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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종교철학강의>와 불교 / 박진영
박진영 미국 아메리칸 대학 철학과 교수
[21호] 2004년 12월 10일 (금) 박진영 jypark@american.edu

1. 들어가는 말

19세기 유럽 사상계에 불교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교와 서구의 만남은 두 사고양식 사이의 거리를 고려할 때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서구 철학을 지배해왔던 형이상학적 전통과 불교의 반형이상학이 만나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예로 게오르그 볼프강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종교철학 강의}에 나타나는 불교의 이해를 들 수 있다.

헤겔의 {종교철학강의}에서 불교의 위치는 미미하다. 19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적 상황을 생각해 볼 때도 헤겔이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 대해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료가 충분치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헤겔이 어떻게 불교를 왜곡했으며, 그의 불교에 관한 정보가 얼마만큼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헤겔이 불교를 이해한 방식을 헤겔 철학의 구조 내에서 이해함으로써, 불교와 근대 유럽의 형이상학이 만났을 때 두 사고 양식 사이에 나타나는 간격의 구체적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헤겔의 종교철학 강의

헤겔은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곧 1821년, 1824년, 1827년 그리고 1831년의 네 차례에 걸쳐 베를린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했으며, 그 내용을 사후에 편집 출판한 것이 {종교철학강의}이다. 네 번 종교철학을 강의하면서 헤겔은 매번 그 내용을 파격적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그의 종교철학 사상은 이미 그의 다른 저서에서 윤곽을 드러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현상학}(1807)에서 헤겔은 이미 종교를 자연종교, 미적 종교, 그리고 계시 종교의 세 단계로 구분했다. 1) G. W. F. Hegel,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trans. A.V. Miller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pp. 410-478. 672-787. 헤겔 철학에서 종교철학의 발전에 대해서는 강영계, [헤겔의 종교철학], {헤겔 연구} (1984) 참조.

이 세 단계는 {종교철학 강의}에서 두 단계, 즉, 한정적 종교(die bestimmte Religion)와 절대 종교(die absolute Religion)로 분리되고, 이전의 자연종교와 여기서는 개별적 정신의 종교로 불리는 미적 종교가 한정적 종교 안에 포함되며, 계시 종교가 절대 종교의 영역에 놓여진다.

헤겔의 종교철학 강의에서 불교에 대한 논의는 1824년 강의에서나 나타난다. 1821년 강의는 동양 종교를 별도로 다루고 있지 않다. 1821년 강의에서 헤겔은 이후 불교가 속하게 될 "직접적 종교 (die unmittelbare Religion, 혹은 자연 종교)"에 관한 장을 종교발생 초기 단계에서 신의 개념이 자연물과 동일시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 아직 헤겔 자신이 종교로 여기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이며, 헤겔은 이 맥락에서 중국종교의 하늘(天)의 개념과 인도종교의 브라만을 언급은 하지만, 깊이 논의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1824년, 1827년, 그리고 1831년의 세 번의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 강의에서 헤겔은 자신의 종교철학 체계 내에서 불교의 위치를 변화시킨다. 1824년 강의에서 불교는 '마술적 종교(Religion der Zauberei)'의 구조 안에서 '자기내적존재(Insichsein, Being-within-Self)'의 종교로 규정된다. 1827년 강의에서 불교는 더 이상 마술적 종교로 구분되지 않고, '실체의 종교(Religionen der Substanzialit t)'에서 '자기내적존재'의 종교로 이해된다.

1831년 강의에서 불교는 '내적 종교의식의 발현(die Entzweiung des Bewu tseins in sich)'으로 구분되는 종교에서 '자기내적존재'의 종교로 규정된다. 이 세 강의에서 불교의 위치가 변화되었을 뿐 아니라, 헤겔이 불교라는 종교현상을 통해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변화한다. 1824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의 윤회론에 주목한다. 1827년 강의에서는 불교가 말하는 무(Nichts 無)의 성격에 집중한다. 그리고 1831년 강의에서 불교는 절멸(Vernichtung)을 갈망하는 종교로 이해된다. 다음에서는 헤겔의 1824년, 1827년, 그리고 1831년 강의에서 불교에 관한 논의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3. 절대정신과 윤회-1824년 강의

헤겔의 철학체계에서 종교는 '유한자와 무한자, 개념과 실체의 융합'을 의미한다. 2) G. W. F. Hegel,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Religion, 3 vols. ed. Peter C. Hogson, trans. R. F. Brown, P. C. Hodgson, & J. M. Stewart with the assistance of H. S. Harri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vol. II, p. 304. 앞으로 이 책에서의 인용은 LPR로 표기되는 약자와 더불어 권수와 면 수를 본문에 표기하도록 한다. 헤겔의 종교철학강의는 그의 강의를 사후에 편집한 것이고, 또한 네 번의 강의에서 헤겔이 그 내용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어떠한 판본을 따르는가, 또는 몇 년도 강의에 의거하는가에 따라 헤겔의 불교해석은 다르게 나타난다. {종교철학강의}는 1832년에 필립 마르하이네케에 의해 그리고 1840년에 필립 마르하이네케와 브루노 바우어에 의해 두 번 편집된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판본으로 게오르그 라손판 (die Lassonsche Ausgabe)과 기념판본 (Jubil umsausgabe)이 있다. 두 판본 모두 강의를 년도 별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 헤겔의 불교에 대한 평가가 다르게 나타난다. 본 논문에서는 헤겔의 종교철학강의를 처음으로 연도별로 정리한 월터 예슈케의 독일어본을 피터 호그손이 편집한 영어판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1827년 강의 논의에서는 독일어본 라손판을, 1831년 강의에 관한 논의에서는 독일어본 아서 드류스판을 함께 사용한다.

