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의 실천 수행적 면모를 밝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동아시아 불교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논서이다. 《기신론》이 등장한 6세기 중반 이래 수많은 동아시아 불교 사상가들은 이 논서에 주목해 왔고, 21세기에 이른 지금에도 이 논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기신론》이 이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불교 사상가들 및 학자들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상이한 근기를 대상으로 설해진 방대한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길지도 않은 이 한 권의 논서에 정연하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대승 이론들을 통합하는 《기신론》의 설명 방식은 많은 동아시아 불교사상가들의 주목을 받아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기신론》은 흔히 화합의 논서로 불린다. 즉, 중관(中觀)과 유식(唯識) 사상, 혹은 유식과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결합한 논서로 여겨지는 것이다. 《기신론》을 화합의 논서로 보는 이러한 입장은 원효(元曉, 617~686)와 법장(法藏, 643~712)과 같은 대표적 《기신론》 주석가들이 역점을 두어 피력한 내용이기도 하다. 

화쟁국사(和諍國師)로도 알려진 신라의 원효는 《기신론소(起信論疏)》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를 통해 당시 대립하고 있던 불교 이론들을 화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화엄승 법장 역시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에서 《기신론》을 중관과 유식의 이론적 대립을 극복한 가르침으로 해석하였다. 비록 세부적 해석의 방식과 입장에서는 상이점을 가지지만, 원효와 법장은 모두 《기신론》을 통해 당시 불교 이론들의 사상적 대립을 화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기신론》을 사상들 간의 화합을 나타내는 논서라고 했을 때, 이에 대한 논의가 정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기신론》의 중심부인 현시정의(現示正義) 부분이다. 《기신론》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정종분〉은 다시 논을 설한 이유를 논하는 인연분(因緣分), 논의 대의(大義), 즉 중심주제를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 대의를 상세히 해설하는 해석분(解釋分), 수행하는 방법을 설하는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수행을 권장하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으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중심주제를 해설하는 해석분 가운데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 현시정의(現示正義)이다. 현시정의에서는 일심(一心)과 이문(二門) 및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훈습설(熏習說) 등 《기신론》의 핵심적 이론들이 논의되고 있다. 비록 중관과 유식 혹은 유식과 여래장 사상의 결합이 제시되는 방식에 대해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지만, 현시정의에 논의된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관계, 그리고 심생멸문의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관계라는 구도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기신론》 본문의 중심 부분이자 논의 중심주제의 해설에 해당하는 현시정의는, 중심주제를 제시하고 있는 입의분과 함께 지금까지 출간된 많은 《기신론》 역해서들이 강조점을 두어온 부분이다. 《기신론》의 역주자들이 이 논의 중심주제가 설해진 부분에 관심을 둔 것은 당연할 일일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기신론》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준 원효나 법장의 《기신론》 주석들은 바로 이러한 《기신론》의 화합적 특질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원효나 법장은 자신들의 《기신론》 주석들을 통해 중관과 유식, 혹은 여래장 사상들 간에 형성되었던 당시의 이론적 대립의 해소를 의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사상들이 통합적인 관계하에 논의되고 있는 현시정의 부분은 《기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최초의 본격적인 《기신론》 강해서라고 할 수 있는 이기영 교수의 《대승기신론강의(상, 하)》(2004)는 1994년에서 1995년까지 진행된 저자의 《기신론》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시정의는 《기신론》의 본래의 올바른 의미를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제일 중요한 부분”(상권, 128쪽)이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이 강의는 현시정의까지만 다루어지고 그 이후는 생략되었다고 한다(상권, 6쪽).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 · 별기》(1991)라는 충실한 역주서를 출간한 은정희 교수는 원효의 《기신론》 주석서들을 바탕으로 하여 《대승기신론 강의》(2008)라는 비교적 짧은 단행본 기신론 역해서를 출판하였다. 저자는 원효의 해석에 따라서 《기신론》의 전체의 대전제는 바로 일심이문(一心二門)의 구조이며 바로 이 구조가 《기신론》이 중관과 유가학파의 지양, 종합으로 나타난 논서임을 입증한다고 한다(30쪽). 즉, 저자는 현시정의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원효가 《기신론》의 일심이문을 통해 중관과 유식사상의 결합을 시도했다고 보고 이를 《기신론》의 핵심 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시정의의 일심이문 구조를 통해 진(眞)과 속(俗)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사상을 전달한다고 본다(26쪽). 이 두 역해서들은 모두 중생심에 출세간적 진리와 세간적 현상이 모두 포섭되는 원리를 현시정의에 설해진 일심이문 구조를 중심으로 중관과 유식사상, 혹은 여래장 개념 등에 초점을 맞추어 《기신론》을 해석하고 있다.

한편 일심이문을 통한 이론적 혹은 교리적 측면을 중시하면서도 이 이론적 측면들과 수행적 측면의 연결을 시도하는 역해서들이 있다. 여래장 사상 연구에 꾸준히 정진해 온 이평래 교수는 그의 《기신론》 역해서인 《대승기신론 강설》(2014)에서 《기신론》을 여래장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알라야식을 받아들인 논서로 해석하면서, 해석분 가운데 현시정의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분량도 가장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27-29쪽). 하지만 다른 한편 저자는 《기신론》이 중생심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논서임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즉, 《기신론》의 목적은 여래장 사상을 전개하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기신(起信)’이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혹은 여래장임을 믿는다는 것이다(15-17쪽). 

