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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환경운동의 역사와 미래 / 유정길
특집 | 환경재앙,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유정길 ecogil21@naver.com

1. 한국불교의 환경 · 생명운동 단체의 역사

환경운동이 모든 자연과 생명이 평등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운동이라고 할 때, 불교는 이미 태생부터 환경운동을 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살생을 오계의 으뜸으로 하면서 불교의 사상, 전통과 청규, 그리고 모든 수행은 자연을 경외하고 생명을 모시고 살려 온 역사였다. 불교의 일상적인 생명살림의 가르침과 전통이 오늘날 위기 시대에 각별히 사회운동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고도성장기인 1960~70년대에 설립된 ‘자연환경보존협회’ 등 환경단체들로부터 시작된다. 이 단체는 당시 압축적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환경문제를 독재권력의 틈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환경의제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했다. 이후 1980년대 초 민중운동의 일환으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에서 본격적인 반공해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공해의 원인은 주로 독재권력과 그의 비호를 받는 부도덕한 기업, 이들을 지원하는 미국과 일본 등의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보고 그 실태를 폭로하고 저항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인 의제이자 발전과 진보의 관점을 전환하는 문명적 변화의 과제임을 깨닫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가 전 지구적인 과제 해결의 선차성을 강조하며 미소(美蘇) 경쟁을 내려놓고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했을 때였고, 이어 1990년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의 변화와 붕괴를 목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6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던 지구환경회의(UNCED) 이후, 환경문제가 지구적 위기의 문제이자,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이며, 결국 세계관과 가치관 생활양식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공추련도 ‘환경운동연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러한 1990년대의 세계적인 전환기에 자극을 받아 불교의 환경운동도 다음과 같은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 정토회 에코붓다

조직적 불교의 환경운동의 출발은 정토회 ‘에코붓다’의 전신인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다. 이미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1988년부터 민족불교학당, 민족여성학교등 사회교육운동을 전개하다가, 1990년 사회주의 붕괴가 전 지구적인 과제로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됨을 주목하면서 91년부터 명칭을 변경하고 환경 · 생명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일반 사회운동가들과 환경운동가들에게 생태적 각성과 환경 인식을 위한 교육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며 불교 환경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실제 한국불교환경교육원과 한살림, 정농회, 녹색평론으로 대표되는 생태주의나 생명운동 그룹은 환경문제가 단순히 부도덕한 정권과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이며 대단위의 변화를 요구하는 문명적 패러다임의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나아가서 경제적 성장, 물질적 풍요의 추구가 발전이며 진보로 인식하고, 무한정한 자원채취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잘못된 근대적인 가치에 대해 총체적인 전환(Paradigm Shift)의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불교환경교육원은 환경문제를 전 지구적인 문명사적 전환과 생활양식의 전환을 위한 행동으로 인식하고 생태주의와 공동체를 비롯한 생태적 대안사회운동, 생명운동 이념 확산, 환경단체 간의 네트워크와 대중 및 전문가를 위한 환경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1999년 ‘에코붓다’로 이름을 바꿔 ‘쓰레기 제로 운동’ ‘빈 그릇 운동’으로 대표되는 생태적 대안적 생활양식 실천조직으로 전환하여 활동해왔다. 그래서 2011년 빈 그릇 운동은 160만 명의 서약을 이룬 한국사회 최고의 환경캠페인으로 평가되는 활동을 전개했고, 지금은 전국 정토회원을 대상으로 한 대안적인 생태적 삶과 생활 실천에 집중하고 있다. 

