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 위한 상생의 교과서

정녕 우리는 후손들에게 디스토피아를 물려줄 것인가?

지구는 기 후가 안정적이었던 홀로세(Holocene)에서 지구 온난화가 빠른 속 도로 진행되는 인류세(Anthpocene)/자본세(Capitalocene)로 진입 하였다. 인류는 1950년을 기점으로 신생대 제4기 인류세 크로퍼드 절(Crawfordian Age)에 살고 있다. 1950년대부터 소위 대가속기 (The Great Acceleration)에 인구, 산업, 교역,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방사능,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가 지구에 지 질학적 변화를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하였다. 환경파괴의 업은 인 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역대급의 장기 대형 산불, 홍수, 가뭄, 폭 염, 폭설, 태풍, 빙하의 소멸, 수면 상승, 미세먼지가 지구촌의 일상이 되었다.

불평등도 사회를 붕괴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상위 10%가 전 세 계 전체 소득의 절반인 52%를 차지하는 반면에 하위 50%는 8.5% 만 차지한다. 자산의 경우 상위 10%가 전 세계 자산의 76%를 차지하는데 하위 50%는 단지 2%만 점유한다.” 80억 명을 모두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는데 해마다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 려 죽는다. 그럼에도 인류 대부분, 특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인 과 자본가들은 태평하다. ‘지금 여기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과연 뭐라 하실까?

김광수 교수의 저서 《신자유주의와 상생의 불교경제학》은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한 불자 교수의 지난 한 번민과 사색이 응축된 역작이다. 꼼꼼하게 읽기를 마친 후 내린 결론은 이 책이 ‘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상생의 불교경제 학 교과서’라는 것이다. 먼저 미덕부터 이야기하자.

가장 큰 미덕은 시의적절한 역작을 상재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와 불평등의 위기를 맞아 두 문제를 모두 극복하는 대안을 불교에 서 찾아 상생의 불교경제학의 지평을 연 것은 사회적인 의미가 지 대하다.

다음의 미덕은 이 책이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라는 문제의 근본적 인 원인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임을 명백히 밝히면서 논의 를 펼친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장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 하고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존의 불교경제 사상들을 살펴본 후에 상생의 불교경제학 곧 자발적 가난, 자족적 경제, 불교수행생활 공 동체의 길을 펼치고 있다.

임계점을 넘어 극대화한 것이 최근일 뿐이지, 환경위기와 불평등 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이 문제를 절박하게 인식하 는 불교학자들은 대개 불교에는 두 문제를 해결할 지혜가 풍부하 다고 생각한다. 불교가 이타행과 보살행을 삶의 목표로 삼고 무소 유와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윤리를 강조하며 불살생과 자연과 공 존을 추구하고 수행 공동체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기와 공(空)에 대한 지혜와 동체대비의 자비심을 두 축으로 하면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들이 무수히 상상되 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문적 실천이다. 이에 슈마허, 이노우에 신이 치, 윤성식 등이 불교경제학을 펼쳤고 김광수 교수도 여기에 한 발 을 들여놓았다. 이기심, 경쟁, 물신주의, 소외, 성과주의, 불공정성, 빈곤, 노동 강요, 공동체의 해체, 과잉 소비, 자연 파괴와 인간 파괴, 신식민지배 등 김광수 교수는 시장 자본주의가 야기할 수 있는 문 제점을 망라하였다. 이 점은 그중 몇 가지 지적에 그친 선학들의 논 의를 넘어선다.

