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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곤, 철학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선
기획연재 - 현대한국의 불교학자
[80호] 2019년 12월 01일 (일) 신규탁 ananda@yonsei.ac.kr

1. 청송 선생 학문의 선행연구

   

고형곤
(高亨坤, 1906~2004)

계간지 《불교평론》 편집위원으로 봉사하는 서재영 박사로부터 청송(聽松) 고형곤(高亨坤, 1906~2004) 선생에 관한 원고청탁을 받았다. 나는 청송 선생을 뵌 적이 없다. 그렇다고 독일 관념론이나 현상학 분야 글을 써 본 적도 없다. 며칠 말미를 받아 고민하면서 수년 전에 동국대 김종욱 교수가 건네준 《개정 번역판 선(禪)의 세계》(고형곤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를 다시 펼쳐보았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연세대 교수 되던 이듬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연세대 철학과 박영식(朴煐植, 1934~2013) 교수께서 연구실 책장에서 《선의 세계》(고형곤 지음, 태학사, 1971)를 꺼내 보여주면서 읽어보았냐고 물으셨다. 당시 이 책은 한자 원문이 그대로 노출되어, 청송 선생이 선 문헌의 원자료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교수 초년생으로 선 문헌 자료를 많이 읽지 못한 나의 탓이 더 컸을 것이다. 지금 다시 박 교수님을 뵌다면, 하는 아쉬움이 다가온다. 박 교수님은 학부와 석사 때의 은사님으로 지금껏 교수로서의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과 같은 분이다. 선명하고 분석적인 글쓰기와 소탈하신 강의, 그리고 부지런함과 매사에 공들이시던 모습이 오래 남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부 시절부터 영미 철학의 경험주의적 전통과 분석적 사고를 좋아했는데, 연세대 철학과에서는 상대적으로 이쪽 전통이 강했던 것 같다. 서양철학은 오용환 교수님의 과학철학과 문화철학, 이초식(당시 이화여대 교수이시면서 연세대 출강) 교수님의 기호논리학, 그리고 박영식 교수님의 분석철학 수업 등을 특히 선호했다. 박 교수님 수업에서는 알프레드 J. 에이어의 《언어, 논리 그리고 진리》를 ‘페리칸 북’ 시리즈 원서로 강독했다. 2010년 이 분야를 전문하신 송하석 교수께서 한글 번역판을 내서 더 명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면서 각종 자료를 조사했다. 서울대 철학과의 소광희 교수가 쓴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동서양의 철학적 사유에 가교를 놓다》(운주사, 2014)를 읽었다. 글이 아름답고 친절하며, 게다가 면식이 없는 독자들도 청송 선생을 직접 뵙는 듯 실감 나고 구성졌다. 책의 제목처럼, 청송 선생의 생애는 물론 선불교에 관한 철학적 세계를 안내하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명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내가 청탁받은 것은 청송 고형곤 선생에 대한 평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평전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개를 내저을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 이상으로 청송 선생을 알 만한 인물이 지금 시점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은 벌써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청송 선생은 친구와 제자들을 모두 앞세워 보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작업을 떠맡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모든 면에서 선생의 먼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인이다.

이렇게 소광희 교수는 겸손의 말씀을 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역시 청송 선생의 제자이다. 소 교수는 전공하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독일 현대철학을 섭렵하고, 게다가 선불교는 물론 불교철학 전반에 해박한 독서를 겸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위의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의 〈제Ⅰ부 생애〉에서는 해방 전후 한국 철학계의 풍경을 엿볼 수 있어서 좋고, 〈제Ⅱ부 철학〉에서는 청송 선생의 철학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문장이 아름답고 투명한 설명 덕에 넓고 깊은 청송의 철학 세계로 향하려는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 사실 청송 선생과 같은 관념론 철학자의 글 읽기는 나에게는 ‘인내’를 요했다.

그렇지만 왜 나에게 청탁을 했을까? 무엇보다, 청송 선생의 학문 활동에 대한 요즈음 학자들의 연구가 집성되어 있음을 아는 나로서는 의아했다. 《청송의 선과 철학》(운주사, 2011)이 바로 그 연구인데 이 책에는 모두 8명의 전문 학자들이 논문을 실었다.

