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헛것일 줄 알기까지
한 세월이 지났구나

밝았던 얼굴, 낭랑했던 음성
눈부셨던 둘레에

헛것 가득 찬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
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

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
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

모두가 헛것이었구나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 시집 《건들거리네》(동학사, 2023)

 

조창환 /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나비와 은하》 《저 눈빛, 헛것을 만 난》 《허공으로의 도약》 《벚나무 아래, 키스 자국》 외. 편운문학상, 한 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