2) 공해추방불교인모임, 두레생태기행, 사찰생태연구소 

월주 스님을 중심으로 1992년 2월 29일 ‘청정국토 만들기 국민운동본부’의 전신인 공해추방불교인모임이 출범하였다. 그리고 1994년 1월에 법정 스님이 이끄는 ‘맑고 향기롭게’가 대대적인 사회적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김재일 대표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두레문화기행이 1994년 9월 25일 두레생태기행을 만들어 본격적인 에코투어리즘에 기초한 답사와 활동을 전개해왔고, 이후 2002년 3월 16일에는 별도의 사찰생태연구소를 만들어 불교와 사찰의 환경문화와 생태적 전통을 본격적으로 발굴 연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후 ‘불교환경의제21’이나 기타 사찰 환경을 보존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리고 1995년 3월 17일 경불련 환경모임이 창립되어 해인사 골프장 반대운동이나 북한산 관통도로, 지리산댐건설 반대운동 등에 적극적인 실무지도 세력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는 선우’의 박광서 교수와 김재일이 중심이 되어 경부고속철도 경주 도시 관통을 반대하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 불교 환경 기구들은 2000년을 전후하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나 ‘불교환경연대’ 등 단체가 출범할 때도 항상 함께 협력하여 단체를 만드는 산파 역할의 전통을 세웠고, 1995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함께 모여 조계사 마당과 인근에서 제1회 청정국토한마당 행사를 이틀간 진행했다. 이는 한국불교 내에서 최초의 환경 연합행사이자, 최초의 ‘환경의 날’ 행사였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제2회 청정국토한마당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10월 14일 불교자원봉사연합회가 주관 주체가 되어 박광서, 김재일, 유정길 등 불교 내 주요 지도자들이 3, 4개월 동안 환경생태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토론을 진행하여, 이후 활동의 기반을 만들어갔다. 

3) 조계종 환경위원회

가야산 해인사 근처에 골프장 건설 이후 종단 내에서 국립공원의 무분별한 산림개발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1996년 12월 13일 ‘불교지도자 환경워크숍’을 해인사에서 실시하여 본격적인 불교 내 환경운동의 동력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산하에 20여 명의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사찰환경보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그러다 이후 2000년 7월 13일 ‘조계종 환경위원회’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환경위원회는 무분별한 개발 사안에 대해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종단의 무게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또한 3년간 준비 끝에 ‘불교환경의제21’을 2006년 9월 27일 조계사에서 발표했다. 의제21은 환경친화적인 생활과 수행, 생태사찰 만들기, 수행환경 지키기, 사찰과 지역공동체 등 5개 분야의 실천 행동계획이며 사찰별, 단체별, 개인별 실천 지침들이 체계 있게 만들어진 통합적 환경 행동계획이고 약속 문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실행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동력을 만들지 못해 의미 있는 행동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문서작업에 그치고 말았다. 

조계종 환경위원회는 중요한 기구임에도 종단 지도부의 지원과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데다가, 실무력이 안정되지 못하고 지속적인 축적이 단절되어 환경의제에 주동적인 활동보다는 종단의 이해와 관련된 활동으로 제한되고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종단의 역할이 중요한 이때, 집중적인 관심과 선제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4) 인드라망생명공동체 

1998년부터 위에 언급한 여러 단체들(한국불교환경교육원, 우리는 선우, 경불련)은 함께 힘을 모아 불교귀농학교를 진행해온 ‘불교도농공동체운동본부’를 만들었고 이 조직은 준비위를 거쳐 1999년 9월 11일 ‘인드라망생명공동체’로 이름을 바꾸어 창립되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내부에 인드라망 생협을 결성하여 봉은사, 조계사, 능인선원, 영화사와 수원포교당 등에 매장을 두고 불교생협운동을 전개했고, 동시에 서울에서는 불교귀농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실상사를 근본 도량으로 하여 인드라망 지리산교육원과 실상사 장기귀농학교를 비롯하여 자연의학교실 등을 운영하였다. 이후 사단법인 한생명을 설립하여 생산자의 지역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을 뿐 아니라, 실상사 작은학교라는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지리산의 산내면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지역공동체의 중요한 전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2001년 5월 26일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우익 희생자와 뭇생명 해원상생을 위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봉행한 뒤, 이후 지리산 중심의 단체들과 함께 2003년 11월 15일 ‘생명평화결사’를 발족하여 생명평화탁발순례와 생명평화학교, 생명평화대회를 개최해왔다. 생명평화탁발순례는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2007년 12월까지 전국을 순례하며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평화의 등불을 모으며 빛을 밝히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5) 불교환경연대 

정부의 지리산댐 건설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2000년 6월 29일 ‘지리산 살리기 댐 백지화 추진 범불교연대’가 창립되었고, 이어 8월 30일에는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만들어졌다. 또한 이 단체는 지리산을 지키고 댐 개발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10월 23일부터 11월 18일까지 낙동강 1300리 도보 순례를 추진하였다. 많은 노력을 통해 결국 지리산댐 개발을 백지화시킨 뒤, 그 여세에 힘입어 2001년 9월 앞의 여러 불교단체가 준비위원회가 되어 ‘불교환경연대’를 발족하였다.

