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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맷자락이 유난히 넓은 도포를 펄럭이며 한 사내가 법당을 지나 요사채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승방으로 가려다 말고 범해는 사내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요사채 뒤편으로 난 산 길로 가려는 것인지, 쪽문을 열고 암자로 들어서려는 것인지 종잡 을 수 없다. 그런데 사내가 쪽문을 연다.

“이보시오. 거긴 출입이 금지된 곳이오.”

암자의 뜰로 성큼 나서는 사내를 뒤따르며 범해가 그를 제지했 다. 그제야 그는 뒤돌아섰다. 8월의 여름빛에 그을린 검붉은 빛을 띤 각진 얼굴과 사시 눈이 어디서 본 듯 낯익었다.

“저 암자에 보우(허응당 보우) 스님이 있다 들었소. 만나고 갈 거요.”

“그곳은 스님이 수행하는 곳이니 어서 나가시오.”

느린 바람에 풍경소리가 고요히 암자를 에워쌌다. 바람은 암자 앞 치자나무와 보리수나무를 지나 바위 사이에 핀 상사화와 붉은 꽃무릇을 흔들어놓고 지나갔다.

“성균관 유생을 대표하여 보우에게 전할 말을 가져왔소.” “소승이 전할 테니 말씀하시지요.”

“그만 암자를 비우란 말이오. 임금(중종)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되지 않은 사찰이나 암자는 다 철폐한다고 하였고 중을 내몰라고 하였소. 그런데도 지금 양반 자제들이 보우란 중에게 가르침을 얻 겠다고 출가가 늘어나고 있으니 더는 두고 볼 수 없단 말이오. 하루 빨리 산에서 내려가라고 이르시오. 그래야 화를 모면할 거요.”

사내는 암자를 노려보았다. 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는 마주 보는 범해의 눈을 피하며 쪽문 밖으로 걸어 나 갔다.

승방으로 들어온 범해는 가부좌하고 참선에 들려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보우 스님과의 오랜 인연이 자꾸만 떠올랐다.

범해는 금강산 마하연암의 동자승이었다. 산봉우리의 비구름을 올려다보다가 마하연 남쪽 봉우리에 창문 같은 구멍이 있다는 큰스 님의 말에 그 구멍을 찾아다니다가 돌아온 날 삭발하는 보우를 만 났다. 풍경소리가 맑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석양과 섞이고 있었다.

‘강물이 스님의 눈을 배워 파랗고, 소나무는 부처의 이마를 훔쳐 서 푸르다’

그렇게 보우가 읊조리면 범해는 냉큼 그 구절을 따라 했다. 일찍 이 부모를 여의고 여덟 살부터 양평 용문산에 입산해 행자 시절을 보냈다니, 범해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보우가 무작정 좋았다. 하 도 보우를 따라다녀서 큰스님이 야단을 칠 정도였다.

그런 보우를 사미승, 수좌승 신분으로 늘 따라다녔다.

누각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법당을 열어 불전에 향불과 등불을 밝혔다. 물과 감초로 끼니를 때우며 수행과 경전 공부를 하던 보우 를 시봉했다. 심심하면 계곡물에 세수나 해라. 심심하면 구름이나 봐라. 보우의 말대로 계곡에서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내던 시간은 얼마나 은밀하고 행복했던가. 산의 설법을 듣고 쉴 새 없이 형상을 바꾸는 구름을 보던 일은 또 어떠했던가.

범해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불현듯 사시 예불 때 불자들이 전 해주던 소식이 떠오른 것이다.

“요기, 산밑의 정수암에 성균관 유생 스무 명이 습격해서, 승려들 과 충돌했다오. 유생들이 스님들을 결박하고 불경과 면포, 귀중품 을 싹 다 탈취해 갔다오. 얼마 전에 연화암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았소. 속히 보우 스님께 이 사실을 알려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하오.”

금강산 마하연에서 십 리쯤 떨어진 정수암과 연화암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지은 암자였다. 유생들은 불교가 이단이라 주장하며 싹을 도려내겠다고 뿔 달린 소처럼 암자를 들이 받으려 들었다. 사헌부의 관리가 찾아와서 절에 숨은 장정을 찾아 내겠다고 법석을 피우다 돌아가는 일도 잦았다.