소광희 교수는 〈청송의 서양철학 연구와 청송철학의 형성〉을 실었는데, 이 논문은 뒷날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동서양의 철학적 사유에 가교를 놓다》(운주사, 2014)의 골격이 된다. 또 동국대의 김종욱 교수는 〈청송선과 현상학적 존재론〉을 실었는데, 김 교수는 동대 학부에서 불교학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비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분이다. 청송 선생의 학풍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경험한 분이다. 또 이화여대의 한자경 교수는 〈청송이 이해한 불교, 그리고 후설과 하이데거〉를 실었다. 한 교수는 칸트철학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동국대에서 유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양쪽의 철학을 겸비한 보기 드문 경력의 소유자이다. 또 박찬국 교수는 〈현대기술 문명에 대한 청송의 사상〉을 실었는데, 청송이 몸담았던 서울대 철학과 현직이고 또 실존철학 등 독일 현대철학의 대가이다. 또 박진영 교수는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로 선 불교 방면은 물론 화엄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연구자이다. 박 교수는 〈바람의 미학: 청송의 선 철학〉을 실었다. 또 서울대 조은수 교수는 〈청송의 선사상과 화엄적 세계관〉을 실었다.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전공한 후 국내에서는 불교사에 등장하는 여성 관련 논문도 쓰는 조 교수는 청송의 《원각경》 인용을 비롯하여 한국불교 전통에 주목하였다. 또 서울대 종교학과의 윤원철 교수는 〈청송과 보조 지눌의 선사상〉을 썼는데, 윤 교수는 종교학 방법의 도입으로 선불교 연구를 풍부하게 하는 분이다. 또 동국대의 김용태 교수는 〈추사와 백파 논쟁에 대한 청송의 이해〉를 실었는데, 김 교수는 보기 드문 조선불교사 연구자로 서울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짜임새 있게 기획된 논문집이다. 위의 필자들은 청송 선생의 모교이자 또 교수로 봉직하셨던 서울대와 이런저런 인연들이 있다. 사실 위의 필자들은 어느 모로 보나 모두 《불교평론》의 본 연재에 글을 쓸 만한 분들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럴 만한 연관들이 있다. 청송 선생에 관련한 글을 발표한 적이 없는 내가 과연 써도 되는가?

연세대 철학과 교수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인가? 연보에 따르면 청송 선생은 1947년 모교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 전, 교수로서 첫 활동을 연희전문에서 시작하는데 1937년부터 1944년까지이다. 또 광복이 되어 연세대학교로 승격되면서 1945~1947년에도 연세대 철학과에 봉직한 바 있다. 초대 철학과 학과장도 지냈다. 한편, 나도 선불교를 연구하고 번역과 논문들을 냈으니, 선생의 선불교 방면에 일정한 견해를 낼 수 있기는 하다. 게다가 제7회 청송학술상을 2014년 수상한 바 있으니 이 또한 인연이다.