유한자란 '직접적이며 주관적 자의식' 즉 인간을 일컫는다. 이에 비해 무한자는 '우발적, 감각적 현상계를 지배하는 정신의 보편적 힘'을 말한다.(LPR II, 304) 종교현상을 이 두 요소의 통합으로 설명하면서 헤겔은 종교의 발전단계를 유한자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무한자를 인식하고 무한자와의 궁극적 합일을 향하게 되는 움직임으로 본다.

유한자와 무한자의 궁극적 합일이라는 종교의 발전단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소는 유한자가 자기 내부의 무한자, 신성, 혹은 절대성의 존재를 인식하는 유한자의 의지의 발현이며, 이 의식, 의지가 결국은 유한자를 무한자에로 지양(止揚)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유한자와 무한자는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헤겔은 말한다. "그 내용에 있어서 신은 자신을 결정한다. 그 반대편을 말한다면, 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관적 인간의 정신 역시 그 자신을 결정한다. 신이 인간에 의해 정의되는 그 원리가 바로 인간이 내재적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원리, 혹은 그 자신의 정신을 규정하는 원리이다."(LPR II, 515) 이 결정을 하는 결단력의 정도, 혹은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의 거리에 의해 헤겔은 그가 제시한 세계 종교의 진화과정에서 각 종교의 위치를 결정했다.

헤겔이 불교를 규정한 '자기내적존재'의 종교는 헤겔의 체계에서 유한자가 자신의 자유에 대한 결단을 보여주는 최초의 단계이다. 이는 유한자 안에서 "내재적존재, 즉 일반적 개념으로의 신성이 최초로 출현하는"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헤겔의 종교발전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종교가 처음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개별자이며 우연성에 지배받는 유한자는 자신을 완전히 순수한 자유인인 무한자로 지양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이 무한자와 구분시킨다.

유한자가 아직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절대자와 완전히 동일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단계의 유한자는 완성의 단계로 발전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며, 헤겔은 유한자의 시간적 발전이 불교에서는 윤회의 개념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이런 점에서 헤겔에게 불교의 윤회설은 유한자와 무한자가 최종적으로 합일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적 전개과정의 현실적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헤겔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종교체계에서 제시된 절대정신의 자기완성으로의 진행과정과 유한자가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 존재하는 실체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불교의 윤회설은 확인해 주는 것이다.

유한자가 절대정신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유한자와 절대정신의 관계를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헤겔에게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재증명한다. 따라서 헤겔은 불교에서의 '영혼들의 윤회의 이론'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론적인 상태로의 변화를 거친 사람들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는 진정으로 본질적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직관적 이해에 도달한 사람들은 또한 자신들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즉, 자신이 고정적이며, 영속적인 실체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영혼의 불멸이라고 부르는 것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써 이들은 자신의 영원성, 자신들 안에 있는 변화하지 않고 영구한 내적 존재에 대해 의식하게 되며, 이 내적 존재는 바로 사고이며, 사고에 대한 의식이다.(LPR II 309)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헤겔에게 윤회론의 가능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윤회를 하는 주체는 따라서 헤겔에게는 '불변하는 내적 존재'이며, 헤겔은 이를 다시 '사고' , '사고에 대한 의식'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헤겔의 논리에서 우리는 분명 데카르트적 사고 양식을 본다. 사고, 혹은 생각하는 자아를 자신의 존재의 근원으로 삼았던 데카르트처럼, 헤겔 역시 사고, 그리고 사고에의 의식을 인간 내부에 있는 불변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며, 이를 윤회의 주체로 보았다.

윤회에 대한 헤겔의 해석과 헤겔이 정의한 우리 안에 내재하는 내적 존재의 개념, 즉 '고정적이며, 영속적인 실체' '영혼의 불멸' '영원성의 의식' '변화하지 않고 영구한 내적 존재' 그리고 이들의 '정신'과의 동일화는 불교에서 보는 존재의 개념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윤회론이 형이상학적 사고 양식을 만났을 때, 해석되는 양상의 한 예를 보게된다.