그러고 보니,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찾아왔던 유생은 얼마 전 연 화암에서 행패를 부린 자였다. 그는 절에서 내려간 뒤 주지승을 사 헌부에 고소하였다. 중들이 자신을 몽둥이로 때렸다고 모함했고 그 때문에 주지승을 옥에 가두게 했다. 범해도 그날 연화암에 잠시 내 려가 있다가 그 상황을 모두 봤다. 주지승을 고소한 자는 협이라는 유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협이란 자는 연화암에 이어 이곳 암자 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한 것인가.

범해는 떴던 눈을 다시 감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협이, 아니 어떤 유생이 찾아와서 무슨 짓을 저지른다 해도 지금 승려로 서 자신이 할 일은 오직 참선이었다.

6년 동안 수행 정진하던 보우는 불교 승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 돌 아가는 사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보우는 쉬지 않고 각지의 사찰을 향해 걸었다. 사찰마다 폐허가 되어 오가는 이 없었고 아궁이의 재마저 식어 있었다. 유생이 사찰 에 불을 지르고 보물을 약탈해 가고 범종을 녹여 무기로 만들었다. 폐사된 사찰을 조상의 묘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승려를 구타하여 호패를 환수했고 호패 없는 승려를 숨겨주면 처벌을 받았다.

“승려도 임금의 백성인데, 어찌 임금이 절을 허물고 승려를 내쫓 으라 한단 말인가.”

보우는 폐사된 사찰을 지날 때마다 한탄했다.

이윽고 여주의 신륵사에 들렀다. 공양을 마치고 잠들려는 무렵 에 사찰 안으로 유생들이 들이닥쳤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경상 도에서 뱃길로 올라오던 선비들은 절에서 머무는 동안 고기와 술을 요구했다. 밤새 스님들은 유생들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새벽이 되어 과거를 보러 떠나려던 유생 중 몇 명이 사찰의 촛대 와 동자상, 화병을 바랑에 집어넣었다. 주지가 바랑에 든 것을 두고 가라 하자 유생들은 도망치듯 떠났다. 그런 뒤 사헌부 관리들이 들 이닥쳤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에게 중이 몽둥이질했으니 엄히 다 스리라 하오.”

관리들은 그렇게 소리친 뒤 주지와 스님을 오랏줄에 묶어 끌고 갔다.

“유생이 사찰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도리어 불교를 탄압하는 기회 로 삼다니. 분합니다.”

범해가 울분을 토했으나 보우는 언제부턴가 입술을 꾹 다물어 버 렸다.

그 뒤 보우는 길에서 만난 조정의 관리나 유학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보우의 명성을 들은 바 있으니 한 소식 얻겠다고 따라오는 유학자도 뿌리치지 않았고 즉석에서 문장을 써달라는 청 도 들어주었다.

“스님은 유생이 싫지도 않습니까? 어찌 저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울립니까?”

범해가 불만을 터뜨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보우는 쉬지 않고 걸어서 금강산 북쪽의 통천으로 향했다. 함흥 의 석왕사에 머물기 위해 가던 도중에 유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유 생들은 바랑에 든 탁발한 양식이 마을에서 훔친 것이라고 우겼다.

“한 노파가 항아리를 긁어주었소.”

“얼마 전 전염병이 돌아 집짐승도 굶겨 죽을 판인데 누가 시주를 한단 말이오. 중들은 백성들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들 아니오? 바랑 을 이리 내놓으시오.”

“이 바랑은 겨울에 내 발에 꿴 짚신처럼 탁발승에게는 절실한 것 이오.”

바랑을 두고 소란을 벌어지자, 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유생들까지 몰려나왔다. 중들이 마을에 들어와 불한당처럼 군다면서 관청으로 끌고 가서 옥에 가뒀다.

이틀째 옥살이를 하던 중 강원도 감사 정만종이 보우를 찾아왔다. “저들의 무례한 소행을 용서하시오. 내 순시를 돌다가 오늘에야 보우 선사가 이곳에 갇힌 것을 알았소.”

정만종은 깊이 고개를 숙였고 곧바로 옥에서 꺼내주었다. 정만종은 보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사과도 할 겸 듣고 싶은 말도 많다고 했다.

“유생들이 불교를 이단시하는 것은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정만종이 물었다.

“유교와 불교의 정합점을 찾도록 해야 하오. 그래서 유생들이 무 조건 불교를 말살하는 것에 선을 그어야 할 것이오.”

“좋소이다. 유학자들과 스님이 자주 교류해서 불교와 유교 사상 이 하나라는 것을 틈나는 대로 설법해 주시오.”

“그리할 것이오.”