불교환경연대는 이후 북한산 관통 도로 건설을 저지하는 ‘북한산살리기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상임대표인 수경 스님이 중심이 되어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통해 환경운동의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 또한 내원사 산감으로 계셨던 지율 스님은 경부고속철 공사로 인해 파괴되는 금정산과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도롱뇽 소송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7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저지하는 오체투지 행진에 이어 4대강개발 저지를 위해 행동해 왔고, 불교를 비롯한 제 종교단체와 사회단체, 교수와 전문가들을 망라하여 해외에서까지 5년여에 걸쳐 환경운동을 해왔다. 당시 수경 스님과 불교환경연대의 활동은 한국사회 환경운동의 중심을 이뤘을 뿐 아니라 노동자 · 농민 운동, 인권운동 등, 사회적 이슈에 수경 스님과 도법 스님이 참여하지 않으면 중심적 의제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2010년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오체투지 삼보일배로 쇠약해진 수경 스님의 칩거로 인해 불교환경연대의 동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다 2016년 재활성화특별위원회가 결성되어 100일간 4대강을 순례한 뒤 7월 15일 법일 스님을 상임대표로 조직을 재정비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광주전남지부는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활력적인 활동을 지속해왔다. 새롭게 조직 정비와 사무실 이전, 재정안정화를 도모하면서 불교 환경실천의 저변확대를 위해 ‘녹색사찰 만들기 운동’과 실천네트워크를 만들고, 대안적 방생으로 버드나무 심기, 숲 지도자 교육과 전국적 조직결성 및 다양한 교육사업, 탈핵과 4대강 복원, 기후변화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활기차게 전개하고 있다. 

6)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와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2013년 설립된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는 작가이자 활동가인 최원형 소장이 중심이 되어 불교 내 다양한 교육사업과 교재제작 배포와 실천 사업을 전개해왔다. 특히 스님들과 신도들을 위한 교육활동을 통해 불교 내 환경 인식을 높이는 많은 일을 해왔다. 

국제개발협력 불교 NGO 단체인 로터스월드의 사무국장이었던 민정희 사무총장의 실무 지도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 Network)’는 개발협력과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 활동을 기반으로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종교가 연대하여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 주민들의 대안농업과 농업 지원, 지역공동체 역량 강화, 생태계 보전 활동, 마을숲 지원 활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후변화 교육과 대응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생태사원(교회) 프로젝트를 통해 사찰 자체를 환경친화적으로 조성하고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협력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2. 불교 환경 · 생명운동의 활동 역사

앞에서 소개한 단체들은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응하면서 불교의 환경운동을 발전시켜왔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활동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1) 해인사 골프장 개발과 사찰 수행환경 보존 

불교가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선두를 기록한 사건은 해인사 골프장 개발이었다. 1990년 4월 11일 건설부는 국립공원 계획변경 결정 고시로 인해 가야산 국립공원 내 골프장을 승인했다. 국립공원 가야산에 추진하려는 이 해인사 골프장 개발계획은 환경단체로부터 시작하여 지역주민들, 해인사 강원 스님들의 치열한 반대에 부딪혔다. 전국 강원 스님들의 다양한 시위와 저항, 전국적인 승려대회 개최 등, 치열한 반대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해인사 방장 스님을 필두로 삼직 스님들이 사퇴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문체부 장관에게 제 결정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벌여 마침내 개발을 취소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은 불교의 환경운동에서 가장 폭넓게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운동이었으며, 1996년 11월 조계사에서 전국 본말사주지 결의대회를 개최하여 불교의 환경 의지를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인사 골프장 반대운동은 이후 일반 환경단체들 내에서 불교가 참여한 환경운동은 반드시 이긴다는 전례를 만들었고, 실제 불교의 노력과 지역 운동과 사회운동이 결합된 모범적인 활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외에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각 지자체의 개발붐으로 불교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전국 강원 스님들과 함께 시위와 저항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여 다양한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2) 고속전철 경주통과 저지 운동

