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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시나가르의 살라나무 숲. 나무마다 때아니게 일찍 살라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다섯 개의 꽃잎은 촘촘히 맺혀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길쭉한 잎은 말의 귀를 닮아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부터 먼저 흔들렸고, 마치 수천 마리의 말이 무리를 지어 들판을 달리는 듯했다. 비구들은 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살라 꽃잎은 몇 번 흔들리다 문득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엄한 꽃비 속에서 샤카무니 붓다가 열반했다.

말라 국의 수장들은 고시르샤 찬다나 향으로 관을 향기롭게 했다. 찬다카 비구는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백 유순 떨어진 라자그리하의 죽림정사에서 달려왔다. 노비구에게서 피로한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꿈에서 붓다의 열반을 예견해 서둘러 이곳으로 왔다고 비구들에게 자랑삼아 떠벌렸다. 그는 다비가 늦어짐을 공공연하게 탓했다. 그러나 아니룻다 존자는 붓다의 상수 제자인 마하 카사파 존자가 이곳에 아직 도착하지 않음을 이유로 들어, 말라 국의 수장들에게 다비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찬다카 비구에게는 끝내 못마땅했다.

찬다카 비구는 그날 저녁 아난다 존자의 방으로 몰래 찾아들었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을 여읜 슬픔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출가할 때까지 붓다를 모시고, 그 이후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출가한 찬다카 비구를 보자, 더욱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난다 존자여. 나도 오늘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구나. 세존의 육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와 이별할 줄은 몰랐다.”

어깨를 허물고 흐느끼던 아난다 존자는 찬다카 비구의 카필라바스투 말투에 고개를 들었다. 붓다와 오랫동안 인연을 함께해 온 노비구의 모습은 그 순간 그의 눈에 세존의 모습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찬다카 비구는 늘 세존과 친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해 왔다. 항상 세존의 근심만 끼쳤다. 찬다카 비구는 비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샤카족의 운명은 코살라국에 의해 짓밟혔지만,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던 카필라바스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곳은 우리의 고향이다. 그곳이 있었기에 우리 승가는 생겨날 수 있었다. 위대한 스승 샤카무니 붓다가 그곳의 왕족이었고, 그를 따라 왕족과 백성들이 출가해 승단을 이끌어 왔다. 나는 이제 이 승가를 샤카족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난다 존자는 찬다카 비구가 왜 험한 길을 서둘러 왔는지 그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음모였다. 세존의 입멸 후 승가의 세력을 잡기 위해서였다. 아난다 존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존께서는 올바른 법에는 브라만도, 수드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성도 출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신분의 귀천과 남녀의 차별을 떠났을진대, 하물며 자신의 나라인들 어찌 구별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세존께서는 카필라성을 떠나면서 모국에 대한 모든 애착을 끊었습니다.”

“그건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승가가 한때 잘못된 길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외도의 무리에서 승가에 귀의한 자가 붓다의 상수로서 군림하며, 붓다의 진리를 왜곡하고 떠돌아다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아난다 존자는 정신이 아연할 뿐이었다. 찬다카 비구가 비난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 존자였다. 그들은 세존의 커다란 신임을 얻었지만, 찬다카 비구는 그들을 비방하고 다녔다.

“외도의 무리에서 온 자들은 세존의 밝은 눈을 가리고, 세존과 핏줄이 가까운 데바닷타 왕자 사이를 이간질했다. 그 이후로 우리 샤카족은 교단 내에서 오히려 따돌림을 받아 왔다. 우리의 고향, 카필라바스투가 적의 손에 무참하게 스러질 때도 우리는 잠자코 있어야 했다. 교단은 우리 샤카족을 위해 아무런 배려도 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세존의 법을 핑계로, 우리 샤카족을 무시해 왔다. 이제 세존의 진정한 법을 좇기 위해 샤카족이 나서야 할 것이다. 아난다 존자여, 그대가 앞장서다오. 그러면 내가 바로 뒤를 따르겠다. 그리고 우리 샤카족 출신인 우팔리 · 아니룻다 · 라훌라 존자도 모두 아난다를 도울 것이다.”

