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씨요람(釋氏要覽)》과의 만남

《석씨요람》과의 만남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의 역주자인 김순미 박사가 그의 은사인 정경주 교수와 번역된 원고를 가지고 윤문하고 있다며, 평소 불교에 관심이 있는 필자에게 동참 제의를 해왔다. 이에 중국의 부세평(富世平)이 펴낸 《석씨요람교주》(북경: 중화서국, 2014)를 들고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였다.

이 책은 11세기 초(1020년경)에 사자사문(賜紫沙門) 석도성(釋道誠)이 편찬한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간행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불가에서 꾸준히 읽어온 책이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여러 판본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수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혹 학승(學僧)들에 의해 인용되는 정도였으나, 《조선조 불교 의례의 시가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김순미✽ 박사가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여러 해에 걸쳐 번역과 원문 교감까지 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불가(佛家)의 스테디셀러-불학삼서

《석씨요람》은 679개 단어를 불교 경전, 유교 경전, 역사 등 303종의 책을 탐독하여 만든 종합 백과사전이다. 이 책은 서지 체제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까지 전해지면서 꾸준히 근세까지도 ‘불학삼서(佛學三書)’의 하나로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과 더불어 불가에서 활용되었다.

발문을 쓴 석보성(釋寶成)은 이 책의 성격을 “출가자의 규범서”라고 규정하였다. 북송 건국 이후 불교와 도교 사원 건립을 엄격히 제한하던 진종(眞宗)이 1019년 8월에 대사면령을 내리자 비구 · 비구니가 약 40만 명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석씨요람》의 편찬자 석도성은 출가자들이 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행색만 갖추었다고 기롱(譏弄) 받을까 두려워 석씨(출가자)로서 알아야 할 지식과 위의(威儀)를 갖출 수 있도록 초록하고 편집하여 불가의 궤범(軌範)을 만든 것이다.

거기다가 《석씨요람》을 중간 · 복간하는 과정에서 부록으로 율종의 창시자 도선율사(道宣律師)의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敎誡新學比丘行護律儀)〉를 첨부하게 되는데, 이 율의는 도선율사가 절에 들어가는 법, 스승 모시는 법, 사찰에서 생활하는 법, 발우 씻는 법, 목욕하는 법 등 출가자들이 참된 수행을 이루기 위해서 행주좌와에 법의 윤기가 있기를 바라며 465조로 갈무리한 것이다. 출가자들이 몸으로 익혀야 할 규범이 첨가됨으로써 이 책은 명실공히 석씨들의 요람이 되었고, 늘 곁에 두고 익혀야 할 필독서가 된 것이다.

 

《화엄경》 〈이세간품〉 보살십지

《석씨요람》 편목(篇目)에는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의 보살십지(菩薩十知)를 인용하고 있다. 즉, 출가자는 보살과 마찬가지로 제안립(諸安立) · 제언어(諸語言) · 제담의(諸談議) · 제궤칙(諸軌則) · 제칭위(諸稱謂) · 제제령(諸制令) · 기가명(其假名) · 기무진(其無盡) · 기적멸(其寂滅) · 일체공(一切空)의 열 가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십지에 근거하여 이 책을 편집하였다는 것이다. 보살은 보살십지로써 일체삼세의 여러 법을 두루 알게 되는 만큼 해탈하기 위해 출가한 수행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열 가지로 수렴되는 경 · 율 · 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이 책이 보살십지에 근거하여 편목을 정한 만큼 이 책을 통해 그곳에 입문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렇게 출가자들이 알아야 할 열 가지, 즉 ‘보살십지’는 27편으로 나누어지고 또 679조목으로 분화된다. 결국 《석씨요람》은 화엄 사상에 기반을 두고 출가자들의 교육을 위해 편찬된 책이면서, 나아가 출가자들이 일체삼세의 여러 법을 두루 알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

