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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뜨락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조석규 도서출판 해와달 대표
   
 

기타와 드럼을 치는 것은 기본, 승복을 입은 채로 고난도 줄넘기는 보통이고 심지어는 아크로바틱 동작들까지 척척. 

이웃 나라 일본의 스님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이런 역동적인 동영상을 스님들이 SNS에 올린 것은 개인기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다. 작년 가을 일본의 한 교통경찰관이 운전하던 스님에게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한 것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운전 시 운전을 방해하는 복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

스님들은 애매한 규정을 개인의 잣대로 확대해석해 범칙금을 부과한(이전에는 물론 없던 일이었다.) 그 경관에게 승복이 운전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영상들을 올린 것인데, 언론은 ‘스님들의 유쾌한 항의’ 등의 제목으로 이 얘기를 다뤘다.

그 영상들을 보고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심지어 아주 즐거웠다. 스님들이, 혹은 불교와 관련한 일이 사람들에게 이런 무방비의 재미를 준 적이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도 분명 항의이고 반발인데 말이다. 게다가 분명한 메시지도 담겨 있지 않은가.

상대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항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스님들의 이런 넛지(Nudge)성 항의는 과연 스님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점입가경(?)이라 할 만한 것은 설교복을 입은 목사님까지 동참했다는 것.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좀 다른 얘기지만 최근, 로마교황청에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로 구성된 육상팀을 만들었다는데 그분들은 어떤 복장으로 달릴까?

불교를 잘 모른다.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가끔 절에 갔고 불교 종립대학을 나왔으니 나를 불자로 아는 주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불자라고. 밝혀야 하는 경우 나는 겨우 ‘불교적’이라고 할 뿐이다. 간혹 내가 사는 아파트 한 길 건너 숲이 제법 너른 절에서 예불 때 들려오는 종소리에 맞춰, 석가모니 부처님을 외며 세상의 이런저런 일과 타인들을 가끔 양념처럼 끼워 넣어 식구들의 구복이나 하는 것이 기껏이다.(맞다. 부끄럽다.)

부처님은 늘 친근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선운사였던가, 대웅전 측면 문밖에서 올려보다 마주친 부처님의 모습이 문득 두렵게 느껴졌다. 지금도 계를 지키고 살 자신이 없고 삼독을 버리는 일은 애당초 불가했다. 해서 지금은 탐이나 진, 치를 조금만이라도 줄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할 뿐이다. 

아버지는 전쟁통에 홀로 월남했는데 예전 식으로 말하자면 한량이셨다. 남의 부탁을 성가셔하질 않아 주위에서 싫은 소리를 듣지는 않으셨다. 자연 집안 살림은 어머니가 도맡다시피 하셨다. 나는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나 그 뒤론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두 분이 그리 도타운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머니는 절에 자주 가셨으나 간혹 혼잣말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시는 걸 들었을 뿐 신심이 어떤지는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친구들 따라 낚시엘 몇 번 갔었는데 나중에 그 일을 안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면 재미로 고기를 잡지는 말라고. 나는 낚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데다 어머니 말씀 뒤로는 별로 내키지도 않아 낚시를 그만두었다. 

한번은, 독실한 크리스천인 지인이 아버지께 종교를 권했는데, 아버지는 시원하게 대답하질 않았다. 그리고는 그 한참 뒤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는 한 비구니 스님을 도와 작은 절집을 세우는 데 힘을 쓰셨다. 아버지의 성품이나 기질로 볼 때 내게는 특이한 일로 생각되었다. 절엘 잘 다니시지 않던 아버지가 모처럼 함께 절에 다녀오는 길에 말씀하셨다. “어머니, 니 할머니가 절엘 다니셨다.” 그 한 마디였다. 내 어머니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내겐 불교다.

다툼이 많은 세상이다. 누구나 다투고 어디서든 싸운다. 본분이나 기본은 제쳐두고 공중에서 부유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깜냥도 안 되면서 하는 소리지만, 다른 세상은 모르겠으되 부처의 뜨락을 드나드는 이들은 앞의 저 스님들처럼 어깨 힘 빼고 한 걸음 물러서면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부처의 뜨락을 지키는 이들이 부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오만이고 보리심을 잊으면 자기기만 아닐까. 종교가 코미디는 아니지만, 따르는 이들에게 즐거움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불교는.  

집 아래 큰 절에서는 하루도 빼먹는 일 없이 종소리를 보내준다. 종소리는 숲을 지나고 길을 건너 내게 닿아온다. 

이제 식구들을 위한 구복은 하지 않으리라. 그 종소리만으로도 내려놓는 마음의 힘을 느끼고 또 즐겁기로 했으니까. 이것 또한 내겐 불교다.

joyw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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