아난다 존자는 자신의 형 데바닷타가 새로 온 비구 5백 명을 설득해 가야쉬르샤에 가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처럼 찬다카 비구가 이제 샤카족을 내세워 은밀한 음모를 꾀하고 있었다. 아난다 존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찬다카 비구가 다비식을 서두르는 것도 다른 상수 제자들이 쿠시나가라로 오기 전 승가를 샤카족의 손아귀에 두려는 것이었다. 찬다카 비구는 아난다 존자의 침묵에 적이 실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존자는 늙은이 마하 카사파를 후계자로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는 세존의 곁을 떠나 생활해 왔으며, 늘 이상한 행동으로 비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네. 세존이 한때 다자탑에서 그에게 바로 옆자리를 내어주기도 했지만, 이내 그를 잊어버렸네. 만약 마하 카사파가 이 승가를 이끌어 갈 경우를 생각해 보게나. 그가 세존의 법에 대해 무엇을 알겠나? 우리 샤카족을 무시하고 자기를 따르는 라자그리하파 무리를 중심으로 마음대로 승가를 이끌어 갈 걸세. 그러면 승가는 더욱 기울어져 갈 뿐일세. 잘 생각해 보게나. 붓다의 법을 제대로 아는 자가 이 승가를 이끌어 가야 하지 않겠나?”

찬다카 비구는 설득하려 했지만, 아난다 존자는 끝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게.”

밖을 나온 찬다카 비구는 곧바로 우팔리 존자를 찾아갔다. 아난다 존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팔리 존자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는 세존의 계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교단 내 비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 것은 우팔리 존자 역시 샤카족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팔리 존자는 이발사였는데, 둘 다 천한 신분을 딛고 출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팔리 존자 역시 찬다카 비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우팔리 존자는 찬다카 비구가 태어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팔리 존자는 옛날 이발사로 일할 때 찬다카 비구에 대해 이와 같이 들었다.

 

2.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던 날이었다. 카필라성의 사람들은 왕비 마야 부인이 태자를 낳기 위해 친정을 향해 떠난 동쪽 방향에서 하얀 햇무리가 새벽부터 걸렸다고 기억했다. 그곳이 룸비니 동산 쪽이었다고 사람들은 훗날 이야기했다. 

햇무리 사이로 태양이 떠올랐고, 맨 먼저 왕궁을 비추던 햇살은 점점 부챗살처럼 퍼져 카필라바스투의 한 마구간에도 스며들었다. 

이 마구간에 한 사문(沙門)이 탁발을 하러 왔다. 마구간에서 말의 여물을 주고 나온 여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건초의 풀 비린내가 여자의 몸에서 잔뜩 묻어나왔다. 마구간에서는 말들이 푸르릉거리며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배는 만삭이었다. 마음은 있어도, 보시를 하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사문은 발우를 거두며 말했다. 

“이 나라에 성인(聖人)이 태어날 것입니다. 오늘을 축복하소서!”

사문은 합장을 한 후 뒤로 돌아서 가려 했는데, 여자는 단 한마디의 말로 그를 돌려세웠다.

“사문이시여. 저의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그 성인의 축복이 내려질까요?”

“물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아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는 사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간곡한 요청을 했다.  

“사문이시여, 이런 누추한 곳에서 태어날 아이에게도 이름을 내려줄 수 있을까요?”

사문은 그윽한 눈으로 여자의 불룩한 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여자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대답을 해주었다. 

“성인과 같은 날 태어나는 것도 전생의 수많은 공덕이 쌓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이름은 찬다카로 하시지요.”

그녀는 자신의 배를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아직 산달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사문은 배 속의 아이가 오늘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녀는 사문이 말한 ‘찬다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사문이 궁을 향해 가자마자 그녀의 몸에서는 바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마부인 남편은 산달이 다 된 마야 부인을 친정으로 모셔가기 위해 며칠 전 카필라성을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마구간의 건초더미로 갔다. 한참의 고통 끝에 ‘으앙’ 하고 우는 한 아이를 품 안에 잡을 수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며칠 후에야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보았다.  

“룸비니 동산에서 왕자님이 태어나셨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보게 된 것보다 태자의 탄생을 더 기뻐했다. 