불교의 윤회에 대한 헤겔의 이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헤겔에게 윤회설은 영원불멸의 영혼의 존재, 불변하는 실체의 존재 그리고 신성의 존재를 확인해준다. 둘째, 유한자 안에서 '자기내적존재'의 양식으로 존재하는 불변하는 실체는, 무한자가 유한자인 인간과 분리되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유한자와의 관계 하에서 존재하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셋째, 윤회론은 헤겔에게 '절대정신이 완성을 향하여 가는 변증법적 움직임'으로 정의한 종교의 진화과정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현존하는 종교전통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지를 보여준다. 넷째, 윤회론은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또 하나의 예를 제시하며, 이 생각하는 존재, 즉, 자기 내적 존재는 사고와 동일시된다. 이와 같이 요약되는 헤겔의 불교 이해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형이상학의 기본 전재인 영구불변하는 무엇이 현존한다는 생각이다. 즉 (1) 절대 정신의 현존 (2) 불멸의 영혼의 현존 (3)사고의 현존이다. 그리고 (4)유한자가 무한자로 향하는 직선적 목적론적 발전과정이 현존한다. 헤겔의 입장에서 보면 이 모두가 개인의 자기 훈련의 과정으로써 윤회론의 이로움을 말해준다.

그러나 헤겔에게 불교는 유한자가 무한자로 지양될 만큼 완전히 윤회론을 발전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변화의 단계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직접적 자연물, 즉 인간이 무한자의 표상으로 오해되고, 존경된다. 이와 같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에 대한 오해와 혼동은 헤겔에게 불교가 아직 종교로써 완성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불교에서 유한자가 무한자로 고양되는 것은 단지 유사(類似)종교적 행위, 즉 마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1824년 강의에서 불교는 '마술의 종교'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헤겔은 말한다. "영혼의 윤회는 변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절대정신의 자기내적존재의 이미지에 그 근거를 둔다. 이와 연결되어있는 것이 마술이다."(LPR II 314). 유한자가 유한자와 절대정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 절대정신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고 만다. 따라서 이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정신으로 지양되는 대신 우상화에 빠지고 만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불(佛)을 숭배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우상이나 신상이 수없이 난무하는 근원과 원천이 여기에 있다. 네발 달린 짐승, 새들, 곤충, 파충류 등 한마디로 가장 저급한 형태의 짐승들이 신전을 차지하고 숭배되고 있는데, 이는 신의 화신이 모든 종류의 개별체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이 개별적 동물의 육체에 인간의 영혼이 깃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LPR II, 311-2)

자기내적존재의 성격과 이 존재의 유한자와의 관계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는 불교로 하여금 윤회의 의미를 왜곡하게 했으며, 따라서 불교는 마술적, 미신적 요소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헤겔은 결론짓는다. 3) "이와 같이 (열반의) 완전한 평화를 얻은 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변화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그 행복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들은 일련의 다른 형상의 존재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다시 이론적 이미지는 마술과 연결을 맺게된다. (중략) 불(佛)의 종교의 추종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미신적이다. 그들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 고양이, 뱀, 노새 등의 여러 가능한 다른 형태를 거친다고 말한다."(LPR II, 313).

이런 점에서 헤겔에게 윤회론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론으로써 윤회론은 그가 주장하는 종교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 가장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불멸의 영혼에 대한 유한자의 인식이 형성되는 것을 증명해 준다.

반면, 윤회론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때문에 불교의 윤회론은 인간을 미신과 주술에 붙잡아 놓고 있다. 헤겔이 이처럼 윤회론을 이중적으로 해석한 뒷면에서 우리는 육체와 정신을 이원론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전통을 볼 수 있다. '사고'로서의 윤회론,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윤회론은 절대정신으로 향하는 노력으로 칭송되지만, 그 사고의 현실적 양상인 육체가 여러 다른 형상으로 윤회된다는 생각은 미신적 사고로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이중성은 지역과 인종에 대한 평가로도 연결된다. 이론으로의 윤회론은 절대정신에로의 지양으로 이해되어 그의 철학 내에서 긍정적인 해석을 받지만, 그 이론을 구체화하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 즉 동양인들은 미신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마술적, 미신적 성격을 가진 불교는 헤겔에게는 아직 진정한 종교로써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전(前)종교적 상태의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4의 불교에 관한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의 윤회론이 자신이 종교철학에서 생각한 자기내적존재라는 전적으로 이론적 단계가 불교라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종교에서 나타났다는 데에 만족한 듯하다. 따라서 헤겔은 불교에 관한 강의를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자기내적존재는 어떠한 형태든 신성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기본적 필요요소다. 자기와의 동일화는 의지를 위한 기본적 범주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초로 종교의 진정한 근본을 발견하다."(LPR II, 316)

4. 불교, 무, 범신론-1827년 강의

1827년 종교철학 강의에서 불교에 관한 논의는 1824년 강의에 근거한다. 그러나 초점은 변화를 보이는데, 이는 불교를 그의 체계 안에서 재배치했다는 사실에서도 읽을 수 있다. 1827년 강의에서 불교는 여전히 자연종교에 속하지만, 더 이상 마술적 종교로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 불교는 자연종교의 두 번째 단계인 '실체의 종교(Religionen der Substanzialit t)'로 구분되고 그 중에서 '자기내적존재'의 종교로 정의된다. 1824년 강의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했던 윤회론과 그 주술적, 미신적 성격은 더 이상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4) {종교철학강의}의 편집자 피터 호그손은 1824년 강의 중 불교를 다룬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헤겔 자신의 주장에 근거해서도 불교는 '마술적 종교'로 구분되지 말아야한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더 이상 신성의 형식적 대상화가 아니라 현실적 대상화라는 현상을 대하게 되며, 여기서 비로소 마술과는 분리되어 종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을 보기 때문이다."(LPR II, 303 n. 183.)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를 통해 자신이 실체이며 본체라고 규정한 '자기내적존재'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이 맥락에서 헤겔은 불교의 무(無, Nichts) 개념을 설명하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1824년 강의에서 헤겔은 이미 불교의 무의 개념에 대해서 언급했다. '자기내적존재'로 존재하는 무한자가 불교에서는 무와 동일시된다고 본 것이다.

