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이었나, 나는 맨발로 금강산 외금강과 해금강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 번 여행으로는 무언가 부족하여 다시 가보려고 했으나, 금강산 여행길이 닫히면서 갈 수가 없었다. 1998년 금강산 여행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문이 닫히고, 닫힌 채 다시 11년이 흘러가고 있다.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사상과 미학의 결정체다. 옛사람들은 신선사상과 풍류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금강산을 찾았고, 통일신라는 삼국통일 전쟁 내내 다친 민중과 당나라로부터 훼손당한 민족의 결집을 위해 불국토를 금강산에서부터 건설하려 하였다. 많은 절을 세우고 금강산을 찾아 기도를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견디면서 자존심을 다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금강산을 오르며 자존심 회복과 독자적 미학을 형성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므로 금강산은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의 성소이다. 우리 민족을 응집하고 정신을 부활시킨 곳이며, 우리 민족 정신사의 위대한 맥락이다. 내가 연작시 〈금강산〉을 쓰는 이유 역시 이 맥락에 닿아 있다.

금강산 자료를 읽어가다 보니 불교와 관련된 지명과 인명들이 수두룩하다. 우선 금강산이나 최고봉인 비로봉이 그렇다. 금강산은 예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 개골, 풍악, 열반, 지달, 금강, 중향이다. 이 가운데 열반, 지달, 금강, 중향이 불가의 용어들이다. 금강산은 불교의 보고이고 불교의 중흥지이다. 금강산 자체가 불교 덩어리다.

봉우리와 계곡에 불교가 우뚝하고 가득하다. 비로자나불에서 가져온 비로봉, 관세음보살에서 가져온 관음봉, 대세지보살에서 가져온 세지봉, 법기보살에서 가져온 법기봉, 불법 수호신인 비사문, 석가모니에서 가져온 석가봉, 지장보살에서 가져온 지장봉, 미륵보살에서 가져온 미륵봉, 수미산에서 가져온 수미봉, 부처가 머무는 곳인 중향성 등 끝이 없다.

유물과 유적도 불교가 차지하고 있다. 금강산에는 108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표훈사, 정양사, 장안사, 마하연, 보덕굴, 유점사, 신계사 모두 이름난 절이다. 금강산에는 이미 고구려 때 절이 있었고, 내금강 구역 상운암은 고구려 장수왕 때인 서기 462년에 건립되었다. 보덕암은 고구려 보덕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찰 가운데 외금강 유점사가 가장 컸던 듯싶다. 유점사는 신라 남해왕 때 지은 거라니, 오래도 되었지만 60여 개의 부속 사찰과 암자를 거느렸다니 알 만하다. 내금강에는 신라 진표율사가 서기 514년 창건한 장안사가 있다. 외금강 신계사는 519년 보운 선사가 창건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서산, 사명, 처영 대사가 이끄는 승병의 지휘본부가 있었다니 호국의 성지이기도 하다.

정양사는 600년에 창건되었다. 마하연은 대승이라는 뜻이고 마하연암은 의상대사가 661년 창건했다. 670년 표훈 대사가 창건한 표훈사가 정양사 가까이에 있다. 표훈은 의상의 제자인데, 금강산 보살신앙을 정립하였다고 한다. 금강산의 많은 사찰 가운데 표훈사가 금강산을 관장하는 법기보살 신앙의 중심지가 된 이유다.

《화엄경》에 바다 가운데 금강산(海中 金剛山)에 법기보살이 거처하며 1만2천 명의 권속을 거느리고 지금도 설법을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금강산 1만2천 봉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금강산에 법기보살이 상주하고 있다는 《화엄경》의 이야기는 신라인에게는 큰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신라는 불국토 신앙을 화엄의 교리로 정착시키려 노력하였고, 당연히 법기보살에 대한 신앙은 신라 불국토설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사찰들이 6 · 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거의 사라졌다. 앞으로 이 땅을 절대 다른 나라의 전쟁터로 만들면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조선 후기까지 많은 유생이 금강산을 찾아 시문과 일기, 유산기를 남겼다. 특히 율곡 이이는 금강산에 일 년여간 머물며 6백 구 3천 자의 장시를 썼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 서양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조선 말에는 민족적 자각과 함께 금강산을 예찬하는 시와 문장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사찰의 유적을 언급한 법종(法宗)이라는 스님의 〈유금강록〉이 있다는데 읽지 못해서 아쉽다. 대신 나는 이름 모르는 스님이 한글로 쓴 기행가사 〈금강산가〉 필사본을 읽었다. 안동의 어느 절에 있는 스님이 금강산 이곳저곳을 신바람 나게 돌아다니며 쉽고 재미있게 쓴 글이다. 4,750리를 127일에 걸쳐 금강산을 다녀왔다.

〈금강산가〉 후미가 눈길을 끈다. “조선에 사는 사람/ 금강산 못 가보면/ 황천 가는 다른 날/ 후회를 어찌하리/ 세상만사 쓸데없는 일/ 하루아침에 뿌리치고/ 금강산 찾아가서/ 이런 경치 다 본 후에/ 아미타불 염불하여/ 일생을 보내소서”라며 금강산 구경을 권하였다. 금강산에 자유롭게 가지 못하는 현실이 더욱 아쉬울 뿐이다.

금강은 동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천이 가지고 있는 가장 견고한 무기이며, 단단하여 깨어지지 않는 굳은 마음이다. 금강은 모든 번뇌를 깨드리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남북이 금강산을 중심으로 금강처럼 견고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념 갈등의 번뇌를 깨드려, 평화와 통일의 길을 우리의 힘으로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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