1995년 하반기부터 제기된 고속전철 경주통과 반대운동은 경주시민을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경주 내 중소 자본가들이 고속전철 유치를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우리는 선우’ ‘한국불교재가회의’의 박광서 교수와 경불련, 불교환경교육원 등의 반대운동과 경실련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의 치열한 투쟁으로 결국 1996년 도심 통과를 철회시키고 경주 우회 노선을 확정하도록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경제성장과 문화보존, 지역개발과 환경보존 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도록 결정을 이끌어낸 소중한 전례였다. 이즈음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해인사 장경각, 종묘와 함께 석굴암과 불국사가 선정되어 문화유산 보존 세력의 힘을 더해주었다.

3) 지리산 댐 건설 반대 운동

수자원공사는 부산의 홍수조절과 용수공급을 위해 1997년 지리산 함양에 문정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리산열린연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운동을 시작했고, 급기야 실상사를 중심으로 범불교 시민단체들과 ‘지리산 살리기 댐 백지화 추진 범불교연대’가 2000년 6월 29일 만들어졌다. 실상사 앞 해탈교까지 수몰될 예정이었던 이 계획은 실상사에서 수행하던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해인사 골프장과 관통도로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현응 스님과 일반 환경단체까지도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 결성에 함께 참여하여 집중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결과 2001년 3월 26일, 지역민들이 반대하는 공사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건교부의 결정을 끌어냈다. 

이 운동의 여세를 몰아 2001년 5월 26일, 7대 종단 190여 단체를 중심으로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6 · 25 당시 좌우익의 이념 갈등으로 희생된 빨치산과 국방군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를 개최하였다. 이는 이후 ‘생명평화결사’라는 새로운 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이 운동은 지리산 댐 건설 반대에 멈추지 않고 지리산을 보존하고, 분쟁과 갈등의 상징이었던 지리산을 화해와 평화운동의 진원지로 승화시켰고, 저항운동이 가치지향 운동으로 발전적으로 전화된 중요한 사례이다. 

이 운동은 불교 환경운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불교계가 주도적으로 이슈 개발과 주된 실무력을 동원하여 전체 국면을 이끌고, 건설이 확정되기 전에 강력하고 발 빠른 대응으로 성과를 거두었고, 도법 스님, 수경 스님과 현응 스님 등 불교 내 환경운동의 새로운 지도력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불교환경연대를 창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4)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를 위한 운동

수락산과 국립공원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뚫겠다는 한국도로공사의 개발계획을 반대하기 위하여 2001년 9월 26일 조계종과 불교단체들로 구성된 대책협의회가 결성되어 관통도로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북한산 일대 사찰의 주지 스님들, 조계종과 환경단체들이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저지를 위해 노력해 왔고 결국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의원에게 관통도로 계획을 백지화한다는 공약을 이끌어내었다. 

이 사건은 지리산 댐 반대운동과 마찬가지로 불교 내부적으로는 생명과 환경을 새로운 화두로 이끌어냈고, 환경운동에서는 불교의 역할과 비중을 다시금 높이게 된 사건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불교계는 공약을 지킬 것을 목소리를 높여 외쳤지만, 노 대통령과 불교계 종정 스님의 만남 이후 그동안 함께했던 시민단체와 사부대중과의 논의 없이 공약이 흐지부지되는 바람에 일반 단체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불교가 중심이 되어 사찰과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인 행동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5) 새만금을 지키는 생명참회, 삼보일배

