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지지탱착월(珊瑚枝枝撐着月)

1990년을 전후하여 10여 년간 강원도 강릉포교당에서 대학생불교연합회와 강릉불교청년회에서 지도법사로 경전 강의도 하고 대중방에서 선 수련도 같이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반야심경강론》이란 경전 해설서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어느 여름, 불자 회원들과 함께 낙산사에서 수련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친분이 있던 주지 마근 스님에게 얼마 전 발간된 동인지를 회주 설악 큰스님에게 전해 드리라고 부탁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 큰스님을 못 뵙고 하산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설악 큰스님으로부터 서신을 받게 되었고, 봉투 속에는 “산호가지마다 달이 열렸네(珊瑚枝枝撐着月) 송준영 거사 창하(窓下), 경진년 세일(歲日) 설악산 무산오현”이라는 신년 휘호를 받았습니다.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었지만, 속세에 떠밀려 큰스님께 죄를 지은 것 같았습니다.

큰스님을 독대하다 

2008년 계간 《시와세계》가 서울 종로에 새 집을 마련했습니다. 가까이 있던 월간 《현대시학》 주간인 경산 정진규 선생님과 자주 만나던 시절이었고, 제가 《현대시학》에 〈선, 발가숭이어록〉을 연재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설악 스님께서 현대시학 사무실에 들러 담화 중 저의 연재 작품이 거론되었고,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으니 신사동 선불선원으로 와 달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스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드리려 하니 맞절을 하셔서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갑자기 벽력같은 목소리로 “월조(越祖)라 한다는데 무엇을 뛰어넘었소?” 하셔서, 나는 합장하는 자세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뭐, 그 자리는 그렇게 서 있는 게 아니야. 합장도 웃음도 침묵도 아니야, 뭐가 월조인고?” 하고 재차 다그치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스님 앞에 있는 탁자를 펄떡 뛰어넘으며, 큰 소리로 “월―조” 하고 소리쳤습니다.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그래, 월조 맞네.” 하셨습니다.    

설악 스님과 이승훈 시인 그리고 이상시문학상  

이승훈 시인이 춘천교육대학 교수로 첫 부임할 무렵 저는 졸업반이었습니다. 그 이후 2001년 만해축전에서 오랜만에 선생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03년부터 이승훈 선생과 나는 매주 목요일 만나 6년 가까운 세월을, 선생께서는 프로이트, 라캉, 데리다에 대하여, 나는 선시와 선사상에 대하여 서로 토론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 ‘선과 아방가르드의 회통’이라는 취지로 계간지 《시와세계》를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설악 스님을 독대하고 한 달여 뒤 이승훈 선생을 설악 스님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승훈 선생은 방장(方丈)이라는 법명을 받고 스님의 유발상좌가 되었습니다. 문단 최고의 포스트모더니스트에서 선시론을 펼치면서 새로운 현대선시를 쓰게 된 이승훈 시인의 배경에는, 스님께서 스승으로, 그림자가 없는 그림자로 계셨습니다.

2008년 봄, 스님께서 계간 《시와세계》에서 ‘이상시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해 보라고 직접 문학상 명칭과 심사위원도 선정해 주셨습니다. 이승훈 시인이 첫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스님의 은혜로 ‘이상시문학상’은 어느덧 올해로 12회를 맞이하였고, 명성 있는 문학상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임진년, 2012년 12월 전인(傳人)으로 “산진수회처 유취현당 월조 송준영 장실(山盡水廻處 有醉玄堂 越祖 宋俊永 丈室) 설악무산 게(雪嶽霧山 偈)”를 수하고도 못난 짓만 하는 학인으로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스님, 잊지 못합니다. 저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신 혜은을 잊지 못합니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큰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제가 보았던 이적을 적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원적에 드신 5월 26일로부터 사흘 후, 건봉사 연화대 다비장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운구되어 다비 의식을 하기 직전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연화대에 드실 때,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고 외치자 쏟아지던 비가 뚝 그치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2,000여 대중은 모두 합장을 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소리 높여 염송했습니다.

스님이 안 계시는 그해 8월, 만해축전 행사는 고적하고 허황하였습니다. 마침 백담사 삼조 스님이 만해사 법당에 스님의 재상을 차려놓아 여러 문인이 모여 생전에 스님과 있었던 각자의 얘기를 하며 영정 앞에 나가서 향을 피워 올렸습니다. 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본관 4층에서 여러 문인이 스님을 모시던 얘기를 하며 밤을 새웠는데, 새벽녘에 류흔 시인이 새벽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동하고 돌아오다가 이경철 시인을 만나 둘이서 만해사 법당에 스님 영정에 참배하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스님 영정 앞 방석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스님을 친견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문을 열어놓자 뱀이 슬며시 나갔다.’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경철 시인 없이 류 시인 혼자 봤더라면 거짓말이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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