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문학사에서 불교 관련 노래의 기원은 먼저 신라 향가(鄕歌)에서부터 만날 수 있다. 여러 향가 작품들에서 불교적 이념과 가치관의 반영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이 고려속요를 거쳐 조선시대에 시조, 가사 등을 비롯하여 민요, 판소리 사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통으로 면면히 계승되어온 사실을 본다. 20세기 현대사회에 이르러 불교 관련 노래는 주로 대중적 전파력이 강한 가요시 장르를 통해 나타나는데, 19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 출현이 확인된다. 제국주의 통치의 수탈과 압박이 강화되던 시기에서 민중의 삶은 가파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냉소, 심리적 안정감의 회복, 위로와 격려 등의 메시지를 담은 가요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식민지 시대 불교 관련 노래를 거론할 때 우리는 시인 조명암(趙鳴岩, 1913~1993)의 이름부터 먼저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충남 아산 출생으로 본명은 조영출(趙靈出)이다. 부친은 동학 농민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고, 그 후 모친은 가족들과 금강산 건봉사로 이주하였다. 영출의 모친은 사찰의 공양주 보살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 인연으로 영출은 건봉사에서 삭발 후 중련(重連)이란 법명을 받았다. 건봉사에 잠시 머물던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이 영출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서울의 보성고보로 유학을 시켰다. 졸업 후 영출은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하여 불문학을 전공하였다. 1932년부터 모더니즘 계열의 시작품을 신문이나 잡지 등에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34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 창작을 하는 틈틈이 가요시 창작에도 관심을 쏟아 다수의 가요시 작품을 발표하였다. 가요시 작가로서 그의 필명은 다양하다. 조영출, 조명암, 이가실, 금운탄, 김다인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였다. 조명암은 1940년에 〈꿈꾸는 백마강〉(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인권 노래, 1940)과 〈낙화삼천〉(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김정구 노래, 1942)도 발표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출생지인 충남 아산에서 멀지 않은 백제시대 부여의 옛 사찰 고란사(皐蘭寺)와 백마강, 그 부근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종소리의 음영을 삽입하고 있다. 상실과 훼손에 방치된 공간으로서 고향과 고향 정서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며는/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그 누가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낙화암 달빛만 옛날 같구나

— 〈꿈꾸는 백마강〉 2절

반월성 넘어 사자수 보니/ 흐르는 붉은 돛대 낙화암을 감도네/ 옛 꿈은 바람결에 살랑거리고/ 고란사 저문 날엔 물새만 운다/ 물어보자 물어봐 삼천궁녀 간 곳 어데냐/ 물어보자 낙화삼천 간 곳이 어데냐

— 〈낙화삼천〉 1절

조명암은 1939년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김다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 노래, 1939)이란 작품도 발표했다. 이 노래는 승려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수행, 공덕 쌓기를 위한 모습에 대해 냉소적 풍자를 날리고 있어 이채롭다. 특히 승려 체험이 있는 조영출의 작품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다음으로는 1940년에 발표된 양주동(1903~1977) 시인의 〈어머니 마음〉을 손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 등장하는 열 가지의 은혜를 모두 작품 속에 수용함으로써 대중적 공감과 친화력을 드높이고 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우에 주름이 가득/ 따 우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야/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오리/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 〈어머니 마음〉(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1940) 전문

이 노래의 1절에서는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품에 품고 지켜주시는 은혜)과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함에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마른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 당신 누신 은혜) 등 다섯 가지 은혜로움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2절과 3절의 대목마다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은혜),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멀리 길 떠나면 걱정해주시는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해서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세상의 종말까지 염려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소상하게 정리해서 배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노래는 해마다 어버이날이 가까울 무렵 대중의 깊은 사랑을 받는 불멸의 노래로 지금까지 널리 불리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1년으로 접어들며 하나의 이채로운 불교 테마 가요가 발표되었다. 〈염주알을 굴리며〉(처녀림 작사, 김해송 작곡, 고운봉 노래)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난세의 혼란과 번잡을 떨치고 금강산의 한 사찰로 홀연히 승려가 되어 떠나간 인물의 출가와 그 행적을 그리고 있다.

