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연구원

머리말

일요일이면 늘 버스를 타고 대학로를 지난다. 어김없이 동숭동 교회 앞쪽으로 늘어선 가판과 주위를 가득 메운 외국인들을 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판이나 사람들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외국인이 참 많구나.” 하기야 지금 외국인 100만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대학로에서 본 사람들은 아마도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1)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갈아 탄 버스는 서울역 앞에서 유턴해서 다시 남대문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남산을 오른다. 그 들머리에 작은 장터가 섰다. 대학로와 비슷한 풍경이다. 서울 한복판에 전혀 새로운 문화가 정착했음을 확인한다. 저들은 고향 말을 듣고, 고향 음식을 먹고, 고향 사람을 만난다. 이것은 너무도 일상적이면서도 귀중한 삶의 방식이다.
필자가 일요일이면 목격하는 저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다. 일산 가구단지나 서울 구로공단, 혹은 안산 반월공단에서 가구를 만들고, 양복을 만들고, 금속을 제련한다. 우리가 평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이 만든 물건은 늘 우리 곁에 있고 ‘made in Korea’라는 자랑스러운 마크를 달고 세계를 누빌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고, 그들의 노동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분명히 공헌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저들은 비존재다. 한국사회에서 저들의 노동력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는 그렇게 편안한 일상을 향유할 수 없다. 저들의 절반이상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저들이 만든 물건은 합법이지만 저들의 존재는 불법이다.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면 그의 지위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 그들은 법적 진공상태에 빠지고 만다.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이 사회에 노출된다.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수치는 2007년 4월 기준으로 41만 명에 달하고, 그 중 46.7%가 불법체류자다.2) 엄청난 사람들이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그 실태를 쉽게 접한다. 작년 2월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올해 1월 8일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에서 사망한 40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국인(조선족) 노동자였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작업 환경에서 노동했다. 그들에게는 애당초 작업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작업장을 선택할 만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같이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근무했어요?”라고 질문할 수 없다. 이런 질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폭격으로 죽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살았느냐”고 나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 입을 막고 그 발을 묶은 자는 권력과 자본이다. 

1. 다수와 소수, 중심과 주변

우리 사회에는 정상인이 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장애인, 동성애자, 성전환자, 에이즈감염자 등등. 여기에 이주노동자도 포함된다. 우리는 저들에게 소수자라는 말도 써봄직하다. “소수자는 표준적인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3) 여기서 말하는 표준, 혹은 척도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의해 확정된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척도에 벗어나는 자는 비정상인으로 규정된다. 소수자와 다수자는 꼭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 사는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들을 주류라거나 다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백인이 전 영역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90%가 넘는 흑인이 오히려 소수자였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금새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현재 소수자란 용어는 사회적 약자·소외계층이라는 말과 별 차이 없이 통용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다수자가 장악한 사회적 척도로부터 배제된 집단이다.”4) 배제된 자들은 심지어 비정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그들을 정상적인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업체 사장이나 동료 한국인들은 저들이 자신과 다른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 사회에서 주변에 몰린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계에 선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일까? 저들은 완전히 사회를 벗어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사회의 중심에서 자신의 입을 갖고 발언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주체일 수가 없다. IMF 이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대중들을 주변화했다.5) “대중들은 지난 십 년간 삶의 한계지대로 추방되어 왔다.

이때의 추방은 바깥으로가 아니라 한계지대로 행해졌다. 한계는 척도가 부재한 곳이 아니라 척도가 가장 강하게 관철되는 곳이다. 권력과 자본의 명령을 그 어느 곳보다 강하게 체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6) 지속적으로 불안정과 위기 상태로 그들을 몰아넣음으로써 ‘권력과 자본’이라는 중심에 매달리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일종의 통치기술이다. 경쟁력 제고라는 미명아래 ‘자유로운 해고’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정규직의 확대로 회사는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 땅의 노동자는 딱 두 종류밖에 없는 듯하다. “해고된 노동자와 해고될 노동자.” 슬프지 아니한가.