“그럼, 그날 우리 집을 찾아온 수행자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그녀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채며 마구간에 탁발하러 온 그 사문의 말을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그 수행자가 바로 아시타 선인이군. 그분이 어제 성안으로 숫도다나 전하를 찾아와서는 왕자가 태평성대를 이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아니면, 깨달음을 크게 이룰 붓다가 될 거라고 예언했대. 그래서 전하께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그의 아버지는 태자와 같은 날 태어난 찬다카를 내려다보며, 태자처럼 그가 씩씩하게 자라나기를 비슈누 신께 기도했다. 그의 아버지는 성안의 고위 관리에게 ‘찬다카’란 이름의 뜻을 물어보았다. ‘찬다카’는 행복과 기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했다.

 

3.

샤카무니 붓다와 같은 날 태어난 찬다카는 어릴 때부터 마부 일을 배워야 했다. 그는 새벽녘에 일어나 말의 여물을 준비해야 했으며, 아침을 먹고 난 뒤에는 말 등 위에 안장을 얹어야 했다. 어떨 때는 말 위에 짐을 실어야 했다. 오줌과 똥으로 더러운 마구간을 청소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에 비해 싯다르타 태자는 숫도다나왕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다. 장차 카필라국을 이끌어 가야 할 태자이기도 했지만,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기에 왕의 애정은 각별하였다. 왕은 연못을 마련해 주었고 여러 가지 연꽃을 심었다. 또 전단향과 의복을 베나레스로부터 운반해 왔다. 그의 곁에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가 늘 그를 돌보아 주고 있었다. 

찬다카가 열세 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에게 태자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또래에게 일을 맡기면 무엇보다 태자를 편안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찬다카도 아버지처럼 능히 말을 부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찬다카는 먼발치에서만 보던 태자를 가까이 모실 수 있게 됐다. 태자의 성품은 온화했고, 천한 신분의 찬다카에게도 깍듯이 대했다. 태자의 말인 칸타카는 찬다카의 손에서 정결하게 손질되었다. 그래서 칸타카의 흰 털은 늘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 있었다. 

태자는 칸타카와 함께 노는 것을 즐겼다. 그 모습을 보고 찬다카는 태자가 부러웠다. 자신은 새벽부터 밤까지 칸타카를 보살피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태자는 자신이 여물을 주고 손질해 놓은 말을 데리고 놀기에 바쁘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고, 누구는 왜 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야만 하나?’

찬다카는 하늘을 원망했다. 태자는 우발라꽃과 파두마꽃, 구몰두꽃, 분타리꽃 등이 화려하게 피어난 궁전의 뜰에서 여유롭게 거닐었는데, 자신도 아무런 일 없이 하루 종일 놀고 싶었다.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까?’

찬다카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 맴돌았다. 어느 날 태자의 허락을 받고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태자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찬다카야, 성 밖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니? 여기처럼 꽃도 피어 있고, 연못도 있니?”

“태자님, 성 밖의 사람들은 꽃을 가꿀 시간도, 연못을 구경할 시간도 없답니다. 오로지 먹고살기에 바쁠 뿐입니다.”

찬다카는 태자의 견문이 좁음을 속으로 탓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태자는 왕의 엄명으로 과보호 속에 자랐다. 그것이 찬다카에게는 늘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찬다카는 바깥의 일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왕은 성 밖의 일을 태자에게 전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해 놓았다. 

찬다카는 태자가 성 밖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함이 존재하고,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병의 고통스러움이 존재했다. 찬다카는 그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찬다카는 자신과 같은 하층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태자가 어떤 식으로든 느껴봐야 한다고 믿었다. 

 

4.

샤카무니 붓다의 다비가 끝난 후에도 비구들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비구는 살라나무 숲을 떠나지 않고 흐느꼈고, 어떤 비구는 울부짖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찬다카 비구였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샤카무니 붓다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의 옆에 있었다. 나는 씨를 뿌리는 의식이 있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날 붓다는 다른 왕자들과 함께 들로 나갔다. 나도 백마 칸타카의 고삐를 잡고 태자를 따라갔다. 왕자들은 그늘에 앉아 농부가 소에 보습을 매어 밭을 가는 보고 있었다. 나는 소가 지나가 뒤집힌 땅으로 붓다를 직접 데리고 갔다. 벌레들이 기어 나왔는데, 새들이 날아와 그 벌레들을 쪼아먹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태자님, 저것 좀 보세요.’ 나는 새가 벌레를 죽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붓다에게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는 땅에서도 고통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는 미물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붓다는 칸타카의 등에서 내려 그 모습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때였다. 벌레를 잡아먹은 새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순간, 그만 독수리에게 잡아채여 먹히고 말았다. 붓다는 충격에 빠져 잠부나무 그늘에 한나절 동안 망연히 앉아 있었다. 이것이 붓다의 첫 사색이었다. 그 죽음을 지켜보고 붓다는 깨달음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래서 오늘의 붓다가 있었다.” 

