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거둬들이며
여자는 먼 들길을 바라본다

삽을 어깨에 메고
남편이 돌아온다
풀꽃을 따며 놀던 아이가 돌 아온다
소를 앞세우듯
기인 그림자를 앞세우고

들에서 집까지
저녁놀이 아름다운 길을 놓아준다

여자는 처마에 불을 켠다
제집인 양
저녁별이 모여든다
풀벌레들 이 모여든다

밥솥에서 밥물이 조용히 끓고
토닥토닥 도마질하듯
풀벌레들이 울기 시작한다

— 시집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밥북, 2023)

 

이준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동시) 당선. 1974년 《심상》으로 시 등 단. 시집 《가을 떡갈나무 숲》 《부엌의 불빛》 《천국의 계단》 등. 김달 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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