결국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결정적 이유는 불교에 대한 나의 관점 탓이 컸다. 나는 그동안 ‘철학 연구’의 자료로, 내지는 더 나아가 ‘철학 하기’ 일환으로, 불교사에 남긴 또는 현재하는 지성을 가까이하고 있다. 때로는 그 지성에 너무도 공감하여 신앙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난 역시 철학으로서 불교를 좋아한다. 그간의 내 연구도 돌아볼 겸, 또 외람되지만 철학 방면에 한정하여 내 생각과 청송 선생의 고견을 비교해볼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또 《불교평론》 편집실이 청송 선생을 이번 호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청송 선생은 불교를 그중에도 선불교를 ‘철학’ 연구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한국의 대표적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선불교로 하여금 ‘철학 세계’의 ‘시민권’을 갖게 해준 학자이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자니 ‘불교’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큰 세계가 펼쳐진다. 한 세상이다. 그런 ‘불교’라는 세계를 저마다의 연구자들이 자신이 학자로 수련을 시작한 보편분과학(普遍分科學)의 방법으로 접근한다. 종교학의 방법으로, 역사학의 방법으로, 문학의 방법으로, 고고학의 방법으로, 문헌학의 방법으로, 언어학의 방법으로, 예술(조각, 미술, 음악, 건축) 연구의 방법으로, 지역학의 방법으로, 그리고 철학의 방법으로. 한국의 근대에도 이런 연구자들이 활동했다. 이 점에 주목한 《불교평론》 편집실에서는 2014년 봄부터 ‘현대한국의 불교학자’라는 고정란을 마련하여, 이미 고인이 된 불교 연구자들을 소개하기를 6년째 하고 있다. 청송 선생을 끝으로 ‘근대한국의 불교학자’ 연재의 기획을 모두 마감한다고 한다. 소위 청송 선생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셈이다. 결국 나는 ‘철학’으로서 선불교를 연구한 청송의 학문을 부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계간지로 1년에 네 번 발행하는 《불교평론》에서 ‘현대한국의 불교학자’라는 고정란을 설정한 것이 2014년 봄호(제57호)였다. ‘불교학’을 직업으로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정보여서, 계간지가 배달되면 제일 먼저 펼쳐 읽는 대목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불교 연구자의 학문세계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유익했고, 한편으로는 소개하는 현재 활동하는 불교 연구자의 관점을 배울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렇게 피택된 인물과 필자를 괄호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김동화(김영진) (2)이능화(이민용) (3)심재룡(조은수) (4)이지관(정병삼) (5)장원규(신규탁) (6)조명기(이병욱) (7)이기영(정병조) (8)김영수(양은용) (9)권상로(김경집) (10)안계현(황인규) (11)홍정식(이봉춘) (12)우정상(김용태) (13)김잉석(임상희) (14)김상현(이종수) (15)이종익(석길암) (16)김인덕(박인성) (17)이영무(김광식) (18)윤주일(원영상) (19)서경수(이민용) (20)고익진(유동호) (21)김지견(김천학) (22)황성기(장진영) (23)심재열(이병욱) (24)정태혁(정승석) (25)목정배(양승규) (26)서경보(마성) (27)황수영(이기선) (28)장충식(정우택) (29)안옥선(김성순) (30)이재열(양혜원) (31)김운학(유한근) (32)원의범(문을식) (33)정영호(박경식) (34)최범술(최화정) (35)이재창(박경준) (36)임송산(이혜숙) (37)박선영(박범석) (38)한기두(원영상) (39)김삼룡(양은용) (40)탄허(윤창화) (41)한종만(김호귀)

모두 41명의 불교 방면 연구자들이 소개되었다. 소개하는 글을 쓴 필자들도 모두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분들이다.

   

박병기 교원대 교수와 인터뷰하는 고형곤 박사(사진 왼쪽, 2002)

2. 청송이 남긴 ‘철학 하기’의 결정들

‘청송의 철학’을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려 하면 늘 머뭇거려진다. 철학과 소속 ‘학생’으로 이름 걸친 세월만 해도 학부-석사-박사 해서 10년도 훨씬 넘고, ‘교수’로 월급 받은 지도 26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부득이, 감히, 말한다. ‘철학’의 시작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존재와 영혼 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것들을 포함하여 일상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앎’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과연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내가 보기에 지나온 철학의 역사에 출몰했던 인물들이 남긴 작품들 속에는 형이상학(존재론), 인식론(지식론), 윤리학(가치론), 이렇게 크게 세 방면으로 저마다의 삶을 표출하고 있다.

‘청송의 철학’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청송은 평생 글을 읽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시 자신의 글로 남긴다. 그 속에는 세상과 자신을 마주하는 그의 실존적인 삶이 역동한다. 청송은 6세 때부터 15세 때까지 그의 고향 전북 옥구군 임피면 영통마을에 있는 한문 사숙을 다닌다. 선생님의 이름은 신일균이고 호는 제당(霽塘)이었다. 제당 선생의 교수학습법은 실생활과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소재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켰다. 요샛말로 ‘논술’을 시켰던 것이다. 공작 실습도 시켰다. 소광희 교수의 표현대로 ‘철저한 실학정신의 구현자’였다. 청송이 이 사숙을 떠나 보통학교 과정을 불과 2년 만에 마치고, 이어서 당시 명문 이리농림학교를 4년 만에 마치고, 그리고 이어서 경정제대 예과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제당 선생 문하에서 받은 교수학습법 덕이었을 것이라고 소광희 교수는 평했다. 소 교수가 청송의 ‘소년 시절 기초교육’을 언급하면서 청송 선생이 쓰신 〈어느 추모비〉를 길게 인용한 것도 그런 연유였을 것이다.