헤겔은 말한다. "불(佛)의 종교의 원리는 바로 무다. 이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끝이다. 우리의 최초의 조상도 무에서 왔고, 무로 복귀했다. (중략) 사람이나 사물이 얼마나 다른 양상을 띄든, (중략) 원리는 단지 이 하나뿐이다."(LPR II, 312) 헤겔은 무를 불교의 존재론적 근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 세대 유럽의 불교학자들이 불교의 열반을 무와 동일시하고, 이 무를 또한 존재와 자아의 소멸로 봄으로써 불교를 단지 부정적인 종교로만 일축했던 것과 달리,5) 헤겔은 존재와 무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는 데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헤겔은 1824년 강의에서는 불교의 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5) 19세기 유럽 불교 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박진영, [형이상학과 반형이상학의 만남: 근대유럽정신과 불교], {불교평론} 20호 (2004년 가을), 108에서 128 참조.

(불교의 무는) 존재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와 완전히 동일하다는 의미, 즉 한계 되어지지 않은 실체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무다. 따라서 이 무는 완전히 순수한, 단순하고 비분별화된, 영구한 휴식의 상태다. 이 무는 덕도, 힘도 지력도 없다. 무는 의지력에서 철저히 자유로운, 의지적 분리가 결여된 상태다.(LPR II, 312)

헤겔이 본 불교의 무는 자기동일성이다. 무는 또한 개체화 이전의 상태다. 헤겔에게 불교적 맥락에서 구원이란 개체화 이전의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개체화의 결과로 형성된 모든 일시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겔은 불교의 수행에 대해 1824년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무의 원리와 인간의 관계를 보자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계속적인 고찰과, 명상과, 자기극복을 통해 이 원리에 가까와지도록 노력해야만하는 것이다. 즉, 어떠한 열정이나 경향, 또는 활동도 없이, 무를 원하고, 무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완전한 공정성, 혹은 관심의 부재의 상태를 이루면, 덕이나 악, 상과 벌, 속죄, 혹은 영혼의 불멸성, 예배 등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인간의 거룩함은 이러한 적막 속에서 신과의 합일을 발견하는 데 있다. 일체의 육체적 운동 혹은 활동의 정지, 그리고 영혼의 활동의 정지 속에서 불교는 행복을 발견한다. 인간이 이러한 완전성의 단계에 도달하면, 변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의 영혼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신(神)인 불(佛)과 완전히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다.(LPR II 312-3).

여기서 헤겔이 말하는 무가 불교적 입장에서 옳은 해석인가를 검토하기 전에, 헤겔 자신의 논리 안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앞에서 헤겔은 유한자가 윤회를 거처 결국은 무한자, 절대정신으로 지양된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정신, 무한자는 실체, 본질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무는 이 실체, 본질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즉, 무는 무가 아니라, 이미 유로 변화된 무다. 헤겔 자신도 이 경우의 무는 없다는 뜻의 무가 아니라, 완전한 자기 동일성, 즉 하나의 실체라고 말한바 있다.

그렇다면, '육체적 활동의 정지' '영혼의 활동의 정지' 그리고 '변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써의 무, 없음이 어떻게 존재의 자기동일성의 유, 있음과 동일시 될 수 있는지 설명되어야 한다. 1824년의 강의에서 헤겔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1827년 강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범신론의 문제와 연결시켜 논의된다.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의 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佛)의 종교에서 궁극적 실체, 혹은 최상의 실체는 무 혹은 비존재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무에서 나와서 무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무는 절대적 근원, 비확정적이며 존재의 개별성이 부정된 상태이다. 따라서 모든 개별적 존재 혹은 현실체는 단시 형상이며, 단지 무만이 진정한 독립성을 가진다. 그와 대비해서 모든 현실체는 독립성이 없다. 이들은 단시 우발적인 존재이며, 무감의 형태다.

인간에게 이와 같은 부정(negation)의 상태는 최고의 상태다. 인간은 이 무의 상태에 몰입하여야 한다. 즉, 인간은 모든 의지적 결정이 정지된 상태, 덕이나, 지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 모든 움직임이 그 자체를 취소시키는 이 실체의 상태, 일반적인 무의 영원한 고요 속에 침잠하여야 한다. (중략) 인간의 신성함은 바로 스스로가 이 무와 하나가 되는 것, 그리하여 절대자, 신과 하나가 되는 데 있다. 이러한 최상의 상태, 신성의 상태에 도달한 인간은 신과 구별될 수 없으며 영원히 신과 동일하다. 따라서 변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LPR II, 565-6) 6) G. W. F. Hegel,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hrsg. von Georg Lasson, Hamburg. Verlag von Felix Meiner 1966 (Nachdruck, 1966 der I, Auflage von 1927), Bd 1, Halbbd 2, p. 124-125 참조.

