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불교’를 찾아가는 길

 

우리는 불교를 배우며 흔히 중국 불교사에 회자되는 수많은 고승의 이야기를 접한다. 중국 선불교의 초조인 달마에서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으로 이어지는 선사와 그 제자들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전등록이나 여러 고승전, 조사어록은 수승한 깨달음을 얻어 사자상승(師資相承)하는 내용이 두루 담겨 있어 동아시아의 불교 전통에서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조사들과 제자들의 일화와 법거량 속에서 우리는 당대의 불교가 추구했던 치열한 구도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반면, 석가모니 부처님 당대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조사들과 제자들의 이야기에 비하면 단출하기만 하다. 아함이나 니까야를 통해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만, 조사어록과 같은 짜임새는 덜하다. 내용도 심오한 깨달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으로 부처님과 제자들의 전생 이야기와 인연담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인도가 구전의 문화이고, 중국이 기록의 문화라는 차이에서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가 초기불교를 소승으로 낮잡아 보면서 생긴 착시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냐나뽀니까 장로✽와 헬무트 헥커가 짓고 비구 보디가 엮었으며 김충현이 번역한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들: 제자들의 삶과 수행, 그리고 유산》은 그동안 소홀히 다뤄져온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이다.

이 책에는 부처님의 여러 제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수행했으며, 어떻게 삶의 고통을 해결해 가는지가 담겨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제자들은 모두 24분이다. 성별로는 남성 제자 12명, 여성 제자 12명으로 균형을 맞췄다. 물론 분량은 절대적으로 남성 제자들이 많다. 저자는 전해지는 기록의 양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중국의 조사어록에 담긴 매력적인 방외의 대화나 격외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배경과 삶의 고통을 지닌 채 부처님을 찾았던 제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의 첫 6장은 부처님의 제자 중 사리뿟다(사리불)와 마하목갈라나(대목건련), 마하깟사빠(마하가섭), 아난다(아난), 아나룻다(아나율), 마하깟짜야나(대가전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7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440여 페이지가 주요 제자 6명에게 할당되어 있다. 그만큼 큰 비중을 가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료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제자는 사리불과 대목건련이다. 45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립하는 데 함께한 이야기가 상세히 실려 있다. 마하가섭은 스승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후 사실상 승가를 이끌며 선견지명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보전한 이야기가 담겼다. 부처님의 사촌이자 부처님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시봉한 아난다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기억력으로 부처님 가르침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위대한 역량을 발휘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부처님의 사촌인 아누룻다는 눈이 멀 정도로 수행 정진해, 결국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천안통의 능력을 성취한 내용이 감동적으로 담겼다. 대가전연(마하깟짜야나)은 스승께서 설하신 짧은 법문을 가장 잘 풀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제자였음을 보여준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6명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7장에는 12명의 위대한 여성 제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왕비에서 부처님의 인척, 몸을 팔던 기녀, 세 번이나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 죽은 아이로 인해 고통받는 여인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여성 제자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후원자였지만 시아버지와 종교 갈등을 일으켜 고통받았던 위사카, 꽃을 공양하고 왕비가 된 말리까, 지혜가 으뜸이었던 비구니 케마, 곧바로 최상의 지혜를 이룬 밧따 꾼다라케사, 부처님의 여동생 난다, 자비의 화신 사마와띠 왕비, 계율에 정통했던 비구니 빠따짜라, 몸 팔던 여인 암바빨리, 기녀 시라마, 세 명의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씨다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성 제자들의 이야기를 별도의 장에 담은 것은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달리 2,500년 전 매우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어떠한 성적 차별도 갖지 않은 평등의 종교였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분량이 많지 않았던 이유로 남아 있는 논서의 문헌자료가 빈약했기 때문임을 고백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는 8장에 담겼다. 스승의 꾐에 빠져 살인을 수없이 저질렀던 최악의 인물이 어떻게 교화되어 아라한이 되는지가 논서와 율장을 통해 상세히 고증돼 실려 있다.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는 어떤 인간이든 교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어떤 깨달음을 얻더라도 인과의 과보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준엄한 교훈을 일깨운다.

마지막은 교단과 부처님을 외호했던 장자들의 이야기다. 위대한 보시를 실천했던 아나타삔디까(급고독 장자),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는 데 으뜸인 찟따 장자, 여섯 번 환속하고 일곱 번 출가하여 끝내 아라한과를 성취한 찟따 비구, 늙고  약해져 가는 서러움을 토로했던 장자 나꿀라삐따와 아내 나꿀라마따는 부처님을 만나 노년의 삶이 가져다주는 실존적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담겼다.

책에 등장하는 24명의 위대한 제자들은 자상하고 친절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씩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온한 열반의 세계에 접어든다. 삶의 배경과 조건, 신분이 모두 다른 제자들이지만, 고통을 소멸시켜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은 모두 동일하다.

이 책이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부처님은 신비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저마다 가진 서로 다른 고통, 번뇌에서 벗어나는 고집멸도의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제접한다. 도저히 교화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연쇄살인마에게도 마음을 돌려 변화할 수 있음을 설득한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천대받았던 유녀와 기녀와 같은 이들도 지혜와 수행을 통해 삶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책에 담긴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이야기는 중국 조사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선불교 특유의 파격과 격외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부처님의 친절하고 고요하며 평온한 가르침과 이를 받아 열반에 이르는 제자들이 일관되게 그려진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니까야와 다양한 주석서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제일의 품(으뜸품)’에 나오는 위대한 80명의 제자 이야기와 쿳다까 니까야(소부 아함)의 제자들 삶과 관련된 4개의 특별한 내용이 그것이다. 제일의 품, 으뜸품에는 부처님께서 각각의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가 누구인지 선언하신 내용이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생에서 부처님 제자가 되기 위해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성스러운 공덕을 쌓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그 제자가 부처님과 만나게 되는 현생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처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며, 깨달음을 성취하는 과정, 법을 전하는 내용들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또 264명의 장로들에 관한 1,279개의 게송으로 이뤄진 《테라가타(장로게경)》와 《테리가타(장로니게경)》에 나오는 73명의 비구니 장로 게송 494개에서도 내용을 고증했다. 또 전설과 우화가 다양하게 스토리텔링 되는 《자타카(본생담)》도 날줄씨줄로 엮어 입체성을 더했다.

그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부처님 당시 제자들의 삶을 철저한 고증으로 살려낸 것은 유럽인 최초의 비구인 냐나뽀니까 스님과 독일의 법학자이자 스님으로 니까야를 독일어로 번역한 헬무스 헥카, 미국의 유대인 스님 비구 보디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를 김충현 춘천 BBS 총괄국장이 1년여간 각고의 번역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대한불교진흥원은 이 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지원해 책이 발간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

 

유권준 
동국대 지리교육과 졸업. 법보신문과 경향신문, 불교방송, 불교TV에서 기자와 PD로 일했다. 현재 불광미디어 콘텐츠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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