한 고개 두 고개 두견화 바람 속에/ 바랑 짐 짊어지고 떠나간 사람아/ 구겨진 장삼소매 풀이 슬퍼 아롱아롱/ 고향집 뒤에 두고 고향집 뒤에 두고/ 산천을 찾아갔소//

구룡포 물소리 소리쳐 느껴 울 때/ 바라밀 짚새기로 떠나간 사람아/ 목에 건 보리염주 백에 여덟 굴리면서/ 팔담을 구비 구비 팔담을 구비 구비/ 마지막 떠나갔소//

비로봉 머리의 구름 길 더듬어서/ 천만층 쇠줄 잡고 걸어간 사람아/ 만폭동 암자 터에 국태민안 비올 적에 / 백단향(白檀香) 피워놓고 백단향 피워놓고/ 삼백 날 밤을 샜소

— 〈염주알을 굴리며〉

(처녀림 작사, 김해송 작곡, 고운봉 노래, 1941) 전문

1945년 8 · 15 해방이 되고 4년 뒤인 1949년에 발표된 노래 〈무영탑 사랑〉(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이 광복 이후 발표된 첫 불교 테마 노래로 손꼽힌다. 이 노래는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사랑을 담은 가요작품이다.

부여길 오백리 길 님 두고 가는 길에/ 서라벌에 맺은 사랑 영지에 띄우며는/ 달빛도 별빛도 울어주던 그날 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님 없는 부여 땅에//

부여길 떠나올 때 옷깃을 부여잡고/ 무영탑에 엮은 사랑 천만 년 이어주오/ 청사 실 홍사 실 걸어놓고 빌던 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님 없는 부여 땅에//

부여길 십 년 꿈을 기러기 울고 가면/ 남갑사에 낭자 얼굴 영지에 춤을 추네/ 구름도 하늘도 백팔염주 외던 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님 없는 부여 땅에                                                — 〈무영탑 사랑〉 전문

식민지 시대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곡 〈성불사의 밤〉은 이은상(1903~1982)의 시조작품을 홍난파가 작곡한 것이지만 해방 이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분단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황해도 성불사의 환상적 풍경과 분위기를 노래로 담아내어 대중의 그리움을 한층 자극하였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 〈성불사의 밤〉(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전문

해방 시기인 1947년 서울 럭키레코드사에서는 특별한 가요작품 하나를 발표하였다. 제목은 〈신라의 달밤〉이다. 작사가 유호(1921~2019)가 노랫말을 붙이고 박시춘(1913~1996)이 작곡하여 가수 현인(1919~2002)이 취입한 작품이다. 해방의 감격과 약동하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대중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 1980년대 중반 북한의 작사가 조명암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노래가 자신의 원작인 〈인도의 향불〉을 범죄적으로 도용한 것임을 밝히고 남조선 당국자들은 이 노래의 저작권료를 지급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의 작사가 유호는 이 노래 작사의 배경과 관련된 어떤 해명도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신라의 달밤〉 노랫말에는 불국사란 사찰명이 작품의 소도구로 일부 활용되고 있을 뿐 불교 테마와는 깊은 관련이 없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 〈신라의 달밤〉 1절

1948년엔 가수 장세정(1921~2003)이 〈백팔번뇌(百八煩惱)〉란 가요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같은 가수의 〈울어라 은방울〉과 함께 수록되었다. 경주 불국사 경내의 다보탑과 독경 소리, 불국사의 범종 소리 등이 시적 소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해 저문 서라벌에 종이 울린다/ 불경 소리 처량한 저 다보탑 그림자/ 아득한 그 옛 꿈이 덧없이 애달파/ 아 저녁노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리라

