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지성으로 도달하는 불교의 무아

불명확한 개념과 오류에 빠진 논의가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우리 를 대중심리에 빠뜨리고 부화뇌동하게 하는 이때, 태평양을 가로질 러 서슬 퍼런 논리를 품은 책이 도착했다.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모어헤드 홍창성 교수(이하, 저자)의 책 《무아, 그런 나는 없다》가 그것이다.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사하게 보이는 질문의 변 변찮은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확고부동한 ‘나의 존 재’에 대한 통념을 부순다. 이어 형이상학과 심리철학을 전공한 저 자의 논리의 칼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던 영원불변 · 불 멸하다는 ‘나’를 베어낸다. 마음과 몸이 변해도 나를 언제나 나이게끔 하는 ‘나’, 나를 다른 이들과 구별 지어 주는 그러한 ‘나(자아, 영 혼, 참나)’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무아론이 다.

저자는 불교 문헌을 가져오지 않고, 불교 종파의 이론을 내세우 지도 않으며, 다른 철학자의 입을 빌리지도 않는다. 그는 오직 현대 적 관점에서 논리적 분석과 비판적 사고로 ‘무아’를 논증한다. 논의 에 논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철저하게 논리적인 산물인 이 책 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위해 불교의 진수인 무아론을 소개하고 있다.

《무아, 그런 나는 없다》는 저자가 한 호흡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 다. 그를 근저에서 30년간 지켜보아서 아는데, 저자는 언제나 머릿 속에서 모든 논의의 준비를 끝낸 후 한 호흡으로 글을 쓴다. 간단 한 개요를 만든 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개 요가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 있는 각 장에 대한 요약이다. 제1장의 ‘나는 누구인가’와 제2장의 ‘자아는 모순이다’에서는 불교를 모르거 나 철학적 훈련 없이도 건강한 지성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 의 질문과 논의를 따라가며 ‘나의 존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분석 하고 ‘자아’ ‘영혼’ ‘참나’가 개념적으로 모순임을 깨닫게 된다. 제3장 부터는 무아의 논증이 시작된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 용어와 철학 논증들을 일상 언어로 바꿔 쓰고 알기 쉽게 재구성하며 독자들을 철학의 장(場)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철학적 · 비판적 사고의 현장 에서는 얼마나 “목숨 걸고”(저자가 수시로 쓰는 말이다) 치열하게 그리고 지독히도 끈질기게 생각하고 토론하고 논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제3장 ‘붓다의 무아’에서는 붓다가 직접 제시한 무상으로부터의 논증과 비재귀성(非再歸性) 원리로부터의 논증을 상식에 맞게 자세히 설명하며 붓다의 무아론 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동아시아 대승전통에서 불법의 근간인 ‘연기(緣起)’로부 터 무아를 논증한다. 만물이 조 건에 의해 생성 · 지속 · 소멸한 다는 연기법은 만물이 무상함 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를 구성 하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각각도 연기하기에 무상하다. 그래서 무아가 진리이다. 나아 가 연기하는 만물은 스스로 존 재할 수 없기에 스스로의 본성 (자성)을 가질 수 없다. 만물은 자성을 지니지 않아 공(空)하다. 따라서 연기하는 색수상행식도 고정불변 · 불멸하다는 본성을 지닐 수 없기에 공하다.

제4장 ‘철학의 무아’에서 저자는 우리가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그 리고 언어철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논의와 통찰을 이용하여 붓다의 무아를 논증한다. ‘모래더미의 패러독스’의 논증을 시작으 로, 내 몸의 경계선을 정할 수 없는 이유를 다각도로 논의한다. 그 리고 나의 마음이 나의 뇌 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 해, 뇌도 몸 밖에서 들어온 빛과 공기 그리고 소화된 음식물로 이루 어져 있기에 뇌와 뇌가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문제 를 제기하며, 내 마음의 테두리를 결정할 수 없을 것이라 의심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논의가 나온다.

