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 한국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출가자 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실제로 지난해(2003년) 하반기와 올해(2004년) 상반기 사미 및 사미니 수계자의 수는 총 283명으로 수계제도가 시행된 1991년 이래 가장 적은 숫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연평균 수계자 수와 대비해 볼 때도 약 30% 정도 급감한 수치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였는가?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출가 연령을 40세로 제한하는 출가연령 제한 규정이 지난해(2003년) 하반기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40세 이상자의 출가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수치만큼이 태고종으로 출가함으로써 태고종은 큰 반사이익을 얻었다. 때마침 올해는 전 KBS 사장을 지낸 사람 등 몇몇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태고종으로 출가하였고, 이는 곧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종단 일각에서 이 규정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출가자 감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전국본사주지회의는 이 규정의 폐지를 조계종 중앙종회에 이미 청원해 놓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이러한 규정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모든 규정이 정당한 제정근거를 가지고 있을진대 그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에는 필시 출가연령을 낮추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게다. 아마도 출가연령 제한 규정이 제정되기 전까지 40세 이상 출가자의 수가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출가 연령의 고령화 추세로 인하여 종단교육체계의 시행과 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험과 출가자 교육 및 재교육 의지 때문에 출가연령 제한 규정을 제정하는 데 찬성하였던 종회의원이나 종책 담당자들이 출가자 감소현상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섣불리 이 규정을 폐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출가자 연령 제한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과 찬성하는 측의 주장은 각각 나름대로 정당한 근거를 내장하고 있고,1) 그렇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 물론 위에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폐지론 측은 출가연령 제한은 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찬성론 측은 약 5년 후가 되면 출가연령 제한의 효과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종단교육체계도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상호 다른 이해를 가진 양측의 주장이 각각 정당성을 갖고 팽팽하게 맞서 있기 때문에 조계종단이 출가자 감소 혹은 노령화와 관련된 진퇴양난의 상황을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조계종단이 이 진퇴양난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길은 명확하게 보인다. 그 길이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출가자의 고령화를 막으면서도 출가자 수가 감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길을 찾는 해답도 이미 제시되어 있다. 유능하고 젊은 층이 대거 출가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다음부터다. 그렇다면 젊은 층이 대거 출가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종단 혹은 종단 풍토를 젊은 층이 출가하고 싶은 그 무엇으로 탈바꿈시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종단이 그러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 종단 풍토 운운하는 말은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질 뿐이다. 물론 혹자들 중에서는 종단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제거함으로써 종단을 탈바꿈시키는 방안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수의 유능하고 젊은 층이 출가를 하지 않는다면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퇴양난의 궁극적 요인은 출가자 연령 제한을 둘러싼 논란이기 보다는 최종 행위자인 젊은 출가자가 감소하는 데 있으며, 진퇴양난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길도 젊은 층이 대거 출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뿐이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급히 연구되어야 할 과제는 젊은 층과 출가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이 글의 주 목적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젊은 층과 출가의 관계를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는 데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는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뿐만 아니라 젊은 신도의 부족 현상이라는 또 다른 복병에 당면해 있다. 실제로 불교를 믿는 신도들의 계층별 특성 중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 바로 고령화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40세 이하 인구 층에서 불자의 수는 개신교의 그것에 비해 현격하게 적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한국의 젊은 층이 불교에 대해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불자 수(특히 젊은 불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불교는 만성적으로 젊은 불자의 부족현상을 겪고 있으며, 이는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과 젊은 신도 층의 부족현상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젊은 출가자 및 젊은 신도 층의 부족현상이 발생하였는가?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세속화 경향이라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젊은 층의 세대경험이나 사회인구학적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오늘날 한국불교의 문화풍토나 정서가 젊은 층의 그것과 친화력을 갖지 못하거나 젊은 층에 대한 소극적 포교 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원인은 사회구조적 원인인 반면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인은 행위적 차원과 연관된 것이다. 때문에 만약 첫 번째 원인이 주요 원인이라면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젊은 불자의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젊은 불자의 부족 현상이 두 번째 및 세 번째의 원인과 연관되어 있다면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아래에서는 먼저 세속화론의 설득력 여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세속화이론의 비판적 검토

