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7년 5월 16일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정책연구소와 미붓아카데미가 공동주최한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 즈음한 특별세미나에서 발표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불교적 리더십’ 제하의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리더 또는 리더십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인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속성상 두 사람만 모여도 역할의 선후 상하 내지 상보성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관계설정이 그것이거니와, 집단체로서 조직이 커질수록 단계적 리더와 그들의 리더십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조직의 단합과 소기의 성과를 가름하는 조건으로서 조직의 구심 역할을 수임하는 리더와 그의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리더의 조직운영 방식이 수직적 혹은 수평적 방식이냐에 따라 리더와 조직구성원의 인간관계는 독선독재(獨善獨裁) 내지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로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리더십의 개념은 자기중심 지향적이고 권위와 권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분히 독재로 흐르는 경향이 강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특정 인물의 통솔이나 지시에 따라 구성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나 기술 또는 힘을 리더십으로 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리더는 특정 인물의 고유권한이고, 조직을 이끄는 소수만이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리더십은 특정 인물의 지시나 행위에 의한 상명하복의 관계로 이해된다든가, 상급자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주된 인식이 팽배했다. 

리더십이 파워(power) · 권력(authority) · 관리(management) · 통제(control) 등과 동의어로 인식된 것은 그러한 의식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십의 유형은 인격적 평등성에 입각한 수평적 구조를 핵심으로 하는 리더십의 진정한 개념과는 거리가 먼, 헤드십(headship)이나 보스(boss)적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헤드십이나 보스적 리더십은 수직적 구조에 기반한 통제나 명령체계를 고질화함으로써 수임받은 권한을 남용하거나 권력화해 대중을 강제화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구조에서 구성원들은 편 가르고, 눈치 보고, 아부에 익숙해지는 비굴함과 비열함을 습관화한다. 진정성과 공공의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면에서 철저히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교단에서 야기된 범계 내지 파계의 행위가 참괴한 문제로서 부각되지 못하거니와, 문제를 지적한 인사들과 기관, 단체들이 도리어 핍박받는 제 현상도 그 범주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dhamma)을 계승 실천하는 진정성 있는 불교지도자의 출현을 희망하는 배경이 그와 같다. ▶연기법에 입각한 상의상관성과 인과를 중시하고 절대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무차별 평등의 인간 존엄 가치를 우선하는 리더십, ▶윤리성과 합리성에 의거한 책임의식과 삼업청정으로 도덕적 권위를 담보한 리더십, ▶하심과 진실함에 기반한 지행합일의 실천궁행을 통해 공동선을 지향하는 리더십, ▶통찰력과 예지력 높은 정견의 지혜로써 바르고 확고한 비전(원력)을 공유하면서 미래지향적 담론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절박한 현실이다. 

이를 유형화하면 첫 번째는 관계존중형이고, 두 번째는 위의청정형이며, 세 번째는 지행합일형이고, 네 번째는 원력공유형이다.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과 사상과 성품을 반영하고 있는 불교의 핵심명제 몇 가지를 인용해 설명을 붙임으로써 유형별 리더십 원리의 전거를 밝혔다. 다만, 이 유형들은 독립적 개념으로서 각각의 리더십 이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불교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론의 실제로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전일론적 이해가 요구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 8조에 승려(비구 · 비구니)와 신도(우바새 · 우바이), 즉 사부대중으로 종단을 구성한다고 밝혀놓았다. 하지만 종단운영은 대체로 출가 1중, 즉 비구의 몫으로 제도화 내지 관행화되어 있다. 재가 양중에게는 참정권과 피선거권마저 없다. 불교교단이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인권 사각지대라는 오명을 문제의식 없이 고집한다면 미래불교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교단의 구성원마저 섭수하지 못하는 마인드를 갖고서 미래를 논하고, 성장을 논하고, 사회적 역량을 논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단 내부 구성원들의 관계부터 다시 설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연기법과 여성출가에서 그 원리를 찾을 수 있는 관계존중형 리더십은 그에 적합한 관계성 리더십을 지향한다. 연기법에 입각한 상호관계성과 인과(因果)의 두려움을 알고, 절대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 원리와 무차별 평등의 인간 존엄 가치를 우선하는 지도자, 붓다 재세 시 여성에 대한 깊은 배려와 사회적 제 모순에 대한 개혁정신에서 살필 수 있듯이 인권지향적 사회흐름을 읽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주는 하나의 교훈은 초연결사회로서 수평적 구조가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수평적 사회에서 요구받는 리더십의 원천은 윤리성과 합리성이다. 위의청정형 리더십은 신 · 구 · 의 삼업청정으로 담보되는 도덕적 권위의 상징이다. 지위가 주어졌다고 권위마저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권위는 공식적 권위를 진심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요건이다. 자자(pavāranā)와 탁발에서 그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붓다도 예외가 아니었던 자자 의식은 ‘자신에 대해 잘못된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의심되는 것이 있는지 자비로써 말해주면 참회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공개참회 의식이다. 한마디로 위의의 청정성을 담보하는 대중공의 절차였다. 탁발은 단지 음식을 빌어먹는 행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차별과 분별과 탐욕과 집착과 번뇌를 넘어 해탈과 열반과 깨달음의 경계에 들어서게 하는 멸탐진치의 지표를 시사하는 바다. 자자와 탁발 의식은 곧 마음 밭을 갈며 풍요로운 정신적 수확으로 재가대중의 정신적 갈망을 채워주는 출가정신을 의미한다. 

