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정치학에 새 디딤돌을 놓다

저 위에서부터 서민들에게까지 한국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 정치학을 전공으로 하는 정규직 교수들은 별로 없다. 한국 학계가 원래 서양의 수입오퍼상 구실을 하는 데다가 더하여,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유럽의 학문이 미국의 그것에 밀려 빠른 속도로 주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치학계는 미국의 식민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사상과 기독교와 관련해서는 무수한 정치학 저술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불교의 정치학은 일천하였다.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마키야벨리, 칸트,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 니체에서 들뢰즈와 푸코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거의 모든 철학은 정치사상으로 정립되거나 정치학 이론으로 응용되면서 정치학에서 굳건한 위상을 차지한다. 반면에, 불교는 정치학의 무진장한 곳간임에도 관심 밖이었다. 연기, 무아, 중도, 공, 불성론 등의 교리가 정치학으로 응용되거나 정치사상으로 정립될 수 있으며, 초기 경전에서 붓다가 정치에 대해 피력한 부분, 붓다 시대의 붓다와 바라문, 왕권 사이의 관계와 역사, 인도와 동아시아에서 불교와 왕권/근대 권력과의 관계와 역사, 동아시아의 호국불교와 근대 이후의 정교유착과 황도불교, 티베트, 캄보디아, 라오스, 부탄,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 불교 국가들의 근대화와 민주화에 대한 도전과 경험이 모두 불교 정치학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씨앗들이다. 그럼에도 불교의 정치학적 연구는 미미하였다. 

그런 중에도 기독교권에서 오히려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리처드 가드가 《불교 정치사상: 참고문헌(Buddhist Political Thought: Bibliography》(1952)과 《불교 정치사상: 사회에서 불교의 연구(Bu-ddhist Political Thought: A Study of Buddhism in Society)》(1956)로 선편을 잡은 이래, 피터 파듀의 《불교: 아시아인이 취하는 불교 가치와 사회적/정치적 형식에 대한 개론(Buddhism: A Histori-cal Introduction to Buddhist Values and the Social and Political Forms They Have Assumed in Asia)》(1971), 히로코 카와나미의 《불교와 정치적 과정(Buddhism and the Political Proce-ss)》(2016), 매튜 무어의 《불교와 정치이론(Buddhism and Political Theory)》(2016), 윌리엄 롱의 《탄트라 불교국가: 부탄의 민주주의와 발전에 대한 불교적 접근(Tantric State: A Buddhist Approach to Demo-cracy and Development in Bhutan)》(2018) 등의 의미 있는 저서가 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정치학의 연구는 더욱 일천하였다. 나카무라 하지메의 《불교 정치사회학》(1993)이 차차석의 번역으로 소개된 이래 피야세나 딧사나야케의 《불교의 정치철학》(정승석 역, 1987)이 발간되어 기갈은 면하였지만, 한국 학자에 의한 연구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하였다. 곽승훈이 《통일신라 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2002), 이정주가 《성리학 수용기 불교비판과 정치》(2007)를 펴내어 목을 축여 주었지만, 중세 한국불교 역사나 정치에 대한 분석이었기에 이론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불교 정치학에서 괄목할 만한 저서인 매튜 무어의 《불교, 정치를 말하다》(박병기/이철훈 역, 2020, Buddhism and Political Theory의 번역)가 번역되어 발간되었고, 방영준은 《붓다의 정치철학 탐구》(2020)를 상재하였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우선 이 책은 저자를 쏙 빼닮았다. 저자 방영준✽교수는 한국전쟁 시기 소년의 감수성으로 처음 불법을 접한 후에 대학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교수직을 수행할 때도, 은퇴한 이후에도 평생 부처님 제자로 살았다. 《아나키즘의 정의론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논문을 쓴 이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으며 그를 실현할 방안으로 서양의 진보 이론과 불교의 대화를 모색했다. 《불교평론》의 ‘열린 논단’에서는 열띠게 논쟁하기보다는 점잖게 앉아 있다가 중요한 한마디를 던진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은 채 불편부당함을 취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여 송곳은 빼고 대신 유머를 담는다. 뒤풀이의 건배사는 짧으면서도 명쾌하고 위트가 있다. 이 책 또한 불교의 연기, 중도, 자비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여러 관점을 망라하며,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모든 중생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서양의 여러 이론과 불교와 대화한다.