“유교와 불교의 교리상의 타협점을 말하는 선사는 처음 보았소. 보우 선사의 유교와 불교가 도에 이름은 다르지 않다고, 유생을 설 득하겠다는 말씀에 감명을 받았소.”

“예나 지금이나 천지간에 유교나 불교는 다 같이 공인된 가르침 이지 사사로운 것이 아니오. 내 일찍이 모든 대장경과 유교의 주역 까지 모두 읽었으나 도에 있어서 깊고 얕음이나 지역의 차이가 없 고 이것이 번성하면 저것이 번성하는 것은 그림자가 물체를 따라다 니는 것과 같소.”

“불가의 도와 유가의 도가 어찌 같겠소?”

“도라는 것은 모두 다 ‘하나’에서 유래한 것이오. 그 본체는 하나 란 의미요. 하나에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단 말이오. 이 하나가 바로 성리학의 근본 사상인 이(理)에 해당하는 것이오. 또한 정(正)이란 치우치지 않고 사악하지 않고 순수하고도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하오. 그러니 정(正)은 성리학의 기(氣)와 유사하다 하 겠소.”

“그럴듯하오. 불교와 유교가 그 사상적인 면에서 동일성을 갖고 있단 말이니 유불의 원리를 혼융 일체 시키고 있는 논리인 듯하오.” “일(一)로서 일체 만물이 서로 나아가고 서로 들어가는 원리가 일 정(一正)이오. 유교와 불교가 비록 도가 다르지만, 근원은 다르지 아니하므로 예로부터 승려와 유명한 유학자는 모두 친구였소.” 정만종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체는 곧 하나일 뿐인 게요. 이 때문에 한 기(氣)가 시행됨으로 써 봄에는 태어나고 여름에는 자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 보관하며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두우며 옛날을 더듬고 지금을 더듬 으며 일찍이 한 번 숨 쉬는 사이만큼이라도 잘못된 것이 없으니, 천 하가 일에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오. 또한 정이란 것은 치 우치지 않고 사악하지 않으며 순수하고도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것이오.”

정만종은 조용히 보우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보우가 말을 마치자,

“우리도 그렇게 친구가 되면 좋겠소.” 정만종이 보우에게 합장하였다.

✽정만종은 회암사로 자주 드나드는 왕후(문정왕후)를 만났다. 봉 은사에 새로 부임할 선사를 찾는다는 말에 정만종은 보우를 적극적 으로 추천했다.

“금강산에서 도를 이루고 수륙재를 열었는데 큰스님이 내려왔다 는 소식에 전국에서 불자가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다 합니다. 또한, 그는 항시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인의와 도덕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편 안함을 기원하면서 호법 불사에 전념한 선승입니다.”

물과 육지에서 죽은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 의식인 수 륙재마저 유생들의 반대로 시행되지 않은 지 반백 년이 지나고 있 었다. 그런데 보우가 손수 수륙재를 열었다니. 왕후는 정만종에게 속히 보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재촉했다.

한편 정만종과 헤어진 보우는 석왕사 부근의 은신암에서 한여름 을 지냈다. 그런 뒤 함흥 서쪽에 있는 백운산 국계암에서 수년간 머 물다가 천보산 회암사의 차안당에서 속세와 단절해 지내고 있었다. 암자에 기거하던 어느 날 사내 둘이 찾아왔다. 어두워서 입성은 보 이지 않았으나 그들은 내수사에서 왕후가 보내서 찾아왔다고 했다. “이것을 전하라는 분부를 받잡고 왔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실 것이라 했습니다.”

받아 든 편지를 펼치자 언문으로 써 내려간 글씨가 단정하게 적 혀 있었다.

‘성종 대왕의 원찰인 봉은사의 주지 명곡 대사가 은퇴하였으니 봉은사 주지로 와 주시오.’

보우는 왕후가 보낸 편지가 갑작스러워서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행차 준비를 마쳤습니다.”

멀리서 말 우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오늘은 그대로 돌아가라 했 으나 사내들은 기어이 보우를 데려가야 한다고 버텼다. 보우는 선 방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봉은사 주지로서 보현보살의 실천행을 이룰 때가 분명했다. 승복을 갖춰 입고 가사를 두른 뒤 바랑을 맸다. 선방 문을 열고 나오자 범해가 막아섰다.

“저자들이 누군지 모르는데 무작정 따라나섰다가 봉변을 당하면 어쩌시렵니까? 공연히 스님의 명성만 더럽히는 일이 생길까 저어 됩니다.”