세속화란 개념을 일반화시킨 미국의 저명한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에 따르면, 세속화(Secularization)란 사회와 개인 양자 모두에게서 종교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근대화 및 세계상의 합리화, 혹은 사회분화에 따른 가치영역의 분화 등이 가속화되면서 개인의 공적 생활은 종교적 가치나 신념과는 무관한 원리나 가치에 의해 영위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의 사사화(Privatization)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발전, 근대화 및 합리화, 그리고 가치영역의 분화는 세속화와 비례관계를 갖는다. 만약 이러한 요인들을 사회발전의 지표로 간주한다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세속화의 정도는 커진다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서구 유럽에서 종교의 대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출석률도 현격히 떨어지는 등 세속화 경향을 보여 왔다. 가톨릭 신부의 수나 개신교의 목사 등 성직자의 수가 뚜렷하게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 세계상의 합리화 경향, 그리고 가치분화의 가속화 등을 사회발전의 지표로 간주한다면, 한국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한국의 종교도 사사화되고 세속화된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실제로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해 왔을 뿐만 아니라 미래도 그러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성직자의 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다.

동일한 논리로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에는 고래등과 같은 기와집에서 배고픔 걱정 없이 사회로부터 존경받으면서 사는 것이 큰 유혹이었지만, 요즈음은 다른 유혹들도 너무 많은데 누가 출가하겠어?’라는 모 스님의 솔직한 한탄은, 비록 세속화 이론을 염두에 둔 표현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젊은 출가자 감소를 세속화론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속화 이론의 주창자였던 피터 버거가 최근 자신의 세속화 테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아비판적 성격의 글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피터 버거의 최근 논지에 따라 탈세속화(Dese-cularization) 혹은 재성화(再聖化)에 관한 경험적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종교 상황은 미국의 개신교 근본주의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종교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적 의미에서 종교의 비중도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학기술과 종교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주로 ‘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 과학기술은 ‘어떻게’에 관한 해답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각각은 상호보완성을 갖기 때문이다. 나아가 혹자는 과학기술이 의미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삶의 의미’의 문제는 여전히 인간 자신의 문제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서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세속화 경향은, 탈세속화론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히려 ‘유럽 예외주의’일 뿐이다.

이러한 탈세속화론에 따른다면, ‘비서구 사회인 한국사회’와 ‘기독교가 아닌 불교’의 관계나 한국인의 삶 속에서 불교의 중요성을 세속화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세속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세속화를 전제로 한 모든 설명과 해석은 무의미한 억측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을 세속화론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최소한 이론적으로 볼 때, 우리는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가 우리의 노력 여하와는 무관하게 시대와 사회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 현상, 즉 세속화 현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상의 논의는 다만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이 세속화라는 사회구조적 요인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점만 말해 줄 뿐이다. 그렇다면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앞에서 우리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검토해 보았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궁극적인 행위자인 젊은 세대의 사회적 특성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불교계의 포교 노력 등 행위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계속해 보기로 하자.

3. 젊은 세대의 사회적 특성 때문에

오늘날 우리사회의 40세 이하의 젊은 세대는 1960년대부터 경제발전이 본격화되고 압축적 경제성장을 경험하던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한 풍요의 세대들이다. 또한 이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문명의 이기로부터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세대이고, 편리함에 익숙한 세대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 및 멀티미디어의 세례를 받은 정보화 세대이다.

게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가주도로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실시된 산아제한정책의 영향으로 대부분이 독자이거나 혹은 형제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국적 불명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 세대는 ‘가요무대 세대’나 ‘7080세대’와는 달리, 생이별의 아픔이나 가난의 서러움도 별로 실감하지 못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국가 정체성도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보고 되고 있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세대경험과 그들의 사회적 특성이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과 모종의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두 번째 가정이었다.

