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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이소영 시조시인

궁금해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벚꽃 흐드러지던 오월의 꽃그늘 아래로 황망히 소풍 떠난 당신이. 벚꽃은 피었을 때보다 떨어진 꽃잎들이 포도 위를 하얗게 덮을 때가 우리 가슴에 더욱 깊이 들어오는 이유를 알게 해 준 당신이. 그래서 빛나는 초록을 자랑하던 신록을 지나 모든 것을 다 떨구고 오롯이 고갱이로만 남은 늦가을. 시신 기증인 합동 추모예식 초대장을 받아들고 당신을 반추해 봅니다.

초대장 내용은 올 한 해 의학 발전을 위해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한 고인과 유족들의 뜻을 기리고 실습에 임한 의대와 치대 본과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라는 것이었어요.

의과대학 대강당에 들어서니 하얀 국화에 둘러싸인 다섯 층으로 모셔진 위패를 보고, 당신과 뜻을 같이한 동지들이 이리도 많다니 당신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겠구나 싶었어요.

그 자리에 앉아 당신을 바라보니 십오 년 전의 일이 떠올랐어요. 당신이 우리에게 서류를 내밀며 “처음엔 장기 기증을 생각했는데 얼마 전 뉴스에서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 외국에서 수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죽어서라도 의대생들의 교육에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게 내 인생의 마침표를 잘 찍는 게 아닐까 싶어서……”라고 말씀하셨죠. 그 당시에는 ‘해부용’이라는 단어가 주는 섬뜩함에 잠시 움찔했지만, 평범하면서도 올곧게 살아온 당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마침표라 여겨져 저와 동생은 흔쾌히 동의 사인을 했지요. 그러나 막상 당신이 삼 개월의 와병 생활 끝에 우리 곁을 떠나던 날. 중환자실에서 마주한 당신은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잘 잤다며 우리를 반길 것처럼 편안해 보였어요. 그러나 더 이상 마를 데가 없이 마른 당신의 몸에는 주삿바늘이 남긴 아픈 추억의 점들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죠. 당신은 해부용 시신으로서 적합성 판정이란 생의 마지막 시험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어요. 그 순간 평생 건강관리를 잘한 당신에 대한 평가이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만약 평가가 나쁘게 나와서 보통 사람들처럼 장례를 치르게 된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죠. 이 두 가지 생각이 혼재되어 당신의 뜻을 지켜주겠다던 다부진 결의가 그 순간에 많이 흔들린 건 사실이에요. 

드디어 당신과 이별의 시간인 오후 세 시. 처음 타고 왔던 앰뷸런스를 타고 다시 당신만의 여행지인 냉동고로 떠나는 그 순간. 멋지고 우아하게 당신과 작별 인사를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그 마음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당신을 못 가게 잡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앰뷸런스를 당신인 듯 잡고 폭풍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어요.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던 당신이 누울 곳이 냉동고라는 생각에 눈물바람이 폭풍우로 변한 거 같아요. 그러나 생전에 약속을 잘 지키던 당신이기에 정확히 떠나야 할 시간에 우리를 두고 담담하게 떠나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담담함은 얼마 후 다가올 해부학 시간을 기다리는 당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백발 노신사의 환한 미소만이 조문객을 맞이했던 장례식장. 그 미소를 보며 많은 분이 당신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실천에 깊이 공감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을 표해 주셨어요. 그리고 당신처럼 생과 사가 불이(不二)라는 걸 깨달은 건 크나큰 축복이라는 덕담까지 곁들여주셨죠. 그런 덕담 덕분인지 며칠 후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어요. 당신이 떠난 지 엿새 만에 해부가 이뤄지게 됐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어요. 

“사람은 죽는 순간 그가 지녔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거야. 그러니 매장이나 납골당, 수목장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지내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니 지내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씀들. 당신 생전에는 우리에게 주입시키듯 하던 말이었고 병원에 계실 때는 단호한 요구와도 같았던 말이었죠. 그 말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려면 온전히 소멸해야 한다는 의미이자 존재가 소멸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할 때 ‘영원히 안녕’이라는 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말로 되새김질 되었어요. 

당신의 뜻을 헤아려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 줄 알지만, 당신에 대한 흔적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견딜 수 없이 슬펐어요. 물론 당신 말씀대로 마음에 두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물 한 바가지 쏟아놓고 올 수 있는 당신의 자리가 너무도 절실했거든요.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는 이기적 발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것만이 우리가 당신의 마지막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에게는 상의하지 않고 당신이 그렸던 그림 속 소나무를 당신인 듯 모시기로 했어요. 햇볕이 잘 드는 따스한 남향에 당신을 모시고 나니 조금은 안도감이 들더군요. 

오늘 시신 기증인 합동 추모예식에 그날 당신을 해부했던 의학도들이 경건하게 국화를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찍은 마침표가 전하는 울림을 들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던 죽음에 대한 엔딩 컷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었죠. 의학도들의 머리와 가슴에 의술과 더불어 진정한 죽음의 의미가 아름답게 전달되었기에 이 모습을 보는 당신도 뿌듯했으리라. 

많은 유가족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고,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과 그 뜻을 이해해 준 유가족들 그리고 의학도들이 등장인물이 되어 만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죽음 속의 삶’은 당신 생애 첫 유작이 됐네요. 이 다큐를 보면서 종교와 성, 나이와 관계없이 오로지 세상을 따스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죽음도 두려움이나 슬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선지 추모예식이 끝나고 바라본 134개의 위패에서는 아직까지 아름다운 향기가 남아 있었어요. 그 향기는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돌아가는 이들 어깨 위에 하나씩 내려앉는 듯했죠.

많은 이들에게 웰빙(Well Be-ing)보다 웰다잉(Well Dying)이 더 중요하다는 화두를 던져 준 당신. 그래서 살아 있을 때의 미소가 죽은 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삶이 바로 웰다잉(Well Dying)임을 몸소 보여준 당신. 

당신을 떠나보낸 슬픔을 꽃삽에 담아 소나무 아래 꾹꾹 눌러 담고 오던 날, 붉은 눈물로 차오르던 저녁에 펼쳐 든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을 읽어 봅니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leo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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