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스님 명상의 집 원장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런저런 행위를 하다가 간다. 보고 듣고 욕구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또 보고 듣고 욕구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기를 하염없이 해 간다. 그 가운데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행위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를 한 마디로 <삶>이라고 한다.

삶!

순간순간의 삶, 이 삶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요, 유일하게 여겨야 할 현찰의 재산일 것이다. 순간순간의 이 삶에 대한 서늘한 눈뜸과 진정한 애정을 가질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 존재하고 있음을 규명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순간순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딘가로 고양해가고자 한다면, 그곳이 저 지고한 성역(聖域)이라 한들 지금 이 순간의 호흡과 눈빛과 손짓 발짓 가슴의 떨림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삶의 모양이 비록 욕심과 다툼과 고통과 지침으로 얼룩져 보이더라도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존의 증거요, 살아온 노고의 결과며, 살아갈 미래 삶의 근거요 자산이기에 무조건 귀하고 소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배제하고서는 그 어떤 희망(希望)도, 꿈도, 이상적 초월(理想的 超越)도 다 헛된 노래에 불과하리라.

우리가 순간순간의 삶에 대해 신선하고 생생한 인식을 간과하고 막연한 매너리즘에 젖어 있지는 않은지, 좀 깨어 있다고 할 때에도 습관적 집착에 사로잡혀 그저 막막한 치달음으로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사섭 문화에서는 이 삶에 대한 바른 각성과 애정을 일깨워주고자 애쓴다. 바로 이 순간의 모든 삶에 대해 신선한 눈으로 바라보고 각별한 애정으로 대해질 때에, 현재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수용하게 될 것이며 이 삶을 진정 잘 가꾸어 가고 싶은 열정이 더해질 것이다. 자신의 삶을 최고의 삶으로 다듬고 싶어질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가게 하는 많은 문화적 도구들이 있다. 학문, 예술, 종교, 도학(道學), 봉사, 학교, 각종 취미활동, 서클활동 등. 이러한 문화들을 잘 활용하여 보다 질높은 삶을 일구어 가는 것이 또한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 수단들을 잘 활용하고자 할 때에 그 효율적 활용을 돕는 것이 아마도 ‘가치관’일 것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더 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있느냐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가치관은 영사물을 빚어내는 필름에 비유된다. 그러므로 삶을 위한 정교한 가치관 정립이 요청된다. 좋은 영사를 위한 좋은 필름의 교정과 같은 이치이다. 동사섭 문화에서 권장하는 하나의 좋은 가치관 체계로서 다섯 가지 삶의 원리가 있다. 정체(正體), 대원(大願), 수심(修心), 화합(和合), 작선(作善)으로서 ‘삶의 5대 원리’라 부른다.

가치관을 영접함에 있어서 우리가 꼭 경계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가치관에 대한 집착과 독선이다. 우리는 자칫 이 순간 이 모습의 삶을 간과하고, 저 순간 저 모습의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루고 싶은 삶에 집착하여 현재의 삶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게 되기 일쑤이다. 나 역시 과거 어느 한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자신과 타인의 부족하게 여겨지는 현재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소외시켜 왔다. 그러면서 그것을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자부했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의 것에 비하여 더 우위에 두는 습관으로 교만과 전쟁을 불러오는 우(愚)를 범하기 쉽다. 가치관 집착, 가치관 독선이다.

삶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의미 각성은 삶에 대한 근본적 태도 전환을 줄 것이라 믿는다. 나와 타인의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그곳에 고통이 있다면 자비로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기원하고, 그 순간의 삶이 갖는 의미를 신앙하며 겸손할 일, 그러면서 보다 고양해갈 것을 스스로 결의하고 타인을 위해서도 기도해 줄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의 전부일 것이라는 깨달음과 결심을 거듭 다지곤 한다.

나아가서 정신 차리고 모든 생각 다 내려놓고 오직 깨어 있는 의식으로만 있어본 자라면, 불현듯 한 생각으로 빚어지는 모든 삶의 현장이 온전한 묘유(妙有)의 세계임을 알 것인즉 그 어떤 삶인들 단지 바라보기만 하게 되려니, 그 어디에 집착과 독선이 붙을 자리가 있을꼬! 허나 그 도리를 알고도 여습(餘習)이 있는지라 또한 더러더러 실족(失足)을 하게 되니 거듭 눈을 비비며 깨어 있어야 하리!    
문득 느껴보니 완연한 봄볕이다. 마음 또한 한결 따스해지는 듯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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