 이 시기의 형상은 마치 "쇠 젓가락 또는 지렁이 같다"고 묘사함으로써 더욱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 아동학에서 볼 때 이 시기부터를 태아(embryo)라고 하듯이 자궁에 착상한 직후의 모습인데 이 시기를 초육(初肉)이라고 했음도 예사롭지 않다.

④ Ghana기
4기설에서는 수태 이후 4주째부터 출산까지의 총칭으로 삼고 있는 듯 하나 그 이외에는 4주째의 태아를 말한다. 경전에는 음식 등의 업풍(業風)에 의해 성장한다고 함으로써 난자의 영양으로 세포분열 되던 단계는 지나고 착상이후 스스로 영양을 흡수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다.

⑤ Pra kh 기
5기설에선 5주에서 출산까지의 총칭을 의미하고 일반적으로는 제5주째의 태아만을 뜻한다. 성장이 왕성하여 마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면 나무숲이 무성하여 가지들이 크는 것처럼 5상(五相)이 나타난다고 한다.
현대 발생학에서는 수태 2주에서부터 8주까지 즉 태아(embryo)시기에 머리에서부터 태아의 발달이 이루어지며 팔과 다리도 형성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불전에서는 너무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⑥ 발모조위기(髮毛爪位期)
제 6주째의 태아를 말한다. 경전에서 광대(廣大)·위수(爲水) 등의 업풍(業風)에 의해 성장한다고 서술되어 있음을 통해서 볼 때, 이 시기에 수분을 흡수하여 왕성한 성장이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경전에는, "봄비에 비름의 가지가 나는 것처럼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이 형성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대정장 24, p.254 중.}}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를 발모조위라고 이름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자 그대로라면 머리카락·솜털·손톱이 형성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시기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리카락과 솜털은 수태 후 4개월째에 생기기 시작하여 서서히 성숙되면서 손톱도 5개월째에 생기기 시작한다. 더구나 『비나야잡사』나 『불설포태경』 등의 경전에서도 수태 후 30주째에 머리카락·솜털·손톱 등이 자란다고 묘사하고 있으므로 경전상의 내용에서도 모순이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기는 두 팔꿈치와 무릎이 형성된다고 설명되고 있으니 발모조위라 함은 논자가 모르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⑦근위기(根位期)
제7주째의 태아를 말한다. 이때 작용하는 업풍의 이름이 선전(旋轉) 또는 회전(廻轉)인 것은 성장에서 부드러움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 여러 경전에서는 부드러운 두 손과 두 팔이 형성되는데 유연하기가 물보라나 물이끼 같으며, 그 형색은 복숭아 같다고 함으로써 그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또 근위기(根位期)라고 이름한 것은, 이 시기에 감각기관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대적으로 볼 때도 이목구비(耳目口鼻)의 형성이나 신경계통의 형성도 태아의 시기에 이루어지는 만큼 적절한 분석이라 하겠다.

⑧형위기(形位期)
8기설에서는 8주에서 출산까지를 이르는 듯하고 일반적으로는 제8주 째의 태아만을 말한다. 경전에 따르면, 번전(飜轉)·퇴전(退轉)이라는 업풍에 의해 성장한다고 하는데 이는 새로운 방향으로 그 성장이 진전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그 모양을 드러내는 데 마치 새로운 비에 나무뿌리가 나기 시작하듯이 또는 나뭇가지에 비가 내려 더욱 무성해지듯이 각각 10개씩 형성된다고 한다.

이상으로 8기설에 입각하여 불전의 태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현대적으로 볼 때에는 수태 후 2주째부터 이 시기까지가 태아기로서 신체 각 부분의 95%가 형성되며 크기도 수정란의 약 2만 배나 되는 왕성한 성장발달 시기이다. 또 손가락과 발가락의 형체가 갖추어짐도 이 시기인 만큼 불전의 내용과 상당히 부합된다. 또 실제로 사람다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라고 하니 역시 현대과학과 부합된다고 하겠다.