그러면 젊은 세대의 사회적 특성과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 사이의 관계를 보다 자세하게 논의해 보자. 우선 정보화 세대의 사회적 특성과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 사이의 관계를 논의해 보자.
정보화사회에 관한 기존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정보화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략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보화사회의 인간관계는 토대(계급, 계층, 신분 등을 포함한)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둘째,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만남과 접촉을 하면서 생활한다. 셋째, 의사소통의 지배적인 매개체가 멀티미디어이며, 따라서 멀티미디어에 친숙해진다. 넷째, 행위 주체의 실제적인 정체성이 중요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익명성이 높아진다. 다섯째, 소통의 쌍방향성을 가지며 따라서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분리되지 않고 소통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 사이에는 접속자의 관계가 형성된다. 여섯째,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정보사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성이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첫째, 정보매체와의 관계는 많아지는 대신에 구성원들 사이에는 간헐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인간관계가 일상화된다. 둘째, 사회규범이나 타자의 시각으로부터 제약을 덜 받고 행위 한다. 셋째, 타자나 대상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다. 넷째,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성이 약화된다. 다섯째, 권위적인 관계가 약화되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지배적이 된다.

언뜻 보기에, 정보화 세대의 이러한 사회성이 종교성의 약화와 모종의 관련성을 가질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상론할 여유는 없지만,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리처드 세넷(Richard Senet)에 따르면 최근 사회변동의 또 다른 원동력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사회이동의 공간적 범역의 무한한 확장뿐만 아니라 그 활성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자아 정체성의 혼란 및 분열을 촉진할 것이고, 이는 종교성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특성이 종교적 관심의 과다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이 글의 입장이다. 그러한 사회성 때문에 오히려 현대인은 삶의 궁극적 의미를 제공해 줄 종교를 더욱 갈망하게 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앞 장에서 이미 논의한 탈세속화론의 연구성과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적 근거를 확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늘날 정보화 및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우 기독교 근본주의가 부활하는 등 탈세속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개신교의 경우도 동일한 조건인 불교에 비해 젊은 신도수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목사 예비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2) 2) 2004년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각 대학 신학과의 입학생 정원을 모두 합하면 약 7,00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러한 수치는 최소한 매년 약 5,000여 명 이상이 젊은 목사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수치는 연간 예비승이 약 300여 명에 불과한 불교의 경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치이다.

이렇게 볼 때 문제는 결국은 이러한 변동의 추세에 한국불교계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하기로 하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젊은 계층의 사회인구학적 특성과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 사이의 관계를 논의해 보자.

인구학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사회는 가장 드라마틱한 사회이다. 그것은 출생아 수의 감소가 매우 급격하게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 또한 매우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출생아 수의 추이를 보면, 1972년 4.14명에서 1982년 2.42명, 1992년 1.78명, 2002년 1.17명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의 추세를 보면, 2000년 고령화사회에서 2019년 고령사회로, 그리고 2026년 초고령사회로 도달하여 결국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6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또한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변화의 양상이다. 그 결과 2003년 정부의 한 공식 문건에 따르면, 2002년에는 생산 가능 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였으나, 2020년에는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 2040년에는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자녀 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양육부담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04년 현재 전체 가구의 월평균 자녀 양육비는 132만원으로 1가구 월평균 소비 지출액 234만원의 56.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학적 추세는 젊은 층의 절대적 감소, 극소수의 자녀 수, 양육비 및 노인 부양비의 증가 등의 악순환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젊은 층의 절대적 감소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관련 비용 지출의 어려움이 상대적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비록 지금 현재 각 종교의 재정 상태는 양호하다 하더라도, 향후 각 종교의 재정적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이러한 인구학적 요인들이,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향후에는 출가자 수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이다. 인구학적 요인이 결정적인 변수로 생각되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젊은 층 감소 현상은 오히려 이외의 요인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1972년 현재 출생률이 4.14명이었고 1982년까지도 2.42명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당시 출생한 사람들이 모두 40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른 요인이 지금 현재의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출생률이 급격하게 낮아진 1990년대 이후 출생자는 아직까지도 출가자 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연령에 이르지 못한 청년 층 이하 세대이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랩 음악’을 즐기고 멀티미디어로 놀이와 소통을 즐기는 세대도 아직까지는 1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젊은 계층의 사회적 특성이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3) 3)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이러한 결론은 이 글의 시간상의 초점이 지금 현재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란 점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현재 10대인 세대가 40세에 육박하는 30년 이후를 생각하면, 젊은 세대의 세대 경험 및 사회인구학적 요인이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에 대한 대비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문제인 젊은 계층에 대한(혹은 젊은 계층을 위한) 불교계의 노력 부족이 문제의 원인인가?

