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칼럼 > 사색과 성찰
     
환생론의 교훈
[80호] 2019년 12월 01일 (일) 박호영 시인 · 문학평론가

환생은 불교나 힌두교의 중요한 교리에 속한다. 그러나 요즘은 불교, 힌두교를 믿지 않는 서구의 의학자, 과학자, 종교철학자 등까지 환생의 수많은 사례를 수집하고 논문을 발표하며, 책까지 출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환생을 믿는 사람들이 2014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28%가 된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 2015). 그 이후 5년이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은 그 비율이 30%를 상회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환생을 믿지 않는 이도 환생론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보다는 그 정체 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환생에 대한 연구를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하고자 한 이로 이안 스티븐슨(1918~2007)을 손꼽는다. 캐나다 출생으로 미국 버지니아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였던 그는 40여 년 동안 그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환생 연구를 했고, 무려 2,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 두 권을 펴냈다. 그의 연구 대상은 주로 7, 8세 이하의 아이들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전생에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경우에 따라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치밀하게 전생의 장소를 찾아 아이들의 증언이 맞는지 대조하며 환생 사례의 타당성 여부를 조사했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어렵사리 이 저서들을 구해 읽고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2017)라는 책을 출간했다. 스티븐슨의 연구에 대한 요약과 그 나름의 견해를 밝힌 책이다.

이 책에서 최 교수는 사후생이나 환생에 대해 네 가지 태도가 있음을 소개한다. 첫째, 인간은 죽으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 둘째, 사후생은 있지만 환생은 안 한다는 것, 셋째, 인간은 끊임없이 환생한다는 것, 그리고 넷째, 환생은커녕 인간의 의식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네 가지 태도의 문제점과 논리의 모순을 제시하며 가장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태도가 세 번째, 즉 인간은 끊임없이 환생한다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태도는 잘 알다시피 불교가 말하는 윤회론이다. 이것은 불교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최 교수는 환생을 믿어 책 제목조차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라고 했지만, 나 역시 환생을 믿는다. 우선 스티븐슨 교수가 열거한 사례들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연구는 엄정한 방법론과 합리적인 논거를 지녔다고 평가되어, 신경정신과 학회가 학회지 전면을 할애하여 논문을 수록하기도 했다. 스티븐슨 외에도 전생과 환생을 연구하는 주목할 만한 학자들이 여럿 있다.

티베트 불교의 린포체라는 존재 역시 환생에 대한 믿음에 일조를 한다. 린포체란 전생에 출가 수행자로 수행에 전념하다가 죽은 후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하였다는 것이 증명된 사람을 일컫는다. 린포체는 티베트가 중심이지만 세계적으로 다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한국 영화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어린 주인공 앙뚜 역시 린포체이다.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태어나 외부 출입이 없던 앙뚜는 그가 전생에 살았던 곳이 티베트의 마을 캄이며, 그곳 사원과 제자들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전생을 또렷이 얘기한다. 불과 다섯 살 때의 일로, 환생한 존재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현 제14세 달라이 라마 역시 전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이다.

환생론에서 근간이 되는 것은 카르마, 즉 업(業)이다. 업에 대해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현생에 겪는 모든 일은 전생에서 행했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아무 원인도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 그대로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했으면 현생에서 그 덕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고, 악한 일을 행했으면 현생에서 악업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 이른바 업보이다. 그러므로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여 내 처지를 비관할 필요도 없으며, 자기보다 못났다고 상대방을 멸시해서도 안 된다. 전생의 카르마를 기준으로 현생의 모든 상황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락하고 행복한 후생을 기약하기 위해선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면서 업장을 소멸하고 선업을 쌓아야 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이런 식으로 윤회하는 삶이 공평한 것 같다. 만약 오로지 한 번뿐인 생이라고 한다면 누구는 그 생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죽고, 누구는 부귀영화만을 누리다가 죽는 것처럼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미국 영스타운대학 베이치 교수는 《윤회의 본질》(2014)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카르마의 흐름이며, 카르마를 이해하는 것이 곧 우리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카르마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이 환생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bakhoy@hanmail.net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