(2) 불교의 인간관에서 본 배아의 지위

불교에서는 인간은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 본다. 부처님은 "간단히 말해서 이 오온(五蘊)계의 집착이 바로 고(苦)이다."고 설했다. 부처님은 명백하게 "비구여, 고(苦)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온의 집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고와 오온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온 그 자체가 바로 고(苦)이다. 소위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의 개념을 정확히 알게 되면, 인간과 고의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오온에 대해서는 졸고 「장기이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2)」,『불교평론』17호 참고.}}

불교에서는 일상적 인간을 '오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이 '오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부분이 서로 얽히고 짜임으로서 '비파(琵琶)'라는 악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도 하였다. 비파의 소리는 모든 부분이 한데 모여져서 적당한 위치관계에 놓여져 비파가 구성될 때에만 울리는 것처럼 인간도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얽혀지는 관계에 놓였을 때에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된다.

더 엄밀히 따지면 인간은 관련되는 모든 인연이 어떠한 상태에서 보여주는 전체관계의 총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고정된 '실체'는 없고 다만 '어떠한 상관관계의 총화'만이 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의 총화를 불교에서는 '온(蘊)'이라고 부른다. 즉 불교 용어인 '온'을 이용해 표현하면 인간은 관계되는 모든 인연의 '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온(蘊, 모임·쌓임의 의미)'의 어의(語義) 자체에는 '연기(緣起)'를 예상하고 있다. 색온(色蘊)이 연기(緣起)를 예상하고 있다는 말은 '무아(無我)'에의 접근을 암시한다.

다시 정리하면 불교에서는 인간을 고정불변한 실체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불변인 나'가 있을 수 없으며 '내 것', '내 자식', '내 견해'로서의 존재는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이 있다고 보는 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존재를 불교에서는 '범부'라고 부르고, 그것을 착실히 깨달아 알면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통해서, 불교에서는 인간을 색(色)이라는 육체와 더불어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정신활동을 갖는 존재로 파악하는데, 수정된 2주도 안된 배아가-의학적으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런 정신활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배아는 인간의 가능태이지 인간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인간관의 입장에서도 엄격한 조건하에서 배아복제는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4. 배아복제 연구의 유용성과 불교의 입장

1) 배아줄기세포의 유용성

(1) 난치병 치료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는 이론적으로 다능성을 지닌 사람 세포이기 때문에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하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의 분화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만 규명된다면 난치병 환자 치료에 필요한 정상세포를 무한정 생산할 수 있으며, 특히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기술은 조직공학과의 연계를 통하여 다양하게 응용될 것이며 필요한 장기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구인회(2001), 「인간배아복제에 관한 윤리적검토」, 제24회 토지문화재단 세미나, p.3.}} 이러한 치료 가능한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김철근(2002), 앞의책, p.26.}}

첫째, 제1형의 당뇨병은 랑게르한스 섬이라 불리는 췌장세포에서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혈당량 조절이 안 되는 질환이다. 이런 환자에게 랑게르한스 섬 세포를 이식한 결과, 인슐린 주사의 필요성을 현저히 감소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랑게르한스 섬 세포를 유도한다면 더 이상 인슐린을 주사하지 않고도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신경세포의 소실에 의하여 많은 신경계 질환이 발병하며, 분화된 신경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으므로 한 번 소실된 신경세포는 대체될 수 없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포가 죽은 것이고 치매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세포가 죽어서 유발된다. 근 위축 측삭 경화증은 근육을 활성화시키는 운동 신경세포가 죽은 경우이다. 척추손상이나 뇌손상에 의해서도 많은 종류의 신경세포가 소실될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의 경우 유일한 희망은 줄기세포로부터 새로운 신경 세포를 분화시켜 이식해 주는 것이다. "파킨슨병에 결린 환자에게 태아에서 추출한 신경세포를 이식한 결과 증상이 호전된 실험결과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포로 분화시켜 이식하는 치료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제이 홀맨 엮음, 박재형 외 옮김(1997), 『의료윤리의 새로운 문제들』, 서울 : 예영 커뮤니케이션, pp.110-113.}}

셋째, 줄기 세포는 선천성 면역 결핍증의 치료에도 이용될 수 있다. 현재 약 70여종의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면역계 결함들이 밝혀졌다. 이들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염이 잘 되고 종종 빈혈, 관절염, 설사, 종양 등을 동반한다. 이 경우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지는 줄기세포로부터 유래한 면역세포를 이식하여 면역 기능을 다시 구축할 수 있다.