공감이 간다. 청송 선생의 철학은 일상에서 시작하여 존재의 깊은 저곳까지 관통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철학 여정을 글로 남긴다. 근대 초창기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창조적 글쓰기보다는 교과서적 글쓰기를 한 것과는 많이 다르다. 청송 선생의 대표적 작품은 《선(禪)의 세계》이다. 이 책은 1971년 태학사에서 나왔고, 여기에 다시 추사와 백파 등 관련 연구를 보태고 다시 손을 봐서 1995년 운주사에서 출간한다. 1995년판의 〈저자의 변〉에서 청송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래의 의도는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의 無相觀 無生行 등 원효의 독특한 禪觀을 첨가할 뜻이었으나, 내장산의 칩거 십 수 년의 積功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내 나이 구십 노령인지라 기억력도 소삽하고 해서 뜻대로 쉽사리 되지 아니함을 한탄하면서, 미처 마무리가 되지 못한 채 이렇게 부족한 모습으로 펴내게 된 것을 몹시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명년 이때쯤에는 기어코 이루지 못한 소원을 성취하여 선을 보일 것이다.

청송 선생은 늘 읽고 쓴다. 고쳐 쓰고 새로 쓰고 그러면서 사색한다. 선생은 늘 깨어 있다. 위의 인용문이 선생의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당시 청송 선생이 어느 분야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명년 이때쯤”이라고 기약했지만, 그게 그만 날아갔다. 소광희 교수는 이 ‘사건’을 “내장산 10년의 적공이 날아갔다!”라고 탄식하고 있다. 내장산 칩거 동안 선생은 원효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간에 연구, 기록했던 자료들을 정읍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철학 연구의 10년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제 그렇게 날아가버린 ‘적공(積功)’을 아쉬워하며, 그리고 글로 담아낼 수 없는 청송의 ‘실존적 철학 하기’는 그리움 속에 남겨두고, 남겨진 문헌 자료인 《개정 번역판 선의 세계》(고형곤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를 통해 ‘청송의 철학’ 세계를 엿보기로 한다. ‘개정 번역판’이라고 이름 붙인 저간의 사연은 청송 선생의 글 속에 원전의 원문만 인용되었던 일부 독일어 문장 및 한문 원전 을 후학들(김종욱, 김두재)이 번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광희 교수의 〈해제(解題)〉에 청송 선생의 글에 관한 서지(書誌) 정보가 소상하다. 거기에는 1990년대 청송 선생을 모셨던 동국대 김종욱 교수의 공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2005년판 《선의 세계》에는 청송 선생께서 논문으로 발표하신 글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 선의 존재론적 구명(1968, 대한민국학술원)
2. 존재현전으로서의 자연(1969, 철학연구)
3. 해동조계종의 연원 및 그 조류-지눌과 혜심의 사상을 중심으로(1970, 대한민국학술원)
4. 현대사조의 전향과 선사상(1974, 박길진총장기념논총)
5. 추사의 백파망증 15조에 대하여(1975, 대한민국학술원)
6. 화엄신론 연구(1977, 대한민국학술원)
7. 추사의 선관(1979, 연신아카데미 한국학연구소)

이 밖에 수상록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조양문화사, 1975; 운주사, 1997)이 있다. 이상을 총합한 것이 2005년판 《선의 세계》이다. 그러면 ‘청송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소광희 교수의 평을 보자.

聽松 선생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분야로는 존재론이요 방법론으로는 직관이다. 그런데 그 존재론이란 것이 순수한 서양의 존재론이 아니라 동양 특유의 불교사상인 禪을 구명하기 위해 서양의 현대 존재론 특히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을 끌어들인 존재론이다. 그리고 직관이라는 것도 베르그송이나 후설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청송의 철학’은 존재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이고 인식에 관한 직관적 논의이다. 청송 선생은 선불교를 그런 자신의 철학 위에 해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선불교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한다지만, 실은 많은 문헌자료를 남기고 있다. 이렇게 남겨진 문헌자료를 소재로 근대적 의미의 ‘불교학’ 연구자들은 저마다 많은 연구를 했다. 연구자로서의 종합적인 연구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선 문헌자료를 활용했다. 그런데 그 방법들을 회고해보면 ‘학적 방법’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해당 문헌자료에 대한 ‘본문 비평’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선사들의 ‘선문답’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진리는 언어나 문자를 초월한다는 둥, 사량분별을 끊어야 한다는 둥, 논리로는 안 된다는 둥. 오죽하면 ‘선문답한다’라는 말이 상대가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할 때 비난하는 뜻으로 쓰였겠는가!

