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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벨일 없어야 도인이다
[78호] 2019년 06월 01일 (토) 지혜 만월산 명주사 주지

먼 산에 눈 녹고 앞뜰에 꽃망울 맺히니 새봄이다. 절 앞 얼었던 어성천이 풀리고 버들개지는 움을 틔운 지 오래됐다. 이맘때쯤이면 무문관에서 해제를 하고 나온 무산 사형님이 늘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내다. 잘 지냈나. 몸은 우떻고? 벨일 없으믄 됐다. 중은 벨일 없어야 도인이다.”

사형님은 늘 그랬다. 종문의 큰 어른임에도 병약하거나 못난 사람일수록 끔찍하게 챙겼다. “아래가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하고 송구스러워하면 “니는 참중이고 내는 가짜중 아이가?” 하며 무안까지 덮어주셨다. 

우리나라 불교에는 누구누구 하는 고승이 참 많았다. 나도 그중에는 몇 분을 모시고 배운 적이 있다. 그러나 스님처럼 품이 넓고 속이 깊은 분은 많지 않았다. 누구는 불교를 일러 ‘인간학’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에 대하여 관여하고 해결해주려는 종교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스님이야말로 그런 명제에 가장 합당하게 살았던 분이었다. 

 

언젠가 사형님이 넌지시 나의 공부를 시험한 적이 있었다. 스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니는 언제 출가했나?”

원래 사형님은 대처를 한 인월 스님 밑으로 출가한 분이었다. 나의 은사인 성준 화상 밑으로 입실한 분이어서 어려서 출가한 나의 내력은 잘 몰랐다. 그게 궁금해서 그러는 줄 알고 “저는 열 살 전후 은사스님이 동두천 자재암에 계실 때 그리로 출가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지혜 사제도 동진출가란 말이제?”

스님은 반가워하면서 이산교연(怡山皎然) 선사가 동진출가의 공덕을 찬탄한 발원문을 아느냐고 물었다. 

“알고말고요.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 바른 신심 굳게 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여/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 닦으리다(生逢中國 長遇明師 正信出家 童眞入道 六根通利 三業純化 不染世緣 常修梵行)……’ 아침마다 행선축원을 할 때 외우지 않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또 한마디 더 물었다.

“그런데 사제는 이 발원문을 쓴 사람이 이산교연인지 어떻게 아는가. 옛날 우리가 염불 배울 때 읽던 《불자지송》에는 이산혜연(怡山慧然)이라 돼 있지 않던가?”

“아, 그거 말씀인가요. 강당 사미반에서 배우는 《치문(緇門)》에 이 발원문이 실려 있는데 안진호 스님이 주석하기를 ‘이산연은 이산혜연이다’라고 해서 그때부터 이산혜연이 됐다 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요?”

“알았다. 지혜 사제가 이력종장(履歷宗匠)이라 해서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물어본 거야.”

그날부터 스님은 나를 인정해주셨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중노릇 잘하라고 걱정하고 챙겨주셨다. 

 

한번은 스님이 내가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쓰던 한계리 예술인촌 화실로 찾아오신 적이 있다. 마침 그때 나는 전시회에 내놓을 작품을 준비하느라 옷이며 얼굴에 물감을 묻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림은 몇 군데 더 손을 보면 완성될 단계였다. 점심 공양을 마치자 스님은 “지혜 수좌 그림 그리는 거 구경 좀 하자.”고 했다. 나는 다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붓을 놓았다. 그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이 한마디 했다.

“니는 선방 갈 필요 없다. 선방 수좌들도 이렇게 몰두해서 공부하는 사람 없다. 그림삼매에 빠져 잡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게 공부다.”

이후로 스님은 가끔 전화해서 그림은 잘 그리는지를 묻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선정(禪定) 중에 쓴 시를 들려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당신의 시를 읽고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도 했다. 그러마고 약속은 했는데 게을러서 지키지 못했다. 그 대신 지난 4월 스님의 1주기를 앞두고 스님 시 100여 편에 내 그림을 붙여 ‘말한 바 없이 말하고 들은 바 없이 듣다’는 제목을 달아 시화일률집을 냈다. 그렇게라도 해놓고 나니 스님을 여읜 아쉬움이 조금 달래지는 것 같았다. 

 

스님은 ‘중은 벨일 없어야 도인’이라 했지만, 한편으로는 스님처럼 ‘벨일’이 많았던 분도 드물지 싶다. 그렇다고 스님이 도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스님은 벨일을 벨일이 아닌 것처럼 행하신 분이다. 

그중 하나가 스님의 씀씀이다. 스님은 절돈 쓰는 데 선수라 할 정도로 ‘펑펑’ 쓰던 분으로 유명하다.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만해축전을 비롯해 《불교평론》과 《유심》을 후원한 것은 스님의 큰마음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사업이었다. 문인단체가 어렵다거나 하면 사업계획을 알아보고 후원해주었다. 또 수많은 사람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그러니 있는 게 한정이었다. 절에서는 이런저런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작심하고’ 스님에게 한마디 올렸다. ‘절돈 함부로 쓴다는 소문이 들리니 조금 자제하시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날 스님도 ‘작심하고’ 나를 나무랐다.

“그런 소리 말아라. 불교가 세상으로부터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크노.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시주한 돈으로 먹고사는 것 아니가. 그런데 중들은 그 은혜를 어떻게 갚고 있노? 만약 우리가 시주만 받고 은혜는 갚지 못하면 그 죄가 하늘을 덮고도 남는다. 아무리 수행을 잘하믄 뭐하노. 아침마다 외우는 장엄염불에도 오종대은(편하게 살게 해주는 국가의 은혜, 잘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 바르게 가르쳐준 스승의 은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이웃의 은혜, 절차탁마하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의 은혜)을 명심하고 잊지 말라 하지 않더냐? 그 은혜를 갚자면 우리가 가진 것을 골수까지 다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 사업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가 받은 은혜를 세상에 회향하기 위해 설악산이 하는 거다. 그런데 니들은 움켜쥐려고만 할 뿐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나누어야 한다. 옛날부터 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객승에게는 여비를 줬다. 이렇게 나누는 것이 불교다. 내 말 틀렸나?”

한마디도 틀리지 않는 맞는 말씀이었다. 나는 결국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설악산 신흥사와 양양 낙산사 등에서는 무려 10여 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다 스님의 보은론과 회향의 가르침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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