불교의 무는 비존재로서의 무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우발적 요소가 모두 제거된 존재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신을 무와 비교할 때, '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신은 영원하다', '신은 본질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헤겔은 말한다. 신은 확정적인 그 무엇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무다. 확정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했을 때, 남겨지는 것은 무이다. 따라서 신은 유한자가 보기에 무이며 공(空, das Leere)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LPR II, 568) 7) 앞의 책, p. 125 참조.

이처럼 개체적 유한성을 모두 제거하고 존재하는 무한의 신이 바로 보편자, 전일자로서의 신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범신론이 뜻하는 신이라고 헤겔은 주장한다.

범신론의 개념을 통해 개별자와 신의 관계를 설명할 때 두 가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헤겔은 말한다. 첫째는 전체는 신이다는 개념이다("the All is God"; Allg tterei). 이 경우 신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하나의 존재다. 두 번째는 모든 개별체가 신이다("everything is God." Allesg tterei)라는 해석이다.(LPR II, 573) 앞의 책, p. 128 참조.

이 경우, 신은 유한자 각각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헤겔은 후자를 범신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규정한다. 진정한 범신론은 전일자(全一者)로서의 신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자신이 말하는 하나의 절대적 실체,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이라고 주장한다.(LPR II, 575) 8) 헤겔은 범신론을 개별체 각각을 신으로 생각하는 오해의 가능성 때문에 범신론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거부한다. 그 맥락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범신론이 아니라 실체의 철학(Philosophie der Substanzialit t)이라고 주장한다. 즉, 스피노자의 신은 '보편성(Allemeinheit)'을 말하는 것이지 '집단적 총체성(Allesheit)'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G. W. F. Hegel,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hrsg. von Georg Lasson, Hamburg. Verlag von Felix Meiner 1966 (Nachdruck, 1966 der I, Auflage von 1927), Bd 1, Halfbd 2, p. 129.

이것이 또한 불교의 '자기내적존재'로 존재하는 실체적 보편자의 의미라고 헤겔은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동양의 진정한 범신론이다. 자기내적존재를 통해 실체의 신이 현실화되며, 따라서 불교의 무는 스피노자의 실체론의 철학과 같은 맥락에서 전일자로써의 신을 말하고 있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1827년 강의에서 불교를 '실체의 종교'라고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절대정신의 편재성은 개별적 현실체 각각에 존재하는 정신성과 혼동되고 있다고 헤겔은 본다. 따라서 불교는 현재적 정신성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헤겔은 말한다. "자연 종교의 이 단계에서 절대정신은 아직 정신성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절대정신은 아직 생각으로의 정신성, 보편자로서의 정신성이 아니다. 대신 이는 감각적, 현실체적 정신성이다. 감각적이고, 외재적이며, 현실체적 정신성인 인간이 그 예다. 개별체적 인간이다."(LPR II, 575). 불(佛), 붓다, 라마를 보편자의 현현으로 믿는 전통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다. 보편적 정신성으로가 아니라 개별체적 인간의 '감각적, 외재적, 현실적' 정신성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불교의 절대정신에 대한 개념은 보편적 실체에 대한 범신론보다는 헤겔이 잘못된 범신론이라 해석한 각 개별체에게 신이 있다는 해석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1824년 강의에서 헤겔의 윤회론 비판은 불교를 후자로 해석했고, 그것이 불교가 종교로 발전하기 이전의 단계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를 진정한 의미의 범신론이라고 치켜세우기는 했지만, 그가 불교를 아직도 자연종교의 영역에 놓아야 하는 이유도 불교가 아직 보편자를 진정한 보편자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9) 그러나 1827년 강의에서도 불교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종교 체계에서 절대와 유한자의 관계,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의 가장 초기적 단계를 입증해 준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1827년 강의의 불교에 관한 부분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주관성, 정신성과 필연적으로 묶여 있는 실체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적인 것은 아직도 즉각적 현실체, 감각적 존재이며 이 주관성은 여전히 즉각적 현실의 주관성이다."(LPR II, 579)

여기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우선은 불교의 무에 대한 헤겔의 해석이다. {무의 숭배자: 철학자와 부처}(Le culte de n ant: Les philosophes et le bouddha, 1997)의 저자 로저-뽈 드화트는 17세기부터 예수교의 선교사들과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불교를 허무주의의 파괴적 종교로 보는 있었던 것과 달리, 헤겔은 불교의 무를 절대정신 즉 신을 표현하는 무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당시의 견해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10) Roger-Pol Droit Le culte de n ant: Les philosophes et le bouddha (Paris, ditions du Seuil, 1997), pp. 91-108. English translation by David Streight and Pamela Vohnson, The Cult of Nothingness: The Philosophers and the Buddha (Chapel Hill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3), 59-72.