누군가 찬다카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찬다카 비구여! 저는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진정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알고자 출가를 했습니다. 샤카무니 붓다도 이제 세상의 인연을 다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리 속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마하 카사파 존자는 붓다의 열반 소식을 처음 듣던 때를 기억했다. 그때 수바타라는 비구는 까다로운 계율만 강조하던 붓다에게서 드디어 해방되었다면서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마하 카사파 존자는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얼른 수습해야 한다고 느꼈다. 승가는 아직도 붓다의 열반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전에 그들은 붓다의 육신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여지없이 허물어진 지금 비구들의 동요는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졌다. 찬다카는 젊은 비구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 승가가 풀어야 할 숙제는 바로 삶과 죽음이다. 이 생사 문제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것, 그것만이 승가가 나가야 할 길이다.”

마하 카사파는 이 광경을 마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찬다카 비구가 과연 세존의 진정한 뜻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존께서는 죽음에 관한 논의는 우리가 수행하는 데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역설했다. 사후 세계에 대해 14무기(十四無記)라며 대답을 거부하셨다. 대중들은 말룽카풋다 비구를 아는지 모르겠구나? 그는 늘 ‘세상은 영원한가, 정말로 무상한 것인가, 이 세상의 끝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세존께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알고 싶습니다. 육신이 썩어 들어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란 존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었다. ‘독화살을 맞은 이가 그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 왔는지, 무슨 나무로 돼 있는지, 독의 성분이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우선 그 화살을 뽑아야 한다. 수행도 이와 같은 것이다.’”

조금 전 찬다카 비구에게 질문한 젊은 비구가 나서 마하 카사파 존자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만일 무상하다는 생각을 여의었다면 지금 열반에 드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량 억 천만의 전생에 이미 성불했고 금생에 다시 성불했는데, 왜 무상하다는 세상의 법칙에 꼼짝하지 못하고 끌려 열반에 이르게 됐습니까?”

마하 카사파 존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 비구를 바라보았다.

“우리 비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무량겁 전에 성불하신 샤카무니 붓다라 하더라도 금생에 태어나서는 다시 수행의 과정을 밟아서 붓다가 되어야 한다. 붓다는 다른 모든 중생이 그러하듯이 육신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길을 걸었다. 그래야만 붓다나 중생이 오랜 겁 전에 성불하신 법신의 붓다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고 그 법신 붓다와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의 진정한 몸은 육신을 떠나서 있다. 과거의 모든 붓다들이 열반에 들었던 것과 같이 샤카무니 붓다도 그렇게 열반에 든 것이다.”

마하 카사파 존자의 말이 끝나자, 비구들은 마치 생전의 세존을 대한 듯 경배하기 시작했다. 비구들로서는 존자의 말이 곧 세존의 말씀처럼 여겨졌다. 붓다의 상수 제자인 아니룻다 · 마하 카타야나 · 우팔리 존자는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붓다의 열반 이후 이제 겨우 비구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여전히 마하 카사파 존자에 대한 시기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5.

들에 갔다 온 후 태자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다른 왕자들과의 놀이에도 끼지 않았고, 무술을 닦는 일 이외에는 그늘에 앉아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숫도다나왕은 태자의 심적 변화를 눈치챘다. 아시타 선인의 예언처럼 태자가 전륜성왕이 되길 바랐지만, 혹시 그 예언 중의 하나인 붓다가 되기 위해 출가할까, 우려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 늙어버린 자신의 뒤를 이어 카필라성을 지킬 사람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숫도다나왕은 태자가 카필라국을 강성하게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카필라국은 주변의 강대국 코살라국과 마가다국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지금도 카필라국은 인근 코살라국에 매년 예의를 갖추고 공물을 보내야 했다. 태자 역시 앞으로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찬다카야, 너는 코살라국에 가 보았다고 했지. 거기는 어때. 우리나라보다 좋아?”

