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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가 건네준 미소 / 이기린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이기린 대건효도요양병원 제1진료과장

20년 전쯤 한 불교도 단체가, 달라이 라마가 집전하는 법회에 동참하는 행사를 기획하여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행을 추진하였다. 행사의 공식 촬영을 저명한 사진가 육명심 교수가 요청받았고, 나는 편승할 행운을 얻었다. 다람살라 촬영 여행은 정말이지 가슴 뛰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이전부터 사후세계나 영혼에 관한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이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하곤 하였다. 티베트불교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그리고 쌍벽을 이루는 린포체의 저서에 반신반의하였으므로, 신비주의에 침잠함을 경계하면서도 티베트문화와 정신에 대한 사진 창작의 시간과,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뉴델리를 떠나 밤을 새우며 열두어 시간 북북동진하였다. 기우뚱대며 덜컹거리는 초만원 버스에 쪼그려 박힌 고생도, 가슴에 안은 배낭 아래 무릎뼈가 의자 기둥에 비벼대는 아픔도 참을 만하였다. 그냥 좋았다. 밤이 지나고 평화로운 아침 햇살이 다람살라 고원지대를 적실 때, 구시가지는 적요하였다.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에 고관들의 휴양지로 손색없었음을 잘 보여주었다. 반 시간 정도 더 오르자 숲 지대에 달라이 라마 궁 건물, 사원과 인도 정부가 용인하는 티베트 마을이 함께 어울려 숨 쉬고 있었다. 

법회 날 아침 사진기 보안검열도 받았다. 사원과 법회장 주변은 온통 엎드린 수백여 명의 신도 무리로 가득 찼다. 이마를 땅에 대고 두 손바닥을 합장하여 댕기머리에 올려세운 채 ‘환생한 라마’ ‘살아 있는 부처’를 기다리는 백성들……

법당 입구에서 우리 일행만은 카메라 들고 서서 도열하듯 대기하는 중이었는데, 은근히 자리를 다투는 사진가들을 보다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실력 가지고서 ‘걸작 사진’ 건지려 무리하지 말고, 그 욕구 자리에 ‘그’를 초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기를 접었다. 드디어 달라이 라마가 진입했다. 내내 허리를 깊이 굽히고 좌우의 신도들에게 축복을 빌어주며 천천히 다가왔다. 찰칵거리는 사진가들 앞도 그냥 숙인 채 지나쳐가는 듯하였다. 붉은 법복 주름이 흐르는 강인한 맨살의 어깨를 내려보며 저기엔 얼마큼이나 이승의 짐 무게가 얹혔을까 그려 보며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그가 문득 내 발을 보더니, 고개를 외로 꼬아 들며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눈길이 마주쳤다. 나는 이내 합장하였다. 그때, 그의 씨익 웃는 미소가 내 눈에 들어왔고 어떤 메시지를 울리며 다시 파동칠 때, 그는 머리를 돌리면서 지나갔다. 그 메시지는 말하는 것 같았다.

“음, 자네 드디어 왔구먼. 그래, 올 법하긴 했어도…… 자네는 참.” 

“영혼, 환생, 내세…… 무어 그리 집착할 거 없네. 운명이나 업보 혹은 신의 섭리에 밀려서 지금에 이르렀다 해도, 지난날은 그만 따지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은 지조를 세우고 잘 마감하도록 하게.”

환청인 듯 남더니 또 공명했다. 그 직후 나는 설법장 가는 행렬을 따르지 않고 서서 그의 뒷모습만 좇았다. 어리석어 딱하다는 듯한 미묘한 웃음의 의미를 되새길 때 이런 당부도 받는 듯했다.

“이제 구도자 행세하며 방황하는 것도 쉬고, 마음에 맡겨서 물 흐르듯 살지그래……”

이 잠시간의 파동은 내 생각이 투영된 현상일 수 있겠고, 또 그가 내게 꽂은 미소도 누구에게나 줄 수 있다. 그러하더라도, 여러 걸음을 몸을 숙이고 오던 그가 하필 내 앞에 멈추어 서서, 나의 발과 다리를 지나 내 눈을 쓰윽 쳐다보고 잠깐 응시하고, 씨익 웃고 돌아선 그때 그 찰나에 미묘한 메시지를 전해준 것은 확실하였다. 하여간 나는 곧바로 좀 행복해졌다.

그 시절 몇해 동안 나는 가족의 심각한 문제를 만나서 고뇌가 깊었고, 내 영혼은 많이 방황했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멀어지며 지냈고, ‘나’를 찾는 갈증은 심했다. 

그런데 이날 어떤 지표가 보이는 듯 가닥이 잡혔고, 다음날 더 남쪽의 티베트마을 따시종에서 다져지며 차츰 정서의 안정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우주에 우연은 없다. 그물망으로 연결된 모든 존재가 진동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우연이라 부르는 것은 감추어진 필연의 겉모습이다. ‘기계적 인과론’ 그 이상이다. 순간의 미소라도 그것이 깊은 애정이 담긴 것이면 큰 울림으로 상대를 진동시켜서 그의 미래를 바꾸어 놓고, 아주 오랫동안 동행한다는 것도 나는 알게 되었다.

요양병원. 늦가을 들녘. 버려지고 서리 맞은 머리칼만 삐쭉 내놓고 웅크린 노인들. 그들의 눈길을 가까이서 마주치고, 그리고 자주 미소를 전하려 한다.

‘COVD-19’ 광풍이 부활절 동굴을 막아서려는 계절에도, 치매 노인의 재활을 위한 프로그램 ‘휴머니튜드’를 실천하는 첫 출발점, 거기에 서 보려 한다. 

drkir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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