 

오늘날 지도자의 자질로 요구받는 리더십으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진정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을 든다. 교단사에서 이들의 리더십과 맥을 같이하는 지행합일의 대표적 인물이 아난다(Ananda)이다. 오늘날 비서실장(참모장)에 해당하는 붓다의 상시(常侍)로서, 25년간 붓다의 시중을 들며 간언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붓다의 시자 요청을 받은 아난다가 제시한 4가지 원하는 것과 4가지 원하지 않는 것 등의 8가지 조건은 지행합일형 리더십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상이다.

4가지 원하는 것(請願)은 한마디로 책임의식을 나타낸다. ① 아난다가 초대받은 법석에 붓다가 동행해주는 일[아난다청], ② 붓다의 설법을 청하는 대중이 찾아왔을 때 기쁘게 맞아주는 일[대중청], ③ 아난다가 담마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질문을 허락하는 일[의심청], ④ 아난다가 없는 자리에서 설한 법문을 다시 청하면 기꺼이 말씀해주는 일[재청] 등이다. 지도자의 역할과 리더십의 발현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향상을 공동 모색하겠다는 아난다의 공공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4가지 원하지 않는 것(不願)은 비권력주의 또는 탈권위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① 붓다가 보시받은 옷을 아난다에게 주지 않는 일[의불원], ② 붓다가 공양받은 음식을 아난다에게 주지 않는 일[식불원], ③ 붓다가 거처하는 방사에서 아난다와 함께 지내지 않는 일[주불원], ④ 붓다만 초대받은 자리에는 아난다를 데리고 가지 않는 일[미동행] 등이다. 환치하면 의복은 권위와 견주며, 음식은 권력과 등치되고, 방사는 명예 또는 위엄의 표식이며, 미동행은 과시 내지 호가호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아난다가 비서실장에게 주어질 권위와 권력과 명예를 애초부터 아예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아난다는 이를 시자가 된 이후 평생 지켰다. 이처럼 아난다는 지행합일의 리더십을 발휘한, 교단사에서 붓다를 닮은 손꼽을 만한 지도자였다.

 

승가가 사회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전법포교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대중의 육체적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복지 · 의료시설의 확장도 중요하거니와, 정신적 고뇌를 치유해주는 일도 전법포교와 다르지 않을 텐데, 세상의 변화에는 도리어 둔감하기를 자처한다.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읽을 줄 알고, 교단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인식과 이해를 높여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공동의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통찰력과 예지력 높은 지도자가 간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개인의 꿈이 모여 조직의 비전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렇게 공유된 공동비전을 실현시키는 지도자를 우리는 훌륭하다고 찬탄하거니와,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다. 비전을 창출하고 공유하고 강화하고, 그래서 공동비전으로 확장시켜 마침내 실현시키는 일! 그 주인공이 바로 비전성 리더십을 지향하는 원력공유형 지도자이다. 전도선언과 사제 팔정도는 그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전도선언에 담긴 전법의 정신과 이념은 눈물겹다. 전법을 떠나는 목적이 오로지 이타행을 위해서다. 60명의 비구대중에게 길 위로 나설 것을 당부한 부처님 스스로 실천궁행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신뢰성과 훌륭함을 담보한다. 사성제는 바른 수행의 기준이 되는 인과의 가르침이거니와, 비전을 창출하고(고성제), 공유하고(집성제), 강화해(도성제), 마침내 실현시키는(멸성제) 원력공유형 리더십의 원리를 잘 제시해준다고 하겠다.

 

‘문제의식’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되듯이, 백 가지 지도자론이나 리더십의 제 유형은 그 논리에 머무는 것을 벗어나 현장에서 실천으로 옮겨졌을 때 진정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선사 조과도림(鳥窠道林)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대화로 유명한 칠불통계(七佛通誡)가 주는, ‘삼척동자 팔십 노인’ 운운의 교훈이 그것이거니와, 불교 리더십의 제 유형이 그러한 생명성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하춘생
동국대학교 사찰경영과정 주임교수. 동국대 불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한국불교학회 이사, 한국불교기자협회 회장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한국 근 · 현대 비구니의 문중 형성과 그 의의〉 등과 저서로 《깨달음의 꽃: 한국불교를 빛낸 근세 비구니 1, 2》 《현대불교사의 이해와 실천사상》 등 다수가 있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