새만금간척사업은 1987년 군사정권 시절에 전북도민의 농업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34km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갯벌을 매워 총 4만2천 헥타르(ha)의 간척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시화호 간척지의 2.4배에 해당하는 방대한 규모의 공사였다. 이 공사는 1991년 착공되었다. 갯벌은 농업보다 더 많은 경제적인 이익을 어민들에게 주어온 산업이었으며, 그곳에 사는 수많은 어패류와 철새 등 뭇 생명의 삶의 터전이 되어 왔다. 따라서 이 간척사업으로 그곳에 사는 어민들과 생명들의 터전이 파괴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많은 환경사회단체는 시화호처럼 수질이 오염되고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는 잘못된 개발임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전개해왔다.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2003년 3월 28일부터 65일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800리(320km)를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이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하는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 고행을 시작했다. 본래 삼보일배는 생명에 대한 참회와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 의식이었다. 그래서 문규현 신부는 “내 안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분노를 씻어내기 위하여, 자연을 파괴해온 죄인 명부에 바로 나 자신이 있음을 참회하며, 그리고 온 세상과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를 기원하면서” 삼보일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새만금간척사업은 결국 오랜 논란과 법정투쟁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하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새만금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운동과 생명을 위한 참회의 삼보일배는 그 자체로 커다란 감동과 반향을 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운동 방법과 철학, 시위문화에 새로운 장을 연 사건이자, 한국의 환경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삼보일배가 참회와 수행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시위용으로 오 · 남용되곤 하지만, 새만금을 지키기 위한 삼보일배 고행은 환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비폭력 평화행동의 전설이 된 사건이었다. 

6) 지율 스님의 천성산 도룡뇽 소송

서울과 부산 경부고속철도 구간 중 13공구에 시행될 예정이었던 원효터널 공사(13.5km)는 천성산을 관통하게 되어, 환경단체와 천성산 내원사의 지율 스님 등이 반대운동을 통해 논란에 불이 붙었다. 특히 지율 스님의 도룡뇽 소송은 고속철도 관통도로로 인해 파괴되어 사라질 천성산의 수많은 생명을 대신하여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 특이한 법정소송사건이었다.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2003년 10월 공사 착공 금지신청을 내면서 반대운동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은 2004년 11월 29일 부산고등법원에서 기각돼 일단 환경단체의 패소로 일단락이 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2001년 국토순례를 시작으로 2002년 7월 삼보일배, 2003년 두 차례 단식(38일, 45일)에 이어 부산시청 앞에서 8월 한 달 동안 매일 3천 배를 했다. 이어서 부산역~천성산 화엄벌 구간에 걸쳐 다시 삼보일배를 하면서 끈질긴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스님은 2004년 영산 개곡마을에 있는 천성산 터널공사 현장에서 100일간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 유치장에 수감되기도 했고, 2004년 6~8월 58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에게 공약을 지킬 것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되었다. 이에 스님은 4번째 청와대 앞 단식농성과 이후 100일이 넘는 초인적인 단식에 돌입했다. 거처를 정토회로 옮겨 100일을 넘겨 단식하면서 결국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을 이끌어냈다. 

수경 스님의 새만금 삼보일배가 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자기수행적 인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생태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면, 지율 스님의 활동은 관통도로노선의 대안을 요구하는 개발자들을 향해 ‘생명에 대안은 없다’는 유명한 말로 생명에 대한 모성적 감수성으로 생태적 각성을 촉구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7) 4대강 개발 저지 운동과 평화의 대장정 오체투지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하여 그의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계획은 광우병 문제와 함께 촛불시위의 중심적인 이슈가 되었고, 끈질긴 환경운동의 압력에 굴복하여 2008년 6월 한반도 대운하를 폐기하겠다는 선언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2월 ‘녹색성장’을 주된 정책 슬로건으로 다시 4대강 하천 정비계획을 발표하였다. 한반도 대운하에 비해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결국 똑같은 4대강 개발 구상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개발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광대한 지역을 불과 3개월 만에 환경영향평가와 생태계 조사를 졸속으로 마쳤고, 문화재 지표조사조차 형식적으로 행해졌다. 결국 정부가 국가재정법, 환경영향평가법 및 문화재보호법, 하천법, 건설기술관리법 등을 위반하면서 공사를 강행한 불법적 개발이었다. 이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의 종교계와 시민 · 환경단체들은 격렬한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4대강 개발공사로 상징되는 개발과 파괴, 생명의 죽음과 약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또 한 번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 하악단을 출발하여 10월 26일까지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까지 1차 오체투지가 진행되었고, 2차로는 2009년 3월 28일부터 다시 충남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출발하여 6월 6일 임진각 망배단까지 1, 2차 모두 총 124일을 동안 하루 약 4km씩 총 400여km를 오체투지를 하며 행진하였다. 하루 평균 50여 명, 출발 · 회향 행사 포함하여 10,000여 명이 대장정에 동참하였다. 

