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어촌마을에 터를 잡고 살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나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 시무하고 있었는데, 특별한 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느 날 낯선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저는 백담사 주지인 마근이라고 합니다.”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저희가 만드는 작은 잡지에 발표하신 시를 보고 반가워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 예. 마근 스님-.”

지금은 그 잡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잡지를 편집하는 시인의 청탁을 받고 〈연꽃과 십자가〉란 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가는 길이 서로 다른 스님과 신부님이 만나 진리의 법을 나누는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며 쓴 시였다. 시의 일부만 인용하면 이렇다. “자기보다 크고 둥근 원에/ 눈동자를 밀어넣고 보면/ 연꽃은 눈 흘김을 모른다는 것,/ 십자가는 헐뜯음을 모른다는 것,/ 연꽃보다 십자가보다 크신 분 앞에서는/ 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는 것,/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것/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귀하다네/ 늦은 어울림이라도 어울림은 향기롭네.”

하여간 그런 통화 후에 스님이 내 거처로 찾아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낡은 바랑에서 한지에 곱게 싼 두루마리를 꺼내 건네주셨다. 풀어 보니 중광 스님의 달마도였다.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

당시 건강이 좋지 않던 중광 스님은 요양하기 위해 백담사에 머물고 계셨는데, 마근 스님이 중광 스님에게, 자기가 오늘 종교의 벽을 허물어버린 목사님 한 분을 만나러 가니 달마도를 그려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마근 스님이 선물한 그 달마도를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열린 마근 스님과의 인연으로 우리는 함께 여행한 적도 있다. 그게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중광 스님이 소천하셨을 때다. 스님의 다비식은 부산 통도사에서 열렸다. 우리는 원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 살아생전 숱한 파격과 기행으로 세인들의 비난도 많이 받았던 분이었으나, 통도사 뒷산에서 치러지는 다비식엔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너무 많은 인파 때문에 우리는 가까이서 다비식을 볼 수 없었다.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으로 올라갔다. 멀리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란 소리만 겨우 들렸는데, 잠시 후 파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던 마근 스님이 한 말씀 했다.

“저 연기가 한 생의 끝이네유. 저렇듯 덧없는 생이지만, 그러니 목숨 붙어 있는 동안 잘 살아야지유……”     

그런 자각 때문일까. 내가 아는 마근 스님은 평소 하심(下心)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이었다. 큰 사찰의 주지로 지낼 때도 자신이 거처하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항상 챙기셨다. 한번은 차를 몰고 나를 찾아오셨는데, 차에 짐 싣는 수레를 매달고 오셨다. 그래서 연유를 물었더니, 대관령에 가면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있는데, 제가 끝나고 나면 제물로 바쳐진 소머리나 돼지머리를 얻어서 수레에 싣고 강릉에 있는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양양의 작은 사찰에 있을 때는 시골에서 겨울 연료를 구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산에 가서 벌목으로 버려진 나무를 실어다주기도 한다고 했다.

마근 스님이 신흥사 주지를 그만두고 쉬고 계실 때의 일이다. 내가 사는 원주로 찾아와서 반갑게 만났는데,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삼척의 어느 사찰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가게 되었다고 한다. 행사 중에 사회자가 갑자기 자신을 지목하더니 한 말씀 해달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마지못해 일어난 스님이 대중 앞에 나서며 이렇게 말머리를 열었다.

“여러분, 죽었다가 벌떡 살아나는 게 뭔지 아슈?”

스님의 느닷없는 질문에 대중들이 웅성웅성하기만 할 뿐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아니, 그것도 모르슈? 거시기 아니유!”

이렇게 말했어도 대중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할 뿐. 스님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 내 이름이 뭐지유?”

대중들이 대답했다.

“마근 스님유……”

“맞아유. 말 마(馬) 자 뿌리 근(根) 자 아니유? 말하자면 내가 바루 거시기, 부처님의 거시기 아니겠슈? 그래서 난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지유!”

그제야 대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참 시간이 지나 〈마근〉이란 제목으로 시를 쓴 적이 있다. 스님의 이름에 읽힌 이 유쾌한 이야기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사람살이가 그렇다. 쉴 새 없이 명랑하게 살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의 파도를 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나 역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도 있다. 그럴 때 스님의 이 얘기를 떠올리면 다시 살아갈 새 힘을 얻곤 한다. ‘죽었다가 벌떡 살아나는’ 거시기처럼!

solss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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