“네, 태자님.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는 우리나라보다 땅은 거칠지만, 주변 국가로부터 들어오는 온갖 곡식과 물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만큼 넘쳐 납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성마다 그곳을 지키는 무장 병사들이 무기를 갖추고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 비해 너무나 강성한 국가입니다.”

찬다카는 카필라국은 코살라국에 의해 언젠가는 멸망하고 말 것이란 사실을 내다보았다. 결국에는 이 성도 한 줌의 재처럼 스러지리라 예감했다. 찬다카의 그 말을 들으면서, 태자는 더욱 동요했다. 성안의 생활이 가식이라는 것을 그는 점차 알게 됐다. 그럴수록 성 밖의 고통스러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해졌다. 이런 태자의 모습을 본 왕은 태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를 야소다라와 결혼하게 했다. 그러나 결혼 역시 태자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왕은 우기와 건기 그리고 겨울의 기후에 적합한 각각의 궁전을 지어 태자가 그곳에서 화려한 생활을 보내도록 했다. 매일 향연을 열어 태자를 즐겁게 하도록 했다.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왕은 사람들을 시켜 태자가 지나가는 길에 향유를 뿌리고, 파초나무로 장엄하게 했다. 그리고 시체나 병든 자, 늙은이 등이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찬다카는 동문(東門)을 나와 동산 숲으로 가는 큰길 대신, 골목길을 돌아 태자를 인도해서 갔다. 그는 태자에게 성 밖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 길에서 태자는 허리가 구부러지고, 이는 모두 빠졌으며, 얼굴이 온통 주름진 사람을 보았다. 태자는 찬다카에게 얼른 궁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후 태자는 더욱 침울해졌다. 그러자 안달이 난 왕은 그에게 동산을 다녀올 것을 권유했다. 이번은 남쪽 문이었다. 찬타카는 태자를 또 골목길로 인도했고, 거기에서 태자는 병자를 보고는 궁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며칠 후 찬다카는 다시 태자와 함께 서문을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시체가 있었고 그 옆에는 가족들이 머리를 풀고 울부짖었다.

“찬다카야. 세간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친한 이들과 헤어져 더 이상 다시 보지 못하고 죽음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그 죽음의 법을 진정 초월할 수 없단 말이냐. 정말 세상이란 너무나 무상하구나.”

태자는 비통한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야 찬다카는 마음속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태자는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찬다카는 자신의 마음속에 더 큰 야망이 싹트고 있음을 깨달았다. 태자가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고 카필라국을 코살라국처럼 강성하게 만든다면, 자신은 태자의 말인 칸타카를 이끌고 측근으로서 온 나라를 호령하고 싶었다. 그의 눈앞에는 코살라국을 휩쓰는 태자를 자신이 말로 이끄는 모습이 펼쳐졌다. 

어느 날 태자는 찬다카와 북문으로 말을 몰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손에는 발우를 든 채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사문이라 하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사문이라 하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사람 또한 병들고 늙어 죽어 가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사람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 고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태자는 말에서 내려 그 사람 앞에 손을 모아 인사했다. 궁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 태자는 라훌라라는 아들을 얻었지만, 더욱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태자는 사색에 빠져들었다. 찬다카는 그때 그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6.

마하 카사파 존자는 비구들을 이끌고 라자그리하로 떠났다. 교법을 결집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붓다의 법을 외호해 온 마가다국의 아잣타삿투 왕이 있었다. 그런데 찬다카 비구와 아난다 존자 등의 일행은 쿠시나가르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 아난다 존자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법 결집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일행은 그곳에 남아 7일간 부처님의 사리에 공양하고 기원정사에 들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우샴비에 있는 정사로 찾아들었다. 그곳에는 아난다 존자를 따르는 비구들이 있었다. 아난다 존자는 그들을 데리고 교법을 결집한다는 라자그리하로 갈 계획이었다.

어차피 교법을 결집하기로 결정한 지금, 거기에서 제외되는 것 보다, 거기에 참여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비구들은 카우샴비의 곤다 동산에 모였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찬다카 비구에게 말했다. 

“찬타카 비구여, 그대는 세존께서 살아 계실 때,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윤회한다면 과연 그 주체는 누구인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에 불과하다고 누차 강조하셨는데, 거기에 집착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분명히 쿠시나가르에서 비구들을 삿된 길로 이끎으로써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대가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그대를 라자그리하로 데리고 가지 못합니다.”