3. ‘학적 방법’으로 재구성되는 청송의 ‘선 철학’

   

〈선의 존재론적 구명〉(1968)

이런 판국에 청송 선생은 ‘보편학’으로서 철학의 지평 위에서 선 문헌을 해독했던 것이다. 청송은 선사들이 주고받은 문답이나 언행을 기이하거나 특별한 그 무엇으로 신비화하지도 않는다. 당시의 여느 선 수행자처럼 진리는 언어나 사유로는 접근할 수 없다고 ‘담장’을 쳐서 그 뒤로 숨지도 않는다. 질문을 할라치면 직접 체험하라고 비겁하게 굴지도 않는다. 청송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언어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지경까지 파고든다. 그리하여 언어 이전의 존재 자체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서는지를 언어와 사유의 논리로 설명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 지점에서 돌이켜보면, 서유럽의 철학사에서 ‘근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대의 특징은 ‘개인’의 발견이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이다. 나라는 존재의 근거는 이제는 더 이상 ‘God’이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근거는 나의 ‘사유’이다. 생각하는 나 자신에 주목하는 이런 획기적인 전환은 당시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과학기술과 대의민주주의를 만나면서, 이제는 ‘서유럽’의 근대를 넘어서서 ‘온 세상’의 근대로 확산되었다.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마수로 소위 ‘동양’을 노략질하면서 말이다.

   

《선의 세계》(2005)

급기야 서유럽의 근대적 산물인 ‘사유’는 ‘세상’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도예공이 진흙을 주물러 각종 항아리와 도자기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서양 ‘중세’에 기능했던 ‘God’의 자리에 이제는 서양 ‘근세’의 ‘사유’가 들어섰다. 천지만물의 조물주가 되었다. 인간들은 ‘사유’를 도구 삼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불교의 용어를 쓰면 ‘진여(眞如)’를, 저들의 용어를 쓰면 ‘자연’을 대상화하여 ‘내’ 속에 그려놓고는, 이렇게 그려진 표상을 ‘자연 그 자체’인 줄 ‘착각’하는 지경까지 갔다. 게다가 내 속에 그려놓은 자연에 논리적 필연성을 찾아내고 자연과학적 실증이 보태지면서 그 ‘착각’은, 무한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자연’을 ‘사유’ 속에 감금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사유’를 본질로 한다고 이해한 근대적 의미의 ‘나’와 그런 나가 모여 만든 ‘시민’들은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대량살상의 세계대전을 벌였다.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자연의 소유와 마구잡이식 개발, 인간의 소외, 빈부의 격차도 이런 연장선에 서 있다.

각 방면의 서구 지성들은 근대의 산물로서의 ‘사유’ 내지는 ‘이성’에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니체가 그런 지성이고 하이데거가 그런 철학자이다. 청송 선생은 바로 이런 철학자들에 주목한다. 6 · 25가 끝난 뒤부터 1959년 전북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서울대에서 특히 후기 하이데거에 주목했다. 바로 이 시절에 선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쏟아낸다. 하이데거와 선과의 관련에 주목한 것은 1930년대 독일에서 유학한 당시 동경제대 교수들이었는데, 경성제대의 교수들도 그 영향을 받아 강독을 하곤 했다. 1968년에 발표한 〈선의 존재론적 구명〉(대한민국학술원)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禪의 세계는 寂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寂은 세계의 허무는 아니다. 더욱이 허무에서 허탈감도 아니려니와, 靜寂에서의 도취만도 아니다. 물론 표상주관에 의하여 보여진 相의 세계 일체를 멸진한 뒤의 無一相可得의 적멸이기는 한다. 그러나 언어, 문자 및 心緣相(표상된 상태) 등을 버리고 난 뒤에는 이 세계는 허무일까? 차라리 표상화되고 대상화되기 이전에, 세계는 이미 벌써 저 스스로 우리의 眼前에 나타나 있는 本地風光이 아닐까? 그렇다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옛부터 훤하게 나타나 있는 세계 안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 생략)

대상적 사물로서 눈앞에 표상할 수도 없고, 논리적 추리에 의하여 가정되는 형이상학적 실체도 아니며, 또 경험가능적 논리적 조건으로서의 선험적 지평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이 세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필자 생략)

선의 세계는 경험적이건 선험적이건 일체 주-객 대립에서 일어나는 표상, 개념, 판단 등 난상을 제거해 버린 뒤에 나타나는 정적의 세계이다. 사실인즉 이 정적의 밝음의 광장에서 주-객 대립의 대상적 세계도 인간 사유에 의하여 비로소 건립되는 것이다.