불교를 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많지 않은 연구자 중 한 사람인 한자경 교수 또한 《기신론》의 수행적 혹은 실천적 측면을 거론하고 있다. 《대승기신론 강해》(2013)에서 저자는 《기신론》은 “현상세계 우주만물 일체 경계가 모두 다 진여의 발현이고 표현이라는 것을 논하는 논서”라고 하면서 《기신론》의 이론적 측면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이 논이 이러한 것을 논하는 이유는 바로 “진여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20쪽). 또한 이런 맥락에서 《대승기신론》의 대승을 존재론과 수행론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30-44쪽). 이 두 역해서는 한편으로는 각자 추출해 낸 《기신론》의 핵심 이론을 일심이문 구조를 중심으로 성실히 설명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론을 설하는 궁극적 목적이 기신에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정성본 스님의 역해서 《대승기신론: 대승일심의 발심수행론(상, 하)》(2019)은 앞서 언급한 기존의 역해서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역해서는 《기신론》을 수행론으로 접근하여 해석하고 있다. 기존 역해서들의 강조점이 《기신론》의 이론적 혹은 교리적 측면에 있었다고 한다면, 《대승기신론: 대승일심의 발심수행론》은 《기신론》의 수행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대승기신론》이란 “대승일심의 발심수행론”이라고 단언하면서 《대승기신론》을 일체중생이 본래 구족하고 있는 진여일심(眞如一心)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체계적 실천수행론으로 보고 있다(2-4쪽). 대승이란 가르침이나 교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일심(一心)을 가리키며, 이 일심은 여래장 혹은 진여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6-7쪽). ‘기신(起信)’의 ‘신(信)’은 바로 이러한 본래의 진여일심을 회복하는 발심수행의 의미라고 한다(10-11쪽). 다시 말해, 신(信)은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적 차원의 신심이 아니라(9-10쪽), 진여본심을 깨달아 체득한 확신이자 진여본심과 하나 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16쪽). 이런 점에서 역자는 《기신론》이 “대승일심의 신심(信心)을 일으키는 논서”(2쪽)로서 중생들이 “발심수행할 수 있도록 해설한 대승불교의 실천철학”(18쪽)이라고 한다. 

기신(起信), 즉 발심수행(發心修行)을 강조하는 정성본 스님의 《기신론》 해석은 《기신론》의 수행론 혹은 실천철학으로서 중요성을 여실히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역자는 “《대승기신론》을 저술하게 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심을 일으켜서 수행하도록 하는 수행신심분이라는 사실이다”(63-64쪽)라고 한다. 신심의 수행에 대해 설하고 있는 수행신심분을 중요시하는 이러한 관점은, 앞서 일심이문(一心二門) 등 《기신론》 대의의 교리적 해설 부분을 논의 핵심으로 보고 현시정의를 중요시하는 입장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이 역해서가 현시정의의 교리 부분을 간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역해서에서는 “현시정의에서 《대승기신론》의 근본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였”다고 하여(655쪽) 기신론의 근본 입장을 다루는 것이 바로 현시정의에서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기신론》 역해서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비록 《기신론》의 교리적 차원의 가르침을 논의 근본 입장으로 중요시한다 할지라도 이 가르침과 함께 주어지는 실천적 메시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신론》의 정밀하고 복잡한 이론체계에 매몰된 나머지 이 이론체계를 바탕으로 이후에 나아가야 할 실천적 수행 단계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보다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기신론》의 실천수행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이 역해서가 지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대승의 여러 문헌과 이론을 도입하여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천적인 수행서로 《기신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기신론》의 개념에 대한 단순한 용어 설명이나 텍스트 풀이로는 전달되지 않는 측면들을 수많은 대승경전 및 논서, 선어록(禪語錄) 등 폭넓은 불교 전적과 이론 등을 끌어들여 전달하려 한다. 예를 들어 《기신론》에서의 결정적 신심의 확립이라는 개념을 선(禪)의 안신입명(安身立命)이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해당한다고 해석하여 《기신론》을 선전통과 연결시킨다(17쪽). 

또한 중생의 일심법(一心法) 혹은 진여법(眞如法)이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시절인연에 따라서 여법하고 여실하게 실행함이 바로 선에서 말하는 자연법이(自然法爾)와도 같다고 하고, 물의 성질과 물의 작용을 예로 들어 자연법이의 진여법을 설명한다(50-51쪽). 이론적 혹은 문헌학적 정밀함이나 해석의 정확함보다는 《기신론》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여러 전통의 개념 및 비유 등을 폭넓게 활용한다는 것이 수행론적 관점에서는 큰 효율성을 가지는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효 스님은 《기신론소》에서 논의 핵심을 상세히 해설한 “해석분을 통해 믿음을 일으켰다면 반드시 나아가 닦아야 하니, 알기만 하고 실행함이 없으면 논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依釋起信 必應進修 有解無行 不合論意故)”라고 한다. 《기신론》에 설해진 정치한 이론체계는 상이한 근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각 차원에서 믿음을 일으키고, 이 일으킨 믿음을 닦아서 완전히 성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성본 스님의 《기신론》 역해서는 특히 범부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신(起信), 즉 발심수행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이를 촉구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이 역해서가 가지는 주요한 가치일 것이다. ■

 

이수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 박사(PhD). 연구논문으로 〈《大乘起信論》의 알라야식에 대한 大賢의 이해: 元曉와 法藏과의 비교〉 〈동아시아에서의 《대승기신론》 해석의 전개〉, “Redefining the ‘Dharma Characteristics School’ and East Asian Yogācāra Buddhism” 등 다수. 원효 1,400주년 기념 불교학술진흥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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