— 〈백팔번뇌〉(장세정, 1948) 1절

6 · 25 전쟁 시기에 발표된 노래 〈인도의 향불〉(손로원 작사, 전오승 작곡, 현인 노래, 1950)은 인도의 갠지스강과 인도 처녀의 극진한 기도 장면, 염불 소리, 파고다, 향불, 벵갈사 따위의 불교적 분위기가 이국 정취를 고조시키는 엑조티시즘(exoticism)의 방식으로 단조롭게 활용되고 있다.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소리/ 간디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 〈인도의 향불〉 1절

1950년대로 접어들어서 3편 정도의 불교 테마 노래가 발표되었다. 〈해인사 나그네〉 〈불국사의 밤〉 〈신라의 북소리〉 등이 그것이다. 세 작품 중에서 ①과 ②는 비교적 불교 테마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③은 단지 불국토의 재현과 삼국통일을 꿈꾸던 신라시대의 전형적 분위기와 화랑도의 풍경이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① 깊은 밤 염불소리 끊어지고/ 애꿎은 향불만이 법당을 감도는데/ 길 잃은 저 나그네 잠 못 들어 하는 밤/ 대장경 설법 속에 한 옛날이 풀린다

— 〈해인사 나그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1957) 1절

② 향불에 밤은 깊어 이 밤도 깊어/ 불타의 그림자도 꿈은 깊은데/ 길을 잃은 저 나그네 풍경소리냐/ 무엇을 찾으려고 밤을 새느냐/ 아 잠 못 드는 불국사의 밤이여

— 〈불국사의 밤〉(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현인 노래, 1957) 1절

③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 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 사랑도 두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 맹서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 궁녀들의 눈물이냐 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은

— 〈신라의 북소리〉(야인초 작사, 박시춘 작곡, 도미 노래, 1959) 1절

1960년대로 접어들어 발표된 가요작품 중 불교 테마로 간주되는 노래는 3편가량으로 확인된다. 앞서 살펴본 백년설(1915~1980)의 〈해인사 나그네〉와 제목은 동일하지만 노래는 전혀 다른 손인호(1927~2016) 버전의 〈해인사 나그네〉가 발표되었다. 신라 애장왕 때 건립되었고, 의상대사(義湘大師)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알려진 해인사에 대하여 작사자는 뜬금없이 고려왕조 오백 년과 비견하고 있는데 이는 해인사 창건과 역사에 대한 지식의 결핍과 무관심에 기인한다. 다만 일주문, 팔만대장경, 부처님, 송운대사, 암자 등 불교적 이미지의 소도구를 작품구성에 활용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산골길을 구비 따라 돌아서니/ 고려 역사 오백 년에 해인사가 여기구나/ 일주문 들어서니 팔만대장경은/ 영험하신 부처님의 승복한 말씀이냐//

들참나무 외다리는 물결 따라 돌아서니/ 그 옛날에 송운대사 수양암자 여기구나/ 가야산 등에 지고 높이 선 천년 성은/ 검은 바위 뿌리 깊은 청실한 모습이다

— 〈해인사 나그네〉

(석운 작사, 하기송 작곡, 손인호 노래, 1962) 전문

다음으로는 1965년 극작가 김석야(1929~2000)가 집필한 라디오드라마 주제가로 널리 알려진 노래 〈하숙생(下宿生)〉에 관한 이야기다. 드라마의 전개는 화학 전공자인 청년과 미스코리아가 꿈인 여성의 곡절 많은 사랑에 관한 내용이다. 남자 친구의 실험실에 놀러 갔던 날 마침 화재가 발생하여 위기에 빠진 여자 친구를 구출했지만 여자 친구는 부유한 다른 남성과 결혼해버린다. 간신히 얼굴을 복원한 남성은 옛 여자 친구의 집 이웃에 살면서 예전에 즐겨 불러주던 노래를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며 여성을 미치게 만든다는 드라마였다.