“내게 더럽힐 명성이 있더냐? 그렇다면 당장 버려야 할 것이야.” 보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승려를 대궐에 들일 수 없다는 대신들의 반대로 보우는 봉은사로 거처를 옮겼다. 법당에서 좌선하며 왕후의 기별을 기다렸다.

‘내 친히 좌우를 살피다가 때가 되면 봉은사로 갈 것이오. 기다려 주시오.’

봉은사에서 기다린 지 이틀 만에야 보우는 왕후가 쓴 언문 편지 를 전해 받았다. 온몸으로 불교를 밀어내려는 대신들의 극성에도 몸소 봉은사로 행차하겠다는 왕후의 편지였다.

왕후가 봉은사 법당으로 들어선 것은 삼경이 지나서였다. 대신들 의 눈을 피해 오느라 늦은 시각을 택했다고 했다. 왕후는 궁녀들을 법당 밖으로 내보내고 홀로 향을 사르고 108배를 올렸다. 그런 왕 후를 바라보면서 보우는 가슴에 환한 기운을 느꼈다. 어린 임금(명 종)의 수렴청정을 하고 있으니 뜻을 세운다면 불교 중흥을 실현할 기회였다. 돌아보면 지금, 선종과 교종이 모두 무너지고 지방의 승 려들을 노비로 전락시키는 등 불교의 자취가 사라질 지경이었다. 이런 때 왕후와 대웅전 법당에서 마주 앉은 것이다.

“선종의 판사는 대사가 맡고 교종의 판사는 수진 대사가 맡기를 주상께 주청할 것이오.”

“그렇다면 봉은사의 앞마당에서 승과시험을 다시 보도록 도와주 시오. 반백 년 동안 중지되었던 승과시험을 부활하여 승려의 질을 높이는 일이 시급합니다.”

“내 바라던 바요. 승려 도첩제도 다시 시행하도록 서두를 것이 오.”

보우는 합장하였다.

“서로 만나기 어려우니 내 자주 서신을 보낼 것이오. 곧 봉은사 전각에 당당히 올라 시원한 바람과 기운을 느끼고 푸른 연못을 바 라보고 싶구려.”

왕후가 미소를 머금어 보우를 바라보았다.

✽보우가 봉은사 주지가 된 뒤 불사는 잘 진행되어 갔다. 보우는 판 선 종사도 대선사라는 정식 직함을 얻어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받 았다.

조정에도 불교 신자가 크게 늘고 내원당에도 불공을 드리려고 몰 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 도의 관찰사와 군수가 불교를 받들었 고 사대부 중에도 출가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러자 유생들은 불교의 세력이 커질 것을 염려해 보우를 모함하거나 질시했다.

“저자가 뭐길래 저다지 오만방자하게 휘젓고 다니는 건가?” 보우를 비난하는 말은 파직하란 목소리로 번져갔다.

“사람이 죽은 지 27일이 되면 죽은 이의 옷을 벗기는 노파를 알고 있나?”

어느 날 문득 범해에게 보우가 물었다.

“죽은 지 27일이나 지난 자의 옷을 벗겨서 뭣에다 씁니까?”

“그 옷을 노인에게 건네주어 명부의 나뭇가지 위에 달아매지. 그 높낮이를 견주어 생전의 죄가 얼마나 가볍고 큰지 알아낸다는데, 난 지금 어떤 지경인가?”

“유생들이 어서 죄를 물으라고 난리지요.”

“살아 있는 내게, 단지 중이란 이유로 죄를 묻겠다고 하네.” 보우는 허허 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왕후의 불사에 대한 대담한 실천이었다. 비 구니 숭려를 위한 정업원을 다시 일으키고 또한 선종과 교종이 부 활하도록 임금에게 간하여 실현했다.

“선종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종은 바로 부처의 말씀이니, 선이 곧 교이고 교가 곧 선이오.”

보우는 선교일체를 주장했다.

‘임금께서 모든 고을의 사찰을 정비하여 도첩을 허락했소이다. 또한, 3백여 개의 사찰을 청정하게 하고 도첩 승을 2년 동안에 걸쳐 4천여 명을 열어주기로 했소.’

왕후가 언문으로 쓴 편지로 보우에게 반가운 소식을 지속적으로 알려 왔다.

시월, 선종의 첫 시험인 승려의 선발을 알리는 방을 올리던 날, 보 우는 벽보를 몇 번이나 손으로 쓰다듬었다. 사찰의 규범을 세워 승 려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시험이 3년에 한 번씩 시행된 것이다.