청송 선생이 주목하는 ‘자연’은 위에서 말하는 “옛부터 훤하게 나타나 있는 세계”이다. 근대적 이성 즉 ‘사유’에 의해 규정되고 한정되어 표상된 세계가 아니다. 청송의 말대로 “항상 자명적(自明的)으로 현전하는 실상의 세계는 관념의 체계에 의하여 은폐되어 있다.”

그렇다면 청송 선생은 위 논문에서 “현전하는 실상의 세계” 또는 “적(寂)의 세계” 또는 “정적(靜寂)의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밝혔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송이 공을 들여 파헤친 것은 “인간 사유”이다. “관념의 체계”이다. 이것들이 가진 사태의 은폐성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청송은 오랫동안 해온 후설과 하이데거 작품 읽기를 통해 구축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선사들이 추구했던 지향점을 분석했다.

이때 수단으로 한 선 문헌자료는 영가현각 선사의 《선종영가집》과 그에 딸린 중국 송나라 시대 석벽행정의 주석 및 진수정원의 과문(科文)과, 조선 함허득통의 해설집이다. 이 책은 《선종영가집언해》라는 이름으로 세조 10년(1464) 간경도감에서도 간행될 정도로 우리나라 지성들이 주목했다. 청송 선생도 그런 지성이다.

청송은 ‘자신의 철학’으로 《선종영가집》을 수단 삼아, 관념과 사유가 휘둘러온 사태의 은폐성을 폭로한다. 이때 활용하는 것이 후설의 ‘파지(把持, Rete-ntion)’ 개념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불교의 문헌들을 인용한다. 《보리달마약변대승입도론》 《화엄망진환원관》 《해택대사현종기》 함허의 《원각경설의》 《승만보굴》 《황벽어록》 《태고화상어록》 《대혜보각선사어록》 《능엄경》 《종경록》 《대승기신론》 《돈오입도요문론》 《대승기신론의기》 《선가귀감》 《유마경》 승조의 《주유마경》 《경덕전등록》 《대혜보각선사보설》 《수심결》 《신심명》 《금강경》 《법화경》 장수자선의 《수능엄경의소주경》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화엄경》 《벽암록》 《종용록》 《선문염송》 《조계진각국사어록》 《권수정혜결사문》 《조주록》 《임제록》 《원돈성불론》 석광의 《구사론기》 계환의 《법화경요해》 등, 실로 방대하다.

선 문헌에 등장하는 암호 같고 때로는 말이 안 통하는 ‘선문답’을, 게다가 흩어진 파편같이 이 책 저 책에 산재해 있는 ‘선사들의 글’을 청송 선생은 ‘자신의 철학’으로 재구성해 내고 있다. 나는 선생의 이런 작업에 설득되었다. 선사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었다. 결국 이런 작업으로 인해 선불교는 하나의 철학으로 설 수도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철학 하기’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청송 선생 자신도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현상학의 특수 용어를 대용할 때면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 아닐까?’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니던가?’라고 넌지시 한발 물러서면서도 말이다.

   

《청송의 선과 철학》(2011)

그런데, 그러면 도대체 인간의 ‘사유’ 활동이란 어떻기에, 청송 선생은 이토록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그것이 가지는 은폐성을 드러내려고 하는가? 불교의 철학 그중에서 인식 또는 지식에 국한하여 인간의 사유 활동을 정리해보자. 불교에서는 식(識, 인식)은 그 근거가 되는 경(境, 감각소여)과 근(根, 감각기관)의 접촉에서 생긴다고 하여, 여섯 종류의 인식[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을 들고 있다. 그중 ‘의식’은 ‘의(意)’라는 감각기관이 ‘법(法)’이라는 감각소여와 접촉해서 생긴다. 한 찰나 이전의 마음을 ‘의’라고 하고, 현 찰나의 마음을 ‘식’이라고 한다.

