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곁에는 우리 집 거사가 스스로 자전 소설가라 칭하며 자기가 쓴 글을 들어보라고, 어눌한 발음으로 열심히 읽어주고 있다.

그는 유년 시절에 일제 강점기, 해방기, 6 · 25사변기의 아픈 역사를 겪었다. 지금은 그렇게 유년 저편에 두었던 아픈 시절을 즐겁게 추억하며, 자신의 불편함과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

물론 그는 문학하고는 먼 거리에서 산 사람이다. 매사에 정확해야 하고, 감성이라곤 일 푼어치도 없는 사람, 메마르고 다소 이기적이고, 원칙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네 피붙이는 끔찍하게 여겨서 집안일이라면 우선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도 힘들고 버거워서 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 젖을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웃을 따라 절을 다시 찾았다.

잠실 석촌호 부근에 있는 불광사였다. 광덕 큰스님께서 법주로 계셨는데, 《금강경》 《반야심경》 특히 《법보단경》을 큰스님께서 선해(禪解)하셔서 ‘안반념(安般念)’을 지도해 주셨다.

그러나 내 마음이 밝지 못해 지도해주시는 대로 일깨워지지 않았다. 바깥 경계에 부닥치면 일어나는 현상을 참는다고 해서 내 안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 중에 큰스님께서 너무 편찮으셨고 불광사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서 나는 위빠사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IMF를 겪게 되면서 우리 집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내가 써 보지도 않은 돈 때문에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집안에서도 형제에게도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나름의 공부는 놓지 않았다. 도반들과 5년을 줄기차게 공부했는데, 그도 어느 시점에서 한계를 느낄 때쯤 ‘안국선원’을 찾아갔다.

스님께서 법 공부는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다시 ‘이게 무어냐?’ 하시고는 나가서 답을 찾아오라 하셨다. 환경에서 오는 고통과 사람들의 배신. 나는 예전과 같은 사람인데 나는 그대로인데, 돈 없는 나는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고 하인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이 공부가 좋다고 모시고 온 사람들도 나를 무시했다. 그러한 상황을 나는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팡이로 삼았다.

그들을 보면 나는 상불경보살이 되는지, 나 자신을 똑바로 보면서 내 마음에서 어떤 것이 일어나는지 오직 나를 살펴가면서 진정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렇게 공부를 지어 갔다. 그런데  《반야심경》의 내용이 어느 날 툭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온이 공한데 어디에고 뒤바뀐 생각이 있겠으며, 거기에는 고통 심지어 늙음도 죽음까지도 없다는 것, 그렇게도 수없이 외워대던 경이었는데, 순간 환희로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찬찬히 《금강경》 사구게를 되새기며 《육조단경》을 읽어나갔다.

2017년 7월, 하안거 회향하고 도반들과 차 한잔하고 헤어져 집으로 오는데, 동네 병원이라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거사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그는 뇌경색이라는 병명을 얻어, 입이 삐뚤어지고 수족에 힘이 없는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 누워만 있었다. 이 사람을 참 많이 미워했는데, 그가 나를 다시 깨쳤다.

‘그래 이제 이 사람은 나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진정 보살로 살아야만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사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본래로 텅 빈 자리 봤으면 그대로 행할 수 있어야 공부이고, 부처인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세우고 이 순간부터라도 흐름에 맡기고 순간순간 내가 할 일에 몸과 마음을 두자. 지독하게 듣는 귀만 있었지 실행이 부족해서 늘 내가 슬프고 내가 외로웠고 내가 괴로웠으니 내 삶이 아팠구나. 미움도 사랑도 다 부질없고, 피곤하면 잠시 쉬고, 힘들면 내가 힘드니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거사의 행동에서 내가 보이고 울음에서 내가 서러워했던 마음이 보였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우선 내가 무얼 해도 편안하고 우리 아이들도 집에 오면 편안해 한다.

“우리 아빠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것 같아, 우리도 엄마도 아빠도 다 함께 편하게 살잖아.” “우리 아빠, 미남이시네.” “내가 원래 미남이었지.” 이발과 목욕을 시킨 후, 옷 갈아입히는 걸 보며 아이들이 남편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그래, 이게 행복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이 서럽고 아프고 괴로웠던가? 이것이 행복이라고 여기기까지 되돌아보면 나에겐 큰 스승님이 계셨고, 스승님의 가없는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진정 올바른 불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항상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그러면 바람이 일어나지 않고 그리되면 자연 욕심이 없어지고 자신이 당당해져 구김이 없으니 자유롭고 편안하다. 어디든 속하되 끄달림이 없어진다.

우리 집 거사 때문에 불교를 알게 되었고 거사로 하여 안정도 찾게 되었으니, 우리 집 거사가 나에게는 스승이며 은혜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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