넷째, 뼈나 연골에 결함이 있는 경우 줄기세포로부터 분화된 세포를 손상된 부위로 이식, 손상 받은 연골을 회복시켜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 골다공증의 경우도 이를 이용, 치료 가능하다.

다섯째, 만성 심장병을 앓는 환자는 심장박동이 비정상이다. 이 경우 줄기세포로부터 심장 근육 세포를 유도 이식하여 주면 증세를 호전시킬 수 있다.

여섯째, 현재 암세포뿐 아니라 면역 세포까지 죽이는 강력한 화학 요법을 받는 경우, 면역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골수줄기세포가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불완전하여 면역 기능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 없다. 이 경우 덜 분화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면역 기능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다면, 독성이 좀더 강하지만 효과가 훨씬 좋은 화학요법을 도입, 치료를 수행할 수 있다.

일곱째, 피부 화상의 경우, 현재는 다른 부위에서 조직을 이식하여 치료한다. 이 경우 다른 부위에도 흉터가 남고 충분한 조직을 구할 수 없어 문제가 되는데,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피부 세포로 분화시킨 후 화상 부위에 이식하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대머리의 경우도 줄기세포로부터 모낭 세포를 분화시켜 대머리 환자에 이식시켜주면 된다. 유방 절제술을 받은 여성 환자도 유방 세포를 분화 유도시킨 후 이를 이식시켜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덟째, 배아줄기세포는 암세포 조직 등의 인체조직의 특정 부위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로도 이용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이러한 세포이식 치료의 유용성외에도 다른 많은 이용가능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김철근(2002), 앞의 책, pp.24-26.}}

첫째,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는 인간의 초기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아직 설명되지 않는 발생 초기의 문제로 인하여 자연 유산을 일으키는 선천적인 결함과 태반 이상이 나타날 수 있는 데,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 유전적·분자적·세포적 기작을 밝힐 수 있고 그 방지법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줄기세포는 초기 발생시기의 염색체 이상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데 이용될 수 있으며, 배아 줄기세포가 분화되는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개체의 발생에서 어떻게 세포가 분화되어 나가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다.

둘째, 배아줄기세포는 신약 개발에도 도움을 준다. 현재까지는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을 때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동물 모델들을 이용하였다. 쥐의 세포를 이용하여 체외 실험을 행하거나 약물을 동물 체내에 직접 주입하여 그 안전성을 조사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약물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종 인간의 세포를 배양하여 수행하였으나, 이러한 인간 세포주들은 대개 오랜 기간동안 체외에서 유지되어온 것으로 체내 세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만약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특정 세포타입으로 분화된다면 약물에 대해 체내 세포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므로 약물의 영향을 조사하는 데 있어 보다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배아줄기세포는 독성 조사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줄기세포가 약물 조사에 이용되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독성물질은 서로 다른 동물 종에서 상이한 효과를 보일 수 있으므로,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데 있어 줄기세포가 가장 좋은 체외 실험 모델이 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배아 복제 기술은 분명 인간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 미래에서도 인류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대체연구에 대해서는 일단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 배아복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과학의 발전 자체를 가로막거나 그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논지는 생명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과학의 발전과 생명공학육성의 방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해내지 않더라도 이 연구를 계속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고 있음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성인으로부터 직접 줄기세포를 추출하기도 하고, 탯줄에서 이를 분리해내고, 환자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해 내어 거부반응을 예방할 수 있다"{{ 강경선(2002),「생명윤리논쟁극복을 위한 대안」, 한국생명윤리학회, 봄철학술대회, pp.37-38.}}고 보고된 바 있다.

그 동안 인간배아복제에 투자된 연구비를 이러한 다양한 대체연구에 투입한다면 훨씬 많은 성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성인과 탯줄에서 추출된 줄기세포를 이용해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도된 보고들을 요약하면 뇌암, 난소암, 유방암, 임파선암 등에 사용될 수 있으며, 전신성홍반성낭창,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에도 사용될 수 있다. 그 외에도 뇌졸중이나 빈혈, 유전자치료 등에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줄기세포의 종류만 해도 신경줄기세포, 근육, 췌장, 혈관, 심장판막, 골수 등 다양한 줄기세포의 추출이 임상에 응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배아 복제 외에 다양한 방법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난치병 및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득만을 내세워 인간배아복제 기술의 육성을 주장하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그것을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생명공학자들의 사명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간의 끊임없는 연구와 대화가 요구된다.