그런데 여기서 ‘소수자와 다수자’라는 틀을 ‘주변과 중심’이라는 틀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주변화의 목적은 대중으로 하여금 권력과 자본이라는 중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주변과 중심이라는 틀은 중심을 지향하지만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의 차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자본의 계획을 벗어나지 못한다.”7) 이렇게 되면 이들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외계층’으로서 기껏 돌봄의 대상이거나, 신분상승이 요구되는 계층일 뿐이다. 그래서 소수자가 갖는 능동성이나 적극성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다시 말하면 “소수자를 중심을 지향하는 주변” 정도로 정의할 경우, 백인이 되고 싶은 흑인에게 피부색이 하얗게 되는 수술을 해주는 것 이상 아니다. 아니면 백인의 말, 백인의 습관을 완벽하게 습득하여 다른 사람이 자신의 피부색을 망각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백인과 흑인을 중심과 주변으로 짜 놓는 틀에 포획된 것이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정치적일 수 있으려면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인정하고, 아울러 그것으로 차별의 도구가 됐던 기존의 척도를 부수는 일을 감행할 때다. 바로 이 때문에 소수자는 주변(인)과 다르다. 만약 소수자 정치를 말한다면 그것은 “주로 (몰적) 동일성에 대항하는 (소수적) 차이의 과정이다.”8) “당신과 나는 동일하기 때문에 차별하지 마시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당신은 다른데 왜 차별하시오.”라고 질문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주변화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이주노동자다. 필요한 존재임에도 그들에게는 ‘불법체류’라는 딱지를 붙여놓았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에게 어떤 권리도 주지 않으려 하면서도 저들의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불법(不法)을 요구하는 사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의 임금은 현실화했다.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전반적으로 노동자 임금은 상승했다. 중소기업이나 작업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88년 올림픽 이후 동남아 각지에서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증가했다. 어떤 법적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값싼 노동력으로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1991년 산업연수생제도가 마련됐다. 여기서 ‘연수생’이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분명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에 종사했지만 그들을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저 단어에는 깔려 있다. 노동자로서 권익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업장은 저들의 노동을 사는 게 아니라 기술을 가르쳐 주는 시혜자로 탈바꿈한다.

이주노동자는 본국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상당한 경비와 시간을 소비했다. 하지만 실제 저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된 3년이란 기간 동안 받는 임금으로는 부를 축적하기 힘들다.

또한 한국말이나 한국 환경에 상당히 익숙해진 상태가 되자 귀국해야 할 상황이 닥친다. 상당수 산업연수생은 자연스럽게 사업장을 벗어나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비합법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저들은 어떤 법적 보호 장치도 없는 공간으로 내몰리고 만다. 그런데 그들은 대단히 억울하다. 실제 한국의 산업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서도 오히려 범법자가 된 것이다. “미등록 노동자들은 한국의 인력난을 해결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어 일하는 탓에 임금 체불·산업재해·직업병·부당해고 등에 시달렸다.”9)

2003년까지 미등록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가운데 80%이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가 오히려 저들을 활용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사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원했다. 중소기업은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저들의 신분을 ‘불법’으로 고정시킨 까닭은 명백하다. 2003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어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단체교섭에 나서고 파업에 돌입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제도적으로 보장은 됐지만 보이지 않는 제도가 다시 그것을 막고 있다.

이 사회에서 한 인간을 가장 쉽게 주변화시키는 방법은 그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다.10) 합법적 존재로 취급되지 않음으로써 이 사회가 보장하는 어떤 권리도 요구할 수 없게 한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에 대한 폭력이나 폭언은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 해괴한 논리는 현실이다. 법무부에서 부정기적으로 단행하는 단속·추방은 이런 현실을 더욱 투철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미등록 노동자들이 스스로 불법체류자임을 깨닫게 한다.

대단히 거칠고 급작스런 단속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다. 이런 단속은 미국에서 노예해방 이전 자행된 도망 노예에 대한 단죄와 비슷하다. 일견 한쪽은 추방하기 위해서고, 한쪽은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행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달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단속은 그들 몇 명을 추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들의 작업장 이동과 신분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안다면 둘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공포의 조장으로 노예상태를 지속시키려는 것이다.

케빈 그레이(Kevin Gray)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언더클래스’(underclass)라고 했다. ‘저층계급’ 혹은 ‘계급 이하의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11) 그는 여기서 중요한 지적을 한다. 이 개념은 “이주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지속된 민족국가(nation-state) 담론과 경제적 세계화라는 두 가지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12) 문화 이데올로기의 작동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적 외부자’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집단적으로 타자화했다. 타자화를 행하는 사람은 내국인 노동자도 포함된다.

