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퇴직해 집에 주로 있는 나의 일과는 24시간 엄마를 돌보는 일이다. 24시간 마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나보다 컸던 엄마의 키는 내 어깨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고, 근육과 살은 빠져 뼈가 앙상하다. 눈은 흐릿하고 귀는 잘 안 들린다. 치아도 아랫니 앞 8개 외에는 전부 틀니라 자주 잇몸의 아픔을 호소한다. 검버섯이 얼굴과 팔다리 곳곳에서 돋아나고, 변비와 요실금으로 고통받는다. 발톱은 두꺼워지고 오므라들어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걷기도 힘들어한다. 기억력도 많이 감퇴했다. 숨은 늘 헐떡이고, 6년 전 온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성치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앉거나 누워 지낸다.

92세 엄마의 모습은 마치 곧 ‘부서질 수레’ 같아 그저 연민만을 자아내지만, 90여 년의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면 엄마를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두 겪은 산 증인’이라 불러도 될 듯싶다.      

엄마 ‘주운영’은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인 당시는 물론, 그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격변의 파도에 휩쓸리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해 왔다. 1945년 광복과 정부수립, 이어진 6 · 25전쟁, 엄마네 가족도 급하게 피난을 내려왔다가 아버지(나의 외할아버지)가 납북되는 고초를 겪으며 곤궁한 생활에 접어든다. 

엄마는 지난 70여 년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숱한 고난들을 극복하고 인내하는 삶을 이어왔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도 아니었고, 두드러지는 공익활동을 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필부(匹婦)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체가 대견하다. 

집안에서 움직일 때조차 보행보조기에 의존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엄마의 정신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또렷하고 매사 긍정적이며 반듯하다. 딸인 나에게조차 신세 지는 것을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고 시중들어 드릴 수 있는 것이 좋다.

늘 보던 모습인데도 어느 날 남다르게 다가오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는 평소 신문 읽기를 좋아하고 TV 뉴스를 즐겨 시청한다. 보통, 여자들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좋아하는 데 비해 엄마는 예전부터 뉴스를 선호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심이 가는 뉴스는 전후 맥락을 설명하고 코멘트까지 덧붙이는 등 신이 나서 설명을 하곤 했다. 매시간 뉴스를 챙겨본 덕분이다. 

지금도 오빠나 내가 옆에서 같이 뉴스를 보면 엄마는 간혹 궁금한 점을 묻곤 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고 유명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엄마가 참혹한 6 · 25전쟁과 전쟁 와중에 아버지가 납북당하는 불행한 일을 겪었기에 시사(時事)에 민감할 터였지만, 그 나잇대의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문 모습이다. 엄마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 내가 불교계 언론사에 적을 두고 기자생활을 오래 한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만일 엄마가 편안한 세월과 기회를 만나 국회의원이나 기자직을 선택했으면 아주 잘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건강하고 힘도 세며 부지런하게 집안 대소사를 척척 해내던 엄마가 이제는 옷 갈아입기, 세수, 앉았다 일어나기, 양말이나 신발 신기 등 소소한 일상사에도 벅차고 힘겨워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엄마의 변함없는 모습은 매일 하는 ‘독서’이다. 

백내장 수술 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책을 읽으라고 안과 의사 선생님이 주의를 주었건만, 92세인 지금도 재밌다고 느껴지면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몇 시간이고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박완서, 최인호 씨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은 거의 다 읽었을 뿐 아니라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재밌어한다. 소설, 역사서, 에세이, 여행서 등등, 오빠와 내가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는 대로 모두 읽는다. 

책 읽기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고 있으면 엄마가 쳐다본다. “재밌어요?” 물으면 “재밌어! 너도 읽어봐!” 하신다. 그때의 엄마 눈은 반짝반짝한다.

예전에는 나도 부모에게 불만이 많았다.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그저 안주하는 데 급급하고 자식들의 일에 소극적이고 방임하다시피 한 부모를 원망한 적이 없지 않았다. 특히 엄마는 진명여고를 나온, 당시로서는 고학력의 엘리트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활고에 허덕이고만 살았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한 역할을 별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90년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온 엄마가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누구에게나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의 좋은 성품과 생활 자세는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저절로 자식들에게 전파된 것 같다. 

가족, 특히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부모를 한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자식의 도우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인식을 버렸으면 한다. 

철부지 때는 모르겠으나 나이 들어서도 부모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고, 또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간혹 보게 된다. 노쇠하고 병약해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라, 불성을 지닌 소중한 한 인간으로서 부모 등 노인들을 바라보자. 나름대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지금까지 삶을 이어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성공적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92세의 엄마를 보며 생로병사의 엄중함과 인연의 지중함을 깨닫는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길에서 과욕과 오만은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이제는 아기처럼 되어버린 엄마를 내가 돌보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엄마는 내가 여생을 어떻게 회향해야 하는지 깨우침을 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선지식’이 아닐까 한다.

gslee210@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