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현실세계에서 이전과 같은 위력을 갖지 못하게 된 탈종교화 시대, 종교예술이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근대 이후, 종교예술이 기대었던 상징체계가 근대적 합리성에 의해 부정되었고 그 종교적 신화적 의미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빛바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성상(聖像)’ 또는 ‘성보(聖寶)’라는 말을 대신하여 ‘종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래, 아니 ‘예술작품’으로 호명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진지하고 열성적인 종교적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 미적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 대부분의 장소에서 종교예술이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기억해주는 기념품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지역성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산물로 소구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종교예술 영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모더니즘에 의해 파인아트(fine-art)라고 불리는 순수예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상’의 진정성이 의문에 붙여졌을 때, 그 가상에 숨결을 불어넣고 의미를 제공해준 원천이었던 종교예술의 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사태를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탁월한 통찰로 표현한 바 있다. 뒤이어 복제예술과 순수예술 안에서 발생한 아방가르드 운동은 이 의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아방가르드 이후 예술은 하나의 관례로서 작동하는 그 속살을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술은 때로는 예술이라는 제도와 관례들을 조롱하면서 때로는 영민하게 그것들을 이용하면서 세속화되고 상업화된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종교예술은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복제품이나 이발소 벽에 걸린 밀레의 〈만종〉 같은 종교적 감성이 다분한 작품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과연 종교예술이 과거의 고답적 복제나 조악한 키치로 전락하는 대신 취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설상가상 한국 불교예술에는 주변성의 극복이라는 또 하나의 난제가 주어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가 진보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설정되었던 근대는 오랫동안 한국문화 전반에 변방이라는 열등감을 깊이 각인시켰다. 서구에서 이식된, 그것도 일제를 통해 들어온 근대성은 빠르게 흡수하고 정착시켜야 할 과제이자 자기 전통을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식민지 피지배인의 정체성을 요구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과 예술계 전반에 근대적인 파인아트 시스템이 제도화되었고, 이와 함께 전통적인 시 · 서 · 화 전통이 ‘예술’이라는 체계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로부터 시 · 서 · 화는 문학, 서예, 회화로 호명되고, 그러한 명칭이 주어지기 이전의 역사는 하나의 잉여, 다시 말해 ‘말해지지 않은 것’ 또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예술’이라는 근대적인 이름으로만 전통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예술의 곤경이 시작된다. 1930년대 미술계에서 일어난 향토색 논쟁이나 1970년대 유신시대 국풍 등 관제화된 전통 부활, 나아가 박서보 등이 제시한 한국적 모노크롬 회화를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한국 예술계에서 주문처럼 불리는 ‘한국적인 것’이라는 화두는 이식된 근대성이라는 테제를 통해 만들어진 안티테제였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성의 안티테제로서 한국적인 것은 근대성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그 틀에 얽매이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전통의 내재적 의미와 형식을 산출했던 힘을 찾기보다, 막연히 과거를 이상화하는 ‘과거 추수주의’로 기울거나 단편적 형식의 차용을 전통의 계승으로 착각하는 등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했다.

뜻하지 않게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재지역화라는 세계 정치경제문화의 흐름과 인터넷을 통한 지구적 네트워크의 형성은 지역성을 재정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발 빠르게 이 기회를 이용한 케이팝(K-Pop)의 성공은 지역성을 재정의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뒤이은 영화, 드라마, 카툰 등의 성공은 케이컬처(K-Culture)라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한국불교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 또한 케이컬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데, 입맛의 다양성과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건강 열풍에 힘입은 사찰음식의 성공은 오늘날 문화 현상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우라의 붕괴를 통해 벤야민이 주목했던 것은 무엇보다 역사적 시공간 내부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고 말하면서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 대중들의 지각 양상이 어떤 사물이 지닌 사회적 기능을 보려고 하지 않음에 주목했다. 그는 19세기에 전통과의 급격한 단절이 일어나면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붕괴하는 현상이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 전통이 동요되는 징후적 과정임을 간파하였다. 이제 예술의 발생과 기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제의적 가치,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하는 아우라보다 전시 가치, 다시 말해 미적 감상과 놀이로서의 예술 경험으로 대중의 관심이 향하게 되었다.

아우라의 붕괴는 그것을 초래한 사회적 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 제의적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의 전환은 근대기 불화에서도 엿보인다. 필자가 졸저 《미술관에 간 붓다》에서 언급한 〈흥천사 감로탱화〉는 한국사회에 이식된 근대성이 전통적인 지각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적인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이 이전 감로탱의 등장인물들과 달리 시식 의례에 동참하지 않고 바깥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흥천사 감로탱화〉에서 처음 등장한 구경꾼의 관점은 오늘날 케이컬처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고현범이 지적하듯이 “현대인에게 위로와 여흥은 산만함의 경험이며, 놀이적인 측면으로 나타난다.” 백남준의 〈TV붓다〉가 붓다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아닌 아방가르드적인 놀이의 도구로 활용한 것처럼 케이컬처는 전통에서 차용된 요소들을 그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탈맥락화시켜서 예술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신나는 놀이의 도구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으로 자유롭게 활용한다.

오늘날 불교예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케이컬처의 세례를 받은 대중의 관심에 호응하고 있는가? 한국 불교예술 앞에 놓인 길은 세 갈래다. 과거의 전통을 차용한 아류작을 생산하거나 복제된 키치들을 양산할 것인가, 오늘날 대중이 예술작품에서 찾는 산만함의 경험을 제공하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유희로 스스로 탈맥락화한 전시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지각방식에 균열을 만들고 위로와 여흥을 구하는 산만한 지각방식을 극복하는 새로운 지각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다시금 종교예술의 진정성을 회복할 것인가.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선택은 불교예술의 발주자인 승려들의 문화적 안목, 불교적 형식과 경험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상상력, 대중의 기호와 변화의 욕구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사회, 좁게는 불교계가 온축한 문화적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023년 12월

명법(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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