불교는 지속적으로 시민 · 환경 사회단체들과 함께 4대강 개발사업 저지를 위한 방생법회와 기도회 등을 전개했다. 2010년 3월 13일에 여주 신륵사 근처에 여강선원을 개원하여 매주 수륙제를 펼쳐, 참여한 전국 사찰의 스님과 신도들이 4대강으로 인한 생명 살상의 실태를 공감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5월 25일에는 조계사에 서울선원을 세우고 그곳을 거점으로 도심 내에서 지속적인 농성과 국민적 교육 · 홍보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촛불시위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수경 스님의 요청으로 불교환경연대가 주최하여 박경준 교수를 대표로 불교와 사회단체 및 학계의 50여 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4개월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2010년 3월 4일 ‘4대강 개발 다른 대안은 없는가’를 주제로 반대만이 아니라 모두 동의할 대안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4대강 개발 저지 운동은 촛불시위를 촉발하여, 단일 사안으로서는 종교 간, 시민단체 간,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연대 활동을 전개하면서 다양한 계층과 진영이 참여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국민소송과 기도회, 오체투지, 미사, 수륙대제, 고공농성, 지방자치 선거를 통한 압박, 독일 등 유럽과 미국 등과의 연대활동 등, 2007년부터 약 5년간 단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4대강 개발사업을 재임 중 최대의 성과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부의 강행에 오랫동안 대응하면서 운동단체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또한 수경 스님의 은거로 인해 시민사회운동과 환경운동, 불교운동 참여자들은 스님에게 너무도 과도한 비중과 책임을 지우고 의존해 왔다는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이 토목공사는 난개발과 반환경적 토건 세력의 커다란 상징이 되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부분적인 보 개방을 통해 서서히 철거하여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불교환경연대는 그 일환으로 버드나무 심기 방생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8) 불교생태주의 사상과 학술운동

북한산 관통터널 반대운동과 새만금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 불교가 환경문제에 주도적인 활동을 하면서 생태문제와 관련하여 불교사상과 이념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높아졌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는 교학에 근거하여 불교생태학의 이념적 발전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2004년 100주년을 맞아 동국대 홍기삼 총장이 중심이 되어 대학의 전략적 특성화 분야를 불교생태학의 연구발전으로 표방하고, 불교생태학의 연구 저변 확대와 생태 · 환경과 관련된 보다 심도 있고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환으로 동국대 불교학과 박경준 교수를 중심으로 ‘에코포럼’을 만들어 학제간 국제교류와 사회운동과의 간학문적 연구를 추진하게 되었다. 고건 전 국무총리, 권태준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홍기삼 동국대 총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아 2004년부터 매월 1회 정례 포럼을 갖고 불교생태학 이론과 생태환경 기술정책의 연구 발표와 토론, 학제적 연구와 협동교육을 실시했다. 이 포럼은 문화소통의 기반조성, 관련 분야 간 협동연구 수행을 위한 네트워크 형성, 시민사회 및 종교계의 실천운동을 위한 개방적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2009년까지 개최되었다. 특히 ‘DMZ 생태평화’와 ‘지식기반사회와 불교생태학’ 등 여러 차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불교생태학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집약하는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를 여러 권의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동국대학교가 불교생태학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특성화를 시도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고 동국대의 비전에 아주 적확한 방향 설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총장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의 열정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총장이 바뀐 뒤에는 이 의제를 지속하지 못했다. 당시 한창 환경운동을 주도해온 불교환경운동의 풍부한 경험적 성과와 연구 소재를 적극적으로 결합, 활용하거나 이념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했으며, 불교생태주의 이론과 논리 개발, 이념적 정리 등의 연구를 심화시키는 일에 미흡했다. 