“각각 재주를 다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선발에 응하도록 하라.” 시험을 치른 첫해에 서산대사 휴정이 장원급제했다. 승과에서 뽑힌 승려들은 모두 전국 사찰에 파견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왕후는 보우를 염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대사를 탄핵하라는 유생의 상소가 423통, 대사를 죽이라는 상소 도 75통이나 올라왔소. 대사가 탐심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라니, 임 금도 믿지 않고 외면하였소.’

왕후의 언문 편지는 이어졌다.

‘교종판사인 수진 대사에게도 유생의 모략이 이어졌소. 수진 대 사가 살인죄를 저지른 중을 숨겨줬다는 주장을 하면서 말이오. 수 진 대사는 못 버티고 기어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소. 대사는 잘 버텨주기 바라오. 저들이 인의예지를 숭상하는 유학자라면서 이리 날뛸 수가 있는지 심히 분하여 몇 자 적소.’

보우는 때 되면 오고 때 되면 가는 것이 선(禪)이라 생각했다.

“나 하나 없어지는 것은 괜찮아. 물론이지. 긴 지팡이 하나 가로 메고 금강산 마하연으로 돌아가서 달 밝은 밤 소나무 밑에 눕고 싶 은 마음이지. 언제든.”

하지만 이대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교 중흥이란 막중한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휴 정에게 선종 판사 임무를 맡긴 뒤, 보우는 춘천의 청평사로 들어갔 다. 그곳에서 낡은 사찰을 중창하며 몇 년간 지냈다.

보우는 다시 왕후의 편지를 받았다. ‘중종 대왕의 왕릉을 옮기고자 하오.’

봉은사 근처로 정릉을 옮기면 봉은사가 선종 본사로서 기반이 더 욱 튼튼해질 것이란 바람이 있었다. 보우는 청평사를 떠나 한양으 로 향했다.

꼬박 3년간 중종의 능을 옮기느라 보우는 기력이 쇠진했다. 하지만 연이어 회암사 불사와 낙성식을 겸한 무차법회가 열렸다. 불교 의식을 되살리려는 왕후의 결단으로 열린 행사였다. 수천 명의 승 려가 참여했고 왕후도 목욕재계하고 수십 일 동안 불법에 맞춰 행 사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왕후가 병환에 들었다. 가뜩이나 순회 세자가 열셋에 요절한 뒤 상심해 있던 참이었다. 병세는 점점 심해지다가 위독한 지경이 되었다.

“대비께서 약한 몸을 추스르지 못해, 무차법회를 일시 중지하라 십니다.”

대궐에서 가져온 소식에 무차대회에 참석한 대중들은 충격에 빠 졌다. 그런데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급한 소식이 무차대회장에 퍼졌다.

‘문정왕후가 승하하였습니다.’

왕후는 승하하기 전 정음으로 쓴 유언장을 남겼다.

‘내가 원기가 점점 허약해져 지탱하기 어렵다. 불교가 이단이라 고 하지만 조상 대대로, 선종과 교종을 둔 것은 국가에서 승려를 통 솔하기 위하여 설립한 것이니 조정은 나의 뜻을 알아서 옛것에 의 해 보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불교를 부흥시키겠다는 불심을 기록하고 떠났 다.

그런데도 왕후가 승하하자마자 전국의 유생들이 들고일어났다. “대비가 승하한 것은 회암사 무차법회 탓이오. 불법을 핑계로 가뜩이나 쇠약한 대비에게 육식을 막아서 대비께서 승하하신 것이오. 그러니 보우는 일국의 역적이니 단 하루도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 다.”

왕후의 국장도 지내기 전이었다.

어린 임금(명종)은 대신들의 탄원에 못 이겨 보우의 승직을 삭탈 했다. 서울 근처의 사찰 출입도 금지했다. 도성 밖으로 쫓겨나온 보 우는 강원도 한계산의 설악사로 향했다. 관가에서 이를 알아차리고 멀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습격하였으나 복면한 사내가 말을 몰고 달 려와서 보우와 범해를 구해주었다.

복면한 사내는 보우가 부활시킨 승과시험 첫해에 장원 급제한 휴 정이었다.

휴정은 성균관에서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다가 지리산의 사찰에 기거하면서 불법에 매료되어 출가한 이력이 있었다. 보우의 추천으 로 인해 교종판사로 활약하던 중 임금이 보우의 승직마저 삭탈했다 는 소식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달려온 것이다.