(2) 불임치료

1978년 영국에서 시험관 아기시술로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30여만 명 이상의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적으로 태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5년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이래 공식적으로 보도된 바는 없지만 수만 명이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국내에서 불임치료를 위해 보조생식술(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ART)을 시행하고 있는 불임센터는 1999년 2월 대한산부인과회지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1997년 12월 현재 대한의사협회에 인공수태시술 의료기관으로 92개의 불임센터가 인준되어 있다."{{ 대한산부인과회(1999), 「불임치료 현황보고서」, 대한산부인과회지, p.37.}}

보조생식술로는 전형적인 시험관아기 탄생기법인 체외수정 및 자궁내 배아이식술(in vitro fertilization-embryo transfer: IVF-ET)을 포함해서 세포질내 정자주입법(intracytoplasmic sperm injection: ICSI), 생식세포 난관내이식(gamete intrafallopian transfer: GIFT) 및 냉동보존 배아이식 (cryopreserved embryo transfer: cryopreserved ET)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보조생식술에 의한 임상적 임신(초음파에 의한 태낭의 확인 및 임신산물) 중 선천성 기형이나 염색체 이상이 있었던 경우는 신선배아를 이용한 IVF-ET의 경우 0.5%, 신선배아를 이용한 ICSI의 경우 2.2%로 일반 인구집단에서 발생하는 선천성 기형의 빈도인 35%보다도 낮았다."{{ 박세필(2000), 「체세포를 이용한 생명체 복제기술의 의학적, 의료적 효능」, 인간배아복제 '14일' 집중토론 회, p.3.}}

이와 같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유전적 진단과 치료에 기인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불임센터에서 유전적 치료는 주로 세포유전학적 진단(cytogenetic diagnosis: CD)과 착상전 배아의 유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으로 대별된다. 세포유전학적 진단에는 혈액세포 진단으로 염색체 이수현상(chromosomal aneuploidy와 polyploidy: Turner, Down, Kleinfelter syndrome 등), 염색체 구조 이상(chromosomal structural anomaly: Inversion, Translocation, Deletion 등)과 선천성 유전진단(congenital genetic anomaly: Hemophilia, Cystic fibrosis 등)이 있고, 그 외 태반융모막(chorionic villi sampling: CVS)과 양수검사(amniocentesis)가 있다.{{ 박세필(2000), 위의 책, p.3.}}

이와 같은 방법은 일반적으로 임신 후에 일어나는 유전적 진단으로 특히 태반융모막검사와 양수검사 등은 임신 후 10주에서 12주 사이에 시행되는 검사로 고도의 샘플(sample) 채취기술을 필요로 하고 또한 그 과정 중에 태아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위에서 언급된 질환들이 확인될 경우 인공유산에 따른 환자의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최근에 개발된 착상 전 배아의 유전진단(PGD)은 임신 전에 이루어지는 유전자진단 방법으로 배아의 초기단계(4∼8세포기)에서 하나의 할구를 이용해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유전적 질환들을 검색할 수 있어서 유전적 결함을 가지지 않은 정상적으로 발달 가능한 배아만을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서 임신을 유도해 줌으로서 임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들은 "절망에 빠진 불임부부에게 생명복제 기술이 마지막 희망이므로 이들을 위해 생명복제기술의 사용이 허용되어야만 한다."{{ 박은정(2000), 『생명 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383.}}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는 출생이 갖는 인류학적·사회학적, 그리고 존재론적 의미 또한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출산은 남자와 여자의 성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자식이 태어난다. 이러한 유성생식(sexual reproduction)은 인간이 선택한 방식도 아니고 또 문화나 전통의 산물도 아닌, 포유동물이 취하는 하나의 자연적인 생식방식이다. 인간 배아복제는 유성생식이 아니라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생식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생식방식의 차이로 그치지 않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도 큰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불임 때문에 고민하는 부부에게 배아복제 연구는 하나의 희망이 될 것이다.