내 마음이 품고 있는 의식 내용이나 심리 상태의 내용도 순전히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이나 자연환경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와의 관계에 의 해 결정된다는 논지이다. 내 마음의 내용이 내 것이 아니기에 내 마 음과 마음 밖과의 경계를 정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내 뇌의 뇌신경 세포들을 샅샅이 뒤져봐도 내 마음의 의식 내용이나 심리 상태의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나’가 실재한다면 실재 하는 몸이나 마음의 경계가 분명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 에 ‘나’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제5장은 우선 구성 형식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구나 (철 학) 논문을 쓰거나 자신의 논지를 발표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토론 할 때 자신의 주장만 말하고 끝낸다면, 그것은 비판적 논문이나 토 론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논증에 대한 반론들을 고려하고 이에 대응 하며 그 논증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논의하는 작업까지 마쳐야 제 대로 된 논문이고 토론이다. 저자는 제5장 시작 부분에 “어떤 주제 를 잘 논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능한 반론을 고려해야 한다. 반 론이 없는 논의는 실은 논의가 아니고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가의 연설이나 종교 사제의 설교에 불과하다. 생산적인 논의가 되 기 어려워 지적으로는 재미없다.”(110쪽)라고 말한다. 지난 25년간 미국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학생들에게 에세이 과 제를 내주거나 토론할 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제5장 ‘반론들’은 첫째로 데카르트의 철학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도출되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다 룬다. 저자는 “현재 영어권 나라의 주류철학인 분석철학에서 선호 하는 방법론으로 …… 상대방의 주장을 분석한(쪼갠) 다음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것 …… 말하자면, 분열시켜서 파괴하는 방식”(121 쪽)으로 데카르트가 분명히 설명하지 않은 ‘생각’과 ‘나’의 관계를 파 헤치며, 데카르트가 ‘나의 존재’의 증명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인다.

이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는 몸과 마음의 합체’라는 두 번째 반론을 살펴본다. 몸과 마음이 모인 전체로서의 ‘나’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부분들이 모여 이룬 전체가 실재한다.’라는 창발론에 근거 한다. 그런데 저자는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강력하게“(이 말도 저자가 수시로 쓰는 표현이다) 창발론을 해체한다. 저자가 제시하 는 ‘책상’의 예를 살펴보자.

“제니의 책상은 네 다리 하나하나의 무 게가 2㎏이고 위의 널빤지는 12㎏이라고 해 보자. 이 다섯 부분을 합치면 20㎏이 된다. 전체로서의 책상도 물론 20㎏이 나간다. 그런 데 만약 부분들을 합친 것(20㎏)과 별도로 전체로서의 책상(20㎏) 이 실재한다면, 제니가 쓰는 책상은 두 무게를 합쳐서 40㎏이 나가 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제니의 책상이 20㎏만 나간다는 사실을 안 다. 그래서 전체로서의 책상과 단지 연결된 부분들의 모임인 것, 이 둘 가운데 하나는 실재하지 않아야 옳다. 어느 것이 허구일까? 책상 은 부분들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부분들 하나하나는 전체 책상이 완성되기 전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가 실재하지 않는다 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전체가 허구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129 쪽)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을 합친 전체로서의 ‘나’는 실재하지 않는 다. ‘나’는 허구이고 허깨비다.

마지막 제6장 ‘다시 나를 찾아서‘에서 저자는 붓다의 무아론을 “존재하지도 않는 ‘나’를 찾으려는 헛수고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 는”(27쪽) 그래서 모든 굴레와 제약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를 노 래하는 대자유의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불교의 연기와 공 그리고 중도를 통해 저자가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불행하지 않 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차분하게 내려놓고 비우는 행복론’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불멸 · 불변하다는 ‘나’를 부정하는 불교의 무아를 허무주의로 오해할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대승불교의 ‘진제와 속제’ 그리고 ‘방편’을 설명한다. 불교는 무아를 궁극적 진리로 여기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편’ 으로서의 개인 인격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격체는 공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아, 그런 나는 없다》는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저자와 함께 논리로 따지고 토론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인 무아론이 지닌 철학적 이고 비판적인 힘을 깨닫게 해준다. 작고 구체적인 문제부터 집요 하게 파고들어 끈질기게 질문에 질문이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독자 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신나고 행복한 과정임을 실감 할 것이다.■

 

유선경 sun.yu@mnsu.edu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세포분자생 물학 박사과정 및 텁스대학 철학과 석사과정 수학. 미국 듀크대학 철학박사. 주 요 저서로 《생명과학의 철학》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공저) 등이 있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 맨케이토(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 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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