4. 그렇다,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한국불교의 여러 가지 별명 중의 하나가 이른바 ‘노인불교’이다. 통상 특정한 대상의 별명이 그 대상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불교의 신도 중에서 특히 노인층이 상대적으로 두텁게 형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적다는 점, 즉 젊은 층이 불교를 접하고 신행생활을 할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사회의 종교 인구를 종교에 따른 연령별 분포로 분류해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불교인의 비율은 낮아지고 개신교인의 비율은 높아지는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2004년 한국갤럽의 종교인구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불교 인구의 연령별 분포는 18∼24세 14.6%, 25∼29세 15.1%, 30∼39세 20.5%, 40∼49세 26.6%, 50세 이상 35.1%로 나타난 반면, 개신교 인구의 연령별 분포는 18∼24세 23.9%, 25∼29세 22.7%, 30∼39세 22.5%, 40∼49세 21.1%, 50세 이상 18.8%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참여한 종교학자 윤승용은 이러한 분포조차도 예년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는 그 대조적 성격이 다소 흐려졌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마지막 가설―즉 오늘날 한국불교의 문화풍토나 정서가 젊은 층의 그것과 친화력을 갖지 못하거나 젊은 층에 대한 소극적 포교 등에서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을 지지하는 경험적 근거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 가설로 설정하여 그 진위 여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이 사회의 탓이나 젊은 세대의 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탓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지금 당장 한국불교계가 젊은 세대와 친화력을 가질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불자 수 및 출가자의 감소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사실조차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게다. 한국불교가 늙은 세대와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도 나이가 들면 불자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러한 주장의 근거도 빈약하다. 2004년 갤럽의 종교 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개종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 종교인 중 16.2%로 나타났다.

