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길 동국대 국문과 교수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는 창시자 성현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이 있고,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수많은 서(書)와 기도문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기록물은 대개 특정 언어의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종교가 다른 언어권으로 전파될 때는 그 지역의 언어로 번역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전 번역 사업은 특정 종교가 국제화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서구의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다. 기독교의 경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그것이다.

구약성서는 고대 희브리어로, 신약성서는 고대 희랍어로 기록되었다. 팔레스타인의 한 작은 고을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교세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맨 먼저 해야 했던 일이 모든 경전과 기도문, 찬송가나 성가의 가사 등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를 아직까지도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근대 이후에 라틴어로 된 모든 경전과 기도문, 찬송가와 성가의 가사 등을 각 나라 국어로 번역할 것을 허락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서구 기독교가 세계화하는 데 한몫을 했다.

우리의 불교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될 때, 달마 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도 스님들이 제일 먼저 수행했던 사업이 바로 불경번역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많은 한문 불경은 말할 것도 없이 이때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것들이다.

한반도에 한문불경이 들어온 지도 천 수 백년이 지났다. 그러나 1443년에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불교 선각자들이 불경을 우리말로 옮겨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문 경전을 그대로 수입하여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한문을 모르는 중생들은 아예 경전을 읽을 수도 없었고, 한문을 아는 사람이 읽어주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교 선각자들이 천년을 두고 염원했던 것이 바로 한글과 같은 언문일치 문자의 출현이었다.

1443년에 세종이 마침내 현존 최고의 걸작인 한글을 창제했다. 그러나 몽고 문자가 그랬고 만주 문자가 그랬듯이 한글도 창제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당시의 식자계층인 사대부들이 한글 유통을 결사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서민들이 문자를 깨우쳐 유식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즉 고차원의 지식은 그네들의 전유물로 삼고 백성들은 무식할수록 지배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세종은 절묘한 타개책을 찾았다. 그것은 곧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한글로 기록하는 불경번역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세종을 비롯하여 문종, 세조 등 한글 창제에 참여했던 후대의 왕손들에게 이어졌다.

말하자면, 조선의 통치이념인 유학에 밀려 한때 의기소침해 있던 한국불교가 한글을 만나 재기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에 효령대군과 수양대군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들과 신미, 학조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고승대덕들 그리고 김수온을 비롯한 사대부 불교학자 등, 당대 최고의 불교 석학들이 승속을 불문하고 총출동하여 불경번역 사업에 매진했다.

이렇게 하여 근대국어가 시작되는 17세기 전후까지 간행된 불경번역서는 오늘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중세국어 연구 자료로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한글은 불경번역을 통해서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한편으로 불교는 또한 한글을 통해 우리말로 번역된 불경을 가질 수 있었다. 한글과 불교의 이런 관계는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불교의 현실을 살펴보면 옛 우리 선인들의 노력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최근 팔만대장경의 국역 사업이 마무리되어 우리말 대장경이 완성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우리가 매일 염송하는 많은 경들이 한문경전 그대로다.

한 예로 반야심경을 독경할 때면, 많은 불자들이 그 내용을 음미하며 암송하기보다 소리만 외워 암송하는 경우가 많다. 천수경이나 기타 경전을 독경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형편이 이러하니 일반인들은 대개 불교의 경전이나 기도문은 난해해서 근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세상에는 3,000여 종의 언어가 있다. 그러나 그들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 언어는 스물을 넘지 못한다.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서구 열강의 언어들도 그들의 고유문자를 발명하지 못했다. 고대 희랍인들이 자음 글자밖에 없는 중동의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들여 개량된 희랍문자를 만들었고 이것을 다시 로마인들이 받아들여 로마 알파벳을 만들었다. 이 두 문자가 오늘날 유럽 열국 문자의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구의 알파벳은 이미 음소문자의 자격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처음 보는 단어는 음성기호의 도움 없이 읽을 수가 없다. 통계에 의하면, 캐나다는 읽고 쓰는 데 있어 문맹률이 30%가 넘는다고 하고 미국은 60%가 넘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미국의 모 대통령마저도 읽고 쓰는 일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의 문맹률은 어떠한가. 유네스코가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5% 미만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이것은 곧 한국 민족의 두뇌가 우수한 탓도 있겠지만, 한글이 그만큼 우수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일 음소 일 문자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문자는 우리 한글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한글은 창제 역사가 가장 짧은 문자이지만, 그 창제의 연대와 창제자, 창제 원리, 창제 동기 등이 신뢰할 수 있는 문헌으로 남아 있는 유일무이한 문자이다. 그리고 문자기호학적으로 갖추어야 할 모든 요건을 충족시킨 최고의 걸작이다.

한글은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문자와 단어문자의 장점을 다 아울러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하며, 특히 모음자는 ㆍ, ㅡ, ㅣ 세 개로 한국어 21개의 단모음자와 이중모음자를 모두 조합해 낼 수 있으니 가히 환상적이다. 우리의 한글은 컴퓨터 시대와 이동통신시대를 맞이하여 또 한 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류는 언어를 발명함으로써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었고, 문자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생활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리고 활자를 발명함으로써 찬란한 현대문명을 이룰 수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700여 년 전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고, 500여 년 전에 천하명품 한글을 발명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생활에 혁명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한글을 통해 세계에 비상하고 있다. 한글과 컴퓨터, 이 둘의 궁합은 그래서 찰떡궁합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러구러 다시 생각해 보아도, 우리 불교가 한 걸음 더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려면, 우리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름지기 한글을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무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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