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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의 시간과 죽림정사 / 권성훈
[79호] 2019년 09월 01일 (일)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평생교육원 시 창작반에 비구니 스님이 한 분 계신다. 5년 전부터 십여 명의 수강생과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는 스님은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의 ‘죽림정사’라는 조계종 산하의 아담한 사찰의 주지 스님이다. 바로 형석 스님. 스님은 내 수업 시간에 오셔서 절간의 풍경처럼 말없이 앉아서 가끔 한 번씩 수줍은 미소를 지을 뿐,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이상 조용히 앉아 계시다가,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목례만 하고 돌아가시는 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스님은 시 창작반 수강생들과 외식이 있는 날이면, 어디든지 마다치 않고 참석하셨다. 그때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말을 하기보단, 다른 분들의 단 한 마디의 말이라도 빼놓지 않고 듣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 물론 고기와 술은 드시지 않았지만, 분위기에 맞춰서 밥과 채소만을 공양했다. 그럴 때면 스님은 “교수님, 저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먼저 배려하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나는 다른 수강생과 자연스럽게 화합하려는 스님의 마음씀에 감사했고, 천생 ‘성직자’인 스님에 대한 믿음은 더해갔다.

기독교인인 나는 그런 스님의 언행을 수년간 지켜보면서 종교 없이 살아온 집사람을 스님의 사찰로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 진학과 자신의 직장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집사람은 스님을 통해 불교를 만나면서 조금씩 안정되는 듯, 어느 날부터 평안해 보였다. 이러한 스님은 나뿐만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분들께도 부처님오신날 자신의 사찰에 등 달기와 시주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잊지 않고 우리 가족 모두의 이름을 써서 대웅전에 등을 올리고 기도를 드린다는 말을, 우연히 선배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것은 미신이라고 단호하게 배워왔던 팽배한 기독교 기복 신앙의 영향 탓이었던지 애써 모른 척했다. 

어느 날 스님은 내가 외국인 학생들을 전담해서 한국문학 수업을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어린 학생들이 외국 나와서 고생한다고, 백설기 떡을 인원수에 맞춰서 보내주셨다. 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말랑말랑하게 식지 않은 온정이 느껴지는 새하얀 백설기를 곱씹으면서 어떻게 스님의 고마움에 보답을 해야 할까, 오히려 고민이 되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이 지난 다음 날이었던가, 주변에 친하게 지내던 분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망인은 내 고등학교 후배의 동생으로, 우리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마흔을 갓 넘긴 마음씨 착한 여자였다. 그녀에게는 슬하에 아이가 셋이 있었는데, 전남편과 불화로 이혼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전남편이 아이들을 양육했다. 언젠가 그녀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빨리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으면서 두 눈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 같은 것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처럼 새겨져 있는 듯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혼 후에 불면증에 시달리며 우울증 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카페를 즐겨 찾던 선배와 나는 그러한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서 웃고 있던 그녀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을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로 나눈다면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에서 우리 일상의 기억을 덮고 있는 기억이라는 것도.

그녀가 사망한 지 49일 되던 날 죽림정사에서 망인의 49재가 있었다. 법당 모퉁이에 깨끗한 정화수 한 그릇과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이 망인을 위해 차려졌다. 스님은 불경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망인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의 영혼을 위해 천도재를 곡진하게 올렸다.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그녀의 영혼을 위무하며 천상이 있다면 천상으로, 다음 생의 좋은 인연이 있다면 다음 생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숭고한 마음을 실어 염불과 기도, 그리고 간절하게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님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수줍음 많던 그런 학생이 아니었다. 

두 시간이나 정성을 다해서 이어지는 예불 속에서 나는 기도로써 망인이 다시 환생하여 좋은 곳에서 태어나는 꿈을 꾸며 명상에 잠겼다. 함께 참석했던 선배는 두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망인의 다음 생의 축복을 발원하면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방석에 흘러내리면서 스며든 땀방울 하나하나가 물방울 진주처럼 검게 빛나는 듯했다. 

스님은 49재를 마무리하면서 “망인이 가는 좋은 데는, 이처럼 좋은 마음으로 빌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거예요.”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이토록 짧았던 이번 생이 필요했을 것이다. ‘천도의 시간’을 지나 대웅전 밖 저녁 어스름으로 찾아오는 밤은 밤을 열면서 내게로 와, 그녀의 생각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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