가수 최희준(1936~2018)은 이 노래 한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노래의 첫 줄은 바로 경전에 나오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김석야는 계룡산 동학사의 쓰레기장에 버려진 삭발한 여인들의 모발을 보면서 인생 무상을 느껴 이 노래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 〈하숙생〉(김석야 작사, 김호길 작곡, 최희준 노래, 1965) 1절

1960년대의 마지막 불교 테마 노래로는 단연 가수 송춘희가 부른 〈수덕사(修德寺)의 여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1920년대 식민지 문단에서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했던 김일엽(본명 김원주, 1896~1971)의 생애를 다룬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독실한 불자가수였던 송춘희가 불러 크게 히트를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노래는 불교계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유는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수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이 노랫말이 출가 수행자인 비구니 스님들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뒷날 송춘희의 가요팬들은 이 노래를 기념하는 노래비를 수덕사 경내에 세우려 했으나 사찰 측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사찰 입구 주차장에 겨우 건립했지만 이마저 즉시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이 노래는 여러 가지 사연이 서려 있어서 가요팬들의 관심도 각별하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 운다

— 〈수덕사의 여승〉(김문응 작사, 한동훈 작곡, 송춘희 노래, 1966)

197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 중에서 기억될 만한 불교 테마 노래로는 모두 3편을 손꼽을 수 있다. 그것은 가수 김태곤(1950~ )의 〈송학사〉 〈망부석〉 〈백팔번뇌〉 그리고 송창식(1947~ )의 노래 〈토함산〉 등이다. 김태곤은 육군군악대원으로 활동하던 군 복무 시절, 아픔과 목마름을 동반한 방황과 지적 고뇌 속에서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강석주(1909~2004) 스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스님의 권고로 대중포교를 위한 조계종 전법사 교육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사찰 공연을 가장 많이 하는 가수로 기록되고 있다. 불교 경전을 풀이하여 찬불(讚佛)가요로써 대중화시키려는 포부를 지니고 줄곧 몰두하는 중이라고 한다.

김태곤이 만들고 부른 또 다른 노래 〈망부석〉은 절개 굳은 아내가 집을 떠난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 죽어서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망부석 설화를 다룬 작품이다. 치술령(鵄述嶺), 혹은 박제상(朴堤上)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불교적 상상력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가요작품이라 하겠다. 또 다른 노래 〈백팔번뇌〉는 속세에서 쌓은 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찰을 찾아가 줄곧 기도하며 고통의 극복을 기원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안타까움과 절규를 담아내고 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나/ 밤벌레에 울음 계곡 별빛 곱게 내려앉나니/ 그리운 마음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보세

— 〈송학사〉(김태곤 작사, 작곡, 노래, 1977) 부분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밝아 찾아보니 처마 끝엔 빈 둥지만이/ 구구 만 리 머나먼 길 다시 오마 찾아가나 저 하늘에 가물거리네/ 에헤야 날아라 헤야 꿈이여 그리운 내 님 계신 곳에/ 푸른 하늘에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 〈망부석〉(김태곤 작사, 작곡, 노래, 1977) 1절

염주 한 알 생애 번뇌 염주 두 알 사해번뇌/ 백팔염주 마디마다 님의 모습 담겼으니/ 낭랑한 목탁소리 님에게 드리울 제 풍경소리 허공에 울려 퍼지네/ 산사에 홀로 앉아 백팔번뇌 잊으려고/ 두 손을 합장하고 두 눈을 꼭 감아도/ 속세에 묻힌 정을 어디에서 풀겠는가/ 달빛만이 서럽게 나를 감싸네/ 어 허허어어허어 어허허어허허/ 어 허허어어허어 어허허허허허/ 구름 가듯 세월 가듯 천년 겁이 흘러가면/ 나도 가고 너도 가려마/ 님의 뜻을 알 길 없어/ 이리저리 헤매이다 이 밤도 지새는구나

— 〈백팔번뇌〉(최현군, 김태곤 노래, 1978) 1절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는/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바람 속에 실렸어라 흙이 되어 남았어라/ 님들의 하신 양 가슴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 아/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산산이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 〈토함산〉(김현수 작사, 송창식 작곡, 송창식 노래, 1978) 전문

송창식의 노래 〈토함산〉은 경주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국보 24호) 대불을 시적 테마로 해서 노래를 만들었다. 신라 경덕왕 때 불국사 창건을 주도한 김대성(700~774)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석굴암은 신라의 건축과 조형예술의 총화를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이다. 이를 모티브로 해서 송창식은 노래를 작곡하고 직접 격정적 분위기의 가창까지 도맡아 민족사적 유물을 한층 빛내는 작업을 하였다.