이동희도 그의 [헤겔의 불교이해]에서 헤겔이 당시 슐라이어마하의 추종자들에 의해 자신의 철학이 범신론으로 비난받고 있을 때, 불교를 통해 범신론에 대해 논의를 함으로써 불교를 자신의 철학의 위치를 밝히는 데 사용했다고, {종교철학강의}에서 불교가 헤겔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을 제시한다. 11) 이동희, [헤겔의 불교이해], {헤겔 연구} (1997), 109, 118, 119쪽. 그는 또한, 헤겔이 그의 종교철학강의에서 불교를 다룬 것은 단순히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동양세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발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한다.(113, 115쪽 참조).

이러한 주장을 대하면 헤겔이 불교의 무를 다루는 데 나타나는 내적 모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를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무에 대한 헤겔의 태도가 1824년 강의에서 윤회론을 설명할 때 보인 이중적인 태도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론으로서 무는 긍정적으로 해석되었다. 무는 절대유를 의미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무, 절대유, 절대정신이 개별체에서 무한자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그러나 무가 진정으로 불(佛), 붓다, 혹은 라마라는 현실체에서의 보편자의 현현으로 나타날 때, 이는 불교가 궁극적으로는 지양을 실패한 종교임을 증명한다고 평가한다. 두 번째는 헤겔이 보인 무의 개념 자체에 대한 이중성이다.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의 무는 한편으로는 무한정성을 나타낸다. 신을 무로 설명한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 무는 절대유다. 그러나 절대유는 개별체가 쌓인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는 개별체의 유한성을 제거함으로써 형성된다. 불교에서 유한자가 자신의 유한성을 제거함으로써 무에 이른다고 했을 때, 이 무는 유한성, 개체성의 제거를 통해 얻어지는 무다. 만일 현실체로서의 존재가 현실체의 특성인 일시성, 우연성을 제거하고 무화함으로써 영원으로 지양된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유한성의 제거는 무한성을 만들 수 있는가? 혹은 잠정적 유의 제거로 절대유를 만들 수 있는가? 절대유로서의 무는 그가 진정한 범신론이라고 규정한 것에 속하는 반면, 유한자의 유한성을 제거해 형성된 무는 그가 그릇된 범신론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보면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를 진정한 범신론의 한 예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자신이 말하는 범신론 개념 자체를 모순에 빠뜨린다. 유한을 무한하게 쌓아 놓는다고 무한이 될 수 없듯이, 유한자가 유한성을 아무리 제거해도 무한자의 위치에 오를 수는 없다. 이러한 것을 헤겔을 '잘못된 무한'이라고 부른 바 있다.12) 헤겔은 {엔치클로페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인가가 타자가 된다. 이 타자는 그 자체로 무엇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다시 타자가 된다. 이렇게 무한으로 이어진다. 이 무한은 그러나 잘못된 무정적 무한이다. 이것은 단지 유한자의 부정일 뿐이다. 그러나 유한자는 또다시 이전과 동일하게 일어나며 없어지거나 흡수되지 않는다."(The Encyclopedia logic, trans. T. F. Geraets, W. A. Suchting and H. S. Harris, [Indianapolis: Hackett, 1991, 94).

나아가 불교에서 개별적 유한자에 나타난 무한자의 현현은 유한자인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제거함으로써 무한자의 자리를 찬탈한 경우에 다름 아니다. 1827년 강의에 나타난 이러한 자체모순은 1831년에서 그가 불교를 절멸의 종교로 정의하는 근거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5. 불교: 절멸의 종교 - 1831년 강의

1831년 강의에서 헤겔은 자신의 종교철학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한다. 종교철학강의의 영어판 번역자인 피터 호그손은 이 새로운 체제에서 동양 종교의 위상이 상승했다고 말하고 있다.(LPR II, 72). 그러나 동양종교의 입장에서, 특히 그의 불교에 관한 강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1831년 강의는 그 동안 헤겔이 불교 해석에서 키워온 내적 모순이 현실화된 상태라고도 볼 수도 있다.

1824년과 1827년의 종교철학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를 즉각적 현실체로서 자연의 한 형태인 인간이 스스로의 내부에 절대정신의 현존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이해했다. 이 맥락에서 1824년 강의에서는 윤회설에 초점을 맞추어 '마술의 종교'로 이해하였고, 1827년 강의에서는 불교의 무를 진정한 범신론으로 해석하면서 '실체의 종교'로 규정지었다. 이에 반해 1831년의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의식(意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따라 불교는 '종교의식(意識)의 내적 발현(Entzweiung)'의 종교로 규정되며, 더 이상 자연종교로 구분되지 않는다.

즉 유한자가 자신의 의식에서 자신을 무한자와의 관계에서 보므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분열(Entzweiung, rupture)이 생긴다는 것이다. 종교의식의 내적 발현으로 구분된 종교로 중국종교, 힌두교를 거쳐 세 번째 단계에 불교와 라마교가 포함된다. 불교와 라마교를 다루는 장에 피터 호그손은 '절멸(Vernichtung)의 종교'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1831년 강의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절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함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니르바나에 대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정의도 만나게 된다.