2) 불교의 입장

(1) 중생의 고(苦)의 제거


붓다가 온 중요한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다. 불교에서는 수많은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고통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병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중생들이 엄청나게 겪고 있다. 병고는 병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런 뜻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배아연구를 통해서 난치병과 불임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불교적 입장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불교에서도 불교의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불교의학의 시조는 고타마 붓다이다. 불교의 경전 속에는 의학서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붓다는 대의왕(大醫王)이다."라고 하여 일체의 인간 괴로움을 치료하는 것이 붓다의 임무였다. 이것은 정신적인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하여 안락을 얻게 하는 것이 붓다의 대원(大願)이었으나 그것은 그대로 육체적인 질병도 제거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통하였다.{{ 핫도리 도시로, 이경훈 역(1987), 『불교 의학』, 경서원, p.247}}

"병에 응하여 약을 준다(應病與藥)"는 말은 불교에 있어서 사람들의 교화에 관한 것인데 불교는 생활의 어느 면에서나 병의 근원을 탐구하여 이에 응하여 약을 주어 그 병자를 치료하는 것이 불교본래의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많은 경전 속에는 많은 의학서가 있어 오늘날의 기초의학에 관한 태생학, 해부학, 생리학, 위생학, 미생물학, 영양학, 병리학, 약물학 또는 임상의학에 관한 것, 내과에 속한 많은 질병을 비롯하여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피부과, 소아과라고 생각되는 것까지 모든 부문에 걸쳐서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면, 치료에 관한 경전명만 보더라도 『불설불의경(佛說佛醫經)』, 『불설주치경(佛說呪齒經)』, 『불설주목경(佛說呪目經)』, 『불설소아경(佛說小兒經)』, 『치선병비요경(治禪病秘要經)』, 『불설요치병경(佛說療痔病經)』, 『불설주시기병경(佛說呪時氣病經)』 등이 있다.{{ 핫도리 도시로, 위의 책, pp.247-248}}

또 불명(佛名)에 약사여래 부처님이 있으며, 그 불상은 항상 약단지를 들고 있다. 약사여래 신앙은 일면 불교의학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치병치료를 위하여 배아복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보살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종단인 조계종은 2004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하여 황우석 교수에게 오늘의 불자상을 수여하였다. }}

(2) 자비(慈悲)정신

자비사상은 평등사상과 아울러 불교의 실천을 관철하는 주요정신이며, 불교의 윤리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이라는 낱말을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있다는 사실에 비한다면, '자비'라는 낱말은 왠지 어색한 느낌을 지니는 낱말같이 듣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상용어로서, 우리는 '무자비(無慈悲)하다'는 말은 많이 듣고 있는데, 그것은 원래 불교에 있어서 자비의 부정형(否定形)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다시 불교의 '자비(慈悲)'라는 낱말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졸고 「장기이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3)」,『불교평론』18호 참고.}}