1980년대에 출현한 불교 테마 노래는 도합 7곡으로 정리가 된다. 정태춘(1954~ )의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노래〉 〈애고 도솔천아〉 등과 김연숙(1958~ )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 조용필(1950~ )의 〈한 오백년〉, 김영동(1951~ )의 〈어디로 갈거나〉, 송창식의 〈선운사〉, 김지애(1962~ )의 〈무명초〉 등이 그것이다. 정태춘의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노래〉는 ‘탁발승의 노래’란 부제가 상기시키는 분위기와도 부합되는 산사 주변의 아침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석가세존, 본당의 목탁 소리, 억겁, 중생이란 시어들도 제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을 잘 감당해내고 있다.

김연숙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에서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석가세존(釋迦世尊)을 암시하는 시적 언술로 정리되고 있다. 무한한 사랑과 자비심의 출렁거림이 문맥에 차고 넘실거린다. 김영동의 〈어디로 갈거나〉는 사바세계의 고통과 부담을 방황심리와 그 충동의 표현으로 적절히 담아내고 있다. 그만큼 1980년대의 시대 상황은 암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호소할 길 없던 시절이었고, 이 노래는 그러한 심정을 위로해주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창식의 〈선운사〉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과 면담한 후 시 〈선운사〉를 읽은 감흥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찰 선운사는 지역 출신 시인의 시 작품과 가수 송창식의 노래로 말미암아 그 명성과 설화성을 더욱 보태어간다. 김지애의 〈무명초〉는 한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을 자비심의 눈길로 측은하게 바라보는 불교적 관점이 담겨 있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시냇가 물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어서 어서 가자/ 길섶의 풀벌레도 저리 우니/ 석가세존이 다녀가셨나/ 본당의 목탁소리 귀에 익으니/ 어서 어서 가자/ 이 발길 따라오던 속세 물결도/ 억겁 속으로 사라지고/ 멀고 먼 뒤를 보면 부르지도 못할/ 이름 없는 수많은 중생들

—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노래〉(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 1980) 부분

외로움으로 나 여기 섰네/ 허전한 마음 나 여기에 섰네/ 부풀어 오르는 이 가슴의 물결과/ 그대 사랑은 아직도 내 것이네/ 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 님이시여 님이시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한 마디만 당신 곁에 남겨두고/ 나도 이제는 연화당 저 바다에 돌아가겠네

—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

(유승엽 작곡, 김연숙 노래, 1982) 1절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 〈한 오백년〉(경기민요, 조용필 노래, 1983) 1절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님을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이 강을 건너도 내 쉴 곳은 아니요/ 저 산을 넘어도 머물 곳은 없어라/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 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 〈어디로 갈거나〉(김영동 작사, 작곡, 1985) 1절

간다간다 나는 간다/ 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지친걸음 재촉하니/ 도솔천은 그 어디메냐/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등 떠미는 언덕너머/ 소매 끄는 비탈아래 씨름 짐만 또 한보따리/ 간다간다 나는 간다 부모설움 등에 지고/ 산천대로 속 저자 길로/ 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 애고 도솔천아

— 〈애고 도솔천아〉(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 1985) 부분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곳 말이에요

— 〈선운사〉(송창식 작사, 작곡, 노래, 1986) 1절

남몰래 지는 꽃이 너무도 서러워/ 떨어지는 잎새마다 깊은 사연 서리네/ 따스한 어느 봄날 곱게도 태어나서/ 애꿎은 비바람에 소리 없이 지는구나/ 아 지는 꽃도 한 떨기 꽃이기에/ 웃으며 너는 가느냐