휴정은 보우를 토굴에 피신시켰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토굴에 서 참선에 드는 것이 무작정 달려드는 무리를 피할 유일한 방법이 었다.

휴정과 범해는 토굴 근처에서 경계를 서며 대화를 나눴다. “저들이 본 보우는 누구요? 죽자고 덤벼드는 것은 뭣 때문이오?

스스로 허깨비를 만들고 지레 겁먹은 것이오?” 범해가 휴정에게 물었다.

“답답한 일이 어디 한둘이오? 유학자들이 스님에게 트집 잡아서 매를 때리다가 암매장해도 모른 척하오. 탱화를 찢어버리는 걸 통 쾌하단 자들이오.”

“금강경의 한 구절이라도 안다면 이리 분별심을 잃고 날뛰지 못 할 것이오. 불교를 엎어버리지 못하면 유교가 망할 것이라 하니 딱 하오.”

“율곡이란 자는 임금에게 ‘요승 보우를 논한다’라는 상소를 올렸 다 하오. 율곡은 유학자들이 가장 추앙하는 자가 아니오? 그러니 임금이 유생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오. 퇴계는 유생들 의 청원에도 끝내 보우에게 시비하지 않았는데, 율곡은 어찌하여 보우 대사를 처단하라고 누구보다 앞장선단 말이오. 더군다나 금 강산 유점사에서 계를 받아 승려가 된 적도 있던 율곡이 아니오?”

“그러니 그 상소를 받아 든 임금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하오.” “율곡은 생원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나아가 공자를 알현하려 했다지요. 하지만 중놈은 허락할 수 없다고 일개 관리에게 내쫓기는 수모를 당했던 적이 있소. 그 뒤 홍문관 교리가 되었으나 유생들이 또 중이었던 것을 문제 삼았다 하오. 그 뒤 율곡은 심의겸에게 발탁 되어 관직을 얻었으나 금강산에서 불법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유생 들이 지속해서 비난했소. 유생들에게 그런 수모를 당한 율곡이 보 우를 처단하라고 앞장서다니.”

“장맛비에 한곳으로 거칠게 몰려 내려가는 계곡의 물을 본 적이 있소? 혼탁하게 흐르다가 주변의 논밭을 다 삼켜 폐허로 만들고 물 길도 모두 훼손하는, 거센 흙탕물 줄기 말이오. 저들이 지금 그렇 소.”

휴정은 답답함을 토로하다가 산에서 내려갔다.

휴정이 돌아간 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토굴 쪽으로 황급히 몰려오는 사람들의 거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멀리서 봐도 무장한 병사 십여 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스님! 피신해야 합니다. 관가에서 몰려온 듯합니다.” 범해는 급히 토굴로 뛰어가서 소리쳤다.

“지금 허망하고 허공에 떠 있는 마음을 진실이라 여기지 말고 침 착하라.”

도리어 당부하더니 두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힘겹게 일어섰다. “죄인은 오라를 받아라.”

토굴에서 나오는 보우를 향해 의금부 도사가 소리쳤다.

“죄인을 잡아들여 의금부에 가두고 변방으로 추방하라는 어명이 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보우의 몸을 오라로 묶었다. 곧바로 의금부로 끌고 가서 문초를 마친 뒤 제주도로 귀양 보내기 위해 함 거에 태웠다.

“대사님! 보우 대사님!”

범해가 따라가려 했으나 옆에 다가설 수 없도록 병사가 연신 저지했다.

보우를 태운 함거가 마을을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보우를 알아보 고 합장하거나 병사들에게 보우를 풀어달라고 매달렸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배웅을 막고 이리도 삼엄하게 막아서는 것이오?”

보우에게 다가가려 애쓰며 범해가 병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보시오. 보우가 가는 곳마다 대중이 이리 몰리고 위세를 떨치니 유생들이 반발하는 거요.”

병사가 떠들며 범해를 밀어냈다.

산은 비안개로 반쯤 가려지고 나무는 등처럼 빗방울을 매달고 흔 들렸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우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배 가 아프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멀리서 보기에도 보우는 몹시 땀을 흘리고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당도합니다.”

범해는 보우의 함거에 다가서려 애쓰며 소리쳤다. 그런데 보우가 토하기 시작했다. 승복 자락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를 본 대중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때 행렬을 따르던 대중들이 소매 넓은 도포 자락을 휘저으며 무리 틈에 끼어있던 한 유생을 덮쳤다.