이 저서의 셋째 미덕은 불교경제학의 교과서라는 점이다. 저자는 성실한 학자답게 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 슈마허의 경제학, 간디 의 경제학, 소득 중심에서 행복 중심으로 전환한 여러 이론과 지수, 이노우에 신이치의 경제학, 윤성식의 연기자본주의론, 강수돌의 살 림 경제학에 대해 잘 요약하고 있다. 이어서 경전의 근거, 불교의 논리, 수행과 실천 방법, 《화엄경》 등 다양한 경전의 보시행을 통해 자발적 가난론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국외에 이르기 까지 여러 불교수행 공동체를 요약한 다음 이상적 수행생활 공동체 의 의의와 구조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보완할 점은 ‘교과서’다. 분명히 앞 선 작업보다 진일보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얼마나 창조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가 하는 점 에 대해서는 선뜻 손을 들어주 기 어렵다. 윤성식, 강수돌 등 기존의 이론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아마르티아 센의 센코노 믹스처럼 기존의 경제학의 한 계를 정확히 비판할 뿐만 아니 라 이를 넘어서서 새로운 패러 다임으로 전혀 다르게 경제를 분석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 기를 바란다면 필자의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원인 분석의 장(章)이 빠지고 초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도 많이 아쉽다. 기존의 불교경제학에서 가장 큰 한계는 당위적 진술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 전보다 이를 많이 지양하고 있지만, 원인 분석 없이 바로 대안으로 넘어갔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 분석을 2장으로 설정하 였으면 책이 한 단계 더 상승하였을 것이다. 원인을 두루뭉술하게 자본주의라고 볼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어떤 메커니즘과 요소가 그런 문제점을 낳았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해야 대안도 타당성 과 설득력을 갖는다.

또 자본주의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산업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 플랫폼 자본주의가 각기 많이 다르다. 따라서 각각에 따른 문제점과 원인, 대안도 달리 해야 한다. 이 책 의 제목이기도 한 신자유주의 체제만 하더라도 크게 공공영역의 사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축소, 자본에 대한 규제철폐, 국가와 자본의 유착, 금융에 의한 초과 수탈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에 맞춤 한 치밀한 분석과 대안이 없다. “MB 정부 3년간 고환율 정책으로 무려 174조 원의 돈이 서민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 결과 국 민의 97%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은 무려 15.3% 이상 감소했다.”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소비의 절제와 공동체만으로 대안이 될 지 의문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도 마르크시즘이 유용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아직 마르크시즘만 한 사상이 없다는 점, 구체적인 노동과 경제의 입장에서 사회를 분 석하는 점,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유토피아를 제 시한다는 점 등이다. 저자에게 왜 마르크스를 배제하였느냐고 물 어보았더니 “마르크스는 생산의 측면에서 논의를 폈는데 그렇게 하려면 노동/노동자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고, 무엇보다 나는 소비의 측면에서 불교경제학을 펼쳤다.”라고 대답했다. 한편으로 일리 있 는 말이지만,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경제가 생산과 소비의 양 날 개로 펼쳐지기에 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대안 또한 노 동거부와 소비거부/절제다. 그러기에 한 면을 버리는 순간에 반쪽 만 진술한 것이 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하 면서 인용한 김수행, 김대환, 강수돌, 폴라니 등의 글들이 대부분 이미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되풀이한 것이다. 2차 서적에서는 정전 (canon)이 가지는 깊이와 아우라를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탄소세 처럼 훌륭한 개혁적인 대안도 자본주의 체제가 시장의 상품으로 전환시켜 무력화하고, “고작 100개 기업이 산업시대부터 ……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 총량의 71%에 책임이 있는” 상황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을 매개로 한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하지 않은 대안은 미봉 책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 나름의 비판과 평가가 빠진 것도 내내 아쉽다. 슈마허부터 시작하여 기존의 경제학을 요약만 할 일이 아니다. 한계에 대해 저 자가 예리하게 비판하고 평가해야 입체적 서술이 된다. 더 나아가 그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그들을 넘어서는 불교경제학 을 펼칠 수 있는 지평도 열린다.

현 상황에서 지구 기온이 1.5° C 더 올라가면 엄청난 파국에 이르 는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023년 9월 1일 현재 5년 334일밖 에 남지 않았다. 부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잡보장경》의 환희수(歡喜首)로 나투셨으리라.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해 진정 으로 절박감을 느끼며 무엇인가 하려는 이들은 환희수를 보리라. 이 저서가 많은 대중이 환희수를 따르는 초발심으로 작동하기를 마 음 깊이 서원한다. ■

 

이도흠 ahurum@hanmail.net

한양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 간 《문학과 경계》 주간 등 역임. 주요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인류 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8-19 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백기완 노나메기재단 부설 노나메기민중사상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