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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눈으로 본 남북관계의 흐름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24호] 2005년 09월 10일 (토)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유석 교수

1. 대립·갈등의 분단사 

올해는 광복 60돌을 맞는 해이자 분단 6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민족은 해방과 함께 통일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서로 상대방을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 정의관에 사로잡혀 제로섬게임(먹고 먹히는 게임)을 해왔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인 한국전쟁으로 비화하고 아직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정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 이익보다 진영 이익이 우선했던 냉전시대 남과 북은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체제경쟁을 지속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서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적대적 대립관계를 지속해 왔다. 남북한 당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북대화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기는 했지만 대화가 순수한 타협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남북대화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상호 불신과 상대방 체제에 대한 불인정문제이다. 그리고 남북한 당국은 대화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한 예가 많았다.

남북분단 이후 1960년대 말까지는 이른바 ‘대화없는 대결시대’였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은 남북한은 한동안 대화없이 서로 체제경쟁을 지속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이 경제건설 분야에서 북한을 따라잡아 앞지르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하고, 미국과 중국간의 접근 등 데탕트 움직임에 따라 남북한은 당국간 대화 시대를 열고 1972년 7·14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등 남북관계 발전에 전기를 마련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이면에서 남한은 유신헌법의 채택과 장기집권을 준비하였고, 북한은 주석제 헌법의 채택을 통한 유일체제의 강화를 꾀하는 등 남북한 공히 남북대화를 내부 권력강화와 장기집권에 이용함으로써 ‘대화있는 대결시대’를 맞았었다.

1970년대 말 남북한은 서로 상대편을 무시하는 듯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소위 ‘귀머거리들의 대화’를 지속하다가 1980년대 중반 북한의 수재물자 제공과 관련하여 경제회담, 국회회담, 체육회담 등과 이산가족고향 방문과 예술단교환 공연 등의 ‘부분적인 결실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1988년 이후 1994년까지 남북한은 기본합의서를 채택(1991. 12)·발효(1992. 2)시키고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는 등 고위급 또는 최고위급 대화가 시도되는 ‘당국간 대화 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가까스로 합의한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김정일 정권에 의한 남한당국 배제정책의 지속으로 남북 당국간 대화는 상당기간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해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한-소(러)수교,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한국과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노력이 실패하고, 미국과 수교하지 못했다. 지금 세계는 이념중심의 진영논리에서 탈피하여 경제적 실리중심의 지역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숙원관계에 있던 유럽국가들이 유럽연합(EU)을 결성하고 지역중심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탈냉전의 시대흐름에 뒤처진 남과 북은 시대착오적인 소모적인 대립갈등을 지속함으로써 성격은 다르지만 각각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2. 6·15 선언과 공존에 기초한 화해협력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실현한 김대중 정부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남북관계를 윈-윈 게임(win-win game)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상을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포용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남북당국간에 신뢰가 조성되었고, 드디어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간의 담판에 의해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올해로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약속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지 5주년을 맞는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1년 1월 부시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의 지속으로 남북관계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HEU) 핵개발프로그램 ‘시인’을 계기로 핵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남북관계도 이에 연동돼 정체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한은 1972년 ‘7·14 공동성명’ 발표,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등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합의문을 여럿 만들어 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유일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북한에서는 국내외 정세의 변화와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남북 합의문을 만든 이후 정세가 변화하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는 남한은 임기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전임 정권이 합의한 남북간 합의사항을 다음 정권이 계승하지 않거나 새로운 합의문을 만듦으로써 전임 전권이 만든 합의문이 사문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에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강조하다가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통일원칙 합의,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의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 그리고 교류협력과 당국간 대화를 모색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냈다.

6·15 공동선언의 핵심은 남북 화해협력과 공존공영이다.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한이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고 ‘호혜적 의존관계’로 발전시킬 것을 약속한 것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6월 정상회담을 통해서 남과 북은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합의했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남북공존을 합의한 6·15 선언 5주년을 맞아 다시 남북관계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남과 북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상대를 부정해야 자기 정체성이 있었던 적대관계에서 상생의 공존관계로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 신·구 패러다임간의 갈등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화해시대 남남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북한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주체의 논리’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있어 정체성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6·15 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정세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 왔다. ‘6·17 정동영-김정일면담’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급진전하고 있다. 8·15 행사에 참가한 북측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불행했던 과거 청산과 남북 공존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남북간에는 공존에 합의했지만, 북미간에는 공존을 합의하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적관계와 불신을 풀고 공존을 합의하기 위해서 막바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이 북핵협상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한 것은 ‘수령’의 권위를 빌어서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미국이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란 북한체제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면 테러문제에 있어 북한변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3. 남북화해와 불교의 역할

남북화해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가 통일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남북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민족전통종교인 불교계는 민족동질성 회복과 민족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민족동질성 회복은 분단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단 이후 전개된 체제 이질화를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질화를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중심 사상은 불교의 중화(中和)사상과 화쟁(和諍)사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상극을 극복할 수 있는 중도적 삶의 원리가 창출돼야 하는 데 이를 원효(元曉)의 화쟁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쟁논리는 ‘같음은 다름이 있으므로 같음이고, 다름도 같음이 있으므로 다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고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비동비이(非同非異)의 고차원적 인식에서 둘이 융화되어 하나가 아닌 원융이불이(圓融而不二)의 인식논리인 것이다.” 이 화쟁논리는 통일신라 3국민간의 정신적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구심력이 되기도 하였다.