— 〈무명초〉(조운파 작사, 김수환 작곡, 김지애 노래, 1988) 1절

199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 중에서 불교적 이미지나 그 표상이 등장하는 가요작품으로는 도합 8편을 손꼽을 수 있다. 1990년대는 가장 다수의 불교 테마 가요가 산출된 시기이다. 선곡은 필자의 자의적 선택이라 목록이 더 추가될 수 있다. 김국환(1948~ )의 노래 〈타타타〉(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1991), 박정식의 〈천년바위〉(장경수 작사, 장욱조 작곡, 1995), 김국환의 〈구룡사 종소리〉(송재용 작사, 김희갑 작곡, 1997), 조관우(1965~ )의 〈사랑했으므로〉(정연준 작사, 작곡, 1997), 김동아(1948~ )의 노래 〈갓바위〉(이영선 작사, 서정하 작곡, 1998), 〈구인사의 밤〉(김정규 작사, 홍성욱 작곡, 1999), 〈홀로 나선 치성길〉(김동아 노래, 1999), 김민종(1972~ )의 〈인연〉(김민종 작사, 신동우 작곡, 1999) 등이 그 사례들이다.

‘타타타’라는 말은 산스끄리뜨어 타르타(Tathata), 즉 ‘있는 그대로의 것’, 진여(眞如)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작사가 양인자가 인도 여행 중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어 가사를 쓰게 되었고, 부군인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여서 노래가 만들어졌다. 이 노래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삽입곡으로 활용된 뒤 대중적 인기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박정식의 〈천년바위〉는 작사가 장경수가 울산의 영남알프스 등반에서 웅장한 바위를 본 뒤 특별한 영감을 얻어 작성한 곡이다. 원곡은 남지훈이라는 가수가 불렀는데 대중적 관심을 별반 끌지 못했고, 1994년 박정식이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크게 인기를 모았다. 산사음악회에서 여러 해째 단골 레퍼토리로 각광받는 곡이다.

김국환의 〈구룡사 종소리〉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의 구룡사(九龍寺) 범종을 시적 소재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조관우의 〈사랑했으므로〉는 파격적 고음과 애절함이 어우러지는 감성적 작품이다. 부친 조통달(趙通達, 1945~ )과 이모 박초월(朴初月, 1913~1983)이 모두 판소리의 명창으로 그 비범한 자질이 조관우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란 불가능하고 세속의 모든 것은 덧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김동아는 불교 테마 노래를 많이 취입한 전형적 불자 가수이다. 그가 부른 〈갓바위〉는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자락에 있는 약사여래불을 노래로 만든 작품이다. 그곳은 합격 기원 기도처로 해마다 수능시험을 앞둔 시기에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구인사의 밤〉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사찰인 구인사(救仁寺)를 시적 테마로 다루었다. 1만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5층짜리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 대법당 설법보전(說法寶殿)과 목조 대강당인 광명당(光明堂) 등의 건축으로 유명하다. 김민종의 〈인연〉은 불교 이념에서의 인(因)과 연(緣)의 이론을 사랑의 등식으로 풀어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과 절차는 인간의 사랑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서 이별이란 것이 어떤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지 그냥 함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불교 테마 대중가요는 그 수가 일단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 원인은 초고속 정보화시대를 배경으로 종교에 대한 대중들의 냉담과 무관심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동원(1951~ )의 〈보탑사〉(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2007), 전미경(1966~ )의 〈청산은 나를 보고〉(나옹 스님 원작, 최동일 작사, 박성훈 작곡, 2019), 안수(1953~ )의 〈청암사 여인〉(2020) 등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동원의 〈보탑사〉는 충북 진천군 보련산(寶蓮山) 자락에 있는 사찰 보탑사(寶塔寺)를 시적 소재로 다루었다.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1992년 문화재 전문위원 신영훈(申榮勳, 1935~2020)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장인들이 참여한 중흥 불사를 시작하여 1996년 3층 목탑을 완공하였고, 그 후 지장전, 영산전, 산신각 등을 건립하여 2003년에 불사를 마쳤다. 완공 시점에 맞추어 이 노래가 발표되었다.