한편 불교도들은 우리의 의식은 찰나찰나 생성 소멸하면서 다음 순간 마음에 무언가의 영향을 남기고 소멸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 찰나 이전의 마음이 집적(集積)되는, 다시 말하면, 잠재적인 형성력을 저장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모여 있는 의식인 일종의 제8아뢰야식을 상정한다. 여기에다 제8아뢰야식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야말로 불변의 자아라고 오인하는 제7말나식을 첨가하여 이 모두를 합쳐서 ‘심(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은 단일하며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심’ 속에 위의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접촉에 대하여-그 접촉이 의식의 밖이건 안이건 어디에서 주어지더라도- 총체적으로 반응한다. 다만 이렇게 요소로 나눈 것은 어디까지나 언어적 설명을 위한 방법적 설정에 불과하다.

   

《청송의 생애와 선철학》(2014)

‘심’을 구성하는 요소인 아뢰야식은 어떤 사태[의식 안의 사태+의식 밖의 사태 모두 포함]와 접촉이 되면 그 사태에 대한 인상을 자기 속에 그려두는 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이 작용은 ‘파악하는 것: 능취(能取, grāhaka)’와 ‘파악된 것: 소취(所取, grāhya)’로 쪼개어진다. 그리고는 이렇게 쪼개진 각각에 대하여 실재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각각 주관과 객관이라고 오인하는 의식이 수반된다. 이런 아뢰야식의 작용을 ‘허망분별(abhūtaparikalpa)’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 우리는 ‘능취’-‘소취’의 작용이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에는 마음이 사태와 직면하면서 그것에 호응하는 작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용을 ‘순수조출성(prakāśamātra)’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순수한 아는 작용으로서의 ‘순수인식(svasaṁvedana)’이다. 물론 ‘순수인식’은 ‘능취작용’-‘소취작용’을 떠나서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여 구성된 주관과 객관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데, 마음의 이런 성질을 ‘변계소집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에 작용하는 현 찰나의 ‘심’은 다음 찰나에 소멸되는 동시에 자신의 인상을 남긴다. 이 인상의 일부는 다음 찰나의 ‘심’에 작용하고 일부는 잠재력으로 저장된다. 이런 관계를 계속하면서 ‘심’이 상속해간다. 다시 말하면 현 찰나의 ‘심’은 전 찰나의 ‘심’이 남겨준 인상에 의존하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전 찰나의 ‘심’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무한한 인상의 집합체로서의 ‘심’ 즉 아뢰야식이다. 이렇게 볼 때 현 찰나의 ‘심’은 아뢰야식에 의존해서 생성되는 셈인데, 이런 ‘심’의 성질을 ‘의타기성’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심’은 위와 같은 입체적 구조를 가지면서 작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사태를 바로 보는 행위 즉 정견(正見, samyak-darśana)은 불가능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아뢰야식이 활동하는 한 바른 인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아뢰야식이 식으로서의 능력이 사라져 ‘파악하는 것’과 ‘파악되는 것’의 분별이 사라진 무분별의 지혜 즉, ‘순수조출성(prakāśamātra)’으로서의 ‘순수인식( svasaṁvedana)’이 발동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총체적 사태를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고 한다. 유식학파들은 ‘전의(轉依)’의 방법을 통해서, 선불교에서는 ‘무심(無心)’ 내지는 ‘반문문성(返聞聞性)’의 방법을 통해서, 화엄교학에서는 ‘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의 관법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4. 그래도 ‘사유’를 통한 쪼개기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우리의 의식은 무엇이 그 의식에 주어지기만 하면 ‘능-소’로 나누어지는 원초적 습성이 있다. 그런 기능을 걷어치우기만 하면 세계의 실상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인간의 의식 기능을 걷어치울 수 있는가? 청송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에 주목한다. 이 지점에 청송 선생의 현란하고 해박한 변증이 구사된다. “주(住)-무소주(無所住)” “행(行)-무행(無行)” “비의지(非意志)의 의지(意志)” “시선의 전향” “능동적 인위적 작용을 일체 방하(放下)하는 것” “견(見)-무소견(無所見)의 견(見)” “요(了)-무소요(無所了)” “무분별지조(無分別之照)인 지(智)가 현발(現發)” 등등의 사변적 용어들이 등장한다.