아난다 존자는 찬다카 비구와 같이 다닌다면 마하 카사파 존자 일행으로부터 비난만 살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자시여. 그대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나는 세존이 어릴 때부터 열반하실 때까지 곁에서 모셔 온 사람이다.” 

“세존께서 열반하기 전에 여러 비구에게 말씀했습니다. 찬다카 비구께서 계속 계율을 어겨 죄를 범하면 그에게 브라흐마단다의 벌칙을 적용하라고 했습니다.”

브라흐마단다는 죄를 범한 수행자에게 교단의 어느 누구도 말을 걸어서는 안 되며 훈계나 가르침을 주어서도 안 된다는 무서운 처벌이었다. 세존은 이미 자신의 입멸 후 찬다카 비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미리 이야기해 둔 것이었다. 찬다카 비구에게는 아난다 존자의 말이 청천벽력과 같았다. 세존께서 그 말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다른 비구들도 나서서 세존의 말을 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일행은 그곳을 떠나버렸다. 

찬다카 비구는 이제 혼자가 된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가혹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함으로써, 샤카족의 명예를 회복하려 함으로써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죽음의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승가의 상수로 다시 우뚝 서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마지막 여생 동안 이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카우샴비의 한 동굴로 들어갔다. 그는 이 문제를 풀기 전에는 죽어도 다시 바깥의 빛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7.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궁궐 안에는 향연을 마친 사람들이 지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찬다카 역시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그를 깨웠다. 태자였다.

“칸타카에 안장을 얹어 빨리 이곳으로 오너라. 아무도 눈치를 못 채게 하라.”

찬다카는 그 말을 듣고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다. 그는 태자가 오늘 성 밖을 벗어나 사문이 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만약 태자의 말대로 성 밖으로 몰래 빠져나간다면 나중에 왕으로부터 큰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태자님, 이 밤중에 도대체 어디로 가시려 하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찬다카는 잠든 사람들이 깨도록 일부러 큰 소리로 태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에 깨지 않았다. 태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지금 출가를 하려 한다.”

그 말에 찬다카는 무릎을 꿇고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님, 어찌 높은 자리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가려 합니까. 백성들은 태자님께서 전륜성왕이 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찬다카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전륜성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법을 찾아 나서려 한다.” 

찬다카는 더 이상 태자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태자가 칸타카를 타고 성문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성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이슬이 촉촉하게 젖어 든 땅바닥은 조그만 소리도 흡수해 버렸다. 찬다카는 일부러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에게 태자의 행보를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찬다카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나는 알았다. 우리의 육신은 점차 문드러져 갈 것이다. 단지 이 순간에 만족해야 할 뿐이다. 굶주린 채로 죽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휑한 눈, 그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의 육신을 생각해 보라. 영혼이 없어져 버린 저 시체들은 어떠한가. 찬다카여, 나는 이제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을 깨달으리라. 그래서 사람들이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없애도록 하겠노라.”

그는 고개를 돌려 카필라성을 보면서 자신의 굳센 의지를 다지듯 입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성을 향해 사자후를 토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이 몸을 던져 큰 바위 벼랑에 떨어지거나 독약을 먹고 목숨을 바칠지언정, 중생들을 생사의 바다에서 해탈시키지 못한다면 카필라성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동녘이 채 밝기 전에 그들은 12유순을 나아가 비사리국 고행림으로 갔다. 그곳에서 태자는 마니 보석과 영락을 풀어 찬다카에게 주며, 궁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찬다카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는 성으로 돌아가서 아버님에게 이렇게 전하라. 나는 이제 근심과 괴로움을 떠나고자 세속을 버리고 출가했으니, 원컨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버리시라고.”

태자는 울고 있던 찬다카의 어깨를 두드렸다. 찬다카는 더 이상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태자님, 그렇다면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저는 여기에 태자님을 두고 가지 못하겠습니다.”

태자는 고개를 저으며, 보검을 찬다카에게 넘겨주고는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사냥꾼에게 자신의 옷을 보시하였다. 사냥꾼이 대신 준 헌 옷으로 갈아입고 고행림으로 들어갔다.