"불교의 절정은 붓다와 합일되는 데 있다. 이 절멸의 상태를 니르바나라고 부른다."(LPR II, 736.) 절멸이란 여기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무엇을 절멸한다는 뜻인가? 왜 헤겔은 1831년의 강의에서는 그 이전에 보여준 긍적적 해석의 무 개념을 버리고 무를 절멸과 동일시했을까? 피터 호그손 역시 {종교철학강의} 영어판 서문에서 헤겔이 그의 종교철학 체제를 재정비할 때마다 불교에 대해 이해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고, 특히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이 불교의 철학적 면에 보인 이해를 고려할 때, 1831년 강의에서 불교의 니르바나를 절멸과 동일시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LPR II, 77)

그러나 1831년 강의를 보면, 우리는 헤겔이 이전처럼 불교의 윤회론과 무의 개념을 다루고 있지만, 1824년과 1827년 강의에서 보이는 이중적 태도를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1831년 강의에서 헤겔은 윤회론의 미신적 성격을 지적하는 반면, 그가 이전에 긍적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삭제한다. 무에 대한 강의에서도, 무가 불교의 처음이며 끝이라고 주장하고, 불교에서 유한자는 유한적인 것을 무화함으로써 즉 절멸시킴으로써 신과 동일시되려고 한다고 설명하지만, 긍전적인 의미의 무의 해석과 범신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헤겔이 불교의 무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나 그가 동양종교에 대해 호의적이었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한 면만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이 무엇 때문에 1831년에는 1824년과 1827년에서 주력해서 설명한 윤회론과 불교의 무 개념이 그의 종교철학체계 내에서 갖는 긍적적인 역할을 전적으로 버렸는지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이미 1824년과 1827년의 해석에서, 헤겔의 논리가 이중적 태도라는 자체모순을 안고 있었음을 보았다. 어쩌면 헤겔 자신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헤겔 논리의 자체 모순에서, 우리는 또다시 형이상학 전통의 철학적 전제와 불교의 반형이상학의 철학적 전제 사이의 간격을 보게 된다. 그 차이의 근저에서 우리는 형이상학에서의 유무(有無)의 개념과 불교에서의 유무의 개념의 차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두 사고 양식에서 유와 무의 관계 정립의 차이는 단지 유무라는 철학적 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종, 성별, 지역성들의 사회 문화적 관계 정립의 차이로 나타남을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6. 헤겔에서 종교와 인종 담론

헤겔에게 종교는 무한자와 유한자, 개체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의 합일을 말한다. 이러한 종교 정의에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이 둘의 관계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이 둘의 관계는 이분법의 두 극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잠정적으로 갈등의 관계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합일에 이르게 된다.

헤겔의 변증법은 따라서 헤겔 이전의 형이상학에서는 서로 융화될 수 없었던 타자를 주체 안에서 발견함으로써 주체와 객체, '나' 와 타자의 이원론은 변증법적 운동 안에서 서로를 포용하는 공간을 형성하며 열린 체계를 형성하고자 했다. 무한자와 유한자의 융합의 과정에서 헤겔은 유한자의 본체를 그 극도까지 밀고 나간다. 따라서 헤겔은 말한다. "완전히 개발되었을 때, 유한자는 타자 즉 무한자다. 유한자는 바로 무한자 그것이다." 따라서 유한자에게 "존재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타자'에 있는 것이며, 이 타자는 바로 무한자이다."(LPR II, 257).

이러한 상호 융합에도 불구하고, 헤겔 철학에서 유한자는 궁극적으로 무한자에 지양되기 위해, 그리하여 무한자와 합일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유한자의 존재이유다. 주체의 다른 면, 즉 타자는 이미 처음부터 주체 안에서 주체의 부정을 통해 주체를 지양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결국에는 절대주관으로 지양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헤겔의 철학체계에서 부정성, 그리고 유한자는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냉각되어 있다. 이러한 냉각된 유한자, 지양이 불가능한 유한자는 헤겔 철학의 각 단계에서 고착화되어 위계질서를 이룬다. 위계질서는 고착화된 정체성의 서열화다. 헤겔의 철학에서 유와 무, 있음과 없음이 어떻게 위계질서 하에 있는가를 살펴보면, 우리는 유무의 고착화된 정체성이 어떻게 그의 철학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나아가 동양과 여성에 대한 이해까지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1824년, 1827년 강의에서 헤겔은 불교의 무는 비존재의 무가 아니라 자기 충족, 완전한 자기 동일성의 무라고 했다. 이 경우 무는 실존적 무가 아니라 수사적(修辭的) 무이다. 즉, 없음이라는 단어가 있음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전일자로서의 신, 무한자, 절대자,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반어법이다. 그러나 영원한 순수본체이며 실체인 없음/무는 사실상 헤겔 체제에서 단순히 수사학적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즉 없음은 있음이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논리를 따라가면 1831년의 강의에서 왜 있음으로서의 없음을 부정하는 절멸의 논리가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체제에서 유와 무는 결국 위계질서 하에 있으며, 따라서 없음의 있음은 있음의 있음과 동일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헤겔의 종교철학에서 유가 무의 우위를 차지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우리는 묻게 된다.

