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불교와 현대사회>라는 조성택 교수의 발제문은, 불교사란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이자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역사이므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불교인들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불교를 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논문이라고 판단된다. 본 논평자는 그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논의를 풍부히 하고자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들을 제시해 본다.

1. 불교사란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라는 발제자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본 논평자는 다음과 같이 이를 한국불교사에 적용하고자 한다. 먼저 신라와 고려의 불교가 정권과의 우호적 관계 및 지식사회의 실질적 주도라는 점에서 ‘적극적 패러다임’(positive paradigm)의 역사였다면, 조선의 불교는 정권과 비우호적 관계에 놓여 지식사회를 주도하지 못한 채 명맥의 유지에 만족해야 했다는 점에서 ‘소극적 패러다임’(negative paradigm)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현대의 한국 불교는 새로운 의미의 적극적 패러다임(new positive paradigm) 불교가 되어야 하며, 이는 국가에 대한 합리적 비판 세력이 됨과 동시에 사회적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지식사회에서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2. 현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의미의 적극적 패러다임 불교(new positive paradigm Buddhism)는 대내적 방식과 대외적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대내적 방식이란 국가에 대한 합리적 비판 세력이 됨과 동시에 사회적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지식사회에서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또한 현대적 의미에서의 생활불교와 문화불교를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란 불교적 세계관과 이상적 가치에 맞추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제반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그에 대해 타당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적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지식사회에서의 주도권을 회복한다는 것은, 불교계가 80년대의 사회적 이슈인 민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주도하지 못하였으나 90년대에는 사회적 이슈인 환경 생태 문제를 선점 주도함으로써 한국 지식사회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였듯이,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포착하여 선도함으로써 지식사회에 활발하게 기여함과 동시에 불교의 사회화를 구현한다는 것을 말한다.

3. 새로운 의미의 적극적 패러다임의 불교가 전개되는 대외적 방식이란 한마디로 국제 포교를 의미한다. 구원이나 구제를 이상으로 삼는 종교가 포교를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있는 종교가 아니다. 지난 수천년 동안 포교와 전법을 위해 피와 정열을 바친 선배 불교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가 이 곳 한반도까지 전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안주하여 머물지 말 것(無住)을 핵심 가르침으로 하는 금강경을 소의 경전으로 삼는 불교계가 현재의 교세에 안주하여 이것의 기득권화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전법의 수레바퀴를 이 시대에 와서 멈추게 한다는 크나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발제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일종의 생활불교로서의 서구 불교의 융성은 이미 이 시대의 한 트랜드가 되었으며, 인도와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상당한 친연성이 있는 서양에서 불교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마치 인도와 중국이 만나 중국 불교라는 놀라운 화합물을 성취해냈던 것처럼, 우리 인류에게 많은 것을 기여할 것이라는 때이른 희망을 낳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서구와 마찬가지로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반 성공하였고 게다가 장기간의 공백기를 넘어 불교의 재구조화를 달성한 한국에서의 불교의 유산과 경험이야말로 서구 불교 융성의 진정한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이러한 한국 불교의 서구 전파는 그 과정에서 서구 불교의 특징인 일종의 생활불교와 문화불교를 이 땅에서 재구성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당연히 수반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생활불교란 신도 각자의 일상 속에 불교의 가르침과 규범이 세세하게 침투되어 실질적 의미에서 불교적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고, 문화불교란 각종의 문화 예술을 통해 불교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문명화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각종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생활불교와 문화불교는 서구와 한국 모두에게서 필요한 것이다.

이상에서 논한 새로운 의미의 적극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한국불교가 전개되는 두가지 방식, 즉 지식사회의 주도라는 대내적 방식과 국제적 포교 전법이라는 대외적 방식이야말로 불교의 사회화이자 동시에 사회의 불교화이기도 한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