태자가 숲속으로 떠난 후 찬다카는 들판에 혼자 서서 마치 바람이 파초잎을 찢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그는 왕에게서 큰 벌을 받을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그는 태자를 성 밖으로 데리고 가 세상을 보여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또한 왕의 아들로 태어나 자기 멋대로 출가해 버린 태자를 원망했다. 

‘내가 태자였더라면 카필라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을 텐데!’

찬다카는 같은 날 화려한 왕궁이 아닌, 냄새나는 마구간에 태어나게 한 자신의 운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태자는 평생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수행만 하다가 길에서 굶주려 죽을 것이라고 찬다카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카필라성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승가에 출가한 후에도 찬다카는 그날의 저주를 잊지 않았다. 왕의 아들로, 붓다로 고귀한 삶을 걷는 샤카무니는 그에게 늘 질투의 대상이 됐다. ‘마부의 아들은 정녕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모든 불행을 자신의 운명 탓으로 돌렸다.

   

8.         

안거가 끝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한 노비구가 라자그리하 죽림정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랫동안 동굴에서 지낸 탓에 그의 얼굴은 긴 수염과 거친 살결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의 등을 바싹 누르고 있던 한낮의 태양이 벌써 중천에 올라가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장로들이 머무는 정사를 찾아내고는 우팔리 존자를 찾았다. 

우팔리 존자는 찬다카를 금방 알아봤다.

“아직도 그대는 말의 고삐를 쥐고 있는가? 나는 이미 이발 가위를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

샤카족의 이발사였던 우팔리 존자는 아직도 수드라 신분을 한탄하고 있는 찬다카를 책망했다. 아난다 존자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찾아온 찬다카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우팔리 존자여, 나도 당신처럼 수없이 많은 날을 수행했다. 마부라는 천한 직업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는 아라한이 되려고 노력했다. 붓다가 해결하지 못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죽는 것밖에 없다. 나는 팔십 평생의 내 삶이 증오스러울 뿐이다.”

우팔리 존자는 마치 가위를 들고 찬다카의 머리를 깎듯이 두 손을 펼쳤다. 

“찬다카 비구여,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슈라바스티 기원정사에서 사리푸트라가 세존에게 물었다. ‘찬다카는 전생에 어떤 공덕이 있기에 출가해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졌습니까.’ 세존은 전생에 한 나라의 황손(皇孫)으로 불국토를 만들 때 이를 도운 사람이 사리푸트라 · 목갈라나 존자, 찬다카 비구였다고 답했다. 전생에 세존과 이런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당신은 싯다르타 태자 때부터 세존의 옆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존의 출가를 돕는 각별하고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됐다. 마부라는 직업이 왜 천하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태자 사촌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출가의 인연이 닿았다. 그런데 그들이 나에게 절하는 것을 주저하자, 세존은 이들을 엄하게 질책했다. 여러 강이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바다에 이르게 되면 그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바다라고만 사람들은 말한다. 그 강의 이름에 집착하지 말고 바다에 몸을 맡겨라. 당신도 언젠가 바다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우팔리 존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찬다카는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몰랐던 전생이 마구 굽이쳐,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물결이 됐다. 그리고 넘치고 부딪히며 큰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찬다카는 다시 카우샴비 동굴로 되돌아갔다.   

몇 달이 지난 후 라자그리하 죽림정사에 또다시 찬다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아난다 존자를 찾았다. 

“아난다 존자는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야 이곳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한 비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찬다카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구여, 아난다 존자가 돌아온다면 이곳으로 안내해 주게나. 부탁이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노비구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나는 찬다카라고 하네.”

비구들은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세존의 입멸 이후 보이지 않았던 찬다카 비구가 그들 앞에 있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 있는 찬다카 비구의 존재를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하얀 수염은 가슴팍까지 내려와 있었고, 빗지 않은 머리와 수염에 가려 얼굴은 눈 · 코 · 입의 윤곽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노비구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사람들이 찬다카에게 한 잔의 물을 건네는 순간, 찬다카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그의 주위로 비구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그를 부축해 그늘에 눕혔다. 천에 물을 묻히고 얼굴을 닦아주자, 그는 간신히 의식을 차렸다.

“아난다 존자를 만나고 싶네.” 