이 책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고려 때로 추정되는데, 조선 초 벽암각성(碧巖覺性)이 편찬한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서문에서 승가(僧家)의 상례가 정돈되어 있지 않아 이를 정립하기 위하여 《석씨요람》 《선원청규》 등을 참조하였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승려 집단은 혈연을 떠나 혈연이 아닌 사람들끼리 불도(佛徒)로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세간(世間)에서 상(喪)을 당했을 때의 절차 혹은 예법과 같을 수가 없다. 또한,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상복도 세간의 경우 혈연관계일 때만 입는 것이므로 그대로 차용하여 입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도 출가한 후 맺는 인연에 따라 양육사(養育師)가 있고 수업사(受業師)가 있으며 친법손(親法孫) 등이 있으니, 스승이 천화(遷化)하였을 때 관계에 따라 입어야 하는 승상복도(僧喪服圖)를 제정할 필요가 있었다. 

《석씨요람》 〈송종편(送終篇)〉에서는 승가의 상복 제도 · 상장(喪杖) · 두건 · 제전(祭奠) · 조문(弔問) · 분상(奔喪) 등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불가의 상의집(喪儀集)을 처음 만들면서 《석씨요람》을 참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석씨요람》이 수입되고 유통되었으며, 불가의 상장례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이 확인되는데, 그동안 간행된 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지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간행되지 않았다고 보고된 바 있다.

《석씨요람 역주》가 발간된 뒤, 역주자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목활자본으로 추정되는 《석씨요람》 낙질본을 찾아내어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상 · 중 · 하 3책 가운데 중권만 있어서 일반적으로 마지막 책에 새기는 간행처와 간행 시기를 알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조선에서도 유통되었음이 입증되는 셈이어서 한껏 기대하고 있다. 더 많은 자료가 발견되어 이 책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인문 교양서

《석씨요람 역주》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중국명판본(4권 2책)을 저본으로 번역하되 일본판본(3권 3책)과 《신수대장경》을 대조하면서 원문 교감까지 진행하였다. 편찬자 석도성이 초간하였을 때의 편차 그대로 중간한 것이 명판본이기 때문에 역자는 그 점에 가치를 두고 다소 오탈자가 많고 판본이 거침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각주에 오류를 밝히고 바로잡았다. 지난한 작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최육림(崔育林)이 쓴 서문에는 “석도성 대사는 들어 아는 것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는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유교 경전, 역사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탐독하였는데, 《석씨요람》의 인용 서적에서 다독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독서하면서 초록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직접 견문한 풍습은 물론이고 그 지역의 언어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어서 불교도의 필독서일 뿐만 아니라, 비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인문학적 기초 지식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천 년이 넘게 적층되어 온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에서 유래된 언어와 관습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 또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심리적으로 불교와 가까이 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 한국불교는 산중에서 출가 승려만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도심 속의 재가자들도 참선할 수 있도록 시민 선방을 개방하고 있다. 이것은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의 심신 안정을 돕는 방법임과 동시에 포교의 일환이기도 하다. 또한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대학들이 곳곳에 생겨나면서 불자들의 의식은 높아지고 지식은 깊어지고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불교계에서 한문으로 된 경전이나 선사(先師)들의 저술을 한역하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석씨요람 역주》가 하나 더 첨가됨으로써 한국불교가 나아가는 길에 보탬이 될 것으로 믿으며, 역주자의 그간 노고에 합장 축복한다. ■

 

엄원대 
문학박사.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석사), 경성대학교 대학원(박사) 졸업. 양산대학교 교수, 양산문화원 이사 등 역임. 논문으로 〈영사악부(詠史樂府)의 춘추대의적(春秋大義的) 연구〉 외 다수가 있고, 저서로 《실용한자해득》 《세상을 품은 문자 한자 이야기》 등과 《삼국유사의 문화적 탐색》 《고운(孤雲)의 사상과 문학》 등의 공저서, 《만연문선집(晩淵文選集)》 《은계유고집(隱溪遺稿集)》 등의 역서 다수가 있다. 통도사 영축신행회 회원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