남북한 동질성 회복의 출발은 원효의 가르침에 따라 우선 남북한이 서로 다름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은 심화되고 흡수통일논리가 나오게 된다. 과거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적인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름은 같음이 있으므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우리 민족의 새로운 삶의 원리를 찾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불교계는 조석예불을 통한 통일기원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서 통일노력을 구체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불교계가 통일문제를 푸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은 정치당국자들의 통일노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불교계와의 교류에 힘써야 할 것이다. 향후 남북 불교교류는 교리를 앞세우기 보다는 문화·학술교류를 중심으로 접근해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 불교교류의 초점은 북한 불교의 자생력을 키워 민족정서적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주민들이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불교계가 추진해야할 남북교류사업은 남북간 민족문화유산 공동발굴조사, 불교관련 자료교환, 사찰복원, 공동법회, 그리고 인도적인 대북지원사업 등이 있다. 이를 통해서 북한의 정신문화가 어느 방향으로 변하고 있으며, 우리의 유구한 문화전통과 얼마나 멀어져가고 있는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교문화가 민족동질성 회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4월부터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외금강에 있는 신계사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계사 복원은 남과 북의 불교도와 관계기관 일꾼들이 함께 모여 단일민족으로서 마음과 지혜를 합치면 민족문화유산을 복원, 보존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신라 보운조사가 519년 창건한 신계사는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몇차례 중건된 금강산 4대 명찰 가운데 하나다. 조계종은 2003년 1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된 신계사 복원에 관한 의향합의서 체결한데 이어, 11월 9일부터 17일간 남북한 학자들과 조계종 문화유산조사발굴단이 참여한 가운데 신계사지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공동 문화재 발굴이었다.

이밖에도 남북불교교류 사례는 더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는 지난해부터 북한 조국평화통일불교협의회와 공동으로 평양 인근의 법운암을 비롯해서 북한지역 59개 사찰에서 단청불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천태종도 지난해 말부터 개성 영통사를 복원하는 사업을 종단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영통사는 고려 11대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출가한 이후 35년간 불경공부를 하며 천태종을 창시했던 장소로 전해지는 천태종의 성지다.

남북 불교가 손을 잡고 남북공동 불사를 추진하는 것은 남북 인적·물적 교류 확대를 통해서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화해를 앞당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남북 종교교류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인 북한종교를 재건하는 의미를 가진다. 남북 종교분야의 교류·협력은 북한의 종교정책에 있어 전향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래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종교 분야의 교류·협력은 주로 남한 종교인의 방북, 제3국 개최 종교회의 참가, 대북지원 등의 형태로 이루어져왔으나, 최근에는 개천절남북공동행사(2002.10, 평양), 3·1민족대회(2003.3, 서울) 등 종교인간 남북공동행사를 개최하여 만남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통일의 선결조건인 남북화해는 상호간 꾸준한 접촉과 대화가 유지되어야만 가능하다. 동·서독간 ‘상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고 단계적 접근방법인 ‘작은 걸음의 정책’을 수행한 독일통일의 예는 대표적 모범사례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의의와 중요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한의 ‘사회문화 공동체’ 형성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간의 차이를 우열관계가 아닌 대등관계의 차이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상호존중과 이해를 도모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남북한간 이질화를 극복하고 극복 및 동질화를 모색해 나가기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라는 데에도 커다란 의의와 중요성이 있다.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서로의 삶의 양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케 하며,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 해소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문화적 이질화로 인해 통일 후 예상되는 남북한간 문화·심리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북한의 사회 변화 및 체제의 개혁·개방 유도를 위한 비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활용가치가 높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북한을 직접 자극하거나 정치적 대응을 야기함이 없이 북한의 사회 변화 및 체제 개혁개방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간 사회문화적 접근의 확대·강화는 남북관계에 있어 정치·이념적 논리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불교계는 남북교류협력사업, 대북지원사업, 탈북자 정착지원사업 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학국 정치학회 이사. 북한연구학회 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통일부 통일정책 평가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 <21세기의 남북한 정치> 등 공동저서와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김정일정권의 진로’ 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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