이는 약 80% 이상이 개종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개종 경험을 종교별로 볼 때, 불교와 개신교의 경우는 다른 종교에서 개종해 온 인구가 적고(각각 13.2%와 14.5%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개종해 온 인구가 많은 것(28.1%)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나이가 들면 불자가 될 것이다’라는 가정은 근거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이라는 전제는 이미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해결하는 것과는 무관한 전제조건이다. 또한 이러한 사실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하는 것조차도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도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해결하는 데 백해무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여기에서 우리는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비관적 미래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게다가 향후 우리사회의 사회인구학적 변화는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위대함은 비관적 전망을 낙관적 현실로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이른바 ‘노인불교’를 ‘젊은 불교’로 만들고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극복하려면, 그래서 최근 한국불교가 처한 진퇴양난으로부터 빠져 나오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반성과 대안 모색은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글의 검증이 수학적 계산처럼 엄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 현상을 사회구조의 영향, 젊은 세대의 귀책사유, 그리고 젊은 층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 및 노력의 부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요인이나 젊은 세대의 귀책사유를 우리가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불교인 스스로의 노력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5.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출가연령 제한 규정의 배후 가정(background assumption)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젊은 출가자의 비중을 높이고자 하는 종책 입안자 및 담당자의 의지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에 따른다면, 출가연령 제한만으로는 출가자 고령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의 감소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종단적 차원의 전향적인 대책과 노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2004년 현재 종단의 인력구조의 현황을 잠깐 둘러보자. 왜냐하면 출가연령제한 조치는 물론 젊은 출가자 감소 현상은 종단의 인력구조 및 인력정책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17일자 〈현대불교〉에 따르면, 2004년 10월 29일 기준 조계종 전국 본/말사(선학원, 대각회 포함) 소속 스님은 총 1만 2,683명이다. 이 중 사미는 1,900명, 사미니는 1,404명, 비구는 4,710명, 비구니는 4,669명이다. 이 중에서 이른바 유휴인력인 예비승―사미와 사미니―(약 2,800여 명), 그리고 비구 및 비구니 중에서도 유학승을 포함한 학인(약 500여 명), 군승(약 50여 명), 선방 수좌(약 2,300여 명, 2004년 동안거 기준), 그리고 정확한 추계치는 없지만 고령에 접어들어 활동의 제약을 갖는 노스님(전체의 약 10%, 즉 1,000여 명, 현재 노인인구 비율 고려)을 제외할 때, 오늘날 한국불교 조계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임을 책임질 수 있는 이른바 사판승의 숫자는 약 6,000여 명 정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불교 조계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임은 어떤 종류이며 그러한 소임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최소한 어느 정도인가? 가장 중요한 소임인 주지직에 필요한 인력을 보자. 2004년 현재 한국불교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 수는 총 2,480개이다. 여기에다 아직까지 등록되지 않은 사설 사암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주지직에 필요한 인력은 약 3,000여 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이른바 큰 절인 25개 교구본사와 여러 수사찰에서는 주지직 이외에도 이른바 3직 혹은 7직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종단의 이른바 공적 영역에 필요한 인력 즉 종앙종무행정 인력, 포교 인력, 교육 및 연구 인력, 사회복지 및 사회참여 인력 등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한국불교 조계종단의 사판승 수는 종단 전체의 수요인력 량에 비해 결코 남아도는 수치가 아니다. 물론 사판승 대비 유휴인력, 즉 예비군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이른바 사판승은 대부분 실제로 여러 개의 겸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무엇보다도 먼저 종단적 차원에서 출가자 관련 인력정책의 체계를 시급히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출가자 수에 대한 관리도 그러한 인력 정책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출가 그 자체를 자유방임상태로 둔 채 출가한 이후에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추수 때를 놓치고 이삭줍기에 참가하는 격이다.

둘째, 앞의 제안과 동일선상에서, 이제 조계종단에서도 우수하고 젊은 출가자를 의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종단적 차원의 제도 및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천태종의 금강대학과 같이 교육 및 육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종단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대학을 설립/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물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불교학생회(초/중/고/대) 활동에 적극적인 학생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조건 하에서 스카우트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젊고 유능한 출가자라면 그들이 바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담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존의 제도를 더욱 활성화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유아포교, 아동포교, 청소년포교는 물론 기존의 불교학생회(초/중/고/대)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불교학생회 활동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청년층 포교를 위해서는 직장·직능 포교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한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불교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나 단기출가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체험하고 그러한 체험을 통해 불교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여기에서 일일이 나열할 만한 지면의 여유는 없지만, 한국불교의 색깔과 이미지를 젊은 세대의 정서와 취향에 맞게 바꾸려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소위 응병여약(應病與藥)이다. 젊은 불자 및 젊은 출가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병이라면, 그 병에 적합한 처방약을 투여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만약 이상과 같은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출가연령 제한 규정(상한과 하한 모두)은 스스로 존립의 근거를 잃고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향후 20, 30년 이후 우리사회의 사회변동 및 인구변동의 추세를 고려할 때는, 이상과 같은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한국불교가 출가자 및 신도의 노령화로 인한 진퇴양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

한양대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사회학 박사.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불교사회학의 성립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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