자비와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는 관념으로서는, 물론 '사랑'이라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것을 서양의 사상사를 통해서 본다면, 두 가지의 종류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그리스적인 감성적인 사랑, 즉 '에로스(eros)'와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서 설하는 종교적인 사랑, 즉 '아가페(agape)'가 그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자비는 그 어느 하나의 관념과도 동일한 것이 없다. 자비는 그러한 서양적인 사랑과 닮은 것 같지만, 그러면서 그것과는 이질적인 의미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불교가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자비의 종교라고 흔히들 부르고 있는 것은, 실은 거기에는 사랑과는 구별되는 자비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사랑에 대하여 자비는 어떠한 특성을 지니는 것인지를 가장 뚜렷한 점만을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우선 지적해야 할 점으로는 불교의 자비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초월해서, '일체의 살아있는 중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랑이 어디까지나 인간관계의 심정이며,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 위에 서고 있다는 점과 겨누어 보아서 매우 다르다고 하겠다. 물론 사랑은 인간관계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도 서양에서는 동물애호라는 점을 강조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세에 이르러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그것에 부수해서 설해졌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동물에는 영혼이라는 것이 없으며, 따라서 영혼의 구제를 받을 수가 없음으로, 따라서 천국에는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동물은 인간에 봉사하기 위해서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임으로, 그것을 죽여도 죄악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까지도 미치는 사랑이다. 자비의 대상으로서는 인간도 동물도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는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까지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의 사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의 정신에서 말한다면 동물애호라는 것은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교의 윤리의 특색은 '살아있는 모든 것', 즉 중생(衆生)의 윤리라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자비사상도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또한 불교의 자비의 특성으로서는 일체의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평등(平等)성을 관철하는 점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랑에는, 부부의 사랑, 친자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의 사랑, 조국사랑 등등 여러 가지의 사랑이 있으나, 그 각각에는 친조(親阻)나 호오(好惡)의 차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친근한 것, 바람직한 것에 대해서는 애정을 강하게 가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애정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그러한 사랑의 차별성을 초월하여, 무차별, 평등의 입장에 선 것이다. 그것은 자기지신에게 친근하거나 아니하거나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것에 평등하게 미치는 사랑인 것이다. 앞서도 언급한바 있지만, 원시불교에서 설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 자(慈)·비(悲)·희(喜)·사(捨)를 말한다.}}의 정신에 비추어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자비심은 시방세계의 만물에 편만(遍滿)해야 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의 입장에 선다면, 인간사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당연한 도리로서 요청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는 평등사상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바로 자비사상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불교의 자비사상의 특성으로서는, 사랑이 감성적인 상대적 성격을 지니는 것에 대하여, 순수한 절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들어야 하겠다. 불교에서도 자비 이외에 사랑이라는 낱말에 해당하는 낱말도 있으며, 인간의 사랑을 여러 가지의 양상으로 설하기도 한다. 예컨대 남녀의 성애라든가 연애 등은 '카마(kama)'라고 해서 애욕에 해당하는 낱말이 있으며, 친자와 같이 친근한 사람 사이의 애정은 '스네하(sneha)'라고 해서 친애라고 번역되는 낱말이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애는 '애호'라는 의미의 '프리야(priya)'와 '애념'이라는 의미의 '프레만(preman)' 등과 같은 개념의 낱말들이 있어서, 그러한 사랑이 인생에게 주는 아름다운 의의를 여러 가지로 설하기도 한다.

즉 그와 같은 개념을 설하는 점에서 말한다면, 불교에서는 인간적인 애정을 없애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에 있어서 바르고 아름다운 애정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본래의 입장에서는 세속적인 사랑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미망(迷妄)의 외로움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상대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녀의 애정은 상대가 배신했을 때는, 곧 바로 증오(憎惡)로 바뀐다. 그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증오도 또한 깊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지는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맹목적, 충동적인 애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근원적인 사랑을 '트리슈나(t : 渴愛)'라는 낱말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는 것과도 같이 격렬한 사랑이며, 불교에서는 그것을 근본적인 번뇌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 있어서는 인간애는 그대로 자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비는 인간적인 애증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의 사랑인 것이다. 감성적인 사랑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엔 애정이나 증오 따위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비는 초세속적인 사랑이라고 하겠다. 그 궁극적인 모습을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배아복제에 관한 모든 문제의 해결은 배아의 지위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배아의 지위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불교적 입장은, 불전에 나타난 태아관과 인간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오온으로 구성된 존재로 간주한다. 이는 색이라는 육체적 요소와 함께 수·상·행·식이라는 정신작용이 함께 갖춰진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14일 이내의 배아는 인간존재의 구성요소로써의 오온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존재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2주째까지의 배아는 인간의 가능태이지 인간자체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2주째까지의 배아연구는 가능하다고 본다. 한편, 불교의 윤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생의 고통을 제거한다는 불교의 대의(大義)에서나 불교의 자비정신의 입장에서도 배아연구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논자의 주장은 전문지식의 부족, 논리의 비약 등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 불교계에서도 활발하게 배아연구에 대한 토론이 전개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곽만연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동국대, 한양대, 인하대에서 강의하였고, 현재 동아대학교 인문학부 교수이다. 논문에 〈불교의 직업관〉, 〈불교윤리사상이 신라사회에 끼친 영향〉, 〈불교의 죽음관의 전개와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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