전미경의 〈청산은 나를 보고〉는 고려 충숙왕 때의 대선사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시 작품을 현대 역으로 풀어서 작곡한 작품이다. 나옹선사 혜근(惠勤, 1320~1376)은 위대한 고승으로 일컬어지며, 조선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나옹집(懶翁集)》에 전하는 스님의 시작품 원문 “청산혜요아이무어(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혜요아이무구(蒼空兮要我以無垢)/ 요무애이무증혜(聊無愛而無憎兮)/ 여수여풍이종아(如水如風而終我)”를 번역한 이 유명한 문장은 전국 사찰마다 어김없이 전시되어 있다. 이 현대 역에 곡을 붙여서 김란영, 전미경, 김용임, 임현정, 강승용, 조영남, 자명, 지범, 도신 스님 등 다양한 가수들이 이 노래를 앞다투어 취입하였다. 그것은 그만큼 불자와 대중들에게 이 노래의 의미와 효과가 상당한 공감과 친근감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정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수의 〈청암사 여인〉은 왕의 총애를 후궁 장희빈에게 빼앗기고 기어이 폐위까지 당한 비운의 인현왕후가 잠시 찾아와 머물렀던 김천 증산면 청암사(靑巖寺)를 시적 소재로 다루고 있다. 폐위 당시 인현왕후의 외롭고 허전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적막감과 쓸쓸한 정서가 담긴 작품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이 세상 사람들아 사람들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 스님 원작, 최동일 작사, 박성훈 작곡, 전미경 노래, 2019) 전문

저마다 다른 사연 가슴에 안고/ 아흔아홉 고개 넘고 넘어서/ 맑은 물 깊은 계곡 수도산 아래 기도하는 여인아/ 새소리 맑은 바람 염불소리는 백팔번뇌 씻어버리고/ 속세에 모든 인연 끊어버린다 전생에 지은 업보도/ 불영산 산마루에 달이 떠오면/ 청암사에 풍경이 운다

— 〈청암사 여인〉(안수 노래, 2020) 1절

 

불교 테마 노래는 찬불(讚佛) 의식의 도구적 기능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찬불가의 기능과 효과가 지닌 중요성에 일찍부터 주목한 인물은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스님이다. 찬불 내용만 단조롭게 평면적으로 담고 있는 불교 테마 노래는 일정한 틀과 규격에 갇혀버린 양식이라 대중적 호소력이 다소 미약한 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명상과 힐링의 기능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사찰체험 관광프로그램의 하나인 템플스테이(temple stay), 동 · 하절기 각종 법회와 연수를 비롯한 다양한 사찰 행사에서 명상과 힐링 효과를 담은 불교 테마 노래들은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반드시 불자가 아니더라도 널리 대중화된 불교 테마 노래 한두 곡쯤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노랫말과 곡조에 반영된 효과를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불교 테마 노래들은 그 수가 적지 않다. 전국의 명찰(名刹)들을 가요작품 테마로 다룬 노래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작품들은 해당 지역사회와 사찰들의 안내와 홍보를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의 민족사에서 불교 테마 노래의 등장은 일찍이 신라시대 향가의 출현부터 그 기원을 찾아서 더듬어야 한다. 고려가요와 조선왕조의 민요, 시조, 및 각종 구비문학 작품들을 거쳐 다채로운 현대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갖은 고난과 영욕의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켜온 한국의 민족종교인 불교의 전통과 더불어 다양한 불교 테마 노래들은 앞으로도 계속 높은 수준과 고유의 품격을 갖춘 형태로 그 전통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

 

이동순
dslee50@hanmail.net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1973), 문학평론(1989) 당선.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독도의 푸른 밤〉 등 19권, 민족서사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 발간. 분단 이후 매몰시인 백석의 시 작품을 발굴 정리하여 최초로 《백석시전집》(1987)을 발간, 시인을 민족문학사에 복원시켰다.신동엽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현재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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