이 책의 첫째 미덕은 연기, 중도, 자비 등 붓다의 다르마로 자유, 평등, 정의 등 정치철학의 과제들을 잘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기적 세계관으로 현실을 읽으며 서양의 정치철학이 범한 실체론적 오류를 파하며 대자유론을 펼친다. 중도의 자세로 어느 한 편에 기울지 않고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론을 빌려와서 불교 정의론의 체계를 세운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과 공동선의 목적을 결합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자비의 공동체를 모색한다.

둘째, 이 책은 기능적으로 정치학을 설파하거나 서양과 불교를 비교하는 것을 지양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의 구현이란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향한 길 찾기를 하고 있다. 셋째, 이 책은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독서를 바탕으로 관련된 지식을 끌어모아 핵심을 불편부당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 그 관점이나 이론의 핵심,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넷째, ‘현실에 대한 상황규정’ ‘지향가치와 이상사회’ ‘실천 방법과 전략’ 등 세 차원에서 불교 교리를 서양 정치이론과 비교하며 불교의 자유론과 정의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팔정도를 ‘개인 윤리적 차원’ ‘사회 윤리적 차원’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며 붓다의 이상사회를 모색하고 있다. 

다섯째,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공동체주의, 페미니즘, 녹색주의, 아나키즘 등 10가지의 현대 정치이념을 연기와 중도의 지혜로 분석하여 각 정치이념의 한계나 오류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섯째, 이 책은 서양이론과 불교의 접점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전륜성왕의 꿈을 꾸며 ‘민주적 정의 공동체 지향’ ‘이념적 화쟁과 통일 미래상의 좌표 제시’ ‘불평등 문제와 자비 공동체 구현’ 등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이런 미덕을 안고서 붓다의 연기법, 중도, 자비가 현대 정치의 장에서 구현되는 길을 내고 있다. 이 책은 불교 정치학의 척박한 토양에 핀 한 송이 유일한 꽃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이 책은 불교 정치학 개론서로서는 훌륭하지만, 본격적인 학술서로서는 치열한 논증 과정이 부족하다. 정치란 현실과 이념/이상 사이의 괴리를 구체적으로 메우는 종합예술이자 운동이다. 때문에 현실과 그에 내포된 모순을 분석하고 그 원인에 맞추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론에서도 쟁점이나 아포리아(aporia)를 제시하고 치밀한 논증을 통해 변증법적 종합을 이루거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불교의 정치학을 정립하는 것도 ①경전에서 이에 해당하는 텍스트의 고증과 해석, ②이의 서양이론과 비교, ③종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 

둘째, 공통점의 제시에 그치는 비교는 자칫하면 은유의 유희로 머물 수 있다. 차이도 드러내면서 양자의 융합도 모색하는 것이 논의를 한 단계 상승시킬 것이다. 셋째, 저자가 지향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는 좀 더 튼실한 논거가 뒷받침될 때 설득력을 더 가질 것이다. 예를 들어, 162쪽에서 공유지의 비극론을 사실로 인정하며 상생의 윤리관 정립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데, 엘리노어 오스트럼(Elinor Ostrom)이 여러 공동체를 조사하여 밝힌 대로, 개렛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은 신화/이데올로기다. 오스트럼은 공유지의 비극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공유지의 희극론을 폈고, 그는 이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그는 여러 공동체를 조사하고 분석한 끝에 무임승차로 이기적 탐욕을 추구하는 자에 의해 공유사회가 파괴된다는 개렛 하딘의 추정과 달리 개인이 사리사욕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더 앞세우며, 각자의 당면 상황보다 공유자원의 장기 보존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공동체를 보면, 구성원 스스로 거의 대다수가 서로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 관계에서는 ‘숨을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 친구의 신뢰를 저버린다는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규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에 공유자원의 경계가 확실할수록,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유자원에 의존할수록 공동체가 소규모이고 안정적이고, 두터운 네트워크를 가질수록, 적당한 규칙이 있을수록 공유자원은 잘 관리되었다(Elinor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이 책은 노학자의 삶과 꿈과 지혜가 온축된 불교 정치학의 교과서다. 논증 부족 등의 단점에도 이 책이 한국 불교 정치학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에 이런 좋은 책을 출간한 것에 대해 후학으로서 경의를 표한다. ■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한양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문학과 경계》 주간 등 역임.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시가학회,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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