“이 자가 보우의 국그릇에 뭔가를 넣는 걸 내가 봤소!”

한 사내의 말에 대중들이 그를 붙잡아서 무리에서 끌어냈다. 범 해는 그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가만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보우 가 암자에서 수행할 때 뻔질나게 드나들며 암자를 비우라고 채근하던 협이란 자였다.

“어찌하여 아직도 보우 대사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단 말이냐? 누가 시킨 짓이더냐?”

범해가 물었다.

“내가 금강산 암자에 오르내리며 암자를 비우라고 할 때만 해도 보우가 봉은사 판사까지 될 줄은 몰랐소. 그리되었단 소식을 듣고 보우를 찾아갔었소. 유생들이 말하길, 보우에게 청탁하면 왕후에게 말해 좋은 자리로 옮겨준다 했으니 나도 청탁을 넣었던 거요. 그런 데 보우는 나를 세 번이나 내쳤소. 그때 한이 맺힌 거요.”

“유생이란 자가 이단이라 욕하는 스님을 찾아가서 청탁했소?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함거에 실려 끌려가는 보우를 죽이려 들었 단 말이오?”

“당장 죽일 생각은 없소. 한두 달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되길 바랐소.”

“이만 물러나오. 지난 것에 얽매이지 마시오.”

“물론 내 자리 하나 마련해주지 않은 원통함 때문에 이러는 것은 아니오. 나라가 흥하려면 사람의 말을 듣고 나라가 망하려면 귀신 의 말을 듣는다고 하니, 부처를 섬김은 해만 있다 했소. 부처는 요괴인데 산천 귀신을 섬기는 행동을 하니 이제 대중을 꾀는 요승 보 우를 처단해서 불교의 싹을 자를 것이오.”

협의 눈에 핏발이 섰다.

“불교는 이제 보우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오. 왕후 이전으로 돌아 갈 것이란 말이오. 보우와 왕후는 괜한 짓을 한 것이오. 한 치 앞도 못 보고 무슨 춤을 춘 것인가 말이오?”

협은 의기양양하게 마음껏 웃었다. 그런 뒤 대중들을 피해 도망 쳐버렸다. 보우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말이 저주처럼 섬뜩했다. 저들은 지금 누구를 향해 싸우는가. 그 대상이 그들이 만든 상이라 면 실체가 없는 그 대상을 향해 죽어라 싸우는 그들은 허깨비인가, 아닌가.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은 험했다. 각지의 목사들에게 보우는 몇 번이나 가둬지고 결박당해서 끌려다녔다.

“영남 유생들과 다른 도의 유생들이 앞다투어 서울로 올라가서 대궐 문밖에서 보우를 죽이라고 고함지르고 난리가 났다오. 강원도 유생을 제외하고는 다 모인 것 같다 하오.”

범해가 수좌 승임을 알고 유생들이 곁에 다가와서 으름장을 놓 았다.

“보우 대사가 말했소. 모두 하늘의 본연이듯 하늘은 사람이 아닌 적이 없었으며 사람은 하늘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이 망령된 행동을 하지 말란 말이었소. 유교와 불교 역 시 다른 것이 아니란 말을 어찌 그리 들으려 하지 않는 거요?”

“보우는 대중과 왕후, 임금까지 속이고 불사를 한다고 대궐의 돈 을 낭비했소. 백성을 근심에 빠뜨리고 홀로 성스러운 사람이라 자 랑하였소. 뇌물을 받고 제 마음대로 승도를 뽑고 승도들이 그를 왕 사라 했소. 임금은 보우의 편을 들어 보우의 직위를 뺏으려고 그의 허물을 전파한다고 하고,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 상소를 올려도 요승만 감쌌소. 오죽하면 율곡마저 ‘요승 보우를 논하는 글’을 써서 그를 죽이라는 탄원을 올렸겠소?”

유생들은 앵무새처럼 한목소리로, 반복적으로 보우를 비난했다. 범해는 조용히 그들에게서 돌아서며 보우의 심정을 헤아렸다.

보우가 제주도 조천포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절해고도의 척박한 곳, 외딴 마을의 한 초가에 보우는 짐짝처럼 부려졌다. 제주 목사 일행은 보우에게 마당에 물을 뿌리고 쓸라고 시킨 뒤 떠났다. 보우는 홀로 빈방으로 들어갔다.