위의 “ ” 속에 있는 어휘들은 모두 청송 선생의 용어이다. 그리고 ‘-’ 표시는 내가 그어 넣은 부호이다. 그런데 ‘-’ 부호의 앞부분도 의식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이고, 그 뒷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이러나저러나 의식이 움직였다 하면 ‘능-소’가 나뉜다. 이런 현상은 생각을 하는 인간의 숙명이다. “불수지지 단지이이(不須知知 但知而已)”를 김종욱 교수의 번역대로 “지를 필요로 하는 지가 아니라 다만 지 그것일 따름이다”라고 번역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지(知)’는 사유 작용이다. 그 작용은 반드시 ‘무엇’에 대한 작용이다. 그리고 그 작용은 그 ‘무엇’을 표상화하여 자신 속으로 끌어들인다. ‘지(知)’에는 이렇게 집적된 과거의 ‘앎’도 있고, 현재 작동하는 ‘알기’도 있다. 이런 인간 사유의 순환성과 지향성을 인간들은 《원각경》이라는 작품으로 노정시키고 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무명이 허망한 것임을 알기만 하면 무명에서 벗어난다고 하셨는데, 실은 허망함을 아는 제 자신의 몸과 마음도 허망한데 어떻게 허망한 주체가 허망한 대상을 닦아 없앨 수 있겠습니까? 또 허망한 성품이 없어졌다면 곧 마음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주체는 누구이기에 ‘일체를 허망하다고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 경전을 오래 연구한 당나라의 규봉종밀은 이 대목을 ‘환환하수문(幻幻何修門)’이라고 제목을 붙인다. 위와 같은 보현보살의 질문에 부처는 ‘여환삼매(如幻三昧)’를 닦아 익히라고 한다. ‘삼매’ 자체가 허망하다고 해석하는 번역자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원각경》의 다른 곳에 나오는 ‘환력수습(幻力修習)’과 같은 맥락이다. 또 대승의 각종 삼매 수행 법상으로 보아도 삼매 자체가 허망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일체의 모든 법(法)이 인연으로 가화합된 임시적인 ‘환(幻)’인 줄을 관찰하는 삼매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관찰하는 행위를 하는 것도 그런 행위를 하려고 마음을 꿈쩍 움직이는 순간 마음은 ‘능-소’로 쪼개진다. 《능엄경》(권 3)에서 “여원부지(汝元不知, 네가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상대를 꾸짖듯이 우리 신세는 실상을 ‘원초적으로 알 수 없는 존재’ 즉 “원불지지자(元不知之者)”이다. 결코 우리는 “여래장 중에 성(性)이 색(色)인 진공(眞空)과, 성(性)이 공(空)인 진색(眞色)이, 청정(淸淨)하고 본연(本然)하여 법계(法界)에 주변하여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다루고 소지(所知)의 양(量)에 응하는 것[如來藏中, 性色真空, 性空真色, 清淨本然, 周遍法界, 隨衆生心, 應所知量.]”을 알 수 없다. 이 대목에 화엄의 교학자들은 수많은 주해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관법 수행을 제시한다.

인간의 사유가 가지고 있는 ‘능-소’로 쪼개는 작용이 움직이는 한, 그리고 그런 작용이 없이는 인식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사유를 버릴 수가 없다. 인간 사유가 그런 숙명이라면, 관점을 바꾸어가며 다양한 사유 전환을 통해서 세계의 실상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원각경》 식으로 말하면 ‘사마타’-‘삼마발제’-‘선나’의 3관 수행을 25종의 경우로 조합해서 관찰하는 것이고, 화엄교학자들의 교판으로 말하면, ‘사사무애법계관’의 10현문(玄門)으로 관점을 바꿔 관찰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능-소’로 쪼개지는 사유의 은폐성을 현실적으로 좀 더 해소시킬 수 있다.

아무래도 나는 화엄교학에 물들었나 보다. 나는 언어 분석을 통한 검증 가능한 논법으로 세계를 주체적으로 그려 갖기를 여전히 좋아한다. 무수한 언어를 구사한 선사들도 그런 의미에서 작가(作家)라고 생각한다. ■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동경대 대학원 중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규봉종밀의 ‘본각진심’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저술로는 《월운당가리사》 《공부하다 죽어라》 《경운 스님의 글과 그림과 생각》 등이 있다. 불교평론 학술상, 연세대 공헌교수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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