헤겔이 종교철학 강의의 서두에서 언급하듯이, 그에게 종교는 신에 관한 것이다. 헤겔은 말한다. "우리의 주제는 종교다. 그 내용은 단지 이것 하나뿐이다. 즉 신에 관한 것이다. 종교는 신과의 관계를 의식하는 것이다. 무조건의 절대자, 절대적 자기-충만, 자기스스로의 원인으로 존재하는 존재자, 그 자체가 절대적 시작이며 목적이고 그 자체에 의해 절대적 시작이고 목적인 자인 신에 대한 의식이다."13) G. W. F. Hegel,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hrsg. von Georg Lasson, Hamburg. Verlag von Felix Meiner 1966 (Nachdruck, 1966 der I, Auflage von 1927), Bd 1, Halbbd 1, p. 7.

이 절대자는 절대로 존재하는 자, 즉 '절대있음'이며, 없음은 그 있음의 강조를 위해 사용된 것뿐이었다. 즉 1831년 강의에서 헤겔이 불교를 '절멸의 종교'로 보았을 때, 그는 유한적 있음을 제거해서는 절대의 있음을 의미하는 있음의 없음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없음이 있음의 강조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없음으로 나타날 때, 이런 종교 현상이 헤겔 종교철학 체제에서 하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우리는 이미 1824년 강의에서 헤겔의 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미신적 성격에 대한 비난을 보았다. 1827년 강의에서도 헤겔은 불교가 유한자의 임시적 성격을 모두 비워냄으로써 무의 상태에 이르는 종교라고 논한 후, 이를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적용한다. 헤겔은 말한다. "이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의 성격은, 조용하고, 온화하고, 복종적이고, 욕망의 난무를 넘어서는, 욕망을 절단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LPR II, 564). 이 묘사에 나타나는 일면의 여성적 이미지는 그가 {역사철학}에서 불교를 논의하면서 동양 전체를 여성화시키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역사철학}에서 헤겔은 말한다.

이들 라마들은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고 있으며, 남성적이라기 보다는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품에서 떨어진 라마는 몸매가 잘 가꾸어지고 아름다운 아이다. 그는, 일종의 감옥과 같은, 완전한 고요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그는 잘 보살핌을 받고 운동이나, 어린아이들의 놀이는 모르고 자란다. 따라서 라마의 성격이 여성처럼 민감하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14) G. W. F. Hegel, The Philosophy of History, trans. J. Sibree (Buffalo: Prometheus Books, 1991), p. 171.

헤겔이 고립됨, 민감함, 그리고 연약함 등으로 표현한 여성성은 남성성의 특징으로 독점되어온 모든 긍정적인 성격의 부재, 없음을 나타낸다. 있음의 우위와 없음의 하위성은 남성성의 있음의 우위와 남성성의 부재인 여성의 하위로 이어진다. 성별(性別)을 위계질서 하에서 이해하는 사고 양식은 인종간의 관계를 위계질서로 보는 사고 양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서있다. 헤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헤겔은 말한다.

동양인들은 정신, 즉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한 개인이 자유롭다는 것만을 안다. (중략) 그 한 사람은 독재자일 뿐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자유에 대한 의식은 처음은 그리스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들과 로마인들은 모두 인간 자체가 아니라, 인간 중 일부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국가에서는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유롭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바로 본체를 구성하는 절대정신의 자유를 말한다. 15) G. W. F.. Hegel, The Philosophy of History, p. 18.

따라서 헤겔은 동양의 종교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로 보았다. 헤겔에게 역사는 완성을 향하여 가는 직선운동이며, 그 시원은 이미 근본이 아니라 원시적 유아기일 뿐이다. 동양을 거세당한 남성, 혹은 여성성으로 비하한 것이 헤겔만의 경우는 아니다. 그러나 헤겔의 종교철학과 역사철학에서 우리는 서구의 사고양식이 동양에 적용한 위계질서적 사고가 어떻게 인종적, 성별적, 지역적, 종교체계적, 사회문화적으로 적용되는지 볼 수 있다. 이 다종(多種) 차별의 근거에 서구 형이상학전통이 유지해온 없음, 무에 대한 있음, 유의 우위성, 유의 현존성에 대한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를 '형이상학적 차별' 혹은 단순히 '철학의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유의 철학으로써 헤겔의 절대정신, 종교철학체계 내에서 그가 무로 정의한 불교 철학이 단순히 원시적인 단계의 종교현상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그 근본적 원인 역시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형이상학에서의 유무의 관계와 불교에서의 유무의 관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은 서구사회의 불교이해에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오해를 해석하는 구체적 실상을 제공할 것이다.

박진영

미국 아메리칸 대학 철학과 교수. 편저로 《불교와 해체철학(Buddhisms and Deconstructions)》(근간), 논문으로 〈선과 선의 언어철학(Zen and Zen Philosophy of Language)〉 〈우리 시대에 있어서 선의 언어: 보조 지눌의 화두선의 경우(Zen Language in Our Time: the Case of Pojo Chinul’s Huatou Medit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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