보우는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생각해보면, 평생 입궁은커녕 궁궐 근처도 못 갔으므로 왕후와의 연락은 내수사를 통한 언간으로만 오갔다. 궁에 언문 편지를 왕래 하는 동안 보우는 재미있는 설화를 창작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이 야기를 꾸며 보내면 왕후의 신심이 더욱 돈독해지리라 믿었다. 왕 후는 그 이야기를 내궁의 부녀자에게 두루 전해서 불심을 가지라 일렀다고 답신을 보내주었다.

보우는 문득 이미 승하한 왕후지만 그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싶었다. 보우는 남은 힘을 다해 먹을 갈아 붓을 들었다.

― 여기서 떠날 수 있다면 일정론을 더욱 알릴 것이오. 잠깐의 혼 미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유교와 불교가 무슨 차이가 있으며 저 사 람과 나 사이에 무슨 나눠짐이 있겠는지를…….

편지를 쓰던 손이 갑자기 허공에 들린 채 멈췄다. 마당이 어수선 하더니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는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글씨 위에 먹물이 마침표처럼 몇 방울 똑똑 떨어졌다. 손에 쥔 붓이 편지 위로 툭 떨어지면서 글씨 위에 검게 번져나갔다.

이미 힘센 장정 셋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장정들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쓰러진 보우의 몸 위로 발길질이 이어졌다. “우리 주인님이 요승을 벌주고 오라 명령해서 한 짓이니 우릴 원망 마오.”

사내들이 돌아가면서 떠들다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초가의 빈방에 서 당하는 일이니 말리는 사람은커녕 폭행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다.

“허깨비로다. 허깨비.”

쓰러져 있다가 정신이 들자, 보우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몇 밤이나 힘센 장정들이 몰려와 보우를 때리고 갔다. ‘허깨비로 와서, 오십여 년 온갖 미친 짓, 모든 영욕 다 겪고, 이제 그 탈을 벗는다.’

보우는 마지막 힘을 다해 게송을 지었다.

새벽이 오려는가, 문득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또 한 무리의 사내들이 또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자루 에 보우를 집어넣고 짐처럼 밖으로 끌어내더니, 자루째 몸이 들렸 다. 파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바닷가에서 보우는 자루 밖으로 끄집어내졌다. 사내들이 달려들어 온몸에 몽둥이질을 퍼부었다. 사지가 갈가리 찢겨나갔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사내들이 달아나 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새벽이 과연 온 것인가.

보우는 온몸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고통을 외면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온몸을 비 춰주는 듯했다. 합장은 불가능했으나 보우는 그 별빛을 오래 보았 다. 파랗고 영롱한 빛이 연신 반짝였다. 자신이 쏘아 올린 한 줄기 빛처럼 여겨졌다.

이대로 사라져도 어두운 하늘을 향해 무수한 빛을 쏘아 올릴 불 제자와 불심 가득하여 환히 빛날 대중의 얼굴이 어른댔다. 그 빛이 잠깐의 먹구름에 가릴지라도 빛의 본체는 여전히 반짝일 터였다. 모든 것은 일(一)이오, 정(正)이었다. 불심의 본체는 그러한 것이고 그러한 불심이 불교를 중흥시키고 대중을 고집멸도로 인도할 터 였다.

보우는 몸을 굴려 바닷가 검은 돌무더기와 해초들 위에 최대한 널브러졌다. 몽둥이질을 당해 쓰러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해서 이곳에서 매를 맞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점차 고 통보다는 자유 자적한 세계로, 가벼이 목숨의 끝으로 향해 자연스 레 가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검은 돌무더기가 깔린 바닥이 부드럽게, 서서히 온몸을 감쌌다. 이제 유학자들의 질투와 미움으로부터 멀어져 자유로운 곳으로 갈 모양이었다. 몸이 허공 위로 들리고 있었다. 왕후와 함께 자신이 이 루고자 했던 불사가 무위로 돌아간 것 같아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는 것이 불제자의 길이 아니던가. 그러니 무위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온몸에 퍼지는 고통은 어쩌면 예정된 당연한 것이어서, 올 것이 드디어 왔다고 느꼈을 때의 후련함처럼 가볍게 희석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자의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만면에 번져갔다. 허 깨비를 벗은 본체의 것이 허공 위로 오르는 중이었다. ■

 

 

김미수 noisnt@hanmail.net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미로〉 당선으로 등단. 소설집 《모래인간》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장편소설 《소설직지》 《재이》 《아빠 살고 싶다》 《바람이 불어오는 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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