찬다카 비구는 금세 허물어질 듯 들썩거렸지만, 한사코 가부좌를 틀기를 원했다. 한 비구가 누워서 쉬길 권유했다. 겨우 앉는 모습을 추스른 그는 선정에 접어들었다.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면 그는 세존의 명호를 부르곤 했다. 

말을 끌고 가던 한 마부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윤기가 나는 갈색 말이 찬다카의 옆으로 다가가 ‘히이잉’ 소리를 내며 몸을 비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그런 행동을 보이자, 말고삐를 쥐고 있던 마부는 아예 그곳에서 쉬어가기로 작정했다. 

노비구는 눈을 떠서 마부에게 말을 걸었다. 

“이 말은 나이가 세 살 정도가 되었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마부가 노비구에게 물었다. 

“저는 마부였습니다. 당신과 같은 일을 했지요.”

마부는 찬다카에게 ‘우유죽’을 권했다. 찬다카는 한 모금씩 마시며 입을 뗐다.

“저는 더러운 마구간에서 태어나 마구간에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나는 원망했습니다. 왜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고생만 하고, 붓다는 왜 왕의 아들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어 성자로 칭송받는가?” 

“저는 지금 이 일이 좋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말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저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말이 됐습니다. 저를 존경해 주는 것은 오직 이 말뿐입니다.”

찬다카는 마치 붓다를 대하듯 마부를 쳐다보았다. 그의 미소는 샤카무니 붓다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어릴 적 싯다르타 태자는 늘 그런 눈으로 마부인 자신을 대해 왔다.

“샤카무니 붓다가 저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나 같은 비루한 인간도 붓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샤카무니는 일깨워 줬습니다. 이제 나는 죽을 때까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마부가 찬다카를 나무 밑 그늘로 데려갔을 때 그의 눈은 솜털 구름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그의 누런 얼굴 위로 저물어 가는 황혼의 낮은 그림자가 나무 잎사귀를 걸치고 내려앉았다. 그 잎사귀는 마치 말의 귀를 닮아 있었다. 살라나무였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황혼도, 나무 잎사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부만 보였다. 그리고 말의 투레질만 귀에 들렸다. 

그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부디 아난다 존자를 만나시면 이렇게 전해주십시오. 찬다카는 이제 이곳을 떠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체 모든 것이 머무르지 않음을 알면 일체 모든 것이 자연 그 자체로 보이나니, 생로병사가 바로 그 법에 있느니라. 그 법을 벗어나지 말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늘 내게 말했지만 이제야 나는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긋한 눈으로 마부를 보았다. 그의 두 눈은 자꾸 감겼다.

“나의 육신은 이미 다했습니다. 이 몸에 끄달려 여기까지 살아왔지만, 이것이 허망한 것인 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내가 죽은 후 어떻게 되길 더 이상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육신은 흩어지고 ‘나’라고 여겼던 것도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됩니다. 모두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마부는 두 손을 합장했다.

“마부여! 이 말은 마하 카사파 존자에게도 전해주십시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세존과의 각별한 인연을 핑계로 비구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동굴에서 오랫동안 수행하고서야, 모든 인연의 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 돌아가는 곳은 결국 법계(法界)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도 없고 남도 없는 진여(眞如)의 세계이지요. 어떤 이들은 윤회를 한다고 하지요. 저는 비구들에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헛되이 내세를 기약할 것이 아니라, 이 사바세계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자의 참모습이라는 걸 겨우 깨달았습니다.”

찬다카는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다. 마부는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찬다카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부는 그를 흔들었다.

“찬다카 비구여, 지금 어디를 가시려 하나요? 이 우유죽을 먹고 다시 삶을 찾으세요!”

갈색 말이 다가와 찬다카의 얼굴을 다시 비비며 ‘히힝’ 울었다. 겨우 꿈틀거리는 찬다카 비구의 눈동자 아래로 약간의 물기가 어려 나왔다. 마부는 땅 위에 엎드려 그에게 오체투지를 하였다. 찬다카 비구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미소에 한없이 말간 황혼이 내려앉았다. 그의 숨은 서서히 끊어지고 있었다. 마부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가부좌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합장했다. 긴 생애를 마친 한 비구의 초라한 모습이 황혼을 받으며 점차 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

 

윤호우 regnen7@hanmail.net

소설가. 199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김원일 · 전상국 추천). 불교TV 프로듀서 역임.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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