여기서 타자는 적대적 타자가 아니라 군림의 대상으로 타자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화된 인간은 상대적으로 중심에 더 다가선다. 더불어 신분상승이라는 착시현상도 일어난다. 일종의 지위획득인 셈이다. 이렇게 유럽인종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인종적 우월감은 저개발국 출신의 노동자들을 ‘계급 이하의 계급’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이것은 인종주의나 민족주의가 계급성에 침투했음을 말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실체화한 민족이나 실체화한 전통이다. 불교식으로 하자면 한 개인은 늘 복수적 존재이다. 좀 더 딱딱하게 말하면 그것은 복수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나 민족 혹은 국가로 확장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적으로 저런 것들을 대단히 단순하게 취급했다. 복수에 반하는 단수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일자와 타자를 만들어냈다. 복수체로서 개인은 단지 한두 개의 성질로 나머지 전체를 가려버린다. 한국말을 한다는 것, 아니면 피부색 등이 나머지 숱한 특징을 무화시키고 한국인이라는 동일자로 귀속시킨다.

복수체가 가지는 차이를 배제하고 단순하게 하나의 흐름, 하나의 상징으로 몰입하게 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화적인 배제나 인종적 배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케빈 그레이는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충을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세계화의 문제로만 한정시키지 않았다. 차이에 대한 긍정. 이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요구되는 일만은 아니다. 개인 안에서 끊임없이 차이는 발생한다. 아니 차이를 발생시켜야 한다. 이것이 관습적이고 관념적인 실체화를 막는 길이다. 다소 철학적인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적 실천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3. 이주노동자 운동과 불교의 메시지

87년 이후 유입된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등을 구체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로 자각한 것은 1992년 무렵이다. 대부분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가 주체가 되어 이주노동자 예배를 보면서 시작했다. 그들의 문제를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는 일을 했다. 1992년 5월부터 필리핀 출신 사제들이 서울 자양동 성당에서 타갈로그어로 미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필리핀 노동자 수백 명이 모였다.13)

이렇게 이주자 문제에 대한 관심은 종교계에서 출발했다. 순수한 지원도 있었지만 기독교 선교와 자연스레 맞물리기도 했다. 불교계에서는 1994년 1월 ‘외국인 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불교대책위원회’를 설립했다. 1995년 4월에는 ‘외국인 노동자마을’을 개소해서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기독교계나 불교계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분명 이주자 운동 차원의 접근은 아니다. 보통은 종교적 사랑과 선교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종교적 시혜와 보살핌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정한 연대를 표현하기보다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토착적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온정주의(paternalism) 같은 것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14)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대시기 유럽 사회가 보인 비기독교 지역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그들은 저들을 기독교라는 문명을 접하지 못한 미개하고 불쌍한 자들로 간주했다. 그래서 저들은 계몽하고 선교해야 할 대상이다. 미성숙한 자들의 의사와 권리는 편의를 위해서 곧잘 무시된다.15) 저들을 헤아려주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온정주의도 어느 정도는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불교 입장에서는 모든 중생에 대한 끝없는 사랑, 즉 자비와 같은 개념을 상상하면 된다. 아니면 모든 중생이 연기하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해동포주의를 상상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현실적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저들의 노력으로 이주노동자의 삶이나 인권이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운동이라는 차원으로 상승되지 않는다. 왜일까? 운동은 적어도 주체적으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을 격파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곧 탈취당한 노동자성(worker-ness)을 획득함으로써 권리획득의 주체로 서는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은 기본적으로 이런 흐름을 창안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자 운동에 대해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혁명적이라면, 그 이유는 그들이 전세계적 공리계에 도전하는 심층의 운동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권력은, 특수성의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속에서 자신의 형상 혹은 보편적 의식을 발견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획득된 지위에 의해서만 자신을 정의하는 한, 혹은 이론적으로 정복된 국가에 의해 정의되는 한, 그것은 단지 자본으로서, 자본의 일부로서 나타날 뿐이고, 자본의 계획을 떠나지 못한다.16)

소수자 운동이 소수자의 ‘다수자―되기’가 아니라 소수자 운동일 수 있으려면 ‘전세계적 공리계(公理界)’, 즉 지구적 보편에 반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저것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적 보편은 끊임없이 대중을 주변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다. 그것을 앞장서 실천하는 자들은 당연히 권력과 자본이다. 일정한 지위를 획득한 노동계급은 벌써 자본의 한 부분으로 전락했다.17)

즉 노동자 운동은 소수자 운동이 아니라 다수자 운동이라는 말이다. 윤수종은 소수자 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소수자 운동은 표준화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및 집단들이 자신들의 집합적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신들의 자율성을 지키면서 확장해나가기 위해서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나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18)

소수자 운동은 다수가 되는 운동이 아니다. 소수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라는 용어는 한편으로 노동운동의 다수화 이후 억압받는 사람들을 통칭하려는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 기인하는 동일성의 폭력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19)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소수자 운동은 동일성에 반하는 차이를 양산하고 차이를 촉발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자본’과 ‘자본에 포섭된 노동계급’, 이 둘 바깥을 사유하는 방식으로서 소수자 운동은 의미 있다고 말한다.

