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결 본지 편집위원

허남결
본지 편집위원
출범 당시부터 이른바 ‘고·소·영’과 ‘강·부자’의 합작품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이명박 정부가 불과 100여 일만에 급기야 지지율이 10%이하 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고·소·영’은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와 그가 다니던 소망교회, 그리고 고향인 영남지역 출신들로 이루어진 내각이라는 뜻이고, ‘강·부자’는 강남의 땅 부자를 줄인 말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의 지나친 부동산 보유를 빗댄 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고·소·영·S라인’이라는 용어도 새롭게 등장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말이지만, ‘S라인’은 그냥 전직 서울시장 출신인 대통령의 서울시청 인맥이라는 싱거운 설명이 뒤따른다. 이쯤 되면 이름을 도용당한 연예인 고소영 씨나 강부자 씨가 펄쩍 뛰면서 제소라도 해야 될 판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소식보다는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심사를 말 그대로 뒤집어 놓고 말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와 여기에 참여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숫자가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집권 초기의 대통령 지지율이 10%대인 적은 없었다. 이는 말 많고 탈 많던 노무현 정권의 임기 말 지지율보다도 더 낮은 수치다. 한 마디로 ‘주는 것 없이 밉다’는 국민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가슴, 즉 마음을 다독거리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머리와 가슴은 몸의 일부이면서도 각각 상징하는 바가 대조적이다.

흔히 머리는 차가운 이성으로 비유되는 반면, 가슴은 따뜻한 감성으로 비유된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좀 감정적인 사람들인가? 집권 초기의 이명박 정부가 객관적으로 볼 때 특별하게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앳된 중·고등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모성들의 가녀린 촛불 앞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바로 국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 이명박 정부는 과학적인 ‘논리’를 폈다가 그만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을 불러오고 말았다. 정부는 미국 전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불과 몇 마리밖에 없다고 강변했지만, 국민들은 ‘그렇다면 그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결려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불쾌감이 먹거리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과 겹치면서 전국적인 촛불 시위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가 작은 입김에도 힘없이 흔들리는 촛불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 들불로 변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렵기조차 하다.

잘 알고 있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샐러리맨들의 살아 있는 신화이자 우상이며, 따라서 한국적 성공 모델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채 신입사원으로 출발하여 대기업인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었으며, 민선 서울시장으로서는 당시만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던 청계천 복원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그 여세를 몰아 마침내 야망의 정점인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야기되고 있는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인간 이명박의 그와 같은 개인적 성공신화가 가져다 준 지나친 자기 확신 내지는 사물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리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가장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대체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또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는 유형이 많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개인적 성취감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지나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미처 보살피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쉽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그 당사자가 국민 전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국민들을 향해 내가 옳으니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을 계속한다면 국민들은 날이 갈수록 피로감만 쌓일 것이 뻔하다. 혹시라도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개인의 그와 같은 성격적 특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정권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흔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사용하는 이 말은 작금의 한국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글자 그대로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원래 구두선이라는 용어는 선불교에서 말로만 하는 선수행을 냉소적으로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섬김의 정치를 역설해 왔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얼굴인 첫 내각과 청와대의 비서진 구성에서도, 그리고 대운하 개발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있어서도 진심으로 국민을 섬긴다는 자세나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국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도 청와대의 모 수석비서관이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고 불렀다가 문제가 되자 ‘사탄의 무리’는 개신교에서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는 말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 것처럼, 개신교 신자들이 주일날 교회에서 하듯이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강남 소망교회의 장로로 알려져 있다. 자칫 그의 종교적 시각이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총괄하는 데 있어서 혹시라도 편향되거나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서울시장 재직 시 이미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말을 해 우리 불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면 되지 그것을 하나님께 봉헌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다. 설마 사태가 이렇게 된 마당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의 장로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적 시각을 계속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벌써부터 불교계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게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봉은사의 부처님 오신 날 봉축연등 달기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무례함,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의 고위 공무원에 대한 종교성향 조사, 학교 내의 종교적 자유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전 대광고등학교 학생 강의석 씨의 패소, 기독교 신자인 공직자나 지역 기관장들의 업무 비협조 등이 그 사례들에 속한다. 이 모든 것들은 대통령이 개신교 신자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 알아서 행동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주는 것 없이 미운’ 정권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불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가 동시에 떠안고 가야 할 더 큰 불행이 될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폭 넓은 자기 성찰과 겸허한 하심(下心)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허심탄회한 조언을 구해야 하며 자기 종교가 아닌 남의 종교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업적 성과지표와 같은 잣대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일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국민들은 ‘주는 것 없이 미운’ 정부가 아니라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정부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

2008년 여름

허남결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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