그럼에도, 이후 불교대학 내에 불교생태학 전공자들이 배출되었고 기존 불교학자들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을 높여 환경운동의 연구 지도세력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동국대학교가 종립학교로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불교생태학과 생명운동 간의 긴밀한 연결을 도모하여 높은 학문적 결과를 이루는 산실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3. 문명전환을 위한 불교 생명운동의 미래

최근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환경파괴, 기후위기의 관심이 높아져 ‘기후비상사태 선언’을 하는 유럽국가들이 늘어나면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박한 이슈가 되었다. 특히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 안에 1.5°C 이상의 기후상승을 막지 않으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어 유엔을 비롯하여 각 국가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제 환경 · 생명운동은 개별 환경 사안에 대해 감시하고 저항하며 대응하는 운동과 더불어 전 지구적인 협력으로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태주의자이자 불교학자인 조애너 메이시(Joanna Macy)는 현재의 위기를 ‘대전환(The Great Turning)’의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위기는 심각하지만 그 거대한 심각성 때문에 오히려 더 큰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대전환은 이제껏 반생명적 산업문명의 지속 불가능한 패러다임을 ‘단절’하고 생명 친화적인 문명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전환 운동이며, 탈근대 운동,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순환 사회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활동이다. 이 대전환의 운동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운동의 방향이 있다. 

첫째로는 지연전술 행동이다. 사회가 더 이상 나빠지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저항하며, 피해자를 보살피고 생명이 파괴되거나 죽지 않도록 착취와 전쟁, 불평등을 막고 방어하는 행동 전술이다. 대체로 환경파괴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운동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두 번째는 가치실현 행동이다. 생태적 가치를 실현하는 행동 전술이다. 왜곡되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 세워 평등과 호혜의 원칙과 정의를 이루고 균형을 만드는 생명 사회운동이다. 자급과 자립을 중심으로 한 농업문화를 근간으로 소욕지족의 삶과 공동체적 사회관계를 중심으로 세워 생명 중심의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전환사회 행동이다. 이제까지 없던 대안적 생활양식과 생태적 패러다임에 근거한 다양한 운동이다. 명상, 수행, 공동체 운동, 미니멀라이프 운동, 귀농 운동, 마을 운동 등 사고와 의식을 전환하며 우리가 원하는 비전과 대안사회, 전환의 가치를 직접 만들고 창조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대전환 시대에 사회변화 운동은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성찰과 수행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 실천 속에서 ‘개별적 자아’에서 ‘관계적 자아’로, 나아가 ‘생태적 자아’에서 궁극에는 ‘보살적 자아’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위의 3가지 활동은 ‘거대한 사회적 전환’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다른 방법이기 때문에 서로를 격려하고 강화시켜 주며 함께 돕고 협력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원하는 사회 만들기’라는 가치실현과 전환사회 행동이라는 활동을 근본 기조로, ‘저항운동’이라는 지연전술이 안배되어야 한다. 저항 중심의 운동은 대체로 적과 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대상화하고 타격하는 운동으로 집중되곤 한다. 그러나 대안적 주체와 창조적 미래의 방향이 없는 저항운동은 시스템의 파괴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저항성과 적대감에 포섭되어 상대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파괴되어 괴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반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요소를 감시하고 저항하는 운동(Watch Dog)에 주목하는 시민단체도 필요하지만, 미래사회의 대안을 구현해보려는 마을운동, 공동체운동, 공유사회운동, 협동조합운동 등 대안사회 운동이 서로 의존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거대한 전환사회 운동의 멘탈리티는 과거와 같이 고뇌하는 남다른 지사적 비장함만으로 오랜 기간 활동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사랑과 감사라는 연대와 협동의 긍정 에너지가 장기적으로 문명적 변화를 도모하는 동력이 된다 

7. 전환사회를 위한 녹색불교의 의제

① 대중적인 실천과 불교의 녹색화가 필요하다. 