불교계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포교 대상이나 돌봄의 대상쯤으로 여긴다면 문제의 본질을 영원히 장악할 수 없다. 저들의 인권보장을 외치면서 인권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주권의 획득이다.20) 이것을 위에서 인용한 들뢰즈의 말과 연결시킨다면 자본의 포획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주권은 차이의 생산과 관련된다. 국내의 이주노동자는 역설적으로 사업장 이동이 대단히 힘들다.21) 케빈 그레이는 이주노동자의 이주권을 특히 중시한다. “작업장을 옮길 수 있는 권리는 노동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는 궁극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22)

민주노동당은 2005년 ‘외국인노동자 고용 및 기본권 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했다. 이것은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에 대한 요구다.23) 기본적으로 이것도 이동권의 확대를 요구한다. 단순히 작업장의 이동으로 국한시키지 말고 ‘이동’이라는 말을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24) 불교에서 이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을 개념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개념으로 추출할 수 있다. 문화적 맥락에서도 가능하고, 철학적 입장에서도 가능하다.

들뢰즈는 《천의 고원》에서 이주민과 유목민(nomad)의 구분을 시도한다. 이주민은 적대적으로 바뀐 환경을 두고 도망치듯 떠나는 자들이고, 유목민은 떠나지 않고 매끄러운 공간에 달라붙는다. 들뢰즈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주민은 늘 재영토화를 기약하고 유목민은 탈영토화를 지향한다. 이것은 이동한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들뢰즈는 유목민과 이주민의 구분을 말하기 위해서 속도와 운동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운동은 연장적이고, 속도는 강렬도적이다.

운동은 하나로 간주되는 신체의 상대적 성격을 가리키며, 그것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인다. 이와 반대로 속도는 그 환원불가능한 부분들(원자들)이 매끄러운 공간을 소용돌이 꼴로 점유하거나 채우는 신체의 절대적 성격을 구성하며, 어떤 점에서도 솟아오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25) 소수자 운동으로서 이주노동자 운동은 이동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동은 법과 제도의 본질을 폭로하고 균열을 가져온다. 새삼스럽지만, 이주노동자는 이주함으로써 저항하는 노동자이다.”26) 이런 의미에서 이주노동자 운동 자체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27)

불교적 맥락에서 이런 ‘이동’ 개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불교가 세계종교로서 보인 횡단성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기원 전후해서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차이 혹은 다양성 가운데 일부가 중국이라는 현실과 공명했다. 서진(西晉)의 축법아가 제안한 격의(格義)라는 개념도 일종의 횡단성을 말한다. 그것은 왜곡이나 후퇴라기보다는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불교가 오랫동안 보인 무아주체에 대한 상상이다. 발심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대단히 능동적으로, 다른 말로는 주체적으로 깨닫겠다는 마음을 내는 행위다.

깨달음은 일체의 자아의식이나 습속의 유형화된 틀〔相〕을 타파하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현대 용어로 하자면 자유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자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것이지만, 불교의 자유는 저런 주체의 틀까지 부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수행이라는 방법이 아니라 일상에서 철학적으로 아니면 정치적으로 이런 것을 행하는 방법은 관계의 구성으로 습속화한 자신을 깨고 새로운 나로 이동하는 것이다.

결론

불교에서는 인간은 집합적 신체임을 천명했다. 물론 사회도 집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구성된 것이기에 실체성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가 허무주의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현실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비실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투철하게 실감할 때야 비로소 수행에 들어설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수행은 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주체적이라는 말과 능동적이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실체를 강화하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 실체를 자각적으로 격파하라는 이야기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비롯한 소수자 운동은 주류사회와 자신의 거리를 좁히는 숨 가쁜 달리기가 아니다. 오히려 다수자와 자신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를 긍정해야 한다.

그 차이로 주류나 다수 사회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라야 사회 구석구석에 놓인 개인들의 자신도 모르는 상이한 능력과 특징은 발휘된다. 이렇게 일종의 변이를 감행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를 조금 과장해본다면 ‘N개의 주체’가 펼치는 변이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나 운동 개념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자면 무주체의 실현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 

 김영진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章太炎불학에서 개체와 윤리 문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근대사상과 불교》를 썼고,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을 공역했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연구공간‘수유+너머’회원이며, 불교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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