무분별한 개발에 저항하고 핵 마피아들에 대항하는 선도적 운동은 상대적으로 결의가 높은 활동가들의 참여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운동은 대중운동이어야 한다. 신도 대중의 참여로 그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 신도들을 교육하고 참여시켜 주체로 나서도록 만들고, 환경실천과 에너지 전환을 통한 녹색사찰 운동을 실천하여 한국불교의 저변을 녹색화하는 것이다. 교구본사별로 또는 교구가 연합하여 지역별로 환경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찰의 환경실천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공동체적 성과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이제 전문적인 기구 중심의 환경운동에서 벗어나야 하며, 궁극에는 종단과 불교 전체가 녹색적 가치에 수승하는 녹색불교로 전환되어야 한다. 

② 불교사상과 전통에 기반한 대안적 실천의 모색이 필요하다. 

과거 빈그릇운동이나 삼보일배, 오체투지 운동도 불교를 기반한 운동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파장을 만들었듯, 다양한 불교적 실천이 시도되어야 한다. 사찰 숲 지키기 활동이나 수질을 정화하는 버드나무 심기 방생, 철새 먹이 주기 방생 등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상사와 같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마을공동체는 다른 지역의 사찰에서 따라 실천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③ 전 지구적인 활동과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처는 국가를 뛰어넘는 활동이다. 따라서 국제적인 연대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갈수록 세계에서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고 환경문제에서 한국, 중국, 일본은 중요한 협력적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이 이들은 모두 불교가 중심적 종교로 자리 잡은 곳이라 한국불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 NGO의 국제적 활동(Advocacy) 지도력이 약한 편이다. 불교의 국제적인 네트워크 활동은 앞으로 역량 있는 지도력을 중심으로 각별히 키워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④ 불교의 생태주의 사상과 이념의 개발이 필요하다. 

1980년 초, 초기 심층생태주의(Deep Ecology) 논의를 제안하여 강한 충격을 주었던 안 네스(Arne Naess)와 조지 세션(George Ses-sion)은 환경위기의 원인인 인간중심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생명의 평등성을 강조했고, 자연과의 초월적인 교감과 영성적 감수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사회생태론자이자 생태 아나키스트인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1980년대 중반, 사회화를 위한 구상이 없고 영성과 무차별적 생명평등성을 주장하는 심층생태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환경운동의 중심적 동력은 심층생태주의의 메시지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심층생태주의는 그린피스와 어스 퍼스트(Earth First), 시셰퍼드(Sea Shepard), 시에라클럽(Sierra Club) 등 주류 녹색운동의 명확한 사상적 동력이며, 이의 사회화를 위한 노력도 40여 년 가까이 풍성하고 정교하게 발전해왔다.2) 한국의 불교 환경운동은 빛나는 실천적인 족적이 많건만 학문과 사상 등 영역에서 연결되지 못하고 함께 발전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앞으로 불교 아카데미 영역의 큰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⑤ 조직불교가 아니라 담마불교 시대의 실천. 

수직적인 경제성장만이 진보와 발전의 척도라고 주장해 온 근대적 패러다임은 유효성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이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사람들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명확한 것은 더 이상 ‘성장’이 아닌 ‘성숙’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사회로의 전환이다. 풍요가 아니라 공동체적 협력 사회로의 전환이다. 종교는 갈수록 무관심해지며 특히 조직불교(종단)는 침체를 겪게 되겠지만, 담마불교(본래 부처님의 가르침)는 환경위기의 시대에 폭넓게 관심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적 전환의 동력과 방향을 제공하는 담마불교에 조직불교가 얼마나 잘 부응할 것인가가 중요하며, 녹색불교는 이러한 담마불교의 내용을 채워나가야 한다. ■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녹색불교연구소 소장. 주요 저서로 《생태사회와 녹색불교》 등과 공저로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녹색당과 녹색정치》 《생태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서알》 등이 있다. 현재 한살림 연수위원, 모심과살